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5 21:33:53

리사이(십이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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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이
李斎
파일:JK_리사이.png


1. 소개2. 작중행적
2.1.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2.2.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2.3. 백은의 언덕, 검은 달2.4. 대국 단편집
3. 기타

1. 소개

십이국기등장인물.
애니메이션 담당 성우는 신도 나오미/ 더빙은 소연

씨는 류(劉), 이름은 시(紫), 자는 리사이(李斎).
전 승주사(瑞州師)의 장군으로 현 서주사(瑞州師) 중장군(中将軍).

십이국기 세계관에서 보기 드문 여장군.[1] 원래 명성이 있어 '승주(瑞州)에 그 사람이 있다.'고 일컬어지던 명성 높은 무인이다. 기수로 천마(天馬) 히엔(飛燕)을 데리고 있다.

30세 초반 정도의 외견이나 선적(仙籍)에 올라있으므로 실제 나이는 그보다 많을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작중에 정확한 나이에 대한 언급은 없다. 말은 거침없는 편이나 기본 온화하고 성정에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한다.

다이키가 봉래에서 귀환한 뒤 황기가 오르자 첫 승산한 인물들 중 한 명. 왕으로 선정받진 못했지만 다이키가 히엔에 관심을 보인 것을 계기로 급속도로 친해진다. 이 인연을 계기로 당시 승산자 중 한 명이었던 교소와도 친분이 생겨 황해로 기수를 잡으러 함께 나서기도 했다.

교소가 다이키에게 선택받아 등극한 후엔 서주사(瑞州師) 중장군(中将軍)으로 승진한다.[2] 다이키가 재보이면서 동시에 서주후(瑞州侯)를 겸임하기 때문에 이는 사실상 다이키의 최측근으로 인정받은 셈. 승산 때의 인연으로 다이키를 친누나처럼 잘 챙겨주며 다이키도 리사이를 잘 따르는 등 사이가 돈독하다.

왕인 교소와 재보인 다이키의 신임을 얻어 미래에 꽃길만 열릴 예정이었으나 반년도 되지 않아 아센이 모반을 일으키고 교소 시해의 주범으로 리사이가 지목당하면서 고난길이 열리게 된다.

본래 오른팔을 주로 사용했지만 8부 이후 시점에선 오른팔을 잃어 왼팔만 사용하고 있다. 스스로는 이제 무인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저평가한 것과 별개로 왼팔만으로 무기를 든 일반인 여러명 정돈 가볍게 상대하는 위용을 선보인다.

2. 작중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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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교왕(驕王) 시절 승주사(瑞州師)의 장군을 맡아 수도주까지 명성을 떨쳤으며 교왕 승하 후 10년만에 황기가 오르자 교소와 마찬가지로 첫 승산자 행렬에 합류한다.

다이키에게 왕으로 선정받진 못하였으나 리사이의 기수인 천마(天馬) 히엔(飛燕)을 다이키가 자주 구경하러 왔으므로 하산 시점인 안합일까지 다이키와 종종 환담을 나누며 친목을 다졌다. 사실상 당시 승산자 중 다이키와 가장 친했던 인물로 다이키는 개인적으론 리사이가 왕이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을 정도. 리사이 본인도 다이키에게 아첨해서 높은 자리를 노릴 셈인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농담하기도.[3]

딱히 왕위에 크게 욕심이 있어 승산한건 아니었으며 주변의 권유에 떠밀려 승산한 케이스. 다이키와의 인연을 통해 교소와 안면을 익히면서 별 생각없이 승산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고 말하기도. 실력엔 자신이 있으나 교소와는 비교할 수 없다며 교소를 높게 평가한다.

교소의 기수인 추우 케이토(計都)를 직접 잡았다는 얘기를 듣고 부러워하며 자신도 추우를 잡고싶었다고 얘기하자, 마침 한가했던 교소에게 권유받아 다이키와 함께 요수를 잡으러 황해로 나가게 된다. 추우의 흔적을 찾던 중 전설급 요마 도철(饕餮)의 둥지에 잡혀서 큰 부상을 입지만 다이키가 도철을 사령(使令)으로 절복시키는데 성공해서 구해진다.

하산 시점이 되자 대국에서 만나자고 다이키와 약속하고 헤어진다.

교소가 태왕으로 즉위한 후 승산 당시의 인연을 계기로 서주사(瑞州師) 중장군(中将軍)으로 발탁되어 다이키의 휘하로 들어가게 된다. 수도 홍기(鴻基)에 관저를 받았을때 다이키에게 이사 선물로 꽃을 받고 사랑스러운 선물이라며 행복하게 웃는다.

2.2.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

태왕 즉위로부터 약 반년 후, 교소가 겨울사냥(冬狩)으로 칭하고 부패한 관리들을 처형하는 것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갖게 된다. 불안의 요지는 몇 년 걸쳐 해야할 일을 너무 빠르게 하려고 한다는 것인데 마침 리사이와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던 추관장(秋官長) 대사구(大司寇) 카에이와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된다.

교소가 토비(土匪)의 폭동에 위협받는 철위(轍囲)를 지키기 위해 문주(文州)로 출정했을때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에 불안해하는 다이키를 걱정해 자세한 사정을 얼버무렸다. 대신 아센이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이키에게 설명해주는데, 이 일을 계기로 다이키는 자신을 걱정하는 리사이를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뭐든 사실대로 말해주는 아센을 크게 신뢰하게 된다. 교소가 문주에서 실종된 것과 동시에 백규궁 내에서 다이키의 비명으로 인한 명식이 일어났을때, 식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 속에서 다이키를 찾으며 부상자들을 꺼냈지만 결국 다이키는 찾지 못했다. 그 후 혼란스러운 조정에서 아센이 백치(白雉)의 다리를 들고 와 주상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달받고 당황하던 중 승주(承州)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승주사 장군 출신이었던 리사이가 출정하게 된다.

승주로 향하던 중 아센을 피해 도망쳐나온 이성씨(二声氏)[4]의 증언을 듣고 아센이 모든 사건의 원인임을 알게 된다. 다이키의 뿔을 절단시켜 명식을 일으킨 아센은 백치를 베려고 했으나 베이지 않자 항아리에 가둬 땅에 묻어놓고 꿩의 다리를 잘라 백치의 다리라고 속였던 것. 리사이는 백규궁과 문주에 있는 교소의 휘하들에게 아센이 모반을 일으켰음을 은밀히 알리지만, 어디서 눈치챈건지 아센에게 이성씨와 태보 살해 혐의를 뒤집어쓰고 대역죄인으로 몰려 궁으로 잡혀가던 중 히엔을 타고 도주한다.

이후 대국 각지를 돌며 아센이 모반자임을 알리고 동료를 모으려고 하지만 어제까지 협조하던 이들이 갑자기 마음을 돌리거나 배신하는 등 이상할 정도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5] 결국 동료를 모으는건 포기하고 6년간 숨어다니며 다이키와 교소의 행방을 찾아 헤맨다.

남주(藍州)에서 똑같이 도주 중이던 카에이와 극적으로 재회하는데, 함께 도망치던 중 수주(垂州)의 근처에서 경동국(慶東國)에 다이키처럼 태과(胎果)인 여왕이 즉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리사이는 경왕이 다이키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카에이가 준제의 고사[6]를 말하며 타국의 왕이 군사를 끌고 국경을 넘는건 아무리 호의적인 목적이라고 한들 왕과 기린이 즉사하는 대죄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리사이는 봉래에서 자란 태과의 왕은 준제의 고사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카에이는 비열하고 무서운 짓이라며 리사이와 헤어진다.

리사이는 홀로 경국으로 향하는데 이 때 대국과 경국 사이의 허해(虛海)를 넘는 과정에서 요마의 습격을 받고 오른팔이 괴사되는 부상을 입는다. 가까스로 경국 수도 요천(堯天)의 금파궁(金波宮) 금문에 이르렀을땐 빈사의 상태. 경왕을 만나게 해달라고 외치는 리사이의 처참한 모습에 동정심을 갖던 무인들이 방심한 사이 금문을 돌파하면서 소란을 일으키고 요코의 대복으로 있던 고쇼(虎嘯)가 사정을 들어주어 경왕 나카지마 요코와 대면하자 대국을 구해달라 부탁한 뒤 기절한다. 경국의 보물로 치유받은덕에 목숨을 건졌지만 오른팔은 회복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잘린다. 본인은 이미 각오했던 부분이라 잘린 팔을 봤을때 충격은 없었다고.

대국의 장군이 경에 왔다는 소식에 연왕 쇼류가 직접 경을 방문한다. 쇼류의 말에 의하면 대국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보려 사람을 여럿 보냈지만 허탕만 쳤고 난민들이 가져오는 소식도 제각각이고 정확하지 않았던 차에 리사이의 등장은 사실상 궁궐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귀한 창구였던 셈. 리사이가 말한 정보와 난민들이 말하던 정보를 취합하여 안국은 드디어 대국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모를 정확히 파악하게 된다.[7]

리사이가 생각했던대로 태과 출신인 경왕 요코는 준제의 고사를 모르고 있었지만 관리들의 설명으로 대국에 군사를 보낼 수는 없으며 대신 다이키의 수색을 최대한 돕겠다고 위로한다. 경국을 위하는 요코의 진심을 듣고 이 나라에서 경왕을 빼앗는 짓만은 해선 안 된다며 뉘우친 리사이는 감사를 표한다.[8]

십이국 중 무려 7개의 국가가 협력하여 다이키의 수색이 시작되며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게 된다. 여름에 시작된 수색이 가을까지 이어지는데 그 사이에 요코의 주변인물들과 친분을 다지며, 리사이는 신변을 돌봐주는 게이케이(桂桂)를 보며 비슷한 나이였던 다이키를 떠올린다. 그러던 중 경국에 비공식적으로 찾아온 범왕 고 란죠가 대에서 도망쳐나온 장군과 만나고 싶다하여 대면하는데 교소에게 범왕이 즉위 선물로 줬던 허리띠가 대국에서 수입한 옥석에 섞여서 범국에 왔었다고 알려준다. 당시 옥이 나오던 곳은 문주(文州) 함양산(函養山) 뿐이었으므로 그곳에서 교소가 습격당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리사이는 교소를 찾을 수색의 단초라며 이 정보만으로도 경국에 온 보람이 있었다며 기뻐한다.

봉래에 넘어간 기린들이 좀처럼 다이키의 기색을 찾지 못하던 중 기린과 함께 수색중이던 사령들이 접근하기 싫은 장소가 있다고 말하는데 리사이는 그 얘기를 듣고 다이키의 사령인 전설 속 요마 도철 고란(傲濫)의 기색일 가능성이 높다며 수색을 부탁한다. 리사이의 힌트 덕분에 수색은 급물살을 타게된다. 다이키를 데려올 방법을 찾기 위해 엔키, 요코와 함께 봉산(蓬山)에 방문해 벽하현군 교크요와 대면하는데 하늘이 전설상의 존재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라는 사실을 알고 왜 하늘은 대국을 구해주지 않냐며 분노한다. 교크요는 봉산의 윗선은 다이키의 생사는 순리에 맡기자는 쪽이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다이키의 상황을 봤을때 뿔이 회복되지 못해 기린의 능력은 없을 것이며 사령도 떼어야하는데 뿔 없는 기린과 외팔의 무장이 대국에서 뭘 할 수 있냐고 얘기하자 리사이는 다이키의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며 대국에 다이키가 왜 필요한지 일침한다. 벽하현군은 엔키에게 안국의 삼공 중 하나를 파면한 뒤 다이키를 임명해 데려오라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이키를 데려오는데 성공하지만 돌아온 다이키는 저주와 예췌로 심하게 앓는 상태였다. 다시 한 번 봉산으로 다이키를 데려가는데 다이키 상태를 치유하는건 벽하현군의 능력을 넘는 것이라며 전설 속의 존재인 서왕모(西王母)와 대면하게 된다. 서왕모는 다이키의 치유를 해주지 않으려 했으나 대에는 빛이 필요하다는 리사이의 호소에 저주의 제거와 사령의 정화를 맡아주기로 한다.

서왕모의 힘으로 치유된 다이키와 경국에서 회복에 전념하던 중 요코에게 불만을 가진 천관(天官)들이 반란을 일으키다 제압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자신들의 존재가 경국에 폐가 됨을 깨달은 다이키는 리사이에게 대국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한다. 리사이는 만류하지만 편하게 경국에 있는건 고통받고 있는 대국의 백성을 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에 설득당해 밤에 몰래 궁을 빠져나간다. 이 때 엔키에게 들켜 정권과 여행물품, 추우 토라(とら)를 받고 궁을 떠나 대국으로 향한다.[9]

작중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백은의 언덕 편에서 언급으로 리사이와 연왕 쇼류 사이에 만약 교소를 찾게 되면 안국으로 보내는걸 전제로 안주국과 주남국을 주축으로 다이키 협력에 협조했던 7개 국가들의 대국 지원이 약조되었음이 밝혀진다.

2.3. 백은의 언덕, 검은 달

다이키와 함께 사실상 9부 주인공으로 활약한다.[10]

히엔을 타고 다이키와 함께 허해를 넘어 대국에 무사히 도착한다. 본래 카에이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수주(垂州)로 향할 생각이었으나 강주(江州) 묵양산(墨陽山) 인근에 내리게 된다. 이 때 다이키와 리사이가 갖고 있던 기수를 보고 경계하던 인근 동가(東架)의 주민들에게 습격을 받지만 우연히 지나가던 고료(項梁)의 협력을 받는다.[11] 고료는 리사이는 물론이고 곁의 젊은 남자가 성장한 다이키임을 눈치채고 자신이 금군(禁軍) 중군(中軍)의 소(楚)라고 밝힌다. 이 말에 습격하던 주민들도 전투를 멈추고 아센에게 멸망한 서운관(瑞雲観)의 생존자임을 밝히며 다이키의 귀환을 환영한다.

서운관 생존자들의 도움으로 리사이와 다이키는 문주(文州) 함양산(函養山)으로 가서 교소의 마지막 행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서운관의 도사 교시(去思), 금군 출신의 고료가 일행으로 합류하고 서운관의 소개로 찾아온 신농 호토(鄷都)의 안내를 받으며 문주로 향하게 된다. 이 때 처참한 대국민들의 상황을 보며 다이키는 리사이가 잠든 사이 고료와 함께 아센이 있는 백규궁(白圭宮)으로 떠나며, 처음엔 당황하던 리사이였지만 다이키를 믿고 교소의 수색을 이어나가기로 한다.

교시, 호토와 함께 각지의 도관의 도움으로 이동하면서 리사이는 함양산 주변 중 교소가 탈출할 가능성이 있는 곳들을 수색한다. 함양산 심부로 향하는 도중 리사이 일행은 백치(白幟)라고 불리는 정체불명의 순례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백치들은 함양산에 신선이 있다 믿는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순례지의 세력과 다툼없이 조용히 순례를 하고 있었다. 리사이 일행은 백치로 위장해 토비(土匪)들이 실지배하고 있는 함양산 내부로 들어가지만 토비에게 위협받는 백치 순례자를 도우려는 과정에서 함양산 일대 토비의 두목 규산(朽桟)에게 정체를 들키게 된다.

규산은 교소 실종 당시인 6년전 일에 의문이 있어 리사이와 문답으로 당시 상황을 맞춰가는데, 토비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던 문주의 높으신 분과 적당히 서로 이용해먹으며 살아오던 중 6년 전 무고한 백성들이나 같은 토비끼리 싸우게 되는 기묘한 명령이 계속 이어지자 수상함을 느껴 거리를 두었고, 명령을 듣던 다른 토비들은 괴멸했다고 전한다. 규산은 당시 함양산에서 옥을 채취하는 조업이 한동안 중단되었는데, 재개되었을때 새로운 굴이 생겨있는거나 불을 피운 흔적이 있는 등 수상한 부분이 많았다며 리사이 일행이 함양산 일대를 수사하는걸 허가한다. 일행은 당시 함양산에서 조업하던 황민들이 교소를 발견해 도와주었을 가능성을 위주로 수색을 이어나간다.

주변에 비해 수상할정도로 부유한 마을 은천(銀川), 옥을 계속 사들이는 거상 호요(葆葉)의 아문관(牙門観), 갑자기 약의 수요가 늘어났던 마을 노안(老安) 등등을 둘러본다. 이 과정에서 고료처럼 정체를 숨기고 신농의 호위를 하고 있던 서주사(瑞州師)의 무인 세이시(静之)가 동료로 합류한다. 이 때 아센이 신왕으로 추대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정보수집을 하던 동료로부터 노안이 실은 백발홍안의 무인을 숨긴 채 돌보고 있었으나 얼마 전 사망했다는 비보가 들려온다. 리사이는 수도 홍기(鴻基)의 정보에 자세한 석림관(石林観)을 소개받아 진위를 확인하는 한편, 백발홍안의 무인이 사망한 시기와 다이키가 떠났던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다이키는 교소가 사망했음을 깨닫고 새로운 왕인 아센을 섬기기 위해 백규궁으로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센이 정말 정당한 신왕이라면 자신은 아센을 계속 적대할 수 있는가 고민하던 중 석림관의 정보로 사망한 무인은 교소가 아니라 문주사 장군인 기료(基寮)로 밝혀지고,[12] 홍기의 높으신 분[13]으로부터 신왕 아센의 정보는 믿지 않는게 좋겠다는 전언을 받고 마음을 다잡는다.

부구원(浮丘院)이 보호하고 있는 여인의 증언으로 교소가 습격당할 당시 이상한 생물이 들어간 상자가 함양산에 이동되었으며 이상한 소리와 함께 큰 낙반이 일어나고 붉은 갑옷의 병사들이 도망쳤다는 정보를 얻는다. 여인이 돌아갈 때 뒤를 추적하던 인물이 있어 제압해보니 아문관의 인물이었고, 그들은 리사이를 아센의 휘하로 착각해 황민사냥을 막을 의도였음을 밝힌다. 그들의 주인인 호요가 말하길 아센이 군사가 부족해 부민(浮民)[14]이나 황민(荒民)[15]들을 데려가 화살받이로 써먹는 중이라며 리사이 같은 사람들이 아센에게 대항할 때를 대비해 아문관에 군량과 무기를 모으고 있었음을 알리고 협조한다.

함양산 남동의 임우(琳宇)와 서쪽의 백랑(白琅)의 수색이 끝나자 일행은 동쪽의 고탁(高卓)으로 향하는데 거기서 서주사(瑞州師) 좌장군(左将軍) 소겐(霜元)과 재회한다. 소겐은 이미 고탁 인근을 이미 다 수색해봤지만 교소를 찾지 못했다고 알려준다. 함양산 동서남북 전부 교소의 흔적이 없자 일행은 아센이 이력(貍力)라는 요마의 힘을 사용해 대규모 낙반을 일으켰고, 따라서 교소는 아직 함양산 내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거란 결론을 얻는다.

일행은 규산의 동의하에 토비가 지배중인 함양산 인근 도시 서최(西崔)를 거점으로 삼아 교소를 꺼낼 준비를 하기로 하며, 소겐이 몸을 위탁중이던 고탁계단(高卓戒壇)의 단법사와 석림사, 아문관의 협조로 서최 부흥이라는 대외적인 명목 하에 사람들을 모으게 된다. 백치의 정체가 민간신앙이 아니라 실은 함양산에서 실종된 교소를 찾으려던 철위(轍囲)의 생존자들이었음을 알게 된 리사이는 새로이 결성한 세력을 묵치(墨幟)라고 칭하기로 한다.

한편 수도에서 다이키는 교소가 양위를 해주어야 아센이 새로 왕이 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 상태였고, 이에 아센의 명을 받은 유쇼(友尚)가 교소를 데리러 금군을 이끌고 함양산에 도착했으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 토비들과 대립해 전투를 벌인다. 규산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리사이는 싫어하는 일행을 설득해[16] 토비를 공격중이던 유쇼를 급습, 때마침 승주에서 연락을 받고 달려온 리사이의 사수(師帥) 오코(泓宏)의 공행사가 협공하여 금군을 괴멸시키고 유쇼를 포로로 잡는데 성공한다.

이 전투 당시 토비들에게 구속된 신원불명의 남성이 있었는데, 남성의 짐에 섞인 검을 본 리사이는 그것이 교소의 검인 한옥(寒玉)임을 알아본다. 놀랍게도 교소는 함양산 내부에 있던 야생 추우를 사로잡아 스스로 빠져나왔던 것이다.[17] 7년만의 재회에 모두 기뻐하며 일행은 소규모 정예를 모아 교소를 호휘하며 안국으로 향하기로 하고, 남은 인원들은 문주를 공략하기로 한다. 포로로 잡힌 유쇼와 사수 3명이 교소 휘하로 들어오길 원해 합류한다. 묵치, 승주사[18], 위주사[19]에 더해 교소의 소식을 듣고 달려올 에이쇼가 합류하면 아센에게 대항가능한 세력이 모이기에 다들 희망이 보이는 듯 했으나..

교소를 호위하며 은밀하게 안국으로 향하던 일행은 강주(江州)에서 토비의 잔당에 습격받던 리가를 보게 된다. 처음엔 무시하려 했으나 교소의 권유로 구해주게 되고 리가에서는 토비의 보복을 두려워해 일행이 남아주길 간절히 요청했으나 갈길이 멀었던 일행은 거절하고 떠난다. 끝까지 보호해주지 않았다며 원망하던 리가 사람들 중 교소를 목격한 사람이 수도로 연락을 넣고, 오코를 통해 교소가 함양산을 탈출했음을 들은 아센은 요마로 강화시킨 공행사를 보내 전투가 벌어진다. 이 전투에서 리사이에게 향하는 공격을 히엔이 대신 맞고 사망, 교소는 아센군에게 끌려간다.

교소를 탈환하기 위해 묵치는 닿는대로 사람을 모아 저항하지만 교소 탈환에 실패하고 기껏 결성했던 묵치의 대부분이 사망하게 된다. 아센은 백성들에게 자신이 진정한 왕이었으며 교소는 백성들을 속인 찬탈자였고 홍기에서 공개심판할 것을 발표한다. 대국민들이 교소에게 돌을 던져 살해하게 만들 속셈인 것을 눈치챈 리사이는 이것만큼은 막아야한다며 죽음을 각오하고 백성을 가장해 홍기로 향한다.

처형날 돌을 던질 준비를 하던 백성들은 병사를 검으로 살해하고 교소 앞에 달려와 고두하는 흑기린을 보게 된다. 교소가 찬탈자가 아닌 진정한 왕임을 깨닫고 공황상태가 된 백성들 사이에서 리사이와 일행들은 교소를 탈환하는데 성공, 때마침 도착한 에이쇼를 비롯한 교소의 휘하들의 도움으로 홍기를 탈출해 에이쇼가 함락한 강주로 이동한다. 리사이는 강주에서 가에이와 재회해 기쁨을 나눈다.

강주에 칙사를 받고 달려온 연왕 쇼류에게 교소는 도와달라 고개를 숙이며, 국경에 미리 대기시켜놓은 안국의 군사를 비롯한 7개국의 지원이 들어온다. 리사이는 다이키의 치료를 위해 봉산으로 떠난다. 교소 군은 강주를 거점으로 3개월 뒤 9개 주를 전부 탈환하는데 성공, 홍기에서 아센을 물리쳐 옥좌를 되찾는다.

2.4. 대국 단편집

리사이는 교소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살해하고 그 예췌로 쓰러진 다이키의 치료를 위해 다시 한번 봉산으로 향해 서왕모와 만나게 된다. 다이키의 상태는 봉래에서 귀환할 당시보다 심각했는데, 서왕모는 처음엔 치유해주지 않겠다고 딱 자르지만 리사이가 다이키는 실도한 것이 아님을 호소하자 치유는 해주겠지만 다이키는 사람을 살해한 죄로 인해 앓을 것이라 얘기한다. 다이키는 봉산에서 한 달 정도 요양을 해야하고 엔키케이키가 병문안을 와 리사이는 대국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대국으로 가기 전 경국에 들려 신세졌던 사람들에게 인사한 리사이는 요코에게 봉산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는데, 요코는 서왕모가 아픔을 남겨준 이유가 다이키에 대한 나름의 자비인것 같다고 설명한다. 다이키는 사람을 죽였고 그에 대한 속죄가 남아있어야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사이는 금파궁의 분위기가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음을 느끼고 요코는 조금씩 전진 중이라고 말한다.

3. 기타

작중에서 전설 속 존재로만 여겨진 서왕모(西王母)와 직접 만나 대화한 몇 안되는 인물로, 이 때의 경험 때문인지 십이국 사람들이 줄곧 잘 믿는 하늘의 뜻이나 천제의 가호 같은 것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작중 몇 번 언급되는 부분이지만 리사이는 교소와 봉산에서 처음 만나 즉위 후 실종까지 약 반년 정도만 섬긴 셈이라 타인들 눈에는 온전히 교소의 사람으로 보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 반년 섬긴 주군을 위해 반역도로 몰리는 극한상황에서 허해를 넘어 7개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다이키를 되찾아 묵치를 결성한 것이다. 아센도 섬긴지 반년 정도의 주군에게 왜 그렇게 충성하는지 의아해하며 이렇게 되기 전에 만나 대화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1] 작중 여왕이나 여성 고위관료는 많이 나오지만 여자 장군은 리사이 외엔 없다. 십이국기 세계관에서 여성이 직접 출산하지 않는 것과 기린이 여왕을 뽑는 등의 이유로 남녀평등 의식이 비교적 높은 수준인 것과 별개로 남녀간의 신체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2] 직위만 보면 승주사 장군이나 서주사 장군이나 똑같이 주사(州師)의 장군이지만 수도주인 서주(瑞州)는 재보가 주후(州侯)를 맡으며 사실상 금군(禁軍)과 함께 왕의 군대로 취급된다. 금군과 서주사의 좌장군, 중장군, 우장군 각 3명씩 6명이 왕사의 장군이다. 보통 왕사의 장군은 왕이나 고관의 추천으로 뽑히기 때문에 실력과 별개로 인맥도 필요한데 지방에 해당하는 주사 장군에서 바로 수도 왕사의 장군으로 오르는건 엄청난 승진이다. 실제 교소 등극 후 6장군 중 교소 휘하 출신이 아닌 장군은 아센과 리사이 뿐인데, 아센은 교왕 시절부터 쭉 금군 우장군으로 명성높은 장군이었음을 생각해보면 리사이는 승산 과정에서 보기드문 인연을 얻은 셈.[3] 딱히 아첨을 한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이 때의 인연으로 다이키가 주후를 맡고 있는 서주사 중장군에 발탁된다.[4] 백치를 관리하는 하관.[5] 십이국기 9부에서 정확한 이유가 나오는데 아센이 요마를 이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있음이 밝혀진다.[6] 과거 300년 치세의 명군이었던 재주국(才州國)의 왕 준제(遵帝)는 폭정으로 고통받던 이웃나라 범서국(範西國)의 백성들을 가엾게 여겨 왕사를 보내 가까운 범국의 국민을 보호하려했다. 근데 재국의 왕사가 국경을 넘고 얼마 후 둘 다 사망한다. 특히 기린은 사령에게 뜯어먹혀 비참한 상태가 되었을 정도. 처음엔 국경을 넘었던 것과 왕의 사망을 연관짓지 못했지만 신왕 등극 후 국씨가 재(斎)에서 채(采)로 바뀐걸 보고 관리들은 왕사로 국경을 넘은 준제의 행동이 하늘이 허락치 않은 대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사건을 준제의 고사라 부르게 되었다.[7] 이 때 쇼류가 말하길 안국에 도착한 난민들이 주상을 시해한 주범으로 가장 많이 지목한게 리사이였다고. 아센이 모반 직후 리사이를 시해 주범으로 수배해 초창기 탈출한 난민들이 영향을 받았고, 아센이 찬탈자인게 확실시 된 몇년 후에는 허해에 요마가 많아 난민들이 안국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국은 추가적인 정보를 모을 수 없었다.[8] 다만 이 때도 속마음은 대국을 버리지 말아주세요, 도와주세요 라고 울며 외치고 싶었다는 언급이 있다.[9] 이 때 엔키가 준비한 물건들은 추우를 빼면 실은 요코가 다이키와 리사이가 떠날것을 짐작하고 미리 준비했던 것임이 밝혀지며, 정권이 안국의 것이 아니라 경국의 정권이므로 리사이가 훗날 요코가 떠나는 자신을 배려했음을 눈치챌거란 암시를 준다.[10] 실제로 9부는 4권 내내 다이키 사이드와 리사이 사이드를 번갈아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11] 이 때의 묘사를 보면 리사이는 경국에 있을 당시보다 왼팔을 이용한 전투에 상당히 능숙해진 모습을 보인다.[12] 기료는 은발홍안이 아니었다. 노안의 주민들은 죽은 무인을 찾는 아센의 부하가 오면 주상이 아니라고 사실대로 전할 생각이었고, 반대로 교소를 찾는 이들에겐 은발홍안의 무인이 죽었다고 거짓말 하는것으로 어느쪽이든 더는 마을을 찾지 않도록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외부인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신왕 아센의 소문을 믿었기에 교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슬슬 옛 왕을 포기하라는 배려도 포함되어있던 것.[13] 후에 이 높으신 분은 로산으로 밝혀진다.[14] 주어진 땅을 팔거나 잃고 떠나 어느곳에서 속하지 않는 사람들. 정권(주민등록증 같은것)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타인의 밑에서 몸종으로 일하거나 나라를 떠돌거나 한다. 황주(黃朱)도 넓게 보면 부민에 속한다.[15] 황폐와 요마 때문에 본의아니게 고향을 떠나 떠돌고 있는 사람들로 즉, 난민. 부민과의 차이는 돌아갈 의지가 있다면 돌아갈 땅이 있느냐의 여부로 황민이 시간이 지나 부민이 되는 경우도 많다.[16] 교소가 문주로 출정했던 이유가 토비에게 공격받던 철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고 토벌 도중 실종되었기 때문에 교소 휘하 대부분은 토비에게 감정이 좋지 않다.[17] 유쇼와 토비의 전투는 토비가 압도적으로 불리했으므로 이 당시 리사이가 토비들을 구하러 가지 않았다면 기껏 빠져나왔던 교소는 유쇼의 금군과 마주쳐 아센에게 끌려갔을것이다. 토비에 대한 선의가 천운으로 돌아온 셈.[18] 리사이가 오랫동안 장군으로 있던 곳이며 리사이에 대한 지지 세력이 많이 남아있다.[19] 교소의 출신지로 교소에 대한 지지가 높아 아센에게 가장 비협조적인 주이며, 실제로 아센은 위주를 꾸준히 견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