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7:54

대본영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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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왜곡과 거짓 보도
3.1. 의도적인 왜곡 보도3.2. 전과에 대한 검증 부실3.3.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4. 관용어

1. 개요

大本營發表[1]

중일전쟁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군의 최고사령부 구실을 한 대본영에서 전황에 대해 발표한 보도자료를 말한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진행되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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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육해군 합동으로 행하는 대본영육해군부발표(大本營陸海軍部發表), 육군 단독으로 행하는 대본영육군부발표(大本營陸軍部發表), 해군 단독으로 행하는 대본영해군부발표(大本營海軍部發表)로 나뉘었으나 1942년 1월에 통합되어 '대본영발표'로 개칭되었다.

발표의 형식은 보도의 형태로 아나운서가 읽는 것과 대본영 육·해군부의 보도부장이 읽는 것 두 종류가 있었다. 1937년 중일전쟁 개전 당시부터 1945년 2차대전 패전까지 총 846회를 발표했다.

1945년 8월 14일의 840회 이후에는 일본이 항복함에 따라 대본영급제국정부발표(大本營及帝國政府發表)[2]라는 명칭으로 바뀌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일본 점령과 관련된 사항을 전하는 것에 주력했다.

3. 왜곡과 거짓 보도

전황 등에 관하여 제국 대본영의 발표가 얼마나 비할 데 없이 정확한지는 이미 세계가 다 아는 바와 같습니다.
- 1943년 1월, 제81차 제국의회에서 도조 히데키 총리의 연설
초반에 승전할 때야 사실대로 보도했지만, 점차 전황이 불리해지자 대본영발표는 진실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1944년 말이 되면 방송에선 연일 승전 소식을 전하는데 현실은 도쿄가 불타고 부녀자들을 모아놓고 죽창 훈련을 하는 막장 상황에 이르렀다. 결호작전 문서 참조.

3.1. 의도적인 왜곡 보도

가장 큰 원인은 일본 정부에서 국내의 동요를 막고 사기를 앙양하기 위해 진실을 그대로 알리지 않은 것이다.

대본영발표는 전황이 점차 불리해지자 전황을 왜곡보도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커져서 미드웨이가 무너지고 과달카날이 무너지자 뻥에 뻥을 덧붙이던 것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큰 왜곡 보도는 과달카날 전역인데 대본영발표에서는 과달카날 패전을 '과달카날 전진'(轉進, 다른 곳으로 전진함)이라고 말을 바꿔 작전이 성공하고 있다며 대놓고 뻥을 쳤다.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일본군이 입은 손실을 축소하고 산호해 해전에서는 전과를 뻥튀기하여 보도하였다.

3.2. 전과에 대한 검증 부실

대본영이 전과에 대해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대본영발표에 실어버려 거짓 보도를 하는 경우도 잦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만 항공전 전과보도. 대본영은 미군 항공모함 19척을 격침했다고 대본영발표에 실었으나, 실제 미 함대가 입은 피해는 구축함 1척 격침, 항공모함 4척 소파, 항공기 89대 손실이었을뿐더러 당시 전투에 미군 항모 19척이 오지도 않았다. 또한 태평양 전쟁 전체로 확대해야 미군 항공모함은 11척 손실인데, 이중 절반가량은 정규가 아닌 호위항공모함이었다.

진짜로 전투 한 번에 항모를 19척이나 날려먹었다면, 제아무리 미국이라도 정말 엄청난 타격이라 해군 장성들은 모조리 길바닥에 내쳐질 것이다. 미 제3함대 사령관 윌리엄 홀시 제독은 도쿄 로즈를 통해 황당무계한 대본영발표를 듣고 태평양 함대에 "침몰당했다는 제3함대는 현재 해저에서 무사히 인양되어 적을 향해 급속 퇴각 중"이라는 보고를 올리며 비웃었다.

이렇게 된 건 당시 일본은 정말로 저런 전과를 올렸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전투에 참여한 조종사들의 거짓 보고와 과장 보고를 그대로 믿은 것이다. 대본영은 이 전과를 그대로 쇼와 덴노에게 보고하여 치하와 은상도 받았다. 필리핀 탈환전 때 일본 육군은 원래 루손섬에서 미군을 요격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이 황당한 전과를 받고는 미 해군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믿었기에 레이테섬에서 미군을 요격하기로 방침을 바꾸어 병력을 이동시켰다. 그 결과 일본군 26사단과 68여단은 병력 이동 중에 (막대한 병력과 물자가 격침되었다고 여긴) 미 해군에게 공격을 받고 수장되었다.

3.3.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일본의 육해군 대립도 영향을 미쳤다.

대만 항공전보다 더 앞선 MI 작전과달카날 전역에 대해선 해군이 대본영에 제대로 된 정보를 전하지 않았다. 특히 과달카날 전역에 대해서는 섬이 미군에게 거의 넘어갈 때쯤 되어서야 대본영이 정보를 급보로 받고는 "과달카날? 그런 섬이 있었나? 그래서, 그 섬이 어디에 붙었는데?" 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일본 육군도 나중에 정보를 해군에 심어둔 육군 측 스파이에게서 전해 받았다는 판이다.

4. 관용어

일본에선 현재까지도 '대본영발표'라는 단어를 '공식발표를 실제상황과는 다르게 한다.', 즉 대국민 사기라는 의미로 쓴다. 분명히 상황이 나쁘거나 나빠지는 중인데도 공식적으로는 좋다거나 좋아진다고 뻥을 치는 상황에서 사용하는데, 사전에도 실렸을 정도라 일시적인 유행어가 아니라 이미 관용어로 굳은 지 오래임을 알 수 있다.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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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자체로 적으면 [ruby(大本営発表,ruby=だいほんえいはっぴょう)]가 된다. 일본의 2차대전 패전 이전에 하였던 발표이므로 구자체를 사용한다.[2] 급(及)은 흔히 '및'으로 옮긴다. '대본영 및 제국정부 발표'라고 번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