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3 00:08:01

김현수/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김현수(1988)

1. 아마추어 시절2. 프로 경력
2.1. 두산 베어스 시절
2.1.1. 2008년 이전2.1.2. 2008 시즌2.1.3. 2009 시즌2.1.4. 2010 시즌2.1.5. 2011 시즌2.1.6. 2012 시즌2.1.7. 2013 시즌2.1.8. 2014 시즌2.1.9. 2015 시즌2.1.10. 두산에서의 기록2.1.11. FA
2.2. MLB 시절2.3. LG 트윈스 시절
3. 국가대표 경력

1.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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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고 시절 김현수

신일고 시절부터 뛰어난 타격으로 이름을 날리며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혔다. 하지만 AAA대회 당시 멤버중 김현수만 혼자 프로구단에 지명을 받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미스터리지만, 발이 느리고 수비를 무성의하게 한다는 평가가 있었던 점, 하지만 김현수를 가르쳤던 한 코치의 증언에 의하면 "현수는 쳤다 하면 2루타여서 열심히 뛸 필요가 없었다."라고 증언하는 것을 보면 스카우터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 하다. 미국으로 진출한 신일고 동기 남윤희에 대한 보복으로 각 구단 스카우트들이 담합하여 지명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지만[1] 1987년생 드래프트를 보면, 남윤희와 김현수 사이에 지명된 신일고 출신인 모상기, 김상수(투수)도 있고 김현수와 남윤희는 태어난 해만 다를 뿐 신일고 동기이다. 2차 지명 회의 다음날 국내/외 많은 구단 관계자들이 김현수의 집을 찾았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롯데 자이언츠에서 김현수를 지명할 예정이라 했으나 김문호를 지명하면서 그만뒀다고도 한다. 대학 진학보다는 프로에서 뛰고 싶어 고민하다, LG 트윈스에는 박병호정의윤이 이미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기에 두산에 신고선수로 들어가기를 선택했다고. 박동희의 기사 [2]

다만, 위에 김현수와 김문호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건 체면치례용 아니면 면피성 발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김문호는 200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에서 지명되었는데, 만약 정말로 김현수와 김문호 사이에 고민을 했다면 다른 팀들이 김현수를 안 뽑는 걸 보고 4라운드에 '이게 웬떡이냐~'며 김현수를 지명해야 하는게 정상이다. 아니면 최소한 그 뒤에 라운드라도. 그런데 김문호를 지명하고도 9라운드 6명을 더 뽑을 동안 지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냥 애초부터 김현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물론 롯데 만이 아니라 8개 구단 스카우트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야구팬들은 농담삼아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때문에 기피한거 아니냐 하기도 하지만, 8개 구단 프런트들이 전부 저런 저주를 철썩같이 믿고서 안 뽑았을리는 물론 없다. 발이 느리고 수비가 약한데다가 장타툴이 없는 외야수라는 평으로 다들 기피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3] 어쨌든 결과적으로 김현수는 스카우트들의 보는 눈이 틀렸다는 것을 완벽히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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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로 경력

2.1.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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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그리고 저 은퇴할 때 까지 두산에서 같이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15 시즌, 메이저리그 진출 얘기가 나오고 있을 때, 시상식에서 팬들에게
''10년이면, 두산에서 잡아준다면 두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15 시즌 허슬플레이 시상식에서 10년 후에 김현수 선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질문에.
[허슬플레이 시상식] 은퇴할 때까지 두산베어스와 함께! 3할본능 김현수!
안타깝게도 두산은 김현수를 잡지 않았고 김현수는 LG에 갔다

2.1.1. 2008년 이전

신고선수로 입단한 만큼 절치부심하며 훈련했다. 김광림 타격코치의 지도 아래 매일 하루 1000번의 스윙을 했다고 한다. 입단 첫해 훈련 중 외야 수비를 하다 펜스에 제대로 부딪쳤는데 툭툭 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김경문 감독의 눈에 들었다.

2006년 시즌 후 교육리그에서부터 잠재력을 인정받고 2007 시즌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며 1군 무대에 첫 등장하였다.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으로 팬들로부터 김경문 감독의 양아들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점점 리그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이후 주로 2번타자로 출전해 99경기, 타율 0.273을 기록했다.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팀 내 타율 4위, OPS 6위, wOBA, WAR 5위를 기록하며 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2.1.2. 200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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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는 일거에 수위 타자로 떠오르며 리그 최고의 교타자로 등극했다. 신인이나 마찬가지인데도 2008 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해서 호타를 보여주며 활약했지만[4], 그 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1사 만루에서 병살타를 쳐서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마지막 타자였던 쿠바율리에스키 구리엘이 친 병살이랑 똑같다고 하여 김쿠바, 김구리엘이란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하필이면 상대도... [5]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5차전 9회 1사 만루에서 또다시 1-2-3 병살을 치며 두산의 2년 연속 준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당시 병살타를 치고 1루에서 펑펑 울던 어린 김현수의 모습은 모든 야구팬들에게 안쓰럽게 다가가기 충분했다.

결국 한국시리즈 최종 성적은 21타수 1안타 그리고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최형우가 21타수 2안타를...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박건우가 24타수1안타를 기록했다.

2008시즌은 전 경기에 출장해 타율 0.357 (리그 1위), 안타 168 (리그 1위), 출루율 0.454 (리그 1위), 장타율 0.509 (리그 4위), 홈런 9, 타점 89 (리그 5위), OPS 0.963 (리그 2위), WAR 7.14(리그 1위)라는 매우 쓰레기같은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김광현에 밀려 MVP는 수상하지 못했다.

여담으로 이 시절 김현수를 똑딱이 시절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홈런 수가 적었다 뿐이지 잠실구장에서 장타율 5할[6]에 OPS 9할을 기록한걸 보면 똑딱이라고 하긴 무리가 있다. 애초에 장타율 5할에 리그 4위를 달성한 성적을 단순히 홈런 개수가 적었다고 똑딱이라 하는거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김현수 다음 타석의 타자가 장타자 이미지가 강한 김동주였던 점과, 같은 해 각성해 홈런 31개에 무려 장타율 0.622를 기록한 김태균이 있었다는 점[7] 때문에 상대적으로 똑딱이처럼 보였을 뿐이다. 당장 이 해 2루타 1위부터가 김현수(34개)였다.

2.1.3. 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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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8]는 개나 주라는 듯, 2008년의 놀라운 안타 생산능력에다가 부족했던 홈런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가 되었다. 특히 6월 초반까지 4할대 타율을 유지하는 괴물같은 스탯을 찍어주었다.

2009 KBO 드림팀을 뽑는 투표에서 7개 구단 감독 만장일치로 3번타자로 낙찰되기도 하였다. 한참 선배인 홍성흔이 김현수를 가리켜 "타격의 신"이라고 하거나, 이승엽도 베이징 올림픽 때 김현수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치냐"라고 묻기까지 할 정도로 타격 능력에 있어서는 자타공인 천재.

2009시즌은 2년 연속으로 전 경기에 출장해 타율 0.357 이 기계는 신규패치가 없네 (리그 3위), 출루율 0.448(리그 3위) ,장타율 0.589(리그 3위), 안타 172(리그 1위), 홈런 23(리그 11위), 타점 104(리그 2위), OPS 1.037(리그 3위) ,WAR 6.88(리그 1위)등 단지 타격왕만 놓쳤을 뿐 월등히 좋아진 장타력으로 2008시즌보다도 더 좋은 괴물같은 스탯을 찍었다. 하지만 이 해에도 우승 프리미엄 + 홈런, 타점 1위 김상현이 MVP를 가져가면서[9] 2년 연속 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하고도 2년 연속 2위에 만족해야 했다.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김거김을 만들어내는 등 펄펄 날았지만 SK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부진하였다. 그러다 10월 13일 플레이오프 5차전 SK와 경기에서 2회 선제 솔로홈런을 쳤는데, 직후 경기가 우천으로 중단되었다가 결국 취소되면서 그 홈런은 아예 무효 처리되었다. 홈런을 치고 포효하며 기뻐하다가 비가 많이 내릴수록 점점 근심에 싸이는 모습을 보며 두산 팬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홈런을 치는데 왜 경기를 못하니... 다음날 또 홈런을 치면 된다고 인터뷰했지만, 14일 리셋하고 다시 시작한 5차전에서는 두산이 참패하였다. 5차전에서 크게 지고 있던 상황 중 정말로 홈런을 치고 베이스 도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가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슬픈 홈런을 보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습지못미.

2.1.4.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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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진에 빠져있던 2010 플레이오프 4차전 7회말 2사 만루에서 손시헌의 대타로 나와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낸 후
시즌 KIA와의 개막전 2연전에서 도합 8타수 7안타를 치면서 역시 김기계라는 평을 들었으나 최훈 카툰 이후 극도의 부진(?)고장에 빠지면서 김기계답지 못하게 타율이 2할대까지 떨어졌었다.

이러한 부진(…)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했다. 4번 타자에 배치된 게 심적으로 부담이 됐다거나, 베이징 올림픽과 WBC 이후 유명해지면서 펄모씨과 얽히면서 멘탈이 망가진 것 아니냐는 카더라도 있었다. 김경문 감독은 이러한 김현수의 부진에 대해 "야구하면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부진이다. 계속 잘하기만 하면 얼마나 야구가 쉬워 보이겠는가." 라며 현재의 부진이 더 발전하기 위한 성장통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3할 20홈런에 90타점 가까이 기록해놓고 부진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쩌면 김현수 개인에게는 불행한 일일지도 몰랐다.[10]

식빵을 자주 입으로 굽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야갤에서 신나게 까였고, 또한 발전도 없는 새끼가 겉멋만 들었다며 까였다. 그러다보니 기레기라는 별명이 생겼다.

2010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10개의 홈런을 기록, 역대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런데 이 기록은 2012년 김태균이 14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깨졌다. 그러나 2014년, 다시 김현수가 14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보란 듯이 타이기록을 기록했다.

이 와중에 8월 5일 잠실 롯데와의 경기에서 사구를 맞자 성질을 내던 모습이 제대로 걸렸다. 네티즌들의 심한 비난에 직면해 있는 상태이다.#

후반부에 이르러 어느정도 기량을 되찾아 3할을 회복했으며 결국 20홈런 80타점도 무난하게 달성했다.

최종 성적은 132경기에 출장해 타율 겨우 0.317(리그 7위) 출루율 0.414(리그 5위)[11] 장타율 0.531(리그 6위) OPS 0.945(리그 3위) 88득점(리그 3위) 150안타(리그 3위)[12] 24홈런(리그 6위) 89타점(리그 6위) 78볼넷(리그 3위) WAR 5.24(리그 5위, 야수 3위). 2009년에 비해 성적이 크게 하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호를 제외하면 리그 최고 타자 수준이었다. 이 해에도 단 1경기만 결장하며 많은 타석을 소화한 덕에 누적 종합 타격 스탯인 wRC는 홍성흔도 제치고 2위였다. 물론 1위가 압도적이어서 큰 의미는 없지만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팀이 뒤지던 10월 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3:2로 앞선 9회초 무사 1, 2루에서 희생번트를 대야 했을 정도로 준플레이오프에서 극심한 타격 부진을 겪었다. 뒤에 나온 정수빈은 쓰리런... 뭔가 바뀐 듯한 기분
김현수는 이날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고, 팀은 9회초에만 8점을 뽑으며 스코어 11:4로 승리했다. 점수 못 뽑았으면 역전패당할 뻔...

김현수는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7타수 2안타 4볼넷 2득점, 타율 .118, 장타율 .176, 출루율 .286를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부진해 선발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4차전 7회 대타로 나와 안지만의 높은 공을 때려 2타점 적시타를 만든 것 정도가 인상적인 활약. 김현수는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9타수 1안타 2볼넷 2타점 1득점, 타율&장타율 .111, 출루율 .27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김현수는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26타수 3안타 6볼넷 2타점 3득점, 타율 .115, 장타율 .154, 출루율 .281를 기록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2.1.5.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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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까지의 김현수는 한마디로 삼못쓰=삼할도 못치는 쓰레기로 요약 가능했다.

작년 6월에 비해 모든 스탯이 하락하였고 두산의 타선 침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타율이 3할이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장타율로, 무려 1할 정도가 하락했다. 똑딱질도 안되고 2010시즌부터 선언해 왔던 거포 변신에도 완벽하게 실패한 모습이었다. 안타기계가 2땅 기계로 바꿔치기

2011시즌의 두산의 믿기지 않는 부진에 한몫을 했으며 , 2009시즌 올스타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차지한 적도 있는 그가 최형우, 박한이, 전준우에게 밀려서 올스타 출전도 불투명한 상태가 되면서 본인에게는 올해가 최악의 시즌이 되는 듯했다.

그리고 중심 타자였던 김현수까지 무너진 가운데, 김경문 감독은 사퇴를 선언하였다.

결국 감독 사퇴의 여파인지 다음 날인 6월 14일 경기에서 그간의 타격 부진을 만회하듯, 1회 말 이종욱오재원의 연속 출루로 무사 1, 3루인 상황에서 초구를 걷어 넘기는 홈런에 이은 연속 안타로 4타석 3타수 3안타 1홈런 1볼넷으로 경기 MVP 선정과 동시에 3할로 복귀하는 쾌거를 이뤘다. 프로 생활의 은인인 감독의 사퇴에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낀 듯 수훈선수 인터뷰 때 침울한 모습을 보였다.

8월 9일 SK 와이번스전에서 9회말 끝내기 안타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하필이면 심수창이 승리한 날이라서 완벽하게 묻혀버렸다. 두산팬들조차도 심수창 인터뷰를 보고 있다가 두산이 왜 이겼냐고 할 정도였다...

8월 23일까지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어느새 타율도 10위권(.308로 9위)에, 타점 71점으로 5위, 4위 박석민과는 2점차에, 공동 2위인 이범호, 최형우와 6점차, 8월 중순까지 12점을 올려 50점대 후반에서 여기까지 페이스를 올렸다. 물 건너 알버트 푸홀스도 그렇고 몰아치기에 재미들렸나 보다.

9월 들어 부진에 시달리며 2할 9푼대의 타율에 머물렀지만, 10월 2일과 3일 경기에서 안타 및 홈런을 몰아치며 귀신같이 3할에 복귀하였다.

2011시즌 130경기에 출장해 타율 .301, 안타 143, 13홈런, 91타점, 출루율 .392, 장타율 .444, OPS .836을 기록했다. 타율은 겨우 3할을 맞췄지만, 홈런과 타율이 둘다 부쩍 떨어진데다 출루율마저 떨어진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이 해엔 저 급락한 OPS로도 리그 8위를 찍고 리그 야수들중 WAR 11위를 달성하는 충분히 S급으로 평가받을 활약을 펼쳤지만, 2008년, 2009년에 보여준 엄청난 활약에 비해 해마다 성적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2.1.6. 2012 시즌

시즌 초 극심한 침체에 빠진 두산 타선을 거의 홀로 이끌며 기계의 귀환을 예고하나 싶었으나 3할도 못 치고 말았다.

4월은 좋았으나 5월 이후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는 가운데 남은 두산 타선의 마지막 자존심. 클린업 김동주최준석이 모두 부진한 가운데, 삼진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서 꼴찌경쟁 중인 두산 타선에서 활약하는 유일한 선수이다. 6월이 다 가는 시점에서 3할을 충분히 넘고 있는 상위권 타자이며, 팀내 타점 1위(31타점)이다.

7월에 사고를 쳤다...비판 문서 참고.

8월 13일 기준 타율 0.315로 리그 전체 4위, 타점은 57타점으로 6위를 기록하였다. 특히 득점권 타율이 0.447로 1위. 매년 문제로 지적된 좌투수 상대 타율도 나아지는 등 상당히 좋아진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예년에 비해 장타율이 0.425로 떨어진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8월 14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1회초 한현희를 상대로 솔로홈런을 쳤으나, 이날 경기가 우천취소가 되면서 오랜만에 김첨지의 면모를 과시했다(…).

침묵하는 팀 타선에서 손가락 부상과[13] 발목에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부상을 견디며 분투하였으나 결국은 3할 타율을 넘기지 못하고 정규 시즌을 마무리했다. 사실상 데뷔 시즌이었던 2007년을 제외하고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좌익수 겸 3번타자로 출장하여 17타수 7안타 2타점 2득점 2볼넷, 타율, 장타율 .412, 출루율 .474로 예전의 '포스트시즌의 김현수'와는 다르게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정작 팀은 1승 3패로 탈락하였다(…). 안습.[14]

2.1.7. 2013 시즌

김현수/2013년 문서 참조.

2.1.8. 2014 시즌

파일:돡현수폼.jpg
김현수/2014년 문서로.

2.1.9. 2015 시즌

파일:현수우승.jpg
2015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생애 첫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며

김현수/2015년 문서로.

2.1.10. 두산에서의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2006 두산 1 1 0 0 0 0 0 0 0 0 0 0
2007 99 319 .273 87 19 3 5 32 33 5 .398 .335
2008 126 470 .357
(1위)
168
(1위)
34
(1위)
5
(3위)
9 89
(5위)
83
(4위)
13 .509
(4위)
.454
(1위)
2009 133 482 .357
(3위)
172
(1위)
31
(3위)
6
(2위)
23 104
(2위)
97
(3위)
6 .589
(3위)
.448
(3위)
2010 132 473 .317
(7위)
150
(3위)
29
(4위)
0 24 89 88
(3위)
4 .531 .414
(5위)
2011 130 475 .301 143 25
(5위)
2 13 91
(3위)
71 5 .444 .392
2012 122 437 .291 127 17 1 7 65 47 6 .382 .358
2013 122 434 .302 131 23 1 16 90
(5위)
63 2 .470 .382
2014 125 463 .322 149 26 0 17 90 75 2 .488 .396
2015 141 512 .326 167 26 0 28 121
(6위)
103 11 .541 .438
(4위)

2.1.11. FA

2015시즌 전 우승을 한다면 두산에 잔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두산은 2015년에 삼성을 꺾고 정말로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공약으로 두산에 남겠다고 했지만 그건 시즌 전 이야기였고 본인은 현재 신중한 상태이지만 MLB의 호평도 있고 김현수 MLB 관련기사 박병호 역시 해외 진출을 했기 때문에 미국행 티켓을 끊을 것이 유력해 보인다.

프리미어 12가 끝난 후 귀국 인터뷰에서 남는다면 다른 팀은 못갈 것 같다는 말을 해서 두산팬들을 안심시켰다. 팀을 떠나고 싶은게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원한다는 내용이었기에 두산팬들은 안 가면 좋겠지만 가게 되면 잘하라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김현수가 두산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

김현수,MLB 사무국으로부터 신분조회 요청 12월 1일 MLB에서 정식으로 신분조회 요청이 들어왔다. 김현수 본인은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일단 관심이 있는 팀은 분명히 존재하는 듯하다.

그리고 12월 15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비트 라이터 댄 코널리의 트윗에 따르면 오리올스가 김현수에게 2년 6~8M의 오퍼를 날렸다고 한다. 같은날 미국 '볼티모어선'은 '볼티모어가 김현수와 협상을 벌이며 2년간 연평균 300만~400만 달러 수준을 제의했다'고 알렸다. 제의가 사실인 것으로 보여 오리올스와의 계약이 진행중으로 보인다. 그 외에 피츠버그 샌디에이고에서도 관심이 있는 듯 하다. 일본의 소프트뱅크 호크스, KIA 타이거즈NC 다이노스가 FA 거취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사도 떴다. #

그리고 12월 17일 오전 메디컬 테스트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7M 노옵션 계약에 합의했다는 트윗이 떴다!! 국내의 리코스포츠가 김현수의 에이전트 역할을 맡아 주도적으로 움직였는데, 김현수의 이해관계와 딱 맞는 좋은 계약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메디컬 테스트가 끝나고 주말이 지났음에도 정식입단 발표가 나지 않아 고질적인 뼛조각 부상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인터넷에 잠깐 돌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크리스 데이비스 계약과 연동되어 늦어지는 것이라면서 이는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예전부터 저질러온 짓거리라 한다.

그리고 한국 시각으로 12월 24일 새벽 공식 입단이 발표되었다. 등번호는 25번. KBO리그 최초로 FA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수이다. 배리 본즈의 번호라는 에이전시의 권유로 25번을 달았다고.[15]

2.2. MLB 시절

2.2.1.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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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식도 못 가는 연습생이었는데, 그런 것도 없는, 이게 진짜 신기해 나는, 전광판이...
ㅡ 볼티모어 입단식에서.## 그가 걸어온 길(연습생에서 메이저리그까지)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김현수/2016년 문서로.

2.2.2. 2017 시즌

김현수/2017년 문서로..
2.2.2.1. 두번째 FA
본인은 빅 리그에 남고싶어 하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은지라 시즌 후반 이후 KBO 리턴설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현지언론 역시 시즌중에도 계속 김현수가 2017년을 끝으로 귀국하리란 전망을 내놓았다. 17시즌의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인해 지난 계약 수준의 빅 리그 잔류 보장 가능성은 어느 팀에 가더라도 매우 적으며 백업과 AAA를 오가는 고된 생활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면 윈터 미팅에서 현실을 확인하고 리턴하리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미국으로 떠나면서 한 말들이 있었기에, FA 시장이 본격화되기 전에 야구 팬들은 김현수가 어느 국내 구단과 계약할것이냐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모기업의 상황이 영 좋지 않음이 알려지고 민병헌에게 오퍼 한 번 넣지 않고 롯데와 계약하도록 그냥 두었음이 알려지면서 김현수의 거취가 2017 스토브리그의 최대 화두로 급부상하게 된다.

객관적인 전력과 신인 육성이 강점인 팀 특성상 민병헌을 잃었다고 두산이 100억을 호가하는 외야수를 사야 할 이유는 크지 않았다.[16] 하지만 김현수는 베이징 뉴비 유입시기와 맞물리면서 두산 팬덤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차세대 프랜차이즈 스타였기에 놓칠 경우 구단의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실제로 두산 팬들이 팬 페스티벌 등[17]에서 산발적인 실력행사에 나서는 등 김현수를 잃었을 때 팬들이 받을 심리적 타격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었다. 때문에 후일 밝혀지기로 프런트 측에서도 모기업에 ‘반드시 잡아야 할 선수’로 보고를 올렸다고 한다.

한편 성적을 불문하고 고참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며 팬들의 원성이 최고조에 이른 LG가 김현수 영입에 관심이 있는 유일한 구단으로 떠오르게 되고. 삼성[18] 등 다른 후보구단이 루머 수준에서 정리되면서 김현수에게 오퍼를 낼 구단은 잠실 라이벌인 LG와 두산 두 팀으로 좁혀지게 되었다. 하지만 김현수는 메이저리그에 미련이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접촉 소식은 없이 김현수의 복귀소식이 윈터 미팅 이후로 예상되었다.

그리고 윈터 미팅 결과 김현수가 보낸 에이전트는 구단 관계자들의 차가운 반응 속에[19] 만족할만한 오퍼를 받아오는 데 실패하고, 김현수의 리턴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12월 18일 두산과 협상이 최종 결렬되었다는 기사가 났으나#, 몇 분 후 사실 무근이라는 반박 기사가 나왔다. 두산 팬들은 여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 다음 날 김현수가 LG와 계약했음이 발표되면서 2017 스토브리그 최대어 김현수의 소속은 LG로 확정되었다. LG가 두산 소속의 FA 선수이던 김현수를 영입한 것은 지난 2007년 박명환 이후 11년만에 이뤄진 계약이었다.

이후 엠바고가 풀렸는지, 두산과의 계약 성사가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었음에 힘을 싣는 기사와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얄궂게도 지난 10년간 두산을 대표하는 간판타자였던 김현수의 행방이 걸린 해에 모기업이 야구단에 돈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황에 몰렸고, 프런트에서는 그럼에도 꼭 잡아야할 선수라며 보고를 보내며 소요제기를 하였으나 결국 사정상 받아들여지지 못했다고 한다. 온갖 루머와 달리 구단측에서 기자들에게 “올해 FA 시장은 조용히 지나갈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다거나, 김현수가 수차례 두산 구단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협상 해달라며 무언의 항의를 했다거나, 그럼에도 두산이 사정상 김현수에게 전혀 오퍼하지 않아 두산이 아닌 타팀으로 가야 할 상황이 되자 김현수가 에이전트와 함께 울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김현수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다는 희망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경기를 뛰고 싶었습니다. 신고선수로 출발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응원해주신 두산 베어스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제 이름을 외쳐주시던 팬들의 함성은 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저를 응원해주신 두산 팬 여러분의 사랑을 절대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정말 고맙습니다. 제 고민의 시간을 기다려주신 LG 트윈스 구단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LG의 승리를 위해 선수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LG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현수가 2017년 12월 19일 계약 후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친필 메시지를 남겼다.
파일:김현수 LG 이적 후 메시지.png

2.3. LG 트윈스 시절

파일:LG 트윈스 김현수.jpg
두산의 재정악화로 결국 친정팀으로 돌아가지 못한 김현수는 2017년 12월 19일, LG 트윈스와 4년 총액 115억원(계약금 65억원, 연봉 12.5억)에 계약[20]을 하면서 KBO 복귀가 확정되었다. 메이저 리그에서 영입의사가 있는 구단은 있었지만 주전 보장을 원한 김현수의 의도를 맞춰줄 구단은 당연히 없기에 주전 보장이 있는 국내 복귀를 선택했다고 한다.

LG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까지 지속적인 타자육성실패로 30대 초반의 타자 중에서 중심을 잡아줄 정도로 성장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김현수의 영입은 돈은 많이 들었어도 그나마 괜찮은 선택이었다.

LG의 등번호 50번은 이미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가 선점하고 있어서 결번 중 22번을 자신의 등번호로 선택했다. 공교롭게도 22번은 신일고 선배인 김광삼이 은퇴 직전에 달던 번호이다.

메이저리그 시절에 대한 질문에 훈련량은 KBO가 많지만 메이저리그는 선수들의 타고난 신체능력과 체계적인 훈련의 질과 몸관리가 남다르다는 대답을 하였다.

메이저 진출 전 실패자 발언에 대해 크게 후회하고 있는 듯 하다. 겁이 없던 상태에서 했던 발언이었다고. 여담으로 아버지가 MBC 청룡 원년 팬 출신으로, 김현수가 두산에 입단하기 전까진 LG 골수팬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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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식에서의 모습

2.3.1. 2018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현수/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Screen Shot 2018-08-04 at 7.45.23 AM.png

2.3.2. 2019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현수/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8년 11월 27일 박용택을 이어 2019 시즌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이적 1년만에 주장 일부 팬들은 이적 3개월 후부터 이미 주장이었다 카더라

박용택이 2011년에 이어서 2018년 또 다시 주장 자격ㆍ리더십 논란을 보이면서 팀이 DTD해버렸고 LG의 타자 육성은 이제 완전히 멸망단계에 들어서 '저 타자는 꾸준히 해줄 것이다'라고 평가할만한 선수가 김현수 한 명밖에 없다. 주장이 된 것은 당연한 수순. 김현수의 트레이닝 교실이 더 흥하게 되었다고 카더라

류중일이 2019년에는 좌익수로 고정할 것이라고 입을 털었으니[21] 부상이 없기만을 바래야 한다. 김현수가 쓰러지면 LG도 쓰러진다.

그러나 3월 17일 시범경기 삼성전에서 5회말 중견수 이형종과 포지션이 바뀌며 중견수 수비까지 소화했다.

이러한 희망적인 관측이 무색하게 완전히 망해버렸다. 홈런 실종, 장타력 실종, 거기에 김태형에게 2승만 구걸하기, 맨날 LG랑만 경기하고 싶다며 대놓고 어그로를 끌은 김재호에게 다음날 경기에서 90도 인사하기로 이번 시즌도 두산에게 두들겨맞고 있는 LG팬들에게 큰 비난을 받는 사태에 몰리게 되었다.

5월말 겨우 감을 되찾으면서 멀티히트 경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6월이 되자 귀신같이 타격페이스를 되찾았다. 특히나 6월 6일과 7일 이틀연속 홈런을 때려내었고, 8-7로 끝내기승한 현충일 kt wiz와의 경기에서 홈런포함 혼자 5타점을 쓸어담았다.

그러나 9월부터 본격적으로 삽을 푸기 시작했고 와일드카드 - 준플레이오프 모두 어마어마한 부진을 보여주면서 두산 시절의 가을병신 전설은 어디가지않는 것을 증명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

가을야구에 약한 반면 야구 대표팀에서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김현수/선수 경력/국가대표 항목 참조.


[1] 정근우가 고교 졸업 당시 지명받지 못했을 때도 추신수의 미국 진출에 따른 보복설이 거론된 바 있다. 그와 유사한 소문. 당시 부산고 출신으로는 김백만이 한화에 2차 1라운드로 뽑혔고, 이후 (대졸이긴 하지만) 2명이나 더 지명받았다. 정근우의 미지명 사유는 작은 체구로 인한 낮은 발전 가능성.[2] 손시헌, 이종욱, 김현수 같이 두산에서 신고선수 성공 사례가 많다 보니, 이후 서울 팜 중 두산에 입단하고 싶어한 고교 선수도 많았다고 한다. 허나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많이 가는 대신 베테랑들에 대한 예우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3] 사실 고등학교 투수와 프로 투수의 차이는 어마어마해서 고교 때 타격으로 날렸어도 프로에서는 전혀 못 때리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 위에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라는것도 사실 전혀 저주가 아닌게, 고등학교때 잘했다고 프로에서 잘한다는 보장이 없는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장의 고교 성적보다도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지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에는 신인지명에 있어서 타격이나 선구안을 과거보다는 더 중시여기는 편이지만, 이 때는 지금보다 더욱 툴을 중시하던 시점이었다. 게다가 고교 야구 대회 몇개 성적으로 타격을 평가하기에는 샘플이 너무 적기도 하고. 그리고 김현수가 뛰던 당시는 알루미늄배트에서 나무배트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2004년 봉황대기부터 나무배트 적용)[4]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9회 대타로 나와 좌투수 이와세의 공을 툭 건드려 적시타로 연결하는 장면이 좋은 예[5] 심지어, 김현수의 병살타 장면에 허구연 의 아앍! 따불푸레이더블플레이! 더블플레이!" 하는 샤우팅을 합성한 플짤마저 돌았다. 완벽한 싱크로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문제의 영상(...)[6] ISO 0.152[7] 이 해 김태균은 절대장타율만 0.298을 찍고 OPS 1.039을 기록하며 엄청난 타격을 보여주었다. 다만 파크팩터 고려 시 wOBA가 김현수보다 낮고 잔부상으로 인해 경기를 자주 걸러서 누적스탯인 WAR, wRC 등에서는 김현수에 밀렸다.[8] 사실 김현수의 첫 1군 풀타임 시즌은 2007년으로 2008년이 소포모어인 셈이다. 하지만 이 시즌 수위타자를 먹었다.[9] 김상현의 스탯은 겉보기에는 김현수보다 좋아 보여도, 실제로는 12경기 덜 출전한 데다 규정타석 타자 중 삼진 7위, BB/K 비율이 뒤에서 3위일 정도로 삼진을 수도 없이 당해서 생산성이 낮았다. 홈런을 36개 친 덕에 장타율은 리그 1위를 찍었지만, 출루율, 장타율 모두 3위를 기록한 김현수와 달리 김상현은 0.379로 리그 19위를 기록해 합산인 OPS는 더 낮았다. 장타율이 OPS처럼 과대평가되지 않는 wOBA, wRC 등을 사용하면 아예 리그 6위, 7위 수준으로 내려간다. 물론 이 성적도 휼륭한 성적이긴 하나 리그 MVP급 수준은 절대 아니며, 제대로 평가되었다면 MVP는 커녕 3루수 골든글러브도 김동주에게 빼앗겼을 것이다.[10] 5월 2할대 후반 타율을 기록할 때는 확실히 부진하다 할 만하기는 했다. 그러나 9월에 맹타를 치며 준수한 평균 성적을 기록.[11] 2010시즌 출루율 5걸 중에서 유일하게 BB/K 비율이 1.2를 넘어간다.(BB/K 1.31)[12] 이로써 3년 연속으로 150안타 이상을 쳤다. 이는 1999~2001년의 이병규, 2001~2003년의 장성호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13] 당시 손가락 통증 탓에 네 손가락만으로 타격한다는 기사가 나왔다.[14] 미디어데이에서는 3전 전승에 세 경기 모두 완봉승(…)이 될거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게 다 홍삼작가커피고자 때문이다[15] 참고로 이 당시 25번을 달고 활약했던 거포로는 배리 본즈뿐만 아니라 마크 맥과이어, 라파엘 팔메이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셋 다... 다만 이 번호를 단 선수 중에는 짐 토미마크 테세이라앤드류 존스도 있었던 만큼 완전히 약물로 더럽혀진 번호는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 번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영구 결번이기도 하다.[16] 이미 좌익수에 김재환이 있고 정수빈도 돌아오기 때문에 잡을 가능성은 낮았다. 거기다 김인태조수행, 이우성을 썩힐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17] 대표이사가 참석한 자리에서 김현수를 잡아달라는 어필을 했고,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두산베어스 해시태그에 FA 관련 문구를 도배하려 하기도 했다.[18] 자금은 충분했지만 내야에 관심이 있다는 기사를 내고 또다른 대어인 강민호를 낚아가며 사실상 철수.[19] 메이저리그의 트렌드가 홈런대잔치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교타자의 매력이 떨어진 상황. 하물며 김현수는 잘하지도 못했다. 때문에 윈터 미팅에서 구단 관계자들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20] 역대 FA계약중에서는 이대호 (4년 150억) 다음으로 큰 계약이였으나 2018년 12월 11일 양의지가 4년 총액 125억에 NC와 계약을 채결해 3위로 밀려났다. 바로 다음이 최형우의 4년 100억.[21] 그것도 그렇고 용병을 1루수 토미 조셉으로 뽑았으니 갈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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