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4 00:38:18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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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라이프니츠 초상화.jpg
본명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출생1646년 7월 1일, 신성로마제국 작센 라이프치히
사망1716년 11월 14일(70세) 신성로마제국 하노버
학력라이프치히 대학교 학사, 석사, 박사(하빌리타치온)
예나 대학교
알트도르프 대학교
연구과목수학, 물리학, 지질학, 의학, 생물학, 발생학, 예방의학, 수의학, 고생물학, 심리학, 공학, 언어학, 사회학, 형이상학, 윤리학, 경제학, 문헌정보학, 역사학, 정치학, 외교학, 음악 이론, 완전한 언어, 우주론
직업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법률가, 외교관, 사서, 언어학자, 역사학자, 신학자.
합리적인 영혼과 마음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다.

1. 개요2. 일생3. 업적4. 평가

1. 개요

팔방미인의 대표주자이자 순수학문과 실용학문 모두에 능통했던 전무후무한 엄친아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와 함께 유럽 근세사에서 대표적인 복합 천재로 일컬어지는 전설적인 학자다.

오늘날 수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이진법미적분을 발명한 위대한 수학자로 널리 알려져있다. 적분이란 게 그래프의 넓이나 부피 등을 구하는 데 사용하는 개념인데, 적분을 사용한다면 공식만 알고 있다면 쉽게 풀리지만, 적분이 없다면 극한으로 구간을 무한대로 나누어 시그마로 직사각형들의 넓이의 합을 구하는.. 대장정을 거쳐야 한다.

2. 일생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불과 15살이었던 1661년에 라이프치히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으며, 1663년에는 예나 대학교에서 수학 강의를 들었다.

1666년에 법과 대학을 졸업하고 학위를 신청했으나 나이가 어려 거절당하고 뉘른베르크의 알트도르프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대학 측에서 그를 위해 마련한 교수직을 사퇴하고, 뉘른베르크의 연금술 사회의 비서직으로 일했다. 이것이 그의 첫 직업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마인츠의 정치인 보이네부르크를 만나 법률고문이 되었다. 이후 항소법원의 배석판사로 승진하여 외교활동을 하였다.

1676년, 브라운슈바이크 공 요한 프리드리히에게 초청되어, 하노버의 궁중고문, 도서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브라운슈바이크 공가 곧 하노버 공가를 쭉 섬겼다. 족보연구를 통해 하노버공이 선제후가 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러나 하노버공 게오르크 루트비히가 영국 왕 조지 1세가 되면서 라이프니츠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뉴턴과 싸운 라이프니츠를 조지 1세가 영국에 데려갈 수가 없었던 것.

말년에 사망할 때, 그의 장례식에는 오직 그의 하인만이 왔다고 한다.[1]

3. 업적

가장 유명한 업적은 아이작 뉴턴과 동시대에 미적분 이론을 발명한 것. 이것으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2] 뭔가 디스글만 적혀 있는데 미분 논쟁에선 사실 라이프니츠도 할 말이 많다.[3] 또 한 가지 중요한 업적으로 이진법을 발명하였고, 이를 토대로 최초의 기계식 사칙연산 계산기를 발명했다.[4] 또한 라이프니츠는 현대논리학의 창시자가 될 뻔했다. 그는 수학에서 기호들을 통해 명제들을 나타내고 증명을 하듯이 애매성과 모호성이 제거되고 인간의 사유 구조를 그대로 반영해 모든 학문에서 쓸 수 있는 보편언어(인공언어)의 구성을 계획했고 심지어 200여년 뒤에야 나온 논리학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이미 제기했다.[5] 사실상 미적분과 더불어 라이프니츠의 가장 큰 업적. 하지만 그의 작업들은 출판되지 않고 책상 서랍 속에 처박혀 수백 년이 지나서야 발견된다. 만약 그의 논리학에 대한 작업들이 온전히 출판되어 학계에 알려졌다면 논리학의 혁명은 200년쯤 앞당겨졌을지 모른다.[6] 어찌 보면 현대 컴퓨터 이론의 시초인 셈.

또한 공간과 시간이 절대적이라고 판단한 뉴턴과 달리 시간과 공간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봤다는 점에서 상대성이론에 대한 예측을 남들보다 더 빨리 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조사해보면 상당한 부분에 영향을 미쳤고 생물학 의학 여타 물리학까지 연구를 하였다

종교학자와 철학자로서 중요한 업적은 단자론(모나드론, monad論)이다. 단자론의 주요 내용은 먼저 근본이 되는 실체인 단자가 무엇이며 어떤 특징을 지니는지를 설명하고, 이 단자들 중에 이성을 가진 단자인 정신이 가지고 있는 진리인식의 원리를 규명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모나드론에 따르면 모든 물체는 부분이 없는 극도로 단순한 실체인 모나드들의 결합체이다. 개별 모나드들은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무관하게 완전히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고유한 상태, 즉 지각과 욕구를 가진다. 지각은 모나드의 일시적인 상태고, 욕구는 한 지각에서 다른 지각으로 이행하는 내부적인 힘이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모나드는 물질적 실체가 아닌 정신적 실체이다. 우리가 보는 물질적 세계는 모나드들이 보는 현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보는 현상들이 순전한 가상은 아니다.

계속해서 모나드론에 따르면 각 모나드들의 자발적인 활동은 신의 전능한 힘에 의해 조화된다. 경험적으로 보이는 인과관계가 작용하는 물질세계는 사실 관념이지만, 모나드들의 관념은 모두 조화되어 있기에 그렇게 생각해도 별 상관없다. 즉, 모나드들은 자발적이라 인과관계나 상호작용 같은 건 없지만, 신에 의해 서로서로 맞아 떨어지게 조정되어 있으므로 일상적인 생각에 부합하는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위와 같은 모나드론은 상당한 개소리(...)로 느껴지지만, 데카르트기계론에 반대하는 아리스토텔레스식 목적론과 데카르트로부터 이어받은 합리론 전통, 그리고 기독교적 신앙을 합쳐 그 극단으로 끌고나간 철학이라고 보면 된다. 라이프니츠와 같이 정신만이 존재한다고 보는 형이상학적 입장을 유심론이라고 부른다.

이와 비슷하게 스스로 물리학 이론도 하나 만든다. 라이프니츠는 힘을 근원력과 파생력으로 나누었는데, 근원력은 단자의 목적이고, 파생력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7] 이 파생력이 우리가 흔히 느끼는 힘이며, 코나투스라고 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변신론인데, 이는 악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이 완벽하지 않는다는 주장, 그리고 신이 왜 인간을 완벽하지 않으며 악한 존재로 만들었냐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결국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그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욕망 대로 선택하게 되었고 결국 이러한 인간의 선택에 악은 부가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이며 악이 단순히 나쁜 것만이 아니라 뒤에 따라오는 행복과 선을 조금 더 극대화시켜주는 역할까지 하며 세계를 최선의 형태로 만든다. 이를테면 악은 음악에 있어서 순간의 불협화음적 요소로써 오히려 음악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존재이다.

유한한 존재에게는 아무리 선을 행하려 한다 해도 그 선 때문에 누군가 피해 보거나 고통 받는 악이 뒤따르게 되며 인간은 악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지가 있는 세상이 오히려 의지가 없는 세상보다 최선의 세상이며, 결과적으로 악도 하나의 선을 실행할 수 있는 방편이며 결국 선이 존재하기에 악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악은 결국 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주장 때문에 볼테르가 라이프니츠를 싫어했다고 한다. 이 사람의 낙관주의를 디스하기 위해서 쓴 소설이 다름 아닌 캉디드.

또한 양상 논리에서 가능세계의 개념을 최초로 철학에 도입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신은 이 세계를 가능한 최선의 형태로 창조했으며, 이에 대한 논의에서 가능세계의 개념이 생겨났다. 여기서 라이프니츠는 모든 진리를 수학 법칙처럼 무조건 참이 되는 필연적 진리와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우연적 진리로 나누었는데, 그에 따르면 이 세상은 신에 의해 모두 최상의 완전함이 실현되었으며 따라서 우연적 진리로 보이는 것들도 사실 필연적 진리라고 주장했다.[8][9]

4. 평가

논리학을 형이상학을 여는 열쇠로 사용한 철학자의 가장 좋은 예. - 버트런드 러셀
우리의 재능을 라이프니츠와 비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저서들을 집어 던지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죽을 수밖에 없다. - 드니 디드로
그는 자신의 위대한 수학적 재능을 많은 분야에 낭비하였다. 그가 수학만 파고들었다면 훨씬 훌륭한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 - 가우스

[1] 미적분 이론을 가지고 뉴턴과 싸움을 했는데, 중재한 수학자들이 낸 미적분 문제풀기 대결에서 뉴턴에게 대패를 당해 웃음거리가 되어 벌어진 일이다. 라이프니츠의 방법이 더 나은 것으로 평가되긴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뉴턴이 문제풀기에서는 속도와 정확성 모두 그를 완벽히 압도했다.[2] 원래는 뉴턴이 먼저 만들었고 나중에 라이프니츠가 만들었지만 뉴턴은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책상에 넣어 두고 학회에 발표도 안 했다. 라이프니츠의 미적분 발표에도 관심이 없었다. 반면 활발한 성격의 라이프니츠는 미적분을 발명하자마자 바로 독일 학회에 발표하였다. 하지만 뉴턴 밑에서 공부하던 제자들이 영국학회에 이의를 제기했고, 당시 세계 과학을 주름잡는다고 생각했던 영국학회는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이론을 베꼈다고 독일학회에 항의하였다. 결국 나중에 국제 소송에선 영국과 독일의 과학자들 사이의 힘겨루기처럼 커졌는데, 이것은 곧 단순히 누가 이론을 발명했는지 진실을 가리는 것이 아닌 어느 국가가 과학의 선두주자인가에 초점을 둔 사건이었다.[3] 미적분을 먼저 발명한 건 뉴턴이지만, 현재 전 세계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미적분의 기호나 이론은 모두 라이프니츠가 만든 체계를 쓰고 있다. 결국 미적분의 실용화에 가장 기여한 이가 바로 라이프니츠이다. '그럼 뉴턴은 왜 미적분 실용화에 기여 못 했나'라고 하면 당시 뉴턴이 만든 미적분의 기호는 배우기에 너무 까다롭고 오직 뉴턴만 알 수 있는 복잡한 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논문을 쓸 때도 라이프니츠는 '하나의 변수를 다른 변수에 대해 미분한 값'을 어떤 기호로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 '변수에 대한 함수란 건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 '적분기호를 실제 쓸 때 편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할 방법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해서 dy/dx라는 적합한 기호의 틀들을 만들어 내는 데 관심을 두면서 연구를 진행하여 다른 학자들에게 나름 쉽게 이해를 시키기도 하고 인정을 받았으나, 뉴턴은 그냥 미분을 어퍼스트로피로 끝내서 표현(y')하는 등 미적분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기호와 틀의 보편성천재 아닌 사람도 쉽게 이해할 만하게 만들기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다. 주식하느라 그랬나? 또한 뉴턴의 성격 자체가 너무 내성적이라 일일이 학자들이 미적분에 대해 궁금해하는 편지를 보내도 아무런 답장이나 대꾸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뉴턴식 미분 표기는 별로 쓰이지 않고, 뉴턴 본인이 만든 고전역학에서 시간에 대한 미분을 표현할 때나 쓰인다.[4] 이전 버전에서는 "주역의 괘를 보고 이진법을 창안해 내었"다고 적었으나, 라이프니츠가 이진법을 고안한 것은 1696년으로 추정되며, 이진법을 소개하는 라이프니츠의 글은 1697년 신년맞이 연하장에서부터 나타난다. 라이프니츠가 주역에 대해 알게된 것은 강희제의 개인비서였던 선교사 부베가 1700년 11월 말에 작성한 편지를 통해서이다. 즉, 당시의 우편절차를 생각하면 1701년이 넘어서야 주역의 존재를 알게 된 셈.[5] 박병철,'쉽게 읽는 언어철학,서광사,2009,p61[6] 후세의 비트겐슈타인급의 업적을 이때 남기는 것까지는 어렵더라도, 라이프니츠파 논리학이 생겨서 여러 계보가 생기고 20세기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학문적 후계자가 되어 라이프니츠 기원의 논리학 틀을 철학까지 끌어와 실제 역사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켰다든지 했을지도 모른다. 라이프니츠의 이론을 토대로 발전해서 비트겐슈타인 때는 논리학과 그를 토대로 한 철학 기반이 더 깊어져서 비트겐슈타인이 그걸로 한차원 더 높은 발전을 만들었다거나, 뭘 해도 지금보다 좋았을지도 나비효과때문에 안 태어나지 않았을까[7] 출처: 홍성욱 외 17인, '과학철학', 창비, 2011, 1부[8] 이를 완전성 원리라 부른다.[9] 출처: 박병철, '쉽게 읽는 언어철학', 서광사, 2009,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