최근 수정 시각 : 2019-11-28 22:21:33

개성특급시

개성시에서 넘어옴
파일:북한 국기.png 북한의 광역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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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특급시*
* 특급시는 광역행정구역이 아닌 도 산하의 시이나 편의상 같이 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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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FFFFFF> 개성특급시
開城特級市
Kaesŏng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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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소재지 미상
지역 황해북도
면적 179㎢
하위 행정구역 27동 9리
시간대 UTC+9
인구
인구밀도 미상
당위원장 파일:wpk.jpg 리영철
인민위원장 파일:wpk.jpg 김일근
상징 시화 미상
시목 미상
시조 미상
ISO 3166 미상

파일:개성특급시 지도.png

파일:개성시2016.jpg
자남산에서 고속도로를 향해 내려다 본 2016년 개성 시내의 풍경.

파일:external/photos.wikimapia.org/09_big.jpg
자남산에서 내려다본 개성시 한옥 보존지구의 모습

開城特級市 / Kaesŏng City [1]

1. 개요2. 상세3. 지리4. 역사5. 교육기관6. 인문
6.1. 개성상인(송상)6.2. 풍속
7. 만약 개성시가 남한 영토였다면?8. 북한에서의 위상9. 관광
9.1. 명승지
10.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11. 개성 출신 실존/가상 인물12. 남북통일 이후13. 창작물14. 여담

1. 개요

북한 황해북도 남쪽 끝에 있는 도시. 대한민국과 인접한 북한 도시 중 가장 규모가 큰 도시이기도 하다.

2. 상세

바로 남쪽엔 휴전선을 경계로 남한의 경기도 파주시가 위치해으며 한강 하류를 건너 김포시, 강화군과도 바로 인접해있다.[2] 물론 파주시청은 한참 아래쪽에 위치해있고, 바로 근처엔 대성동 마을이 위치해있다.

강화 천도 시기를 제외한 중세시대 436년간 고려 왕조수도였으며, 당시에는 개경(開京)이라 불렸다. 과거 소나무가 많아 송악(松岳/松嶽) 또는 송도(松都)라는 별칭이 있다.[3] 참고로 개성이 1930년 개성부로 개성군에서 분리되기전 까지는 개성군 송도면으로 개성군의 중심지였다. 아무튼 이래저래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근교의 옛 수도인 톨레도거리위상이나 모두 비슷하다.

현재 인구는 30~35만 명(2008년 통계)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것은 근교의 농촌지대의 인구를 합친 숫자로, 시가지 인구는 15만~19.2만 명(2008년 통계) 정도로 추정된다. 남한의 구리시와 비슷하다. 과거 개경의 면적은 25~30㎢로 추정되며, 1950년 당시에는 17개 동에 면적은 29.95㎢였다.

남한과 인접한 도시라는 점에서 2000년대 햇볕정책 당시 개성관광(2007~2008)이 시행되고 개성공단도 설치되었지만, 이후 정권이 바뀌고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중단됐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무너지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인 2018년 4월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판문점 선언에 의하면, 향후 남북간 대사관 역할을 하게 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소재지로 예정되었고 9월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소되었다.

3. 지리

파일:개성의 지리.jpg

개성은 북쪽의 송악산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부흥산, 용수산(용백산), 오공산(蜈蚣山, 지네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이 분지 지형이 다시 한강 하류와 연결되는 예성강임진강으로 둘러싸인 형태라서 외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측면에서 거의 과 같은 지리적 위상을 지녔다. 때문에 평양직할시보단 못해도 상당히 수비하기 좋은 곳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란이 있을 땐 단골로 털리는 장소였다.(...)

분지 지형의 중앙에는 자남산(子男山)이라는 언덕이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신사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지금은 그 자리에 김일성흉물동상이 세워져 있다.

교통 측면에서는 경의선 철도가 지나며, 분단에 따라 개성역이 사실상 평부선[4]의 종점이 되었다. 개성역 외에 손하역이 있다. 또한 개성은 개성평양간 고속도로의 종점이다. 신의주시서울특별시, 목포시로 가는 1번 국도, 개성을 출발하여 옹진군으로 가는 50번 국도가 지난다.

4. 역사

개성특급시 행정구역 변천사
개성군 (開城郡) / 송악군(松岳郡)
개주 (開州, 919)
개경 (開京, 960)
개성부 (開城府, 1398)
개성부 개성군 (開城府 開城郡, 1895)
경기도 개성군 (京機道 開城郡, 1897)
경기도 개성부 (京機道 開城府, 1930)
경기도 개성시 (京機道 開城市, 1949)
개성직할시 (開城直轄市, 1954)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黃海北道 開城特級市, 2002)

개성특급시/역사 문서 참조.

5. 교육기관

1950년 당시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개성중학교[5][6], 개성여자중학교, 송도중학교, 호수돈여학교, 정화여학교, 개성사범학교, 개성상업학교가 있었다. 초등 교육기관으로는 송도국민학교, 명덕국민학교, 만월국민학교[7], 선죽국민학교, 동현국민학교, 중경국민학교, 남산국민학교 등이 있었다.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부설 생약연구소(현. 천연물과학연구소)가 목청전 건물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6.25 전쟁 이후 일부 교육기관들은 남한으로 내려와 다시 문을 열기도 했다. 대전광역시호수돈여자중학교호수돈여자고등학교도 개성시에 있던 것이었으며, 인천광역시송도중학교송도고등학교 역시 한영서원에서 출발했던 유서깊은 개성지역의 교육기관이었다. 또 서울특별시정화여자중학교정화여자상업고등학교 또한 개성 정화여학교가 그 전신이다. 심지어 경인교육대학교 역시 원래 송도사범학교에서 출범했으니, 짧은 시간이나마 대한민국에 소속되어서 그런지 개성의 흔적은 우리 주변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위키백과에 보면 대한민국 시절까지 존재하던 옛 학교들이나 흔적들을 더욱 자세히 찾아볼 수 있다.

6. 인문

6.1. 개성상인(송상)

고려왕조가 멸망한 후, 아예 조선왕조 시대에는 벼슬하는 것도 싫어했는지, 조선왕조 내내 개성은 양반 관료보다는 상인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들 덕분에 조선의 상업이 그나마 발전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어쨌든 개성 송상(松商)은 한강한성의 시전을 본거지로 한 경강(京江)상인들과 양대 상인 세력으로 대립했다. 덕분에 개성은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대신 상업의 거점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도 물산이 모이는 곳치고는 문화가 융성하지 않은 곳은 없었으니, 서경덕 같은 문사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개성상인들이 얼마나 지독했는지는 개성에서 나고 자란 분들의 증언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독한 상인들은 일부러 배가 고파도 음식을 덜 먹을 요량으로 쉬어 버린 떡만 값싸게 사서 쉰 떡으로 요기를 때우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쉰 떡은 값이 쌀 뿐 아니라 복통을 유발해서 더 이상 밥을 먹을 수 없어 돈이 두 배로 절약되곤 했다니.(...) 그러다 탈 나서 약값이 더 들면? 그리고 개성에선 거름으로 쓴다며 각 가정의 를 돈 주고 수거해 가곤 했는데, 가끔 물에 타서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찍어서 맛을 보고 사갔다고 한다.(...) 혹자는 조선의 유태인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개성상인들이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덕목은 신용과 정성이었다. 특히 남에게 돈을 과도하게 꾸어서 사업을 할 경우 차후 신용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해 되도록이면 남에게서 돈을 꾸지 않는 '무차입 경영'으로 유명했다. 이는 개성상인의 후예로 알려진 현대의 기업가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된다.

개성상인의 DNA를 이어받았다고 알려진 대한민국의 기업으로는 OCI아모레퍼시픽 등이 손꼽힌다. OCI아모레퍼시픽을 각각 창업한 故 송암 이회림 OCI 창업주와 故 장원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는 모두 개성 출신이다. 이회림 창업주는 실제 고향도 개성이었으며[8] 평안도 출신인 서성환 창업주는 개성에서 내려와 사업을 했던 어머니로부터 사업을 배워 개성에서 사업을 시작해 훗날 남한에서 사업을 번창시킨 이들로 유명하다. 이 덕에 현재도 OCI아모레퍼시픽은 국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탄탄한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6.2. 풍속

분단되기 이전의 기록에 따르면 전통적인 식문화가 매우 훌륭했다고 전해진다. 전통 사회에서 식문화가 발달하기 위해선 산물이 풍부하고 풍류 문화가 잘 발달해야 하는데, 개성 또한 발달된 상업을 바탕으로 이러한 기반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러운데 고려의 궁중 음식이 기본이 되었다고 한다. 개성 음식 중 유명한 것으로는 개성 쌈김치, 조랭이떡국[9], 개성편수, 개성약과 등이 있다. 개성(및 그 이북지역)에선 설날만두를 먹었다. 본래 이남지역에서는 만두를 먹지 않다가 개성 요리가 남하하면서 만두가 널리 퍼졌다고 한다.

개성 사람들에게는 특이한 풍속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우선 개성 사람들은 매우 폐쇄적으로 다른 지역에 나가 사는 것을 꺼리고, 다른 지역에서 개성에 와서 사는 사람도 꺼렸다. 심지어 바깥으로 시집장가를 가도 언젠가는 반드시 개성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개성 사람들을 불렀던 별명으로는 개성 깍쟁이가 있다. 서울 사람도 개성 사람과 마찬가지로 깍쟁이라고 불렀다. 물론 지금 서울 사람들은 옛날 깍쟁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랑 다르다.

7. 만약 개성시가 남한 영토였다면?

개성은 서울에서 78km로 직선거리로는 58km으로, 평택시 송탄 및 이천과의 거리와 비슷하다. 또 개성과 휴전선간의 거리는 판문점에서 겨우 12km밖에 안 된다. 그래서 1951년 이후 조금만 더 북진을 했으면 개성을 탈환할 수도 있었다는 전망도 있다. 실제로 국군 대대가 개성까지 진출은 했다. 다만 휴전협상 밑밥을 깔기 위해 철수한 탓에 이후 남한측의 영토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고 그대로 휴전협상에서 북한 영토로 넘어간 것이다. 안습.

어떻게 보면 남북국시대 시절의 평양성과 같은 입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평양과 개성 둘 다 한 때는 국가의 수도였으나, 이후 안정적인 남쪽 국가에게는 국경선 코 앞에 위치해있으나 남의 땅이기 때문에 손을 댈 수가 없고, 명목상의 통치 국가인 북쪽 국가 입장에서는 국경선 코 앞에 위치해있는데다가 변방에 속하기 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점이 똑같기 때문.

개성 지역은 모두 미수복 경기도 권역이라 할 수 있는데, 전 경기도 지역을 다 수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므로 아까운 이야기일 수 있다. 다만 개성의 서부전선 방면 휴전선이 제대로 유지되려면 개성의 감제고지인 송악산예성강까지 획득하여야 할 것이었으므로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송악산 일대까지 해서 개성시 전역을 완전히 회복하였다면 군사적으로 해주시와 황해도까지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한편, 만약 대한민국령으로 남았다면 개성은 대한민국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우선 역사적인 상징이 많기 때문에 역사적 관광지가 될 수 있는데다가, 북한과 가까운 장소다보니 북한 관련 관광도 가능할 것이며, 군사적으로도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중 ~ 대도시라는 점에서 주요 군사 요충지로도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 따라서 일본의 교토, 나라처럼 한국에서는 전주, 김해, 공주, 부여, 경주와 더불어 대표적인 관광도시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대체로 통일이 되면 수원시급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통일 이후 수원시 급의 위상을 가진 도시가 될 것이라는 말이 허튼 소리는 아닌 게, 정조 대에 개성, 화성, 남한산성, 강화를 유수부(留守府)로 지정하여 한양의 외곽을 담당하는 주요 군사도시로 지정한 역사가 있어 대략 수원과 개성의 위상이 엇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분단 이전까지는 개성이 여러모로 수원보다 잘 나갔다. 시 승격도 훨씬 빨랐고.

또한 수원이 서울, 인천과 삼각으로 수도권의 주요 공업지역으로 성장한 현대사를 생각해 볼 때 개성공단 및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등 향후 통일한국의 행정중심지 및 공업배후지가 될 개성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얘기이다. 김경진의 전쟁소설 데프콘에서는 통일한국이 수원과 개성에 수방사를 놓고 각각 경기 남북의 중심으로 삼았다는 언급이 있긴 하다.

다만 개성은 시가지 주변 평지가 넓지 않아서 현대적인 큰 도시를 만들기가 어렵다. 개성 이전에 수도였던 경주시나, 남한 도시 중에서 개발 가능한 평지가 좁기로 손꼽히는 부산광역시도 개성과 비교한다면 평지가 훨씬 넓다. 그나마 동남쪽에 현 시가지보다도 좁은 수준의 평지가 있었는데 여기에 들어선 게 바로 개성공업지구. 평양개성고속도로 북쪽에 계획된 약 1천만평 규모의 3단계 확장부지도 평지는 절반도 안되고 죄다 언덕을 타고 올라가는 형태다.

이미 그 개성을 수도로 삼았던 고려 시대부터 틈만 나면 천도할 생각을 했을 정도로 워낙 협소하다는 디메리트 때문에 관광지로서는 몰라도 대도시로서 그리 큰 발전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만약에 통일 후 어떻게든 개성을 키우겠다면 성남시의 구시가지처럼 산을 다 깎아서 도시를 확장하거나, 신개성? 개성의 구시가지를 놔두고 산들을 지나 개풍군, 장단군 쯤에 개성과 연계된 신도시를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대개성계획?

사실 이런 점에서 통일 후 더 기대가 되는 쪽은 평양이긴 하다. 부지도 넉넉하고 교통도 좋으며 이쪽 또한 역사적인 가치가 높고 무엇보다 개성보다 더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대중 외교 창구가 될 수 있기 때문.

그 외에, 개성시라는 도시 외에 대한민국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도 서울특별시가 좀더 휴전선에서 멀어져 군사적 후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며, 이에 따라 서울-고양-파주-개성 방향의 경의선 축선 및 서울-김포-개풍-개성 방향으로의 수도권 개발 또한 보다 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개성역 연장은 확정의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2009년이 아니라 수도권 전철 1호선과 함께 개통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파주 버스 9710같은 광역버스 노선이 개성까지 운행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수원, 서울-인천 축이 발달한 것처럼 서울-개성 축도 고도로 성장할 것이라 했지만. 아무리 상징성과 역사성이 강하다 하여도 현재 전방도시인 철원과 십 수년전 파주의 이미지를 상상해보면 그렇게 광역시급으로 크게 성장하기는 힘들고 의정부와 비슷한 중견+군사도시와 같은 포지션이었을 것이다.

또한 개성까지 우리 영토였으면 파주는 80~90년대부터 무섭게 성장해서 지금의 고양시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반면 고양시, 파주시의 위치를 개성이 차지하여 군 생활을 대신 개성까지 가서 해야됐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밀집되어 있는 수도권이 조금만 더 후방이었다면 징병제를 이렇게까지 빡빡하게 하진 않았어도 될 가능성이 높은 것 또한 현실이다. 고도 개성 절대사수 1사단 또한 개성의 한국 영유로 인하여 수도권 집중화가 더욱 심화되어 경기북도가 이미 설치됐을 가능성도 크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북한 치하에서 개성직할시나 개성특급시라는 이름으로 있던 것과는 달리 한국 영토로 남았다면 경기도 개성시 행정구역으로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최전방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수도권이라는 특징 때문에 광역시 승격 수준까지 커지기는 많이 어려울 것이다. 일산신도시, 운정신도시, 김포 한강신도시나 심지어는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조차도 외국인 관점에서 볼 때 영락없는 군사적 최전방이라고는 하나, 개성시는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지경으로 바로 북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접경지이다. 또한 경기도 수원시 같은 경우는 울산보다 인구가 많은데도 수도권이라서 광역시 승격을 못 하고 있다. 반면 북한과 바로 접해있는 도시라는 개성의 상황에 의거하여 지구, 특구, 특별구 등 특별행정구역 형식의 새로운 행정구역이 설치될 수도 있겠다.

8. 북한에서의 위상

분단 이후, 본래 남한 지역에 속해있었다는 문제, 사실상 현대의 수도권이라고 봐도 될 법한 서울과의 거리, 북한의 입장에서는 최전방 근처에 위치한 도시라는 이유 등으로 썩 좋은 지방은 아니다. 경기도와 바로 접하고 있다보니 이산가족도 많은 편.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이 북한에서의 "출신성분"이 나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때문에 조선로동당 입당이나 군인의 승진 등에도 영향을 끼쳐 군인들로서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최전방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냥 푸대접당한 지역은 아닌데 일단 고려의 수도라는 역사성이 있기때문에 명분명에서 중요한데다가 결정적으로 한강만 타고 넘어가면 바로 남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찾아왔을때도 배급이 일단 이루워졌다고 하며, 그래서 일단 굶주려서 죽는 지역은 아니었다고 한다. 즉, 출신성분에 비해서는 꽤 대접을 받는 축이라는 것이다.

개성공단이 생긴 이후로는 사정이 달라져 군인들에게도 굉장한 선호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우선 개성공단이 있던 자리가 본래 군사적 최요충지로 포 부대가 잔뜩 배치되어 있었으나 개성공단이 들어오면서 포 부대가 전부 송악산 뒤로 옮겨가는 바람에 최전방이라는 긴장감도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거기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북한 내에서 돈주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살만하다보니 소비력도 엄청크고, 개성공단에서 몰래몰래 빼돌리는 수익으로도 짭짤한 부수익을 올리다보니 북한 기준으로 평양, 라선, 남포에 뒤이은 상류층의 도시가 되었다. 게다가 개성공단으로 인해 개성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에 대해 관리를 엄격하게 하다보니[10] 당연히 치안도 좋아지게 되었다.

또한, 개성공단이 들어오면서 개성 시내 지역에 상수도 시설이 깔리면서 인기도가 급상승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제대로된 상수도망을 갖춘 도시라고 해봐야 평양이나 남포, 청진 등과 같은 극히 일부의 대도시에 불과하고, 이런 곳도 수도 시설이 노후화되어 제대로된 급수가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개성은 개성공단이 설치되면서 상수도 시설을 새로 설치했고, 용수가 풍부하여 급수 제한 없이 마음껏 물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11]

그러나 개성공단 폐쇄 이후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휴전선과 가깝지만 탈북자들이 굉장히 적은 지역인데, 당연하지만 휴전선 근처는 전부 지뢰밭에 경비가 삼엄해서 탈출하기가 너무 어렵고, 그렇다고 중국 쪽 국경까지 가자니 거리가 너무 멀기도 하고 출신성분이 나쁜 지역으로 낙인 찍혀 외부로 여행허가를 받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직할시에서 해제되고 황해북도 관할의 특급시가 된 지금은 법적 지위가 많이 애매해진 상황.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도 개성 차량 번호판을 유지하는 등 그 특수한 지위를 알음알음 용인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기사 남포시 역시 평남에 흡수된 이후에도 꽤 특수한 지위를 누리긴 했다. 창원시·수원시 : 보고 배워라 좀 그리고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 접경의 중추지로서 발전의 가능성이 다시 엿보이고 있다. 개성공단이 재개업할까?

하지만 위에서 보듯 결과적으로 이런 인문적 풍토와 지리적 배경(삼면이 물), 역사적 배경(접경지역)이 도시를 확고한 "섬"으로 만들었으며, 결정적으로 주체교 사이비집단의 마수에 들어간 탓에 결국 도시의 위상 역시 대폭 떨어진 꼴이 되었다.

9. 관광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금강산 관광 이후 2007~2008년 잠깐 시행됐으나, 얼마 못가 2008년 박왕자 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중단되어 한국인이 공식적으로 관광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개성관광 문서 참조.

9.1. 명승지

옛 고려의 수도였던 만큼 남한의 신라의 수도 경주시나 백제, 그리고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특별시 못지않게 명승고적이 많다. 2000년대 남북관계가 나쁘지 않았을 때는 금강산 관광과 함께 개성 관광이 있기도 했지만 박왕자 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2008년에 중단됐다. 명승의 대부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개성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됐다. 그리고 옛 고려왕궁인 만월대는 남북 공동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2018년 10월부터 12월까지 8차 공동발굴이 진행되었고 9차 공동발굴은 2019년 2월부터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 만월대 - 옛 고려 왕궁.
  • 개성남대문 - 시가지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내성(內城)의 남대문이기 때문이다. 개성 나성의 남쪽 문은 고남문(古南門).
  • 관덕정 - 자남산에 있는 정자.
  • 성균관 - 조선시대 이후로는 향교이고, 간판만 성균관일 뿐이었다.
  • 개성유수영 - 고려 성균관 부지 내로 건물 이전.
  • 숭양서원 - 정몽주의 제사를 지내는 서원.
  • 선죽교 - 정몽주가 죽임을 당한 곳으로 유명한 곳.
  • 표충사 - 선죽교 옆에 있으며 정몽주의 충절을 기념하는 비각.
  • 목청전 - 태조 이성계의 옛 집.
  • 경덕궁 터 - 태조 이성계의 옛집으로, 개경으로 잠시 환도했을 당시 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터만 남았다.
  • 안화사 - 송악산 기슭의 절.
  • 보제사
  • 고려왕릉 - 현 개풍군에 있는 왕릉도 많다.

10.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파일:Seal_of_gyeonggi_little.png 경기도의 기초자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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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청 관할 시·군 북부청사 관할 시·군
고양시과천시광명시광주시
구리시군포시김포시남양주시
동두천시부천시성남시
도청(본청)
수원시
시흥시안산시안성시안양시
양주시여주시오산시용인시
의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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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시
이천시파주시
평택시포천시하남시화성시
가평군양평군연천군
미수복지역*
개성시
개풍군 장단군
※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지 않는 미수복 지역은 자치 기능이 없는 명목상 행정 구역이므로 실질적인 기초자치단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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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
開城市 / Gaeseong City
국가 대한민국
면적 29.95㎢
광역시도 경기도
행정구역 17동
시간대 UTC+9


1950년 당시 기준 17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수창동(壽昌洞): 이름은 고려의 별궁이자 조선 초기에는 조선의 궁궐로도 쓰였던 수창궁에서 유래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야마토마치(大和町, 대화정)라 불렸다. 시청을 비롯해 관공서가 밀집해 있었으며, 개성 제일의 번화가였다.
  • 동흥동(東興洞)
  • 서흥동(西興洞)
  • 남안동(南安洞)
  • 북안동(北安洞)
  • 선죽동(善竹洞): 정몽주가 피살된 선죽교가 있는 곳. 동네 이름도 선죽교에서 따왔다.
  • 자남동(子男洞): 이름 그대로 개성의 산인 자남산에서 따온 동네 이름이다.
  • 용산동(龍山洞)
  • 관훈동(冠訓洞)
  • 동현동(銅峴洞)
  • 손하동(孫河洞)
  • 고려동(高麗洞): 이름 그대로 고려에서 따온 동네 이름.
  • 만월동(滿月洞): 고려의 정궁인 만월대가 있는 곳. 동네 이름도 만월대에서 따왔다.
  • 태평동(太平洞): 개성역 소재지.
  • 사직동(社稷洞):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사직동과 이름이 같다.
  • 운학동(雲鶴洞)
  • 덕암동(德巖洞)

이북 5도청에서는 북부, 서부, 남부, 동부 4명의 명예동장을 임명하고 있다.

11. 개성 출신 실존/가상 인물

12. 남북통일 이후

우선 서울과의 거리가 가깝다보니(고속버스도 아니고 지하철로 90분 거리![13]30분 이내까지 단축된다.])[14] 서울경기도 지역에서 살고 있는 새터민들이 이북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지척에 두고 싶어해서 살게 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크다. 새터민들의 가족들 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 중 남한 지역을 내심 동경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접근성이 좋은 개성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꽤 될 지도 모른다.[15]

김대중 대통령 때 개설한 문산개성고속도로도 있고, 2018년 남북 도로철도 착공식도 해서 사업 계획이 진행만 된다면 (통일이 된다면) 구 북한 지역과 구 남한 지역을 바로 잇는 교통의 요지로 거듭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현재 문산역에서 끊기는 경의중앙선을 연장할 가능성은 100%라 보면 된다. 그것도 경부고속도로강릉선 KTX 수준의 최고 순위 예산 투입 대상으로.

30km 정도 연장하면 되는데 복선화 부지가 100% 완비되어 있어서 전차선 깔고 시운전만 하면 된다. 그나마 가장 큰 난관이 임진강역 북단의 철교 정도. 다만 청량리~망우 구간의 선로용량 문제로 증차를 못 한다는 문제는 있다. 뭐 현재도 출퇴근시간대 최고 혼잡률은 150% 정도 밖에 안 되고, 지금의 모습만 보자면 개성 그까이꺼 30만 명 정도 밖에 안 되는 지방 소도시지만은...

여기에다 개성 특유의 역사 관광 콘텐츠도 있다. 한옥 보존 지구를 비롯한 선죽교, 만월대고려 왕궁 유적 등의 사적들이 나타내듯이 500년 고려 왕조의 수도란 역사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남한에서 이 개성과 맞먹는 역사성을 가진 곳은 고대 백제의 수도이자 조선의 수도 서울(한강 남부는 옛 백제 중심지)과 신라의 수도 경주시 정도뿐이다. ??? : 우리는 왜?

남북 분단 상황에서도 이미 개성관광을 시행했던 선례가 있는데, 아예 통일이 되어서 이 역사 분야를 개발한다면 그 잠재성은 대단할 것이다. ??? : 위키니트 동무, 왜 나는 빼먹었시요?[16]

결론적으로 남한의 자본이 유입될 최초의 북한 도시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대신 부동산은 헬게이트가 열릴 위험성이 상존하는데, 당장 통일이 이뤄지는 것과 동시에 남한의 자본과 개발이 먼저 투입될 지역이기 때문에 주거용, 상업용 부지로 사용될 토지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성공단이 재건되면서 취업 희망자들이 북한 전역에서 모여들어 이들이 이주하게 되면 이들이 거주할 주택지나 아파트 건설까지 고려해야 하고, 세터민들의 직계 가족들, 대기업 파견 직원들을 위한 숙소와 사무실, 여기에 부설될 교통 및 편의시설까지...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아닌 헬 그 자체가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이는 바로 400년 넘는 세월 동안 고려 왕조의 심장부였던 곳이라 땅 파면 유적이 나올 곳이 아주 많은 땅이라는 것이다. 보통 건물 건설 등을 위하여 땅을 파다가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유적, 유물 등이 발견되면 그곳을 개발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미 역대 왕조의 전쟁 피난처로 애용된 강화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13. 창작물

징기스칸 4에서는 고려의 수도로 나온다. 이슬람 상인이 말을 찾아 주지 않으면 기병 생산이 불가능하며 일본과 중국의 공격을 받기 쉽다는 단점이 있지만, 공예소를 지어서 공예 수치를 100 이상 올리면 재정이 넉넉해지고 식량도 금으로 사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14. 여담

경기도와 워낙 가까운지라 분단 이후에도 북한 억양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은 지역이다. 개성 출신으로 2017년 판문점 귀순오청성 군이 방송에서 쓰는 말투를 보면 그냥 경기도 청년이다. 유튜브 링크 본인의 말에 의하면 워낙 서울말이랑 비슷해서 귀순후 딱히 말투 교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통일부경기도, 서울특별시 그리고 강원도개성만월대 남북공동 평창특별전을 열었던 적이 있다.


[1] 엄밀히 말하면 개성특급시는 현재 황해북도 관할이기 때문에 광역행정구역으로 놓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북분단 이후 상당 기간 동안 개성직할시라는 광역행정구역으로 있었고, 특급시 자체가 흔치 않을 뿐더러, 남포특별시라선특별시처럼 다시 광역행정구역으로 부활할 가능성도 높아서 나무위키에는 광역행정구역에 기재해둔다.[2] 원래 과거엔 장단군이 동쪽, 개풍군이 서남북쪽에 위치해있었다. 허나 1960~70년대 장단군이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파주시, 연천군에 임시 편입되어 일단은 지금까지 개성시와 파주시가 맞붙은 형국이 되었다.[3] 송(松)이 소나무가 아니라, 고려의 수도로서 수도를 의미하는 서울(솔)의 음차였다고 보기도 한다. 이는 궁예의 수도 철원(鐵原, 쇠벌, 서라벌)도 마찬가지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동음이의어) 항목 참조.[4] 남한에 남은 서울역~도라산역 구간을 제외한 경의선의 북한 구간을 평양역을 기점으로 반으로 나누어 북쪽을 평의선, 남쪽을 평부선으로 나눈 것이다. 평양역~부산역이라는 의미로 서울역을 지나가는 흔한 중간역 1로 치는 것이다.[5] 1951년까지는 고등학교가 없었고 중학교 6년제였다.[6] 부산에도 같은 명칭을 가진 학교가 있다. 다만 이쪽은 부산상업고등학교가 인문계로 전환되면서 교명이 바뀐 학교이며, 한자가 다르다.(開城과 開成)[7] 1907년 개교하여 개성 최고(最古)의 초등학교다. 전원주도 이 곳 출신.[8] 장학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회림 창업주는 개성 출신이라는 인연을 앞세워 1975년 당시 시가 1억원(!!!) 상당의 주식을 송도중·고등학교에 헌납하며 학교 재단인 학교법인 송도학원의 이사를 맡았고 1982년에는 결국 학교재단을 통째로 인수하고 이사장에 취임했다. 현재까지도 송도학원은 OCI가 운영하고 있다.[9] 조랭이떡은 눈사람 모양으로 생긴 떡인데 고려를 무너뜨린 이성계에 대한 증오심을 피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가래떡의 목부분을 나무칼로 짓눌러서 눈사람과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내는데 이성계의 목을 졸라버리겠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ㅎㄷㄷ[10] 타 지역 북한 인민이 개성에 들어가려면 서류 5장을 기본으로 낸다고 한다.[11]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상수도 요금이나 상수도 이용상에 제한이 없다.[12] 실향민이다.[13] GTX A선을 연장할 경우[14] 이정도면 사실상 역세권이다. 게다가 거리도 가까워서, 문산에서 약 6정거장만 더 가면 개성역이 나오고, 서울에서의 거리도 수원보다는 멀지만 천안보다 가깝다. 특히 지하철이 연결되면 역세권 대접을 받는 대한민국의 특성상 아예 수도권에 편입될 가능성이 거의 100%다.[15] 다만 이 경우, 기존 원주민들의 텃세는 각오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개성은 북한 정권 치하에서 가장 듣보잡으로 여겨진 곳이고 이는 원주민들이 절대 잊지 못하고 있었을 테니까. 게다가 부를 나눠갖고 싶어하지 않는 게 사람 심리이기도 하고.[16] 물론 평양 역시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는 개발 1순위가 된다. 다만 지리적 조건으로 따지자면 평양은 개성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서울과 평양간의 도로 실태 조사 및 확충내지는 재공사 등의 여부를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