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마 앙두아르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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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장 루시아노 | 19대 뉘마 앙두아르 | 20대 판초 곤살레스 | |||
1957년~1962년 | 1962년~1964년 | 1964년~196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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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뉘마 앙두아르 (Numa Andoire) |
출생 | 1908년 3월 19일 |
사망 | 1994년 1월 2일 (향년 85세)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쿠세굴르 |
포지션 | 풀백 |
신체조건 | 172cm / 75kg |
등번호 | -[1] |
소속팀 | FC 앙티브 (?-1932) OGC 니스 (1932-1933) 레드 스타 파리 (1933-1936) AS 칸 (1936-1937) FC 낭시 (1938-1939) 툴루즈 FC (1940-1941) FC 앙티브 (1945-1946) |
국가대표 | 0경기 / 0골 (1930) |
감독 | FC 앙티브 (1945-1946) OGC 니스 (1951-1952) OGC 니스 (1962-1964) |
1. 개요
프랑스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1962년부터 1964년까지 OGC 니스 감독을 맡았다.2. 생애
2.1. 선수 생활
뉘마 앙두아르는 1921년부터 앙티브의 유스팀에서 뛰었다. 그러면서 군대 팀에서 활약하기도 하며 1929년에는 프랑스 군인 챔피언십 결승전에 뛰기도 하였다. 1932년에 프랑스 축구계가 프로화되고 잠시 니스에서 뛰게 되었지만 곧 앙티브로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그곳은 앙두아르가 베스트 11에 항상 뽑힐 수 있는 친정팀이었고 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는 프로화된 첫 시즌에 프로팀에서 뛸 수 없게 되었고 그렇게 니스를 떠났다.앙두아르의 다음 행선지는 2부 리그로 강등된 레드 스타 파리였다. 그리고 소속팀 레드 스타 파리는 앙두아르를 비롯한 여러 선수들의 활약으로 바로 1부 리그로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2년 후에 AS 칸으로 옮겼는데 이 무렵부터는 기량이 다소 떨어져 주전 자리를 보장받지 못하였다. 2차 대전 무렵에는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진 않아서 계속 축구선수의 커리어를 유지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1942년에 칸 소속으로 우승컵을 들기는 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인정되지는 않는다.
전쟁 후 앙두아르를 친정팀 앙티브로 돌아와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했다.
2.2. 국가대표
앙두아르는 22살의 젊은 나이로 초대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하지만 그는 월드컵의 모든 경기에서 벤치 신세였고 그의 동료들은 1라운드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가 대표팀에 선발되는 일은 없었다2.3. 은퇴 후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앙두아르는 알제에서 아마추어 클럽을 맡기도 했다. 1950년에 고국에 돌아온 앙두아르는 OGC 니스의 감독직을 맡았다. 니스는 당시 프랑스 리그의 우승팀이었고 앙두아르는 니스의 뒷산에 작은 호텔을 경영하며 감독직을 수행했다. 니스는 더블을 하는 성과를 이룩했지만 앙두아르는 감독직을 내려놓고 다시 알제리로 떠났다. 그 곳에서 앙두아르가 오랑이라는 아마추어 팀을 맡기도 하는 등 알제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니스는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니스는 다시 앙두아르에게 손을 내밀었고 1962년에 다시 니스의 감독직을 수락했다. 하지만 앙두아르의 취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니스는 1964년에 강등당했고 앙두아르는 그 책임을 물어 해고당했다. 이것이 앙두아르의 마지막 감독 생활이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유머러스한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선수로서는 큰 족적을 남기진 못했지만 프랑스 남동부 팀들 사이에서는 감독으로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4. 수상
4.1. 클럽
- 디비지옹 2 우승 1회: 1933-34(레드스타 파리)
4.2. 감독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