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조달본부 Defense Procurement Agency (DPA) | |
설립일 | 1971년 1월 12일 |
해체일 | 2005년 12월 30일 |
개편 | 국방군수본부 (1990-1994) |
후신 | 방위사업청 |
약칭 | 국방조달본부, 군수본, DPA |
상급기관 | 국방부 |
역할 | 각군 군수물자의 조달, 자원관리 및 방위력 개선 군 시설공사의 계약 및 시공감독 |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4가 13 (용산기지)[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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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방부 조달본부령 (시행 1984. 8. 30.)
제1조(설치) 육군·해군·공군(이하 "각군"이라 한다)에서 수요로 하는 물자(이하 "군수물자"라 한다)의 조달과 각군의 영구시설공사중 전술공사를 제외한 공사의 계약 및 시공감독에 관한 업무를 통합 관장하게 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 소속하에 국방부 조달본부(이하 "조달본부"라 한다)를 둔다.
제2조(본부장 및 차장) ② 본부장은 장관급장교, 차장은 장관급장교 또는 1급의 군무원으로 보한다.
제1조(설치) 육군·해군·공군(이하 "각군"이라 한다)에서 수요로 하는 물자(이하 "군수물자"라 한다)의 조달과 각군의 영구시설공사중 전술공사를 제외한 공사의 계약 및 시공감독에 관한 업무를 통합 관장하게 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 소속하에 국방부 조달본부(이하 "조달본부"라 한다)를 둔다.
제2조(본부장 및 차장) ② 본부장은 장관급장교, 차장은 장관급장교 또는 1급의 군무원으로 보한다.
국방부 조달본부(國防部調達本部, Defense Procurement Agency; DPA)는 현 방위사업청의 전신으로, 1971년 1월 13일 국방부 건설본부와 각 군 조달기구를 통폐합해 창설한 국방부 직할부대였다.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 감소를 공표한 닉슨 독트린에 대처, 자체 방위력 개선과 자주국방 실현을 위해 각 군에 분산된 물자 및 무기 조달업무를 일원화한 것. 국방부 산하에 있지만 웬만한 중앙부처를 능가하는 예산을 굴리는 탓에 말도 탈도 많았으나, 30년에 걸친 전력증강계획을 완수하는데 이바지한 명실상부 군의 핵심기관이었다. 1993년 말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포탄사기사건 이후로 업무 범위가 점차 축소되다 2006년, 참여정부가 방위사업청을 신설하며 35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본부는 용산기지 북측의 초대 해병대사령부 부지를 사용했으며 전국에 분실을 두고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핵심국에는 군수무관부를 설치해 운영하였다.
2. 연혁
- 1970년 12월 1일 국방부 조달본부령 국무회의 의결 및 공포
- 1971년 1월 1일 국방부 조달본부령 시행
- 1971년 1월 12일 국방부 조달본부 창설
- 1990년 국방군수본부로 개편
- 1994년 국방부 조달본부로 재개편
- 2005년 12월 30일 부대기 반납 및 방위사업청으로 고용 승계
3. 조직
창설 당시에는 총무과ㆍ기획관리실ㆍ제1국ㆍ제2국ㆍ원가계산실ㆍ표준실ㆍ검사실 및 시험분석실 직제로 편성되었다.실장 아래 두던 감찰법무담당관이 1973년 차장 밑으로 이동, 점차 내부감사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1974년에는 본부장 밑으로 이동했다. 1980년에 이르러 본부장 아래 감사실을, 차장 아래 규격관리실 및 전자계산실을 둠으로써 정식 감사체계가 갖춰졌다.
기획관리실에서 통제하던 외자구매의 규모가 커지자 1976년에는 외자국이 신설되었다. 1990년~1994년 국방군수본부로 임시 개편되는 동안에는 기획관리부ㆍ군수부ㆍ조달1부ㆍ조달2부 및 시설부로 직제를 단순화하기도 했다. 외부환경 대응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해체 시까지 13차례 개편과정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는 5부 8실 1분소 40개과로 운영되었다.
정원이 1000~2000명, 이 중 군무원만 500~600명에 달할만큼 현재의 방위사업청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은 규모를 자랑했다.
4. 역대 본부장
본부장에는 주로 중장급[2] 장교가 보임되었다. 군수 및 기획관리 분야에서 가장 요직인 만큼 군수통[3]이 아니면 맡기 힘든 자리였다. 역대 | 이름 | 기간 |
초대 | 이만복 | ~ 1971년 |
2대 | 윤봉주 | 1971년 ~ 1974년 |
3대 | ||
4대 | ||
5대 | 최명재 | |
6대 | 곽노철 | |
7대 | 이창구[4] | 1984년 ~ 1987년 |
8대 | 장홍렬[5] | 1987년 ~ 1989년 |
9대 | 김학옥 | 1989년 ~ 1990년 |
10대 | 이상호[6] | 1990년 ~ 1992년 |
11대 | 이준[7] | 1992년 ~ 1993년 |
12대 | 이수익 | 1993년 |
13대 | 임삼 | |
14대 | 유경희 | |
15대 | 권영효[8] | |
16대 | 최동진 | 1998년 ~ 2000년 |
17대 | 성유경 | 2000년 ~ 2002년 |
18대 | 김정일[9] | 2002년 ~ 2005년 |
19대 | 박경서 | 2005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