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0 19:56:25

난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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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6조의 수도로 번성하다2.2. 두 번의 비약과 쇠퇴2.3. 현대2.4. 난징 징크스
3. 관광4. 그 외

1. 개요

중국 장쑤성성도. 옛 이름은 금릉이다.

중국 역대 왕조의 대도시 중 한 곳으로, 문화 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유구한 지역. 하지만 땅만 파면 유적이 나오는데도 지하철 건설 속도는 빠르다 南京, 한국어로는 남경이라고 한다. 중국 남부의 중요도시 및 국제도시로 중국 장쑤성의 성도며 부성급시다. 사진은 난징시의 번화가인 신제커우(新街口), 신제커우 한복판에는 쑨원의 동상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2007년 주민등록인구는 618만 명. 2017년 기준 833만5000명. 비극적인 난징 대학살 사건이 일어났던 곳.

중화민국/국민정부 시절(1928~1949)에는 수도였으며,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중국 국민당국부천대한 후에도 현재까지 중화민국(대만)의 명목상 수도이기도 하다.[1]

교통망으로 난징 지하철이 있다. 중국 특성상 난징시의 면적도 한국의 여느 행정구역에 비해서 널찍한 편이기에 외곽까지 잘 깔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내에서는 제법 촘촘하게 노선망이 잘 짜여 있는지라 관광했을 때 이용하기 좋은 편.

2. 역사

2.1. 6조의 수도로 번성하다

원래 이름은 '금릉(金陵)'이었는데, 중원 전토를 통일한 후 순행하던 진시황이 이 지역에 도달했을 때 이 지역에서 제왕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여 소나무를 빽빽이 심어 왕기를 억누르고 이름도 말릉(末陵)으로 바꿔버렸다. 태평어람에 따르면 망기자(望氣者)라는 사람이 500년 후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고 했는데 시황제는 북산(北山)을 파해쳤다고 한다.예지력 대장 선견지명의 달인

그렇게 삼국시대 이전까지 말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3세기 초 손권오나라(손오)를 세워 황제의 자리에 올라 이후 6조(六朝)의 도읍이 되는 기반을 닦게 된다. 원래 오나라의 수도는 회계(會稽: 현재 절강성 소흥시)였는데 손권의 중신 장굉이 말릉이 도읍으로 적합한 땅이라 하여 211년 수도가 되었다.[2] 그러면서 명칭도 나라를 세운다는 의미의 건업(建業)으로 변경.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중 일부 작품에서 이 이벤트가 구현되어 있다. 내내 건업이 수도였던 건 아니고, 형주 공방전 직후와 손호 때인 265년 - 267년 두 차례에 걸쳐 잠깐 무창(지금의 무한 시 내의 무창과는 다른 곳으로, 지금의 어청 시)에 천도했지만 곧 건업으로 돌아왔다. 태평어람에 따르면 건업 서북쪽 경계에 구덩이가 있는데 오나라 사람들은 다 시황제의 일화를 오나라 창건을 예언한 일화로 여겼다.

그 뒤 오나라를 멸하고 진나라(서진)가 삼국을 통일했으나, 이후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결국 흉노 출신의 유연(劉淵)이 세운 한(漢)나라, 곧 전조에 의해 수도 낙양이 함락당하고 중국 북부를 빼앗겼다는 소식이 건업에 있던 낭야왕 사마예(司馬睿-동진(東晉)의 초대 황제)에게 전해진 직후 휘하 심복들과 호족들의 뜻을 모아 건업에서 즉위한다. 진나라의 이 시기부터 훗날 동진으로 분류한다. 원제(元帝-사마예)는 서진의 마지막 황제 민제(愍帝) 사마업(司馬鄴)의 휘(이름)인 (鄴)이 건업(建業)의 업과 음이 같다해서 이를 피하기 위해 건강(建康)이란 지명으로 고쳤다.[3]

이렇게 손오(229~280) 이래 건강은 동진東晋(317~420)·송宋(420~479)·제齊(479~502), 양梁(502~557)·진陳(557~589)의 위진남북조 시대의 남조의 한족 여섯 왕조가 340여 년간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이른바 육조시대의 무대.

시대에는 다시 금릉(金陵)으로 불렸고 오대십국시대에는 강남에 세워진 지방 정권 오나라남당의 수도였다. 이후에는 강남으로 쫓겨난 남송은 건강이 아닌 임안(항저우)을 수도로 삼았다. 금나라와의 경계인 회하와 너무 가까워서였다. 건강이라는 지명은 송나라, 원나라 시대까지 계속 쓰였다.

2.2. 두 번의 비약과 쇠퇴

육조시대 이후 상대적으로 소외받던 난징이 다시 비상하게 된 것은 명나라가 들어서고 나서부터였다. 원나라 말엽 장쑤성, 안후이성 남부에서 활동하던 군벌 주원장은 1356년 건강을 함락시키고 이름을 응천부(應天府)로 고친 후 스스로 오국공(吳國公)의 자리에 올라 자신의 근거지로 삼았다. 그 후 진우량, 장사성 등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강남의 패자가 된 주원장은 1368년 응천부에서 칭제건원, 명나라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명나라는 쇠락해가는 원나라를 만리장성 너머로 몰아내고 중원을 통일하였으니 이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강남에서 기반한 통일이다. 주원장은 응천부라는 이름을 우리가 아는 현재 명칭인 남경(南京)으로 고쳤으며 건국 10년째인 1378년에 정식으로 남경을 수도로 정하면서 이름을 경사(京師)[4]로 바꾸었다. 경사 혹은 남경은 건문제 시대까지 수도의 지위를 유지했으나, 정난의 변으로 황제 자리에 오른 영락제가 1403년 수도를 자신의 근거지였던 순천부(順天府)[5]로 옮기고 이름을 북경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경사는 '북쪽의 수도' 북경에 대비되는 '남쪽의 수도'인 남경으로 환원시켰다.[6]

이 밀고 내려오자 복벽운동으로 남명이 저항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금방 함락되고 정성공 등과 함께 광둥 성, 윈난 성, 베트남, 타이완 등으로 뿔뿔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남명의 강역엔 간신히 들어가지만 의미도 없을 수준이다.

2.3. 현대

19세기 들어오면 열강에 의해 청나라가 수난을 겪는 아편전쟁난징 조약의 배경이 되어 급격한 근대화를 맞이하기도 했다. 1853년 사이비 기독교 성격의 사회운동인 태평천국 운동의 지도자 홍수전이 이곳에 들어와 수도로 삼고 황제가 되어 이름을 천경(天京)이라 하였다. 하지만 10여 년 뒤 청나라의 공격과 내분으로 인해서 곧 함락되었다.

쑨원중화민국신해혁명으로 이곳에서 처음 일어났고[7] 1928년 장제스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가 되었고, 직할시로 지정되었다.[8] 두 번째 강남에서 기반한 통일이었고, 북경(베이징)은 또 다시 수도에서 강등되어 북쪽을 평정했다는 뜻의 북평(北平, 베이핑)으로 개칭되었다. 이 때문에 1937년 중일전쟁 중 대참살극인 난징대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1940년 3월 중화민국 국민정부가 충칭으로 후퇴하면서 왕징웨이의 난징 괴뢰 정권(중화민국 난징 국민정부)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근데 정작 그 왕징웨이는 나고야에서 죽음을 맞았다(...).

중일전쟁에서 승리하여 국민정부는 수도를 다시 난징으로 이전했다.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하면서 베이징이 수도가 되어 난징은 직할시가 되었다. 1953년장쑤성의 부활과 함께 다시 직할시에서 성도(省都)가 되었고, 덩샤오핑에 의해 1994년에 부성급시로 승격되었다.

2.4. 난징 징크스

난징은 오나라[9], 동진, 송나라, 제나라, 양나라, 진나라, 명나라, 남명 그리고 뒤에 나오는 태평천국, 중화민국, 왕징웨이 정권의 수도였다. 또 중국 7대 고도인 난징, 베이징 시(북경), 시안(서안=장안), 뤄양(낙양), 항저우(항주=임안), 카이펑(개봉), 안양(은허)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이곳을 수도로 한 왕조는 명나라를 빼고는 대부분 100년을 못 가서 망했다. 여기에 골육상쟁과 학살은 옵션으로 포함되어 있다. 명나라도 건국황제 홍무제의 아들 영락제북경으로 천도했고 이후에도 쭉 북경이 수도였다.

동진은 100년을 넘기는 했는데(317~420), 10대 황제 안제(安帝)때 환현에게 한 번 망했다가(403) 후일 동진을 잇는 황조인 유송(劉宋)을 세우게 되는 유유가 환현을 내쫓고 안제를 복위시켜 주는 안습한 과정을 거쳤고, 이 뒤의 동진은 사실상 유유가 좌지우지하는 허수아비 정권이라고 봐야 하므로 100년을 못 간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명나라는 예외적으로 꽤나 장수했고, 천하통일은 이룩했지만 그마저 영락제정난의 변을 일으켜 난징에 도읍하고 있던 건문제를 축출해버리고(…) 황제가 되자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북경으로 천도해 버렸다. 영락제의 아들인 홍희제가 다시 남경으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홍희제가 단명해버려서 결국 실패. 그의 아들 선덕제도 남경 복귀를 고려했지만 다시 대공사[10]를 일으키는 것은 무리라서 포기했다. 물론 당시 연왕이었던 영락제가 명 황제인 건문제를 끌어내리면서 수만 명을 학살했고 그 이전에 홍무제도 문자의 옥을 일으킨 것을 보아하면 이미 헬게이트는 열려있었다. 게다가 남명은 금방 망했어요 골육상쟁과 학살 옵션은 있었다.

중화민국도 멸망 위기를 맞자 국부천대타이베이로 천도하여 100년을 넘기긴 했으나(...) 이건 임시수도잖아 게다가 대륙에선 중화민국은 망했다고 한다 초기 16년에는 북경수도였고, 난징을 수도로 한 건 중국 국민당국민당 일당체제를 수립한 1928년부터 1949년까지 겨우 21년뿐이며 그 와중에도 각종 내전에 중일전쟁에 이은 일제의 지배와 난징대학살이라는 참혹한 일이 벌어져서 전란 당시 국민당 정부(+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충칭까지 도망치는 등 버려졌다. 일제 패망 이후엔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난징을 포함한 전 국토를 빼앗기는 대참사를 겪었으니 난징 100년을 채우진 못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있다.
  • 대부분의 왕조가 중원에서 밀려 내려오거나, 강남 지역에서 생긴 사실상의 지방정권이다. 즉, 애초부터 약체였다는 것. #
  • 난징의 위치가 국가 간 전쟁의 시야로 본다면 의외로 지키기 어려운 곳이다.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너무 장강과 딱 붙어있고, 바다와도 가깝고 장강 자체가 큰 선박이 드나들 수 있으며, 장강이 바다로 흘러가기 직전에 잠깐 북쪽으로 돌출한 지형이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적을 향해 툭 튀어나온 돌출부다.
  • 난징 자체가 강남인과 중원인이 만나는 곳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사는 곳부터 엄청나게 다른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넣으면 싸움이 나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

다만 한나라 같은 몇몇 통일 왕조를 제외하고는 중국에 존재했던 나라들 자체가 그렇게 오래가질 않으므로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다. 지방정권으로 남하해 약체인 왕국들이 망하는 건 뭐 다반사이다.

또 난징이 강이 직통이라 방어하기 어렵다는 말도 의미가 없는데, 난징에 세워진 국가가 침략으로 망한 경우는 오나라(삼국시대), 동진(남북국시대), 남당, 남명, 태평천국, 왕징웨이 정권, 중화민국 정도인데 그나마도 장강에서 바로 난징으로 도하하여 망한 경우로는 오, 태평천국, 남당, 남명, 왕징웨이 정권 등이 빠진다. 장제스의 국민정부는 난징을 잃는 시점에서 이미 가용 군사력의 대부분을 잃은 상태로 애써 방어에만 급급했으므로장강을 경계로 분단을 제안했지만 씹혔다 수도가 난징이 아닌 그 어디였어도 지킬 수 없었을 것. 결국 진나라를 제외하면 의미가 없는 해석이다. 되려 부견전진을 디스한 비수대전 같은 사건도 있었다.

다만, 군사적 방어문제 자체는 현재도 실존하는 문제는 맞다. 난징에 수도를 정한 대다수의 국가들이 적의 침공으로 멸망하는 경우는 보통 난징 근처의 장강 방어선에 주력군이 방어선을 치고 밀집한 상태에서 서쪽에 있는 양자강 중류 지역인 형주가 무너지면서 측면공격을 받아 도미노처럼 차례로 붕괴되는 경우가 많다. 즉 한쪽을 틀어막으면 다른 쪽이 무너지는 엿 같은 구조라는 것.

서진이 오를 공략할 때, 수나라가 진을 공략할 때, 원나라남송을 공략할 때 모두 이 패턴으로 무너졌다. 비수대전도 도저히 현재 병력으로는 방어가 안 되니 결사적으로 소수의 군대가 장강 북안에 전진한 경우이며, 형주 지역은 별도의 군벌 군대가 철통같이 막아서 적의 우회를 불가능하게 만든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애초에 방어선 붕괴는 방어선 그 자체가 정면 공격을 받아 뚫려서 무너지는 것은 드물고, 우회하거나 주변지대가 먼저 함락돼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마지노 선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어차피 현대전에선 큰 의미도 없고.

그리고 외척과 권신에게 쉽게 휘둘리고 왕위를 강탈당하는 왕실 체제는 그냥 웬만한 중국사에서 대부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단지 왕족간의 권력다툼이 남조육조시대에서 두드러지는 좀 신기한 현상이긴 하지만, 이건 서진 팔왕의 난부터 예감된 것처럼 왕가의 친척들이 사병들을 지나치게 확보했던 권력구조의 문제에 가깝지, 지리 탓이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난징 세력과 베이징 세력이 다투면 결국 최후의 승리는 베이징이 가졌다. 명나라도 난징에서 일어나 중원을 통일하긴 했지만 얼마 못 가 정난의 변이 벌어지면서 사실상 베이징 세력이 최종 승자가 된 셈이니.

3. 관광

파일:부자묘h.png

부자묘(夫子庙)
공자묘라고도 한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겠듯, 난징 최대의 공자 사당이다. 그러나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만 갖춘 것이 아니라 인근의 상업 구역 역시 왁자지껄한 것으로 유명하다. 난징 여행의 필수코스.

파일:external/www.keyunzhan.com/4504.jpg

중산릉(中山陵)
중화민국의 국부 쑨원의 묘가 난징에 있다. 중산릉(中山陵)은 그의 호를 딴 이름이며, 사진의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듯 난징 시민들의 존경은 여전하다. 황제의 무덤에게만 붙일 수 있는 호칭인 '릉'(陵)을 붙인 것 또한 엄청난 대우이다. 일본의 난징 점령 당시 파괴될 뻔한 전적이 있다. 입장료는 무료.

그 외에도 역대왕조의 수도였기때문에 고건축물들이 다수 남아있으며, 난징 대학살 기록관총통부도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3.1. 전시장

4. 그 외

베이징, 시안, 뤄양, 안양,[11] 카이펑과 더불어 과거 중국의 통일왕조의 수도인 고도(古都)이다.

바람의 나라에서는 고대 문명의 보고로 등장하여 발굴단도 있지만 산소들만 들끓는 통에 변변찮은 마을도 못 차리는 낙후지역으로 등장한다(...). 2000년 전만 해도 전혀 개발이 되지 않았던 강남 지방이 화북보다 더 성장할 줄 누가 알았겠냐마는.

난징의 명물로 남경 오리 요리가 있다. 오리소금물에 끓인 다음, 말려서 안주 등으로 먹는다. 더 자세한 사항은 남경 오리 요리 문서를 참고하기 바람.

난징에서도 항일 애국지사가 많이 배출되었으며, LG그룹(화학, 전자, 디스플레이 등), 금호타이어 등의 한국기업들이 진출해 있어 많은 교민들이 거주 중이다.

한때 난징과 나고야가 지역 교류를 시도하려 했지만, 나고야 시장이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을 한것에 대한 항의로 나고야와 지역 교류를 취소했다. 난징 대학살을 저지른 일본에게 시달려서 일본 기업은 없을 것 같지만 일본 자동차 기업인 마쓰다의 공장이 이곳에 위치해 있고, 거리에서 일본산 자동차를 보는 것도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2015년 12월 1일 개관한 친화이 구에 있는 리지샹 위안소 진열관이 있다. 르포

여름에 날씨가 몹시 덥고 습하기로 유명해 중국의 3대 화로라고도 불린다.[12]


[1] 현재 사실상 대만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는 타이베이6.25 전쟁 당시 부산광역시가 몇 년간 그랬던 것처럼 명목상 아직도 임시수도이다. 그 임시수도 역할을 반백 년이 넘도록 하고 있지만. 사실 영원히 임시수도 역할 할 가능성이 매우 큰게 함정... [2] 강표전과 태평어람에 따르면 유비와 제갈량도 손권에게 이곳이 도읍 삼기에 적합한 땅이라고 추천했다.[3] 태평어람에 기재된 동진의 역사가 손성의 의견에 따르면 시황제로부터 손권이 황제에 오르기까지는 437년이고 진나라가 (위나라의 토덕을 이어) 오행 중 금(金)의 덕을 이었으니 금릉의 기운이라는 것은 이것이고 (진원제 사마예가 동진을 세운 것이 이 때로부터) 526년이니 이 말에 맞는다고 했다.[4] 다른 의미 없고 그냥 수도라는 뜻이다.[5] 옛 원나라의 수도 대도이자 오늘날의 베이징. 대도를 정복한 주원장은 이후 대도를 순천부로 개명했다.[6] 다만 신하들의 거센 반대 때문에 거대한 베이징 성자금성을 짓고도 영락제는 정식으로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영락제의 뒤를 이은 홍희제는 수도를 남경으로 환원시키려했으나 뜻을 이루기 전에 승하하였고 뒤를 이은 선덕제는 계속해서 북경에 머무르면서 북경의 수도 지위가 굳어지게 된다. 명나라가 정식으로 북경으로 수도를 옮긴 것은 선덕제가 죽고 정통제가 즉위한 1441년이다. 이후 황제들이 북경에 머무르면서도 북경을 경사(수도), 행재(임시수도)로 여러 번 개칭한 바는 있다. 또 남경에도 북경과 별도로 수도의 여러 중앙 관부를 두기도 했다.[7] 단 수도가 난징인 것은 북양군벌위안스카이 때문에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8] 이 당시 하위 행정구역은 심플하게 제1구~제15구(...) 성북동구니 성동구니 하는 건 별칭이다.[9]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듯 건업이 바로 난징이다.[10] 건문제가 자살하면서 궁궐을 태워버렸기 때문에 궁궐 재건부터 해야 한다. 흥선대원군경복궁 재건하려다 재정 파탄에 민심 이반이 일어나 실각의 원인이 되었는데, 그보다 큰 궁궐(자금성에 버금가는 규모였을)을 ‘사실상 파괴한’ 측이 다시 세우는 건 어느 쪽도 환영할 일은 아니다.[11] 은나라의 수도 은허. 하지만 현재엔 나열된 고도 중 가장 낙후되고 작은 도시다.[12] 다른 두 도시는 우한충칭. 공교롭게도 이 세 도시들은 다 장강을 끼고 있고 또 중일전쟁 때 중화민국의 수도였는데다 일본에게 심하게 당한 도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