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16:21:19

깨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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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의미의 변화
2.1. 기원2.2. 유행2.3. 의미의 확장 2.4. 19대 대선 이후
3. 비판4. 비슷한 사례5. 관련 문서

1. 개요

어있는 시민의 준말.

처음에는 노무현이 말하였던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사후 추모의 의미로 썼으며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과 더불어 민주당계 진영 중 친노계에서 널리 쓰였던 말이다.

그러나 이후 보수 세력에서 반대 세력을 비난하는 용도로 의미가 굳어지면서 특정 정파를 넘어서서 광범위한 의미[1]로 쓰이는 부정적인 뜻/멸칭적인 성격도 포함되어 있는 용어가 되었다.

2. 의미의 변화

2.1. 기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 청와대 브리핑에서 한 '깨어있는 시민의 단결된 힘이 바로 민주주의의 보루이자 우리의 미래입니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출처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것은 노무현이 전부터 참여하는 시민, 시민민주주의 등을 강조했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라는 ‘최종본’이 정리된 것은 2007년 6월 제8회 노사모 총회 축하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출처 이후 노무현은 이 말을 청와대 브리핑, 언론 인터뷰 등 여러 공식 석상에서 반복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 이후 발간된 자서전 《운명이다》에도 비슷한 내용이 많이 나오고 봉하마을에 있는 무덤에도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참고

이 단어를 처음 노무현이 언급했을 때만 해도 일부 지지자를 제외하고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특별히 비하적 의미도 없었는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시들한 상황이기도 했고 노무현의 지지자들 역시 ‘깨어있는 시민’을 자청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 단어가 본격적이고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게 된 것은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 이후다.

2.2. 유행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한 후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사명감을 나타내는 단어로 본격적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트위터의 구 민주당 계열 지지자 및 진보신당 지지자들에게 친노는 비판 대상이었다. 다양한 정치적 입장이 공존하는 트위터지만 대충 ‘친노 계열 지지자’(깨시민), ‘구민주당계 지지자’(난닝구), ‘진보 정당 지지자’(진신류), ‘보수 정당 지지자’ 정도가 대립해 온 데다 타 커뮤니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 정당 지지자의 목소리가 큰 편이다. 트위터에서 친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2011년에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이른바 '깨어있는 시민'들은 ~ 식의 비판적 언급이 늘어난 것이다. 반면 약어 '깨시민'인 2011년 말에 처음 나온 듯한데 인터넷상에서 검색해 보면 사용 정도는 2012년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단어에 비하적인 의미가 생겼다.

이후 단어의 파급력은 점차 커져나가 친노 지지자뿐 아니라 호남-비노계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아우르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트위터에서 '깨시민'이란 표현을 많이 사용한 사람들은 정작 후자의 호남-비노와 진보 정당 쪽 지지자로, 호남-비노는 전통적인 멸칭인 '난닝구'가 계속 사용되었으나 진보정당 지지자에 대해서는 진보신당이란 이름을 고의적으로 줄여 쓴 '진신당', '진신류'란 비하용어가 생겼다. 이른바 깨시민과 진신류의 대립구도를 보여준다.

이후 트위터에서는 ‘깨시민’을 더욱 줄인 ‘깨시’라는 표현으로도 자주 사용하는데 워낙 많이 사용되다 보니 비하적인 의미도 많이 퇴색되어 ‘친노 계열 지지자’를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하였다.

2013년 홍세화트윗을 통해 친노 지지자들을 깨시민으로 비난한 사건 역시 좌파 측이 친노 세력을 비난한 사례다.

사실 '깨시민'이 유행을 탄 것과 별도로 이 단어가 비하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이르지 않다. 이는 격변하는 한국의 정치환경 때문인데 민주통합당 창당으로 친노 세력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2011년 말 이전까지는 '깨어있는 시민'이 대표적 조롱감이 되기는 불가능했다. 당시엔 '깨어있는 시민' 역시 민주당 외곽에 위치하며 국민참여당을 지지하는 재야세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낙선으로 끝난 2012년 말 대선 이후로는 정당 지지자들 간에 충돌이 벌어지기가 쉽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진보신당은 2012년 4월 19대 총선의 비례득표 기준 미달의 결과로 해산 당했으며, 그해 7월 노동당으로 재창했다. 그러므로 깨시민 vs 진신류의 구도는 아무리 길게 봐줘도 2012년 한 해에 불과하다.

2.3. 의미의 확장

2012년 말~2013년 초 이후 깨시민이라는 단어가 크게 유행하면서 보수 진영도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점은 좁은 의미로는 깨시민이 아니라고 여겨지던 옛 민주당계 지지자들과 진보정당 지지자들에게까지 이 단어가 확장되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깨시민’이라는 단어 자체를 비하어로 쓰기도 하지만 뒤에 코스프레라는 단어를 붙여 ‘깨시민 코스프레’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깨시민'은 2015년 말 정계 개편 이후로 크게 분화되었다. 우익 지지자들에게 깨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을 극렬하게 비판했던 경우가 적지 않다. 즉, '친노=좌파=깨시민'이란 인식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2010년대 초에는 친노와 상관없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도 깨시민들이 우호적으로 대하는 정치인이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차기 대선이 더불어민주당에 매우 유리해진 상황에서 깨시민 내에서도 분열이 일어났으며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과 각을 세운 더민주 정치인들은 더 이상 친문 측 깨시민들이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손가락혁명군으로 분리해 나갔다.

예상 밖으로 공격성과 활동성이 가장 두드러진 집단은 ‘이재명과 손가락혁명군(손가혁)’이었다. 회원 수는 5,832명(1월 말 기준)으로 3개 문재인 팬카페 회원 총수(43,049명ㆍ중복집계)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게시글 수는 5,331개로 문재인 팬카페(7,606개)와 큰 차이가 없었다. 탄핵 가결 이전에는 하루 게시글 수가 손가혁 쪽이 더 많았다. 게시글 수를 회원 수로 나눈 활동률은 91%에 달해 문재인 팬카페(18%)를 압도한다. 손가혁은 문 전 대표를 명시적 라이벌로 놓고 강도 높은 비난과 비판을 쏟아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언급도 많은 데다 기득권, 공격, 비판, 검증이라는 단어가 따랐고 ‘이재명’은 국민, 민심, 관심, 대통령, 지지, 당선 등이 연관돼 대조적이었다.

2.4. 19대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 되면서 계파갈등이 흐려졌기 때문에 보수 지지자들이 진보 지지자들에게 부르는 멸칭이 되었다. 후술할 비판받는 특징을 보이지 않아도 일단 깨시민이라며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문재인의 극단적 지지층인 대깨문, 클리앙 586 등의 단어가 모든 진보 지지자들에게 해당하는 프레임이 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3. 비판

페미니즘 진영에서 '깨시민'의 길과 다른 길을 가겠다며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겨레의 뉴스

민주주의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으로 구성되는 정치 체제다. 자유가 보장되어있는 사람들은 획일적인 생각보다 다각적 시각에서 사물을 분석하고,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며, 그러한 주장의 유통을 통해 사회적 지혜를 증진하여 사회 전반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다. 따라서 특정 집단의 고정관념을 답답해 하며 스스로 깨어있는 시민이라 일컫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나,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반발이 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선민의식은 좌우익, 보수, 진보와 무관하게 극단적 지지층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만큼 성찰과 지양이 필요하다.

4. 비슷한 사례

  • 자유주의자들의 공화주의 비판에도 쓰였다. '참여'라는 용어는 자유주의에서 좋아하는 말이기보다는 자유주의와 서로 멱살을 잡는 관계인 공화주의에서 좋아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이 공화주의자들을 비판할 때도 '깨어있는 시민'과 비슷한 의미의 비판이 있었다.
자유주의 자유론의 핵심은 소극적 자유이다. 자유는 단지 타인의 방해 혹은 간섭의 부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와 이러한 소극적 자유를 가장 열렬하게 설파한 인물은 이사야 벌린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였다. 그들은 냉정적 상황에서 좌파적 이상주의가 서구 사회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혼신을 다해 자본주의적 자유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려 했다. 특히 벌린은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대비하면서 자유에 대한 서양인의 관념 가운데 왜 소극적 자유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지 역설했다. 그는 적극적 자유를 자신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의지로 규정했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우선 이성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비합리적인 욕망이 자신을 지배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이성적 인간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에게 늘 이성적 삶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에 따르는 것이 자유라고 강요한다. 벌린은 이것이 바로 전체주의의 존재론적 전제라고 주장한다. 적극적 자유에는 비이성적 인간들은 이성적인 인간들과 공동체의 지도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도가 아무리 자애로운 것이자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전제에 불과하다.
조승래, 《공화국을 위하여》 中
  • 자유주의자들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공화주의자들은 공화주의적 자유는 소극적 자유도 적극적 자유도 아닌 제3의 개념(사적 지배의 부재)이라고 반박했다.
  • 물론 그렇다고 한국의 친노 계열이 공화주의 파벌인 것은 결코 아니고 자유주의 파벌을 표방하지만 공화주의를 응호하는 몇몇 면이 있는 것이다. 사실 공화주의와 자유주의는 논리적으로는 서로 멱살을 잡는 관계이면서도 역사적으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미국 혁명, 프랑스 혁명 등 굵직한 사건에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는 함께 나타났다. 한국의 자유주의 파벌 중 하나인 친노 계열에서 '참여'라는 용어를 밀었던 것도 이런 맥락이라 할 수 있다.
  • 일본에도 '프로시민(プロ市民)'이라는 비슷한 조어가 있다. 원래 사가현 카시마시 시장 쿠와바라 마사히코(桑原允彦)가 만들어낸 '자각, 책임감을 가진 시민(=프로 의식을 가진 시민)'을 뜻하는 단어였지만 일반 시민을 가장해 시민활동을 꾀하거나, 실질적으로 영리 목적 또는 다른 목적을 가진 정치활동가를 가리켜 그 행위를 비판하는 뜻으로 쓰인다. 즉, '좌익활동가의 방패' 또는 '시민활동으로 권리를 얻는 자들'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프로시민이라는 단어는 일본 우파들이 좌파들을 비판 혹은 비난할 때 쓰는 말이 되었다. 한국에서 깨시민이라는 용어는 본래 일본의 프로시민과 달리 이념상 좌파 중의 일부 집단(친노계 정파)에 한정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진보계 전반에 대해 사용함과 같이, 프로시민과 용법이 비슷해져 가고 있다. 다만 노동계열 진보나 좌파는 진신류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된다.
  • 영미권에도 보수진영이 미국의 진보 진영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비슷한 단어가 있다.# 바로 “Woke"(워크)[2]. 명사형은 wokism. "깨어 있다"를 의미하는 Wake의 과거형인 만큼 한국의 깨시민과 미국의 Woke는 비슷한 걸 넘어 아예 의미가 정확히 통한다. 주로 사회보수주의트럼피즘, 대안 우파 진영에서 신좌파 내지는 사회자유주의, 정치적 올바름 등을 조롱할 때 쓰인다.

5. 관련 문서


[1] 대한민국의 자유주의에는 일부 온건파 진보정당도 포함될 수 있다.[2] 한글로는 'walk'와 똑같이 '워크'로 표기되지만 엄연히 다른 발음임에 주의. 미국 영어 기준으로 walk는 /wɔk/, woke는 /woʊk/로 발음되며 woke를 굳이 walk와 구분되게 옮겨보자면 '우오크'를 빨리 발음한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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