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22:23:25

멀티 엔터테이너

만능엔터테이너에서 넘어옴

1. 개요2. 유형
2.1. "배우-가수-예능" 트리플 멀티 엔터테이너2.2. "배우-가수" 멀티 엔터테이너2.3. "가수-예능" 멀티 엔터테이너2.4. "배우-예능" 멀티 엔터테이너2.5. 멀티 엔터테이너 전업 사례2.6. 멀티 엔터테이너 실패 사례
3. 대상 수상자들
3.1. 두 가지 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한 경우3.2. 한 가지 분야에서 2회 이상 대상을 수상한 경우
4. 멀티 엔터테이너의 현실과 문제점5. 관련 문서

1. 개요

멀티 엔터테이너(Multi-Entertainer)는 방송/연예 활동에 종사하는 연예인들 중에서, 두 가지 이상의 분야들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대중적 인기와 실력을 인정받으며 활동하는 연예인을 통칭한다. 아이돌 그룹에서 인기를 끈 가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거쳐 드라마에 진출하는 등 멀티엔터테이너로 활동하려는 모습들을 많이 보이고 있다. 연예계의 올라운더.

의외로 방송 역사와 궤를 같이 한 것으로, 옛날 미국의 연예인들부터 이런저런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을 했다.[1] 현대적인 연예인 개념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있었던 보드빌 같은 밤무대에서 형성된 경향이 큰데, 노래나 연기, 예능 전반을 두루두루 잘해야 했었기에 멀티 엔터테이너 성향이 짙었다.

연예인 중에는 아래의 연예 분야 외에도 다른 예술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는 사례도 있고(ex: 국악 악기 연주와 연기의 병행, 영화 감독과 배우의 병행, 만화가와 가수의 병행 등등), 완전히 다른 분야(정치, 과학, 사업 등)에서도 활동하는 사례도 있지만, 이 문서에선 순수한 방송/연예 활동으로 한정한다.

2. 유형

2.1. "배우-가수-예능" 트리플 멀티 엔터테이너

임창정, 차태현, 이승기가 세 분야를 고른 비중으로 출중히 소화해냈다는 점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다른 인물들은 세 분야 모두 성공을 거두었지만 비중 차이는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 임창정
    사실상 멀티 엔터테이너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인물. 국내 대표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가요계[2], 연기계[3], 예능계[4]까지 최정상급에 올랐다. 그냥 이 분야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1990년 영화 남부군에서 연기자로 데뷔, 95년도엔 정규 1집을 발표하면서 가수로도 데뷔하여 '이미 나에게로' 등의 곡들로 가수로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다. 97년 영화 비트대종상 남우조연상, 98년 제3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림과 동시에 OST에서 가수로도 참여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가수로써의 입지를 다진 3집은 지금의 임창정을 있게 해준 앨범으로 '그때 또 다시', '결혼해줘' 등을 히트시키며 한 해에 단일 앨범의 수록곡들로 골든컵을 두 번씩이나 수상하는 마지막 수상자[5]라는 기록을 지금까지 남기며 KBS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이후에도 'Love Affair', '기다리는 이유', '소주 한 잔' 등 여러 히트곡들을 내는 등 앨범의 수록곡들은 1위 또는 상위권 랭크를 놓치지 않으면서 최고의 발라드 가수 자리를 지켜왔고, 2003년 6월에 발매한 정규 10집 《Bye》 를 끝으로 9월 4일 뮤직뱅크에서 가수 은퇴를 발표했다가, 6년 후인 2009년 11집을 내며 다시 가요계에 복귀하여 꾸준히 음반 활동과 예능을 출연하였다. 2008년에는 영화 스카우트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기 커리어에서도 정점을 찍었다.[6] 2015년 9월에 발매한 '또 다시 사랑'을 차트 역주행시키며 대다수의 차트에서 1위를 기록, KBS 뮤직뱅크에서 14년 만에 1위를 달성,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잇고 있다. 또한 이듬해에, 내가 저지른 사랑 발매를 통해 2016년 국내 8대 음원사이트 올킬 및 아이차트 퍼펙트 올킬, 무려 477시간 멜론 1위 기록은 물론, 멜론 역사상 최대 지붕킥 기록인 194회라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우며 임창정의 제2의 전성기가 왔음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이에 더하여, 발매 첫날에 멜론 이용자 수가 무려 127만을 돌파하면서 이전 공식 최다 기록인 아이유의 기록 122만을 깨는 등의 역대급 레전드를 갱신했다. 2년 후인, 2018년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로 또다시 음원차트와 음악방송 올킬을 달성하고, 아이차트 퍼펙트 올킬까지 하는 등 다시 한번 레전드를 갱신하게 된다. 또한, 2020년, 힘든 건 사랑이 아니다로 음원차트 1위 또는 최상위권에 달성하는 동시에 원조 만능 엔터테이너로써의 여전한 건재함을 과시했다.
  • 이승기
    20대 어린 나이에 음악, 연기, 예능 모두 A급에 올랐다. 2004년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 이후 '삭제', '하기 힘든 말', '되돌리다' 등도 모두 히트. 드라마로는 2004년 MBC 일일시트콤 논스톱5로 데뷔, 이후 소문난 칠공주, 찬란한 유산,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배가본드 등 이승기가 출연한 드라마 다수가 시청률 대박, 1박 2일은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예능이었고, 음악으로는 차트 1위를 여러 번 석권한 이 시대의 엄친아. 특히 예능 분야에서 2011년에 1박 2일로 공동 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2018년집사부일체로 단독 대상을 수상하면서 역대 6번째 2개 이상 방송사 연예대상 수상자가 되었다. 세 분야의 밸런스가 가장 고른 편이다.
  • 탁재훈
    1995년 가수로 데뷔하여 당시에는 부진했으나 1998년 컨츄리꼬꼬로 1위에 수차례 오르며 가수로서 정점을 달렸고 후에 S-Papa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참 다행이야'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영화계에서는 조금 부진했던 게 사실이지만 가문의 영광 시리즈, 맨발의 기봉이 등 다수의 영화를 찍으며 영화배우로 자리매김에 성공했고 예능은 상상플러스[7] 등을 초대박 히트시키면서 2007년 KBS 연예대상 수상으로 정점을 찍었다. 세 분야 중 특히 예능에 특화된 재능을 보이는 연예인. 한때 도박사건으로 이미지가 추락했지만, 2023년에 SBS에서 연예대상을 받는 등 점차 재기하고 있다.
  • 차태현
    1995년 데뷔, 1998년 드라마 해바라기를 통해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1999년부터 각종 CF 등을 휩쓸었다. 2001년에 가수로 데뷔했으며 1집 활동에서는 타이틀곡 'I Love You'가 많은 인기를 얻으며 1위를 수상했고, 더불어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입지도 탄탄하게 만들었다. 이후에 정규 2집으로 가수활동을 계속하며 Again to me로 인기를 끌었지만 이후 정규 가수활동은 잠정 중단했는데,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말하기를 동료 가수들이 죽기 살기로 연습하는 것에 비해 자신은 배우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너무 쉽게 가수 생활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반응이 좋았음에도 가수 활동을 접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연기자로서의 인기 또한 다소 내리막을 타다가 이경규 제작의 영화 복면달호에서 주연 및 OST 앨범 참여로 중박을 쳤다. 이후 영화 과속스캔들에서 주연으로 엄청난 흥행을 거두며 배우로서 확실히 재기한다. 2012년부터 KBS 일요일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 시즌 2부터 합류해 시즌 3까지 활약했다. 다만 가수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지낸 지 오래 되어, 2010년대에는 주로 예능인의 모습을 보이며 가수 이미지는 거의 희미해졌으며[8][9], 2019년 초에 내기 골프 논란이 있었지만, 차후 무혐의로 밝혀졌고 이후 입담을 바탕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그의 어머니가 바로 달려라 하니에서 하니의 라이벌이었던 나애리를 맡은 최수민 성우이다.[10]
  • 아이유
    명실상부 최고의 여성 올라운더. 2008년 솔로 가수로 데뷔하여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 가수 중 역대 음원 누적 스트리밍 및 다운로드 1위라는 대기록을 보유한 음원 여왕이다.[11] 최다 주간차트 1위, 최다 월간차트 1위, 최다 퍼펙트 올킬 달성, 최다 1억 스트리밍 곡 보유, 최다 250만 다운로드 곡 보유 등 디지털 음원 시대에 음원 관련 대부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총 9회의 음원대상 수상자인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좋은 날>로 '올해의 노래'를 수상했고,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좋은 날>로 '올해의 베스트송', 2014년엔 '올해의 아티스트', 2017년엔 정규 4집 Palette로 '올해의 앨범', 2021년엔 '올해의 아티스트'와 정규 5집 LILAC으로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며 대상을 5회 수상했으며, 골든디스크어워즈에선 <밤편지>와 <Blueming>, <Celebrity>로 3회의 '디지털 음원 대상'을 수상했다. 특히 공연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2018년 〈이 지금 dlwlrma〉 콘서트로 KSPO DOME(前 올림픽체조경기장)에 입성했으며, 2019년 〈Love, Poem〉 콘서트 때는 같은 공연장에서 360도 공연을 선보이며 한국 여자 가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공연을 진행했다. 이후 콘서트의 규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2022년에는 〈The Golden Hour : 오렌지 태양 아래〉 콘서트로 한국 여자 가수 최초 서울올림픽주경기장 입성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해당 공연은 이틀간 8만 8천여 명을 동원하며 3년 만에 한국 여자 가수의 역대 최대 규모 공연 기록을 또 한번 경신했다. 또한 2024년에는 〈HEREH〉 월드 투어 콘서트로 12개 국가의 18개 도시에서 총 31회 공연을 진행하며 총 동원된 관객 수만 50만 명에 달했다. 특히 앵콜 콘서트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하며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입성한 최초의 여자 가수라는 타이틀은 물론, 서울 내 모든 스타디움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진행한 최초의 여자 가수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가지게 되었다.
    연기 측면으로는 데뷔 3년 차였던 2011년 《드림하이》를 시작으로 《최고다 이순신》과 《예쁜 남자》, 《프로듀사》,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등에 주연으로 출연했으며, 첫 주연작이었던 《최고다 이순신》으로 KBS 연기대상에서 여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가수 커리어에 비해 배우로서는 큰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는 듯했으나 2018년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통해 그야말로 인생 연기를 선보이며 엄청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또한 《호텔 델루나》로 2019년 tvN 드라마 시청률 1위, 역대 tvN 드라마 시청률 6위 등 주연 배우 파워를 입증했다. 해당 드라마가 방영된 2019년에는 한국갤럽 설문조사에서 데뷔 이래 처음으로 '올해의 빛낸 탤런트' 부문에 7위로 이름을 올렸는데, '올해를 빛낸 가수' 4위에도 이름을 올리며 한국갤럽 설문조사에서 가수와 탤런트 부문에 동시에 이름을 올린 최초의 연예인이 되었다. 이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와 이병헌 감독의 《드림》으로 영화로도 분야를 확장했다. 특히 영화 데뷔작인 《브로커》로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을 누렸으며, 4개의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노래와 연기만큼이나 방송에서도 다양한 활약을 펼쳤다. 《영웅호걸》로 SBS 연예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무한도전》과 《런닝맨》, 《아는 형님》, 《효리네 민박》 등 굵직한 대형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활약했다. 특히 2015년 《무한도전》의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특집에서 박명수와 함께 팀을 이뤄 <레옹>이라는 명곡을 탄생시켰고,[12] 2017년 《효리네 민박》에서는 알바생으로 출연하여 입는 옷, 먹는 간식, 말투 등 하나하나가 엄청난 화제를 일으키며 이른바 아이유 병이라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또한 SBS 《인기가요》의 MC로서 안정적인 진행력과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2년 1개월간 MC를 맡았고, 이는 최장수 여자 MC 기록이다. 이후 개인 유튜브 채널인 이지금 [IU Official]을 개설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IU TV》와 《아이유의 팔레트》가 있다. 특히 《아이유의 팔레트》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유튜브 판으로 시작된 음악 토크쇼였으나 앞서 《인기가요》에서 다진 탁월한 진행 능력과 게스트와 서로 노래를 바꿔 부르는 신선한 코너 등으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경쟁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 해당 유튜브 채널은 2024년 현재 97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대형 채널이 되었으며, 여전히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 김세정
    아이오아이의 메인보컬이자 주연 필모그래피를 채워가는 연기자, 예능 치트키라며 불리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솔로곡 꽃길로 모든 음원 차트 1위,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하며 시작한 가수로의 길은 이제 자신의 앨범 전곡을 작사작곡하는 경지로 접어들었고 학교 2017로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배우로 데뷔한 이후 너의 노래를 들려줘에서도 주연, OCN 시청률 기록을 경신한 경이로운 소문에서도 주연으로써 큰 활약을 하며 매체 연기자로써의 입지를 탄탄하게 쌓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주연으로 캐스팅된 SBS 미니 시리즈만 두 작품[13]일 정도. 특히 무대 연기에 도전, 언론과 뮤지컬 팬들의 극찬을 받으며 레드북의 주인공 안나 역을 탁월한 해석으로 소화해내며 못하는 것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평을 이끌어 냈다. 어서옵쇼 MC로 시작한 예능 역시 겟잇뷰티,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MC를 거쳐 넷플릭스 최초의 한국 예능 범인은 바로 너! 시리즈 멤버로 활약하는 등 20대 초반부터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 송해
    이 분야의 원조 격 인물. 본래 성악을 전공한 가수였고, 젊은 시절에는 희극 연기자로서 방송사를 넘나들며 활약하였다. 당시의 그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직업은 코미디언이었으나, 그는 이미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도 출연했고, 드라마 주제곡도 불렀다. 또 출중한 노래 실력을 바탕으로 가요무대에 종종 출연하기도 했다. 환갑이 지난 1988년 5월 8일부터, 1994년 중 있었던 5개월 간의 공백을 제외하고도 자그마치 33년 동안 전국노래자랑을 이끌며 예능 MC로서 인생 최전성기를 누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녹화에 참여한 것은 2022년 5월 15일 방송분이었고, 불과 24일 뒤인 6월 8일에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죽을 때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겠다"라고 한 생전 약속까지 지켰다.
  • 육성재
    보이그룹 비투비의 막내이자 보컬라인으로 활동 중이다. 상당한 수준의 가창력을 복면가왕, 판타스틱 듀오 등의 음악 예능에서 입증한 바 있다. 예능 분야에서는 조이와 함께 커플로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며 우결 마지막 인기 커플로 꼽힌다. 2017년부터는 집사부일체에 2년 넘게 고정 출연하면서 예능 커리어를 쌓고 있다. 연기 쪽에서도 응답하라 1994, 아홉수 소년 등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다가 후아유 - 학교 2015에서 공태광 역으로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그리고 신드롬급 인기를 모았던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에서도 유덕화로 주연급 활약을 하며 탄탄하게 필모를 쌓고 있다. 도깨비 이후의 연기 활동은 다소 미진한 편이었으나, 전역 이후 MBC 드라마 금수저에서 주연 역할을 맡고 그해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까지 수상하며 연기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여담으로 그는 롤모델로 이승기를 꼽고 있고, 집사부일체에 같이 출연한 바 있다.
  • 혜리
    걸그룹 걸스데이의 멤버로 데뷔 초에는 크게 돋보이지 않았으나 예능《진짜 사나이》에서 선보인 이이잉 애교 하나로 급 화제가 되어 예능 블루칩으로 거듭났다. 《놀라운 토요일》고정 멤버로 대 활약하였고, 배우로서의 대표작은 《응답하라 1994》가 있다.
  • 방민아
    걸그룹 걸스데이의 멤버로 데뷔 초 활발한 예능 활동으로 그룹과 자신의 이름을 알렸으며, 그 이후로도 여러 방송, MC 등으로 꾸준한 예능 활동을 이어왔다. 2011년부터 카메오, 특별 출연 등 작은 역할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연기적으로도 필모그래피를 쌓았고, 2016년 드라마 미녀 공심이에서 주연을 맡아 시청률 15% 돌파 및 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큰 성과를 보이며 주연급 연기자로 발돋움하였다. 이후 2021년 개봉한 영화 최선의 삶으로 3관왕을 거머쥐었다. 걸스데이 활동 및 다양한 예능과 음악방송, 콘서트 등으로 가창력을 인정받았으며, 2015년 솔로 앨범을 시작으로 간간이 싱글 솔로 앨범을 내고 있다. 또한 피처링과 듀엣, ost 등 참여한 음반도 많은 편이다. 2020년에는 뮤지컬 배우로도 데뷔하였다.

2.2. "배우-가수" 멀티 엔터테이너

1980년대부터 생겨난 가장 많은 멀티 엔터테이너의 형태로서, 김창완, 김민종, 엄정화, 이정현, 장나라, , 박용하, 윤아, 이준호, 수지 등이 대표적. 1980~90년대에는 인기 배우들이 호황인 가요계에 편승하여 겸업으로 도전해보는 경우가 많았고, 거꾸로 2000년대부터는 아이돌 출신을 비롯한 가수들이 배우로 겸업을 하기 시작하는 역현상이 나타난다.

연기와 노래가 아주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둘 다 몸을 써서 표현하는 예술로, 발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컨트롤해서 감정을 표출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 한쪽에 뛰어나면 다른 쪽도 중박 정도는 치기 마련. 거기에 음악을 매개로 앙쪽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도 있다. 대표적으로 OST.

일본에는 사카모토 마아야미즈키 나나, 타무라 유카리 같은 가수를 겸하는 성우들이 있는데 멀티 엔터테이너 관점에서는 이쪽 계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성우배우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중국, 홍콩 등 중화권은 애초에 활동양상에서 가수와 배우의 구분이 매우 희미하기 때문에 한국에는 영화배우로만 알려진 이들 상당수가 빼어난 디스코그라피를 겸비하고 있다[14]. 대표적으로 장국영, 유덕화, 장학우, 주걸륜, 곽부성, 여명 등이 있다. 미국 쪽 연예인[15]도 예외는 아닌데, 데이비드 해셀호프도 그 중 하나로서 영화배우와 가수를 겸업했다. 이 분야의 원조격인 빙 크로스비, 프랭크 시나트라데이비드 보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셰어, 마돈나, 세계 3대 디바, 레이디 가가, 마릴린 맨슨, 자레드 레토, 도널드 글로버 등도 여기에 속한다.
  • 빙 크로스비
    지구 역사상 최초의 멀티 엔터테이너이자 엔터테이너라는 말의 시초. 전 세계의 있는 거의 대부분의 멀티 엔터테이너들은 대부분 이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가수로써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최정상급 가수로써 활동했었고 BBC 선정 세기의 목소리 부문에서 5위나 차지할 정도의 커리어를 누렸다. 또한 가수로도 성공했는데 배우로써도 대박을 터뜨려 1945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골든글로브 평생공로상 수상등의 엄청난 실적을 남겼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한 결과가 1948년 미국이 선정한 살아있는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또한 멀티 엔터테이너로써는 유일하게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미국인 100인에 당당히 선정되는 등, 현재까지도 20세기 초창기 유명 연예인 중에서는 드물게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며, 친동생 밥 크로스비 역시 1950년대 가장 인기있는 연예인 중 한 명이었다니 집안 자체가 인기가 높았던 집안이었다.
  • 곽부성
    한국에서는 신조협려, 풍운, 기항지, 콜드 워 시리즈 등에 출연한 선굵은 미남배우로만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30년이 넘도록 활동하고 있는 중화권 남자 댄스가수의 정점이다. 오죽하면 중화권 댄스가수계는 채의림곽부성 둘이 멱살잡고 이끌고 있는데, 하도 후계자가 나오질 않아서 저 둘이 쉬지를 못한다는 우스개가 나오는 지경.
  • 구본승
    1994년 혜성처럼 등장하며 가수로 데뷔. 1집 타이틀곡 '너 하나만을 위해'[17]가 대박을 터뜨리며 가요 순위 1위도 차지했고 그 뒤 일부 곡들이 상위권에 오르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동시에 연기자로도 데뷔하면서 MBC 드라마 종합병원에도 출연하며 멀티엔터테이너로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그러다가 정점에 있는 순간 현역으로 군입대를 결정하면서 세간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했으며 안타깝게도 전역 후에 데뷔 때의 전성기를 다시 일으키지 못하고 잊혀져가는 추억의 연예인이 되었다. 근래 출연작은 친애하는 당신에게며 2006년 이후로 침묵을 깨고 연기를 한 작품이었다. 한때 연예계 활동을 접고 골프 사업을 한 적이 있으며 지금은 불타는 청춘 등 여러 곳에서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간혹 이름 때문에 헷갈릴 수도 있는데 LG그룹 구씨 일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 김동완
    1998년 남성 6인조 아이돌 그룹 신화로 데뷔, 위트가이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영화계에 입문하여 연기자의 길도 걷기 시작하며, 현재는 벽을 뚫는 남자나 헤드윅 등 뮤지컬 활동도 병행하는 중. 연기자 데뷔 후 처참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의 인기에 편승하는 트렌디한 인기 드라마보다 작품성 있는 중소 규모의 드라마들에 많이 출연함으로서 전문적으로 연기력을 키워갔다. 2011년 그가 주인공인 이육사로 열연한 MBC 8·15 특집 드라마 '절정'은 미국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특집극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그동안 연기파 배우로서 다져왔던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2012년에는 힘내요, 미스터 김!에서 주연으로 활약하고, 2013년에는 연가시가 흥행에 성공하며 어느 정도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데에 성공했다. 신화로서의 활동도 꾸준히 선보이며 가수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 김민종
    배우로 데뷔하여 리즈 시절에는 각종 영화 및 드라마에서 하이틴 스타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으며 손지창과 함께 '더 블루'라는 남성 듀오 그룹도 함께 결성하여 가수로서도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1996년 솔로 3집 타이틀곡인 '귀천도애'가 크게 흥행했지만 이 곡이 일본 곡을 표절했다는 판정을 받는 불미스런 사건으로 가수 은퇴를 선언했다가 1998년에 다시 복귀한 뒤 바로 인기를 회복했으며 가수로서의 음악성을 인정받고 많은 히트곡들을 남겼다. 그룹 및 솔로로서 가요차트 1위를 차지했던 곡만 나열해도 '너만을 느끼며', '하늘 아래서', '그대와 함께', '친구를 위해', '귀천도애', '착한 사랑', '그래도 그대는 영원한 나의 사랑이야', '비원', '왜', 'You're My Life' 등 한때는 곡을 발표하는 족족 1위를 차지하던 수준. 전성기가 지난 후에도 손지창과 그룹 '더 블루'를 재결성해 잠시 활동하기도 했으며, '신사의 품격' 등 배우로서의 활동은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 김수철
    1984년 KBS 가요대상 남자가수 대상[18]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신인연기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당시 그가 출연한 '고래사냥'은 84년 국내영화 흥행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김창완
    이 분야의 원조. 전설적인 가족 밴드인 산울림의 리더로 1970년대 말부터 1997년까지 파격적인 독창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부터 연기 활동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푸근하고 순박한 소시민 이미지로 주로 나왔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냉혹한 악역 연기 또한 잘 소화하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도민준의 조력자로 연기해서 해외에는 아예 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또 산울림을 모르는 어린 세대도 "별그대 그 아저씨" 하면 거의 알아듣는다. 음악계에서는 산울림 하나로 국내 최정상급 록커로써의 이미지가, 배우로써는 하얀 거탑, 화려한 유혹 등에서 보인 이중인격 연기의 능력자로써의 이미지가 완전히 자리잡았고 서로의 이미지가 현실에서 충돌하지 않는데, 후술하듯 상호간의 충돌이 잦아 고생하는 멀티 엔터테이너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능력인 셈이다.
  • 윤아
    아이돌 출신 배우 전향 성공 사례. 대한민국 대표 걸그룹 소녀시대의 센터이자 비주얼 멤버로 10년 동안 활동을 해 왔으니 가수로서의 입지는 말할 것도 없고 소녀시대로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19] 드라마 주연을 맡고 이후 여러 드라마에서 활약을 했지만 시청률도 많이 안 나오고 크게 활약을 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2017년 첫 영화 출연작 공조가 700만 관객을 동원하고, 2년 뒤 첫 주연작 엑시트가 9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아이돌 배우 주연 영화 흥행 1위라는 타이틀꺼지 얻으며 배우로써도 좋은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후 빅마우스, 공조2 등 흥행을 성공시키며 배우로써 커리어는 물론 소녀시대 15주년 정규 7집 활동도 좋은 성적을 받는 등 손에 꼽는 커리어를 자랑하고 있다.
  • 류시원
    90년대에는 드라마로, 이후에는 가수로도 대성공하며 '아시안 프린스'라는 별명으로 한중일을 아우르는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다만 교통사고 문제와 2012년부터 불거진 이혼 소송으로 인해 이미지가 상당히 실추된 상황이다.
  • 민호
    SHINee로 데뷔해서 얼굴을 알렸으며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였다.
  • 박광현
    꽃미남 배우로 데뷔해 드라마, 음악방송 MC로 활동하다가 작곡가 이경섭의 눈에 띄어 나이트클럽을 겨냥한 댄스 장르의 앨범들을 몇 장 냈다. 현재는 결혼 후 중년이 되어 아침드라마 등에 종종 얼굴을 비추고 있다.
  • 박형식
    제국의아이들로 데뷔하여 예능 《진짜 사나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으며 이후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에 출연하였다.
  • 박용하
    연기자로 데뷔해서 2002년 KBS 드라마 겨울연가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실제적으로는 이 드라마가 일본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면서, 배용준, 최지우와 함께 한류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일본에서 가수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다. 일본 활동을 통해 인지도가 상승 후에 SBS 온에어에 출연하여 국내에서도 인기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0년에 우울증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 2002년 1집 '나쁜 남자'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한 미국 가수의 퇴출로 부재였던 남성 솔로 가수 영역을 단숨에 차지, 2003년부터는 자신의 본명인 '정지훈'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연기자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하여 KBS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에서 주연으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으며 인기도 얻고, 이듬해 2004년에는 KBS 드라마 풀하우스송혜교와 함께 주연을 맡아 연기자로서 완전 대박을 친 동시에 가수로서도 KBS 가요대상 대상까지 수상하여 양쪽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 후 가수로서 활동도 열심히 하고 미국 진출로 상당히 이미지가 상승했으며, 연기자로서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스피드 레이서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연기 활동도 병행한다. 또한 본인의 앨범인 이 역주행까지 하면서 놀면 뭐하니 유닛인 싹쓰리로도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 서인국
    오디션 출신 연예인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20] 슈스케1 우승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고, 지상파 방송국의 견제를 피하여 출연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성공으로 멀티 엔터테이너로 거듭났다.
  • 손담비
    원래부터 연기자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정식 데뷔 이전에도 몇몇 시트콤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2008년에 '미쳤어'로 히트한 이후에 09년 드라마 드림에 출연했었지만 상대작이 선덕여왕이었던지라 평가를 받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드라마가 망했었다. 이후 2012년 MBC 빛과 그림자를 통해서 다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9년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최향미' 역으로 인생 연기라는 호평을 얻었다.
  • 손지창
    아버지 임택근이 버린 집안에서[21] 학비를 벌기 위해 광고 모델로 시작하여 성실한 모습으로 인정받으며 무등이네 등으로 연기로 폭을 넓혔다. 연기에서도 성실한 태도로 연출진이 스스로 비중을 높여주는 등으로 점차 역할을 넓혀가면서 임재범과 형제답게 가수로 재능을 보이며 직접 작사를 도맡아 1집을 내고 성공했다. 마지막 승부, 느낌, '더 블루' 활동을 거치며 9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최고의 인기 하이틴스타로 군림했으나 후반들어 하락세를 타면서 김민종과의 평가가 뒤집혔고 중간에 진실 등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점차적으로 오연수와의 결혼, 영웅시대 출연 중 정계 외압으로 회의감, 사업 시작 등으로 브라운관 활동을 접었다.
  • 수지
    가수, 드라마, 영화, 예능 모든 부분에서 신인상을 받은 유일한 연예인. 정상급 걸그룹인 미쓰에이의 멤버였으며 드라마, 영화 두 분야에서 모두 성공한 커리어를 쌓은 드문 케이스이다. 음악 쪽도 그룹, 솔로 활동 댄스곡와 발라드 양쪽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덧붙여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CF 모델 중 하나이다. 다만 예능 분야에서 신인상을 얻었던 청춘불패2 이후로 예능에서 고정을 한 적이 없으며, 음악 방송 고정 MC는 어이돌 2세대부터 꾸준히 가수의 영역으로 넘어간 측면이 있어 배우-가수 멀티엔터테이너로 분류한다.
  • 안재욱
    연기자로 데뷔했으며 1997년 MBC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에서 인기 가수인 주인공 강민 역을 맡은 뒤 자연스레 가수의 길로 입문하게 되었고, 드라마와 함께 OST로 부른 1집 타이틀 곡 Forever가 여러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는 등 대박을 터뜨리면서 연기자와 가수로서의 인기와 명성을 동시에 얻게 되었다. 2집과 3집에서 다소 주춤하다가 4집에서 중국 가요를 번안한 타이틀 곡 '친구'가 좋은 반응을 얻으며 다시 한 번 인기를 구가했다. 2000년대 이후는 한국보다 중국에서 멀티 엔터테이너로 활약을 많이 했다.
  • 양동근
    아역 연기자로 일찌감치 데뷔하여 어릴 때부터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2000년부터 출연한 시트콤 뉴 논스톱에서 구리구리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해지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해, 인기가 오르던 2001년 힙합 가수로 솔로 데뷔[22]하여 드렁큰 타이거의 지원 사격도 받는 등 의외로 힙합 뮤지션으로서 상당한 내공을 선보이며 1집 타이틀곡 '구리뱅뱅'[23]이 괜찮은 인기를 얻었고, 이듬해 2002년에 배우로서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에 주연급으로 출연하며 동시에 가수로서 1.5집을 발매하여 이재민의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한 타이틀곡 '골목길'도 괜찮은 반응을 얻는다. 다만 영화는 망했고 그 해 드라마에서는 강세를 보이는데 네 멋대로 해라에서 주인공인 고복수 역을 맡아 레전드급 연기력을 선보이며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 꾸준히 작품에 참여하고 있고, 힙합 가수로서도 내공을 역시 쌓아가며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군복무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전역 후 재개했다.
  • 엄정화
    이 분야의 본좌. 1993년 주인공을 맡은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OST 타이틀 곡인 신해철이 작사 작곡의 '눈동자'로 가수 데뷔도 하게 된다. 처음에는 가수로서 그다지 큰 반향을 얻지 못하다가 1997년 3집 '배반의 장미'가 초대박을 치며 90년대 후반 대표 여성 솔로 댄스가수로서 철옹성 같은 입지를 다졌고, 가수 활동 후반기에는 인기가 떨어지긴 했어도 음악성에서 상당한 찬사를 받았다. 가수로서의 성공으로 인지도를 올리며 다시 영화계에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갑상선 암으로 잠시 활동을 쉬었지만 2012년 겨울에 영화 '댄싱퀸'으로 돌아왔다. 대종상 여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등 배우로서 수상실적도 정상급. 히트곡으로는 '배반의 장미', '눈동자', '페스티벌', '초대', '몰라', '포이즌', '디스코' 등이 있고, 대표적인 드라마로는 '아내', 결혼 못하는 남자, '12월의 열대야' 등이, 영화로는 오로라 공주, '호로비츠를 위하여', '싱글즈', '해운대',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이 있다.
    2023년에는 닥터 차정숙의 차정숙 역할을 맡아 열연하였으며, 드라마의 높은 인기와 동시에 화제성 조사에서도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예능 댄스가수 유랑단에 출연하면서 가수로서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는 중. 다시 전성기가 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수와 배우 양 영역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에릭
    1998년 남성 6인조 아이돌 그룹 신화로 데뷔, 리더로서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로 인기를 차지했다. 2004년 MBC 드라마 '불새'에서 주연으로 전격 발탁되어 연기자로서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최근에도 연애의 발견, 또 오해영까지 꾸준히 연기 활동을 했다. 2012년 그룹 신화로 컴백했고, 2013년에도 성공적으로 활동을 하며 가수로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 옹성우
    배우 지망생이었지만, 화제의 프로젝트 그룹 Wanna One으로 데뷔하여 처음 얼굴을 알린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였다.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본인이 출연한 작품 OST에도 다수 참여했으며 2024년 현재 군 복무중이다.
  • 윤계상
    1999년 남성 5인조 아이돌 그룹 god로 데뷔하였고 이후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였다. 특히 영화 범죄도시에서 장첸을 맡으면서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 이정현
    1996년 영화 '꽃잎'으로 데뷔, 정신이상을 가진 소녀를 신들린 듯 연기하며 영화계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1999년에는 정규 1집을 발표하며 가수로 변신, 테크노와 세기말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며 높은 인기를 구가했고, '와', '바꿔', '너', '줄래', '미쳐', '반', '아리아리' 등의 히트곡을 냈다. 다른 가수들과 차별화되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콘셉트과 무대 퍼포먼스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가요계의 트렌드 메이커이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중국에서 한류 스타로서 활약했고, 2010년 즈음부터 다시 국내에서 가수와 배우를 병행하며 활동하고 있다. 2014년 '명량'에 출연하며 '천만 배우'의 타이틀을 얻은 데 이어 2015년에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배우로서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고 있는 중이다.
  • 이지훈
    1996년 1집 '왜 하늘은'으로 17살의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했으며 3집까지 나름대로 인기를 얻으면서 괜찮은 길을 가다가 2000년대에 불어닥친 가요계의 불황으로 인해 연기를 겸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2000년대에도 강타, 신혜성과 함께 S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가수로서 큰 인기도 끌었고, 현재는 연기자로서 경력도 많이 쌓으며 거의 연기 활동에 주력하나 가수로서 앨범도 꾸준히 내고 있으며, 뮤지컬계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 이재은
    아역배우 시절 엄청난 스타성으로 인기 배우였지만 가정의 생계를 위해 성인이 된 후 가수로도 전향했지만 큰 재미는 못봤다. 여러모로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동년배였던 대중들에겐 TV나 기사 등을 통한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되었던지라 고생의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가끔씩 그의 근황이 알려지면 별 이유없이 응원의 메세지가 많은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 임시완
    제국의아이들로 데뷔하여 얼굴을 알렸으며 이후 드라마 미생과 영화 변호인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가수 활동이 상대적으로 미흡하기는 하나 배우로서는 독보적인 위치에서 다수의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 중이다.
  • 장나라
    2001년 1집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를 통해 가수로 데뷔했으며, 데뷔 당시에는 언밸런스한 콘셉트 때문에 크게 인기를 못 얻었지만 곧 '뉴 논스톱'에서 어리버리한 가수 지망생으로 나오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가수로서도 1위에 여러 번 등극하며 2002년에는 KBS와 MBC 2개의 지상파 가요대상까지 석권할 만큼 승승장구했고 '명랑소녀 성공기' 등 드라마에서도 주연을 맡으면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지지를 얻으면서 '장나라 신드롬'을 일으켰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중국에서 한류 스타로 맹활약했고, 2010년대 들어서 다시 한국에서 드라마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 장동건
    보통 배우로서 많이들 알고 있지만 신인 시절 인기를 얻으면서 가수로서 정규 앨범도 내었는데 상당히 인기를 얻어서 가요 차트에서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청룡영화상 주연상, 조연상, 신인상의 연기자 3대 부문을 석권한 단 두 명 뿐인 배우 중 한 명이기도 하다.[24]
  • 전영록
    가요대상 3회[25] 수상에 빛나는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인기 가수였으며, 이 인기에 힘입어 영화계에도 진출해서 돌아이라는 영화를 시리즈로 찍으며 연기자로서도 꽤 인기를 얻었다.
  • 정은지
    걸그룹 Apink의 메인보컬로, 아이돌 전체를 통틀어서 손에 꼽히는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 Apink로도 큰 성공을 거뒀고 솔로 가수로도 성공을 하면서 가수로서의 커리어는 굉장히 탄탄하다. 첫 연기를 2012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인 '성시원' 역을 잘 소화하면서 연기돌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어냈다. 20살에 한 첫 연기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에 잘 스며들었고, 실감나는 출산씬까지 연기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이후에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KBS 드라마 트로트의 연인, KBS 드라마 발칙하게 고고, JTBC 드라마 언터처블, 영화 0.0MHz 등에서 연기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술꾼도시여자들 시리즈로 또 흥행에 성공했다.
  • 준호
    2PM으로 데뷔하여 얼굴을 알렸으며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였다. 그룹의 성공 이후 가수로서는 주로 일본에서 활동 중이고, 옷소매 붉은 끝동, 킹더랜드를 연달아 성공시키며배우로서 주가를 올리고 있다.
  • 진영
    B1A4로 데뷔하여 얼굴을 알렸으며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였다. 대표작은 영화 수상한 그녀,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지만 사실 화제작의 서브 포지션이며, 가수보더도 프로듀서로 특히 걸그룹 히트곡을 다수 보유했다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 차은우
    ASTRO로 데뷔하여 얼굴을 알렸으며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였다. 압도적인 비주얼로 얼굴천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데뷔와 동시에 배우로서 다수의 작품에 참여하였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여신강림과 같은 로맨스물이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신한류의 대표주자로 성장하였으며, 가수로도 솔로 앨범을 발매하는 등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 택연
    2PM으로 데뷔하여 얼굴을 알렸으며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였다.
  • 황민현
    뉴이스트로 데뷔하여 화제의 프로젝트 그룹 Wanna One 재데뷔를 통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으며 이후 드라마와 뮤지컬에 출연하였다. 솔로 가수로 앨범을 발매하고, 각종 프로젝트와 OST 참여를 지속하면서 배우로도 쉼없이 활동하고 있다.

2.3. "가수-예능" 멀티 엔터테이너

가수로서 입지를 다졌으나, 2000년대부터 시작한 가요계의 불황으로 예능을 겸업하기 시작하는 생계형 멀티엔터테이너인 경우가 많아졌다. 최근에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 중에서 뛰어난 예능감을 무기로 하여 전략적으로 이쪽 길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김종국, 김종민, 이효리 등. 역으로 예능인(코미디언) 출신으로 가수를 겸업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대표적인 코미디언으로는 김숙, 김영철, 박명수, 송은이, 조혜련, 틴틴파이브 등이 있다.
  • 김C
    록 그룹 뜨거운 감자의 리더. 음악 활동만으로 인기와 인지도를 못 올리자 바로 지상파 예능계에 발 벗고 뛰어든 가수 출신 생계형 멀티 엔터테이너의 시초. 2003년 MBC 예능 프로그램 브레인 서바이벌에 한쪽 구석탱이에 감초처럼 출연하며 얼굴을 알려갔고, 4차원적인 캐릭터로 인기를 얻으며[27], 그 해 당대 최고의 스타 이효리와 함께 델몬트 망고 CF까지 따낸다. 한동안 큰 활동이 없다가 2007년 1박 2일 시즌1에 중간 투입되면서 예능인으로서 본격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1박 2일이 절정이던 2009년 당시에 뜨거운 감자의 새 앨범 타이틀 곡인 '고백'도 많은 인기를 끌며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가수로서의 인기까지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2010년에 김종민 복귀 후 얼마 되지 않아 1박 2일에서 자진 하차함으로서 멀티 엔터테이너의 길을 접고 음악인으로 되돌아갔다. 다만 예능 프로에 단발성 게스트 출연이나 내레이션은 계속 하고 있다. 이후 불륜 논란으로 이미지가 많이 실추되었다.
  • 김종민
    이 분야의 본좌. 가수 엄정화의 백댄서로 연예계에 입문, 2000년에 혼성그룹 코요태 새 멤버로 전격 발탁되어 그 해부터 가요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그룹 내에서는 복덩이 같은 존재. 2000년대 중반부터 예능계에 입문하여 활동하기 시작, 2007년 1박 2일의 원년 멤버로 활동하다 곧바로 공익근무, 2009년에 1박 2일로 복귀하여 현재까지 출연하고 있다. 신정환-천명훈-김종민으로 신정환을 필두로 한 예능계의 '신라인'의 막내였으나, 맏형이 방송계에서 사라지자 천명훈이 노유민을 데려와 셋이서 활동하기도 했다. 1박 2일에서 천명훈을 게스트로 부르기도 하는 등 친분을 여전히 유지하는 중. 이제는 1박 2일에서 빠질 수 없는 원년 멤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하며 예능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커리어가 10년 이상 쌓이다 보니 2019년에 1박 2일이 잠정 중단되었을 때에도 오히려 예능 9개 고정 출연(!)으로 예능계에서는 강자임을 입증하고 있다.
  • 김종서
    가수 출신 생계형 멀티 엔터테이너로 일찌감치 발을 들여놓은 케이스다. 가요계의 불황이 닥치며 특히 마이너 장르인 록을 다루는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위기를 직감하고,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2000년대 중반부터 스스로 예능계에 발을 들이며 상당히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특히 록커로서 철저히 신비주의를 유지하던 그가 예능계에 발을 들이며 스스로 기존의 이미지를 완벽히 깨 버린 것은 록 매니아들에겐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으나, 대신에 유쾌하고 입담이 넘치는 그의 본래 성격을 캐릭터화하여 예능에서 적극적으로 선보이며 그를 잘 모르는 젊은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잘 어필이 되어 인지도도 올리는 등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힘입어 2008년에는 SBS 드라마 '행복합니다'에 연기자로도 데뷔한다. 어찌 보면 윤종신, 김태원보다 가수 출신 생계형 멀티 엔터테이너로는 선배라 할 수 있으나 최근에는 예능 활동이 뜸해서 아쉽기도 하다.
  • 김태원
    록 그룹 부활의 리더, 기타리스트. 음악인으로 평생을 살 듯 하였으나 자폐증이 있던 아들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궁여지책으로 예능계에 발을 들인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 친분이 있던 김구라의 권유로 첫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인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서 대박을 터뜨리며, KBS 예능 프로 남자의 자격, 나 혼자 산다에 차례로 출연하며 예능의 끼를 발휘하는 중.
  • 데프콘
    힙합 분야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쌓아놓고 있지만 실제 상업적인 면에선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당시 친했던 정형돈과 하하 덕에 무한도전 등에서 단발성 게스트로 출연한 것이 대박을 터뜨렸다. 전성기 무한도전의 주요 게스트 겸 제8의 멤버로 활약하고 있으며, 1박 2일 시즌3의 주요 멤버로도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형돈과 함께 주간 아이돌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급기야는 정형돈을 가수의 길로 끌어들여 형돈이와 대준이라는 듀엣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 박명수
    가장 성공한 개가수로 평가받는 인물. 예능인(개그맨) 출신이면서 생계형으로 가수를 겸업하기 시작하였다. 개그맨으로서 별 인기를 얻지 못하던 시기이자, 가요계가 황금기이던 90년대 후반에 가수로 데뷔하여 '바다의 왕자', '바람의 아들' 등의 나름대로 주옥 같은 곡들로 인지도는 확보하였다만, 최근에는 본업인 예능 쪽에서 MBC 방송연예대상 수상 등 큰 성공을 거두다 보니 가수 활동에 무게를 두지는 않는 편이다. 예능에서 써 먹기 위해 음반을 낸다 노래가 대박나면 좋고 망해도 개그 소재 그래도 프로듀서인 G-Park으로는 여전히 음악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박경림
    90년대 중반 별밤을 통해 연예계에 입문, 1998년 KBS 2FM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의 강원도 용평 공개방송 때 방청석에서 뛰어올라온 것이 계기가 되어 연예계에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이후 여성 MC로 예능계에서 인기를 얻으며 활약하다, 2001년 MBC 방송연예대상의 대상 수상자가 되었다.[33] 이듬해 2002년 SBS 인기 프로그램 '박수홍 박경림의 아름다운 밤'에서 기획한 간판 코너인 난치병 어린이 모금을 위한 '박고테(박경림 고속도로 테이프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주영훈, 윤종신, 유희열, 장나라, 김장훈 등 가요계의 실세들이 도움을 주어 실제로 가요 앨범을 출시했고, MBC 음악캠프에서는 1위 후보까지 올라갈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물론 가수 활동은 일회성으로 마무리했고 이후에는 예능에만 집중하고 있다.
  • 성시경
    얼굴도 훈훈하고 목소리도 좋은데 입담도 엄청나서 데뷔 때부터 음악 예능에 자주 얼굴 내비쳤다. 그 후로는 여러 예능에 게스트로 자주 출연을 했는데, 그때까진 고정으로 나가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제대 이후에는 1박 2일 시즌 2 고정을 시작으로 2013년 마녀사냥, 2014년 비정상회담, 오늘 뭐 먹지?를 줄줄이 고정 자리에 앉았고, 2016년 들어서는 무비 버스터즈,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에 고정 출연하며 예능인 성시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팬들은 다 됐고 8집 좀 내달라고 난리다 음악 쪽으론 성발라 한마디로 정리 가능하다.
  • 신보라
    개그콘서트를 통해 얼굴을 알렸고 거기서 용감한 녀석들로 활동하였고 이후 가요계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 신정환
    룰라, 컨츄리꼬꼬 등으로 인기를 얻으며 가수로서 나름대로 성공하였고, 컨츄리꼬꼬 시절부터 선보인 예능의 끼를 인정받아 2002년 공포의 쿵쿵따 2기 멤버로서 예능계에 발을 들이고, 이듬해 2003년에 개그맨 출신이 아님에도 모 포털사이트의 개그맨 인기 순위 7위에 랭크[35] 예능 출연 이후에도 신나고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가수 활동을 간간히 이어간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입지가 탄탄해지기 시작하던 2005년 후반 도박 사건으로 연예계에서 퇴출되는가 싶었다가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에 불과 3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복귀한다. 이후 예능인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다 2010년에 다시 도박 논란이 일자 연예계에서 발을 떼고 있었다. 2014년 12월, 자숙하던 도중 결혼식을 올려, 싱가포르에서 부인과 함께 빙수 가게를 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 7년 만에 공식적으로 방송 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복귀 이후에도 여론의 뭇매를 계속 맞고 있으며 아는 형님 출연분은 아예 최저 시청률(2.1%)를 기록했다. 여론이 조금 가라앉은 현재는 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다.
  • 신지
    위의 김종민과 더불어 가요계와 방송계 모두 활동하고 있다. 가수로서는 코요태의 유일한 원년 멤버라는 커리어를 가지고 있고 예능인으로서는 예능MC를 맡은 바 있으며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등에도 출연했다.
  • 신화 - 특히 전진, 앤디. 신화 자체가 제대로 된 최초의 예능 아이돌로 꼽힐 정도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큰 화제를 불러왔다. JTBC에선 아예 이름을 '신화방송'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윤종신
    "가수-예능" 멀티 엔터테이너 연예인들 중에서 가장 균형 잡힌 활동을 하는 연예인이다. 예능 데뷔 초기인 2000년대 중반에는 다소 음악 활동이 주춤하기도 했으나, 어느 정도 예능계에서 자리를 잡은 이후 현재는 '월간 윤종신'이라는 타이틀로 매 달 한 곡씩 싱글로 발표하는 등 음악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예능과 음악을 가장 부드럽게 이어줄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아 MBC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의 전문 MC로 발탁된다. 이 형도 가수인데... 실제 윤종신은 나는 가수다 제작진으로부터 MC 제의를 받은 직후 가수로서 2초간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융통성 있게 적응을 잘하는 성격이기에 고심 끝에 승낙했다고... 사실 그는 나이와 지병, 목 관리 문제로 전성기만큼의 기량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좋니'라는 곡을 흥행시켜 가수로서의 역량이 살아있는 모습을 보였다.
  • 은지원
    1997년 젝스키스로 데뷔해 H.O.T.의 유일한 대항마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해체 이후에는 댄스에서 힙합으로 장르를 전향하면서 만취 In Melody, 문득, ADIOS 등의 곡들이 인기를 얻었고 2016년 젝스키스 재결합을 통해 음악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면서 다시 클라스를 입증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강호동의 천생연분, X맨을 찾아라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예능감을 드러냈고 2007년 해피선데이-1박 2일에 고정 멤버로 출연하면서 예능계에 확실히 자리를 잡는다. 참고로 역대 예능프로그램 최고 평균 시청률을 기록한 방송이 1박2일 강화 교동 편인데 당시 은지원이 시청률 기록의 결정적이었던 삭발내기를 제안한 사람이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 최고 평균 시청률 기록자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연기 활동도 했는데 출연한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지만 2012년 tvN 응답하라 1997에서 도학찬 역을 맡으면서 연기로도 성공한 작품이 생겼다! 다만 앞서 가요계와 예능계에 비해서 연기계 쪽에서는 커리어가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 분야에 서술했다.
  • 이효리
    이 분야의 본좌. 가수로서의 섹시하고 화려한 이미지와 예능인으로서의 소탈하고 털털한 이미지를 가장 잘 조화시켜 활용한다는 평을 받는 인물. 90년대 말 핑클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1999년 SBS 가요대전 대상 수상, 그 이후 2003년 솔로 데뷔로 SBS 가요대전KBS 가요대축제 대상을 수상하며 가수로서 정점을 찍고 2000년대 최고의 솔로 여자가수로 군림한다. 이 시기의 대표곡으로는 텐미닛, 애니모션, 애니클럽, 톡톡톡, 유고걸, 헤이미스터빅, 치티치티뱅뱅 등이 있다. 또한 2002년 핑클의 개인 활동이 시작됨에 따라, 이효리는 신동엽과 해피투게더 MC를 맡으면서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털털한 모습을 보여주며 예능인으로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때 선보였던 소탈하고 가식 없는 모습이 2003년에 발매한 1집 타이틀곡 '텐미닛'의 섹시하고 도발적인 이미지와 큰 시너지 효과를 내어 '이효리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받는다. 2008년에는 SBS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서의 큰 활약으로 유재석과 함께 2009년 SBS 연예대상을 공동 수상, 예능인으로서도 정점을 찍는다. 또한 2017년에는 JTBC에서 남편 이상순과 함께 효리네 민박이라는 리얼리티 예능에 출연하였고, 역대 JTBC 예능 첫방송 시청률 1위 + 역대 종편 예능 시청률 1위(9화)라는 기록을 세우며 예능인으로서의 커리어를 다시 쓰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MBC 놀면 뭐하니?에서 '싹쓰리+환불원정대' 콤보로 시청률+화제성을 모두 잡았다.
  • 장윤정
    트로트 가수로서는 설명이 필요 없는 커리어를 가지고 있고 예능인으로서는 끝까지 간다, 노래가 좋다, 도전 1000곡 등의 음악 예능의 MC이자 호박씨,원더풀 데이로 TV조선의 예능MC를 맡고 있다. 과거 서프라이즈, 사랑과 전쟁에서 재연 배우로 활동한 경력이 있긴 하나 일회성이라서 논외.
  • 천명훈
    1996년 이성진[36]과 결성한 그룹 하모하모로 데뷔, 이후 1997년 아이돌 그룹 NRG로 데뷔하여 인기를 얻었고, 2005년부터 예능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여 신정환과 함께 가수 출신 생계형 멀티엔터테이너로 활약하였다. 그런데 어째 같이 방송하는 동료들이 연달아 사고를 치는 바람에 본인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덩달아 장기간 자숙...[37] 2000년도 중반에는 한창 자신만만하게 부담보이 콘셉트으로 귀척을 떨었지만 핫젝갓알지 전후로 자신감을 잃은 듯 조용해지고 기가 죽은 듯한 모습을 보여 안타깝기도 하다. 예전처럼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는 일은 없지만 현재에도 클럽DJ를 겸업하면서 핫젝갓알지를 비롯한 예능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4년 중반 이후로 출현이 없기도 했지만 2016년도 중반부터 다시 패널 활동을 활발히 시작하고 NRG 컴백 소식을 전하면서 간만에 가수 활동도 재개할 예정이다.
  • 틴틴파이브
    예능인(개그맨) 출신으로 가요계에 뛰어든 최초의 그룹으로 김경식, 이동우, 이웅호, 표인봉, 홍록기 등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4년 1집 "틴틴파이브"로 데뷔, 정규 앨범 출시 간격이 좀 길기는 해도 현재까지도 꾸준히 가수 활동을 병행하는 중이다. 대표곡으로는 '머리 치워 머리', '야야야' 등이 있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멤버 이동우의 사연이 잠시 화제가 되었다.
  • 홍서범
    옥슨80 멤버 출신. 가수, 작사, 작곡, 프로듀싱, 예능 방송까지 한다며 멀티 엔터테이너, 만능 엔터테이너 하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종합 예술인이라고 자칭하며 활동했다.
  • 김영철
    따르릉,안되나용으로 히트와 평가를 둘 다 얻어내는 모습을 보여 개그맨 출신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개가수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실제로 개그맨 겸업 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틴틴파이브는 활동공백이 긴 경우가 많고 이동우의 시력상실로 댄스곡의 소화가 어려워지는 악재가 생겼고 박경림은 일회성에 불과했으며 박명수는 본인의 개그 스타일인 호통 개그 때문에 '오동도 사태', 무한도전에서 부른 '냉면' 등으로 목관리와 라이브에 약점을 보이는 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가수로서 위의 인물들에 비해 지속적인 흥행이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개그맨으로서는 비호감 개그맨이어서 고정 예능이 없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진짜 사나이, 나 혼자 산다, 아는 형님 등으로 개그맨으로서도 나름대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인정받아 2015년에는 처음으로 연예대상 후보에 올랐지만 이후 후보는 김구라와 유재석 둘로 정정되었다고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 태연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걸그룹 소녀시대의 메인보컬을 10년 동안 활동해왔고, 소녀시대 활동과 병행하며 각종 드라마 OST를 부르며 OST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시작으로 2015년부터 본격적인 솔로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곡으론 I, 사계, Weekend 등을 뽑는다. 예능으로서는 2008년 정형돈우결을 시작으로 비긴어게인 시즌3, 도레미 마켓의 하차한 혜리를 이어 새로운 고정 멤버로 합류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성우 활동도 한 적 있는데[38] 반응이 매우 좋았다.

  • 2014년까지는 리쌍 활동으로 히트곡을 냄과 동시에 무한도전을 비롯한 갖가지 예능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렸으나... 2014년 음주운전으로 인하여 무한도전 하차를 끝으로 연예계에서 물러났다. 이후 쇼미더머니5로 복귀했으며 매드 클라운과는 만담 콤비로 죽지 않은 예능감을 보여주었고, 뛰어난 프로듀싱 역량을 보이며 음악적으로도 아직 건재함을 드러내며 다시 연예계에 재기하는 듯 싶었으나... 2017년에 또 다시 음주운전을 함으로 인하여 완전히 몰락함과 동시에 출연금지 조치까지 내려짐으로 인해서 연예계 활동 자체가 뜸한 상황이다.
  • 개리
    길과 마찬가지로 리쌍 활동으로 여러 히트곡들이 있고 이후 솔로로도 사람 냄새, 바람이나 좀 쐐 등의 히트곡을 내었다. 예능으로는 2010년부터 런닝맨의 초창기부터 함께했으나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 2016년에 하차했다. 이후 연예계에서 종적을 감추고 음악과 육아 등에만 전념하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예능에 복귀했다.
  • 피오
    보이그룹 블락비의 막내이자 래퍼로 활동하고 있다. 대탈출, 신서유기, 도레미 마켓 등 다수의 예능에 고정 출연하며 예능 커리어를 쌓고 있다. 2017년부터 연기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호텔 델루나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극단 소년의 대표로 연극계 활동도 하고 있다.
  • 나몰라패밀리
    멤버는 김경욱, 김태환, 고장환이며 전 멤버로는 김재우가 있다. 2006년 웃찾사의 전성기 시절 인기 코너로 활약했었고 같은 해에 냈던 <사랑이 그렇게 쉬워>로 1위 후보까지 올랐었다. 이 때 경쟁 상대가 무려 이효리BIGBANG인 데다가 SBS 공채라 타사 음악 방송은 나가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꽤나 큰 성과인 것은 분명하다. 이후로도 꾸준히 앨범을 내고 있다.
  • 안유진
    걸그룹 IVE의 멤버. IZ*ONE 시절부터 예능에 자주 출연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 SBS 인기가요, 강철부대2 등 프로그램의 MC로 활약하고, 뿅뿅 지구오락실에 고정 출연하며 예능 전성기를 맞고 있다. 가수로서도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수상하고, 연간차트 1위에 이름을 올리는 등 4세대 최고 인기 걸그룹 중 하나로 활약하고 있다. 배우상의 외모로 연기 활동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이후 연기 활동을 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 준다면 트리플 멀티 엔터테이너로 활약할 가능성도 있다.
  • 최예나
    2018년 프로듀스 48에서 최종 4위로 선발되어 IZ*ONE 멤버로 데뷔하였고, 각종 예능에서 뛰어난 예능감을 뽐내며 활약하였다. 그 후 인기 예능 프로그램 대탈출 제작진의 티빙 오리지널 예능 여고추리반 시리즈의 고정으로 출연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2021년 IZ*ONE의 활동 종료 후 웹드라마 소녀의 세계2[40]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시작하고 첫 솔로 음반 ˣ‿ˣ (SMiLEY)를 발매했다. 첫 솔로부터 각종 음원 차트 TOP10에 진입하는 등 트리플 멀티 엔터테이너로서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멀티 엔터테이너 꿈나무이다.
  • 유승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여러 히트곡과 뛰어난 예능감에서 가요계, 예능계에서 주가를 높이던 연예인이었으나 2002년 초반에 일어난 병역기피 사태입국 금지 처분을 당함으로써 한국 연예계에는 아예 발도 못 내밀게 되었다. 이후 해외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2.4. "배우-예능" 멀티 엔터테이너

이쪽 유형의 엔터테이너는 최근 들어서 많이 생기고 있는 유형이다. 과거만 하더라도 배우와 예능을 둘 다 하는 유형이 많이 있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이런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요새는 배우로서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이 예능에 도전해서 풀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전소민, 이시언, 성훈 등...

그런데 보통 이런 멀티 엔터테이너는 예능계에서 활동하다 보면 이런 고민을 한다고 한다. 예능 이미지가 너무 세져서 드라마나 영화할 때 몰입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배우 활동에 방해가 되는 것 같다고... 이런 이유로 예능에서 하차한 배우들도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패밀리가 떴다의 이천희와 박예진.[43]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사실 이런 고민은 바보 같은 고민이고 그냥 계속 예능을 하면서 배우 활동과 병행하는 게 좋다.[44][45]

대부분 예능과 배우를 겸직하는 유형은 배우로서 잘 안 풀려서 예능으로 이름을 알리려고 도전했는데 잘 풀리는 경우가 많다.[46] 이 경우는 예능으로 뜬 거기 때문에 사람들은 배우보다 예능인이라는 인식이 더 센 게 당연하다.[47][48] 근데 알아야 할 게 연예인도 결국 상품성의 직업이다. 즉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야 계속 쓰일 수 있는 것이다. 근데 예능 이미지가 배우 활동에 방해된다고 예능을 하차하고 배우 활동에만 집중한다면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은 급속히 줄어들게 되어서[49] 배우로서 더 잘 풀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기가 사라져서 불리는 곳도 없어지고 예능을 할 땐 예능 이미지 때문에 몰입이 안 된다는 말이라도 들으면서 관심을 얻지만 예능을 떠나면 그냥 아예 관심에서 사라지게 된다.[50] 이는 이천희와 박예진을 참고하면 잘 알 것이다.[51]

물론 예능을 떠나서 배우로서 잘된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김주혁 같은 케이스. 근데 이런 사람들은 예능하기 전에 인지도만 부족했지 이미 연기 쪽에서 한가닥했고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다. 즉 자기 본업이 이미 탄탄하게 잡힌 사람들이다. 사실 예능-배우 멀티 엔터테이너 사람들에게 예능은 일명 안전줄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배우로서 일이 안 풀려도 예능이 계속 버텨주고 자신의 상품성을 유지해주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 계속 관심받으면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능에서 탈피하는 순간 자신의 안전줄을 던지는 셈이며 이때부터는 실패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상품성도 완전 하락하게 되는 셈이다.

그나마 이광수가 런닝맨을 하차후 냉정히 배우로 만개했다고 보기엔 애매하지만 사라지는게 아니라 본인의 클래스를 유지중에 있다. 근데 이건 이광수가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인거다. 이광수가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이광수는 런닝맨에서 워낙에 독보적인 캐릭터를 맡았기 때문이다. 연예계에서도 독보적으로 큰 키+ 독보적인 탱커역할+거기다가 당하지만 않고 반격도 가능+유재석이나 김종국의 뺨을 때려도 전혀 욕을 먹지 않음+ 여배우들 울대 때리고도 사람들이 좋아함 이러한 이광수밖에 할 수 없는 캐릭터를 가졌기 때문에[52] 런닝맨을 하차했어도 예능인으로서 이광수의 상품성은 죽지를 않는것이다.[53] 그리고 예능에서 이광수의 상품성이 유지되니 배우로서의 이광수의 상품성도 유지가 되는 선순환 구조가 생긴다. 물론 배우 이광수만 따져도 이제는 어느정도 평판이 쌓였지만 예능인 이광수의 상품성을 잃는다면 곧 연예인 이광수의 상품성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게 곧 배우 이광수한테도 타격이 갈 수 있는데 이광수는 워낙에 독보적인 캐릭터를 쌓은 탓에 런닝맨 하차후에도 잊혀지지 않고 계속 사람들의 관심속에 있을수 있는것이다.
  • 정준하
    예능에 출연하는 배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코미디언으로 본업이 바뀐 흔치 않은 특이한 케이스이다. 원래 이휘재의 매니저였다가 매니저를 그만두고 난 직후 1997년까지는 여러 조연이나 단역을 맡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냥 평범한 배우였다. 그러나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이 흥미가 생겨 배우의 신분으로 MBC에 지원하여 특채 MBC 개그맨이 되었지만 예능에서 주로 활약한지라 사실상 노홍철과 같은 연예인이거나 방송인에 가깝다. 이러한 행동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삶을 살고 싶어서 선택한 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대표작은 거침없이 하이킥발칙한 여자들, 가문의 영광, 카리스마 탈출기 등이 있다. 이후 2000년대 중반 이후 뮤지컬에도 도전하여 훌륭한 명품 연기를 보여주었기에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 권혁수
    snl에 출연하고 배우로 활동하지만 사실 배우로 이렇듯할 작품을 남긴적도 없고 주로 예능에 더 치중하기 때문에 멀티 엔터테이너라기보단 그냥 예능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정도이다.
  • 김민교
    SNL 코리아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연극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에도 출연하였다.
  • 김원희
    놀러와 등 예능 MC 경력이 화려해서 개그우먼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원래는 배우였다.
  • 류담
    개그콘서트를 통해 얼굴을 알렸고 이후 드라마에서 활동하고 있다.
  • 서유리
    성우 중에서도 예능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축에 속한다.
  • 이서진
    2003년에 다모가 히트를 치고, 이후로도 불새, 이산 등의 히트작들에 연달아 출연했다. 최근에도 완벽한 타인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예능 쪽으로는 1박 2일 시즌1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생긴 나영석과의 인연으로 이후 tvN의 여러 예능에 출연 중이다.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윤식당 등 그와 함께한 많은 예능이 성공하여 나영석의 페르소나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tvN10 Awards에서 예능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임하룡
    심형래, 최양락, 김형곤과 함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활동을 해 온 원로급 코미디언이다. 꽁트 형식이었던 예전의 코미디쇼에서는 개인기나 슬랩스틱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었으나 임하룡은 연기력 자체로 웃음을 유발했던 독특한 경우다. 그 연기력을 살려서 꽁트 개그가 몰락한 2000년대부터는 정극에 도전하여,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까지 수상했다. 그의 정식 프로필은 개그맨 겸 영화배우다. 주요 출연작으로는 그녀를 믿지 마세요, 굿모닝 프레지던트, 나는 아빠다, 내 사랑 내 곁에, 맨발의 기봉이, 범죄의 재구성,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아라한 장풍 대작전, 웰컴 투 동막골, 인사동 스캔들, 이웃사람, 최강칠우 등이 있다.
  • 차승원
    남성 모델 출신 중 가장 성공한 연기자로 꼽힌다. 전반적인 연기력이 뛰어나지만 특히 코믹 연기가 발군. MBC 연기대상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이라는 정상급 수상 실적도 가지고 있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에선 항상 성실하면서도 어딘가 허당스러운 이미지를 살려서 예능 분량을 잘 차지하는 편. 차승원의 헬스클럽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무한도전에서 중요한 게스트로 몇 차례 출연한 사례가 있다. 삼시세끼/어촌편에도 주인공으로 출연.
  • 홍석천
    본래 배우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나 예능 활동도 활발한 편. 특히 동성애자란 위치를 역이용한 게이 드립의 선구자다.
  • 공형진
    지금은 시들시들해졌지만 한때 공형진은 멀티엔터테이너로 굉장히 잘나갔고 토크쇼 mc도 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현시점 기준으로는 공형진을 멀티엔터테이너로 부르긴 힘들다.
  • 김병만
    이 쪽은 사실 멀티 엔터테이너로 보기엔 모호한 편이다. 드라마에 몇 번 나온것은 사실이나 비중있는 역할로 나오지 않았으며 본업도 코미디언이기 때문이다.
  • 김선호
    1박 2일에 나오면서 인기도 많이 끌었고 이후에 갯마을 차차차도 흥행에 성공하는 등 완벽히 스타로 거듭났으나 이후 사생활 논란으로 인해 1박 2일에서 하차했지만, 후에 상대 측도 책임이 있다는 게 밝혀져 여론이 나아진 편이다.
  • 김수로
    예능에 꾸준히 발을 걸쳐놨지만 잘 되지 않은 케이스. 김수로는 패밀리가 떴다로 시작해서 여러 예능에 도전을 많이 하였지만 애석하게도 그 예능들이 롱런을 하지는 못하였다. 제일 사랑받은 것은 패밀리가 떴다지만 갖은 논란 속에서 2년을 넘기지 못했다. 진짜 사나이도 나름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자신이 진짜 사나이에 있었던 기간이 짧았고[54] 진짜 사나이라는 예능도 오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배우로서도 신사의 품격이 성공하면서 배우로서의 활동에 박차를 가하나 싶었지만 그 이후에 하는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했다. 최근에는 연극 쪽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으라차차 만수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해외 13부 리그 축구의 구단주가 되었다.
  • 김아영
    이쪽은 개념적으로는 배우이면서 snl에 왕성히 활동중이니 멀티 엔터테이너가 맞기는 한데 배우로는 딱히 뭘 보여준것도 없고 캐스팅 되는것 같지 않아 아직 멀티엔터테이너로 넣기엔 좀 부족한 면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2023년을 기점으로 삼달리에서 고은비역할을 맡았는데 역할 자체가 막 엄청 비중이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드라마가 흥행하고 김아영의 캐릭터도 어느정도 눈도장을 찍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현재 낮과밤의 그녀도 성공적으로 끝낸데다가 지옥에서 온 판사까지 성공적으로 방영하면서 흥행 3연타를 찍었고 배우로서 물이 들어오고 있어 배우로서 보여주고 있는중이다
  • 김주혁
    예능-연기 모두 좋은 활약을 보여줬으나 안타까운 사고로 비극을 맞은 케이스. 1박 2일 이전에도 그는 프라하의 연인[55], 광식이 동생 광태, 아내가 결혼했다 등의 작품으로 한국의 휴 그랜트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연기 쪽에선 인정받는 배우였다. 다만 방자전 이후에 꾸준히 활동을 했지만 이전만큼 주목은 많이 받지 못했는데, 1박 2일이 시즌3를 재정비하면서 새롭게 투입된다. 그 전까지만 해도 버라이어티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해 걱정된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막상 시작하니 구탱이형[56]이라는 별명과 함께 내빼지 않는 태도와 좋은 예능감으로 다시 인지도가 크게 올라갔다. 무엇보다 1박 2일을 통해 동네 형 같은 친숙한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또한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연기를 위해서, 그리고 또 1박 2일을 위해서 2015년 말 하차했다. 이후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시작으로, 2017년 공조에서 차기성이라는 악역을 완벽히 소화했다. 같은 해 가을엔 천우희와 함께 오랜만에 드라마 아르곤으로 복귀해 인상 깊은 아나운서 연기를 선보였고, 20년 배우 활동 중 처음으로 더 서울 어워즈에서 공조로 영화 부문 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시상식이 있은 지 일주일도 채 안 되어 불의의 사고로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그의 유작이 된 독전[57]에서는 진하림이라는 마약 거물상을 연기했는데, 말 그대로 미친 연기를 선보이면서 2018~2019년 3대 영화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모두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수상을 축하하면서도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다. 예능에서도, 그리고 스크린에서도.
  • 박예진
    그녀는 패밀리가 떴다를 통해서 큰 사랑을 받은 배우 중 한 명이다. 물론 예능을 하기 전에도 꾸준히 배우로서 활동을 하였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패밀리가 떴다를 통해서 달콤살벌 예진아씨라는 별명을 얻었고 인지도도 크게 올라갔다. 그리고 선덕여왕에서 천명공주 역으로 캐스팅되었는데 자신이 계속 패밀리가 떴다를 하고 있으면 드라마 배역을 소화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드라마가 60부작의 대작이라 계속 스케줄을 빼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패밀리가 떴다를 떠나는 선택을 하였는데 아쉽게도 그 이후에 주목을 받는 드라마나 영화를 하지 못하였다. 마이 프린세스미스터 백은 나름 성공은 하였지만 박예진이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 2015년에는 박희순과 결혼하면서 근황을 파악하기 더 힘들어졌다. 패밀리가 떴다의 하차와 관련해서는 한창 선덕여왕이 뜨고 인기가 많아질 타이밍이어서 박예진이 방영하는 그때는 오히려 진지한 천명공주와 박예진의 예능의 모습이 잘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을 정도로 패떴에서의 모습은 배우로써 박예진이 걸어야 할 길과는 거리가 멀었다.[58] 그렇기에 박예진이 연기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 하차하는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음 작품들과 관련해서도 작품내에서 박예진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지 패떴을 하차하고 한 선택이 그녀에게 악재를 가져준것도 아니다. 더욱이 박예진이 하차하고 패떴이 무슨 승승장구를 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오히려 박예진이 하차한지 얼마 안되어 패떴은 참돔 논란이 터지며 슬슬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이런 예능에 박예진이 계속 있었다고 해서 박예진이 딱히 어떤 해택을 받았을 것이라는 보장 역시 없으며 오히려 공범으로 같이 엮여 비난이나 안받았으면 다행일 상황이었다. 게다가 김종국이 합류하면서 계속 러브라인에 엮이게 되며 패떴의 재미가 한층 떨어졌는데 그곳에 더 있었다가는 오히려 그 점과 관련해서 비난을 더 받았을 가능성도 많다.
  • 박진주
    이쪽은 사실 오히려 예능인으로서 뭘 보여준 것이 많이 없다. 현재 놀면뭐하니에서 고정 중이긴 하지만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예능인의 이미지가 강한 것도 아니다.
  • 박희진
  • 박소현
    1993년 KBS 2TV에서 방영한 드라마와 이병헌의 주연 청춘 드라마 '내일은 사랑'으로 데뷔하여 배우로써 데뷔를 성공하게 된다.[59] 1997년 SBS 충전 100%쇼 출연이후, SBS 프로그램 호기심 천국,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 성공적으로 지금 현재 전성기를 누리고 있으며 박소현의 러브게임이라는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서세원
    코미디언으로 유명했지만 한창 잘나갔을 때에는 드라마와 영화 여러 편에도 출연하였다.
  • 소유진[60]
  • 손헌수
    지금은 좀 잊혀졌지만 예능 쪽으로는 허무개그라는 인기 코너를 남겼고 연기 쪽으로는 야인시대눈물의 곡절로 활약했다.
  • 송지효
    예능계를 떠나지 않는 걸 선택해서 잘 된 케이스. 런닝맨에 출연하기 전에도 배우로서 인지도가 있어서 SBS 인기가요의 MC를 맡았었는데, 그때 친분을 쌓은 PD가 본인이 예능을 같이 하자고 해서 처음에는 게스트인 줄 알고 가볍게 OK라고 했지만 후에서야 자신이 고정인 걸 알았다고.. 그리고 그렇게 고정이 되어서 9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사실 송지효는 박예진과 달리 예능계를 떠날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이유는 런닝맨이 한류 예능이기 때문에... 한류 예능이라서 런닝맨을 계속 잡고 있으면 본인은 한류스타로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오히려 더 높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저 국내 인기 예능이었으면 송지효도 고민을 해볼 만도 한데 한류 예능이기 때문에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것.
  • 엄태웅
    MC몽의 후임으로 1박 2일 시즌 1에 합류하였다. 예능감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어도 기존의 엄포스 이미지와 상반되는 순둥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호감도를 올렸지만...성매매 사건으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었다.
  • 윤가이
    snl에서 기존쎄 역할로 떴고 냉정히 snl 하고 있는동안에는 배우로 뭘 보여준것은 없으나 박찬욱 영화에 캐스팅되고 드라마도 2편이나 방영예정중에 있다. 그리고 박찬욱 영화에 캐스팅되자 윤가이는 연기에 집중한다고 snl에서 하차했다. 앞으로 윤가이가 어떠한 행보를 보이는지에 따라 snl 하차한게 잘한건지 아닌건지로 나뉠것으로 보인다.
  • 이경실
  • 이광수
    이광수는 그냥 한마디로 운이 타고난 멀티 엔터테이너[61]라고 볼 수 있다. 데뷔한 지 햇수로는 3년차, 만으로는 2년차에[62] 런닝맨을 하게 되었고 그 런닝맨이 초대박이 나서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11년이 넘은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63] 그리고 이광수는 그 런닝맨에서 중심 같은 존재이다. 물론 런닝맨의 수장은 유재석이긴 하지만 이광수는 런닝맨에서 무한도전의 노홍철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런닝맨 내에서의 웃음 포인트들은 대부분 이광수가 만들어냈을 정도이다. 그 덕에 런닝맨의 화제성은 대부분 이광수가 다 흡수한다고 보면 된다. 근데 이광수가 운이 좋은 이유가 뭐냐면 일단 첫째는 데뷔한 지 2년 밖에 안 지난 신인이 유재석 프로그램에, 그것도 주말 예능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로도 엄청난 행운이다.[64] 그리고 두 번째로 운이 좋은 이유는 이광수가 배우 욕심이 크다는 것에 있다. 원래 전문 예능인들도 장수 예능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장수 예능에 중간에 탑승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 것이 장수 인기 예능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예능인들도 여러 예능을 하면서 롱런하는 것이지 하나의 예능만으로 롱런하는 예능인은 많지 않다. 근데 이광수는 배우 욕심도 커서 여러 예능을 하고 싶어하는 스타일이 아니다.[65] 근데 냉정히 이광수는 배우로서 롱런을 하기는 어려운 스타일이다.[66] 즉, 런닝맨이 한 1~2년 하고 끝났다면 이광수는 롱런을 위해서 계속 여러 예능을 하면서 인기를 유지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과감히 인기는 포기하고 연기에 집중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런닝맨이 11년 넘게 롱런을 하면서 이광수는 예능은 오로지 런닝맨만 하고 나머지는 전부 연기에 집중을 할 수 있었고, 본인의 인기의 기반은 런닝맨으로 다지고 그 기반을 바탕으로 전부 연기에 투자하면서 업계에서도 인정받으면서 백상에서 남우조연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 뭐 물론 런닝맨에서의 이미지가 워낙 쎄서 사람들이 배우보다는 개그맨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런닝맨으로 아시아 프린스가 되고 작품에 캐스팅 잘되는 것 생각하면 전혀 손해 보는 게 없다.[67][68] 하지만 2021년 6월 13일에 런닝맨에서 하차하면서 이것도 옛말이 되었다. 근데 런닝맨을 할 때 워낙 존재감이 크고 캐릭터가 독보적이어서 런닝맨을 하차한 후에도 사람들이 이광수의 런닝맨 캐릭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서 강제로 멀티 엔터테이너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광수 입장에선 런닝맨을 하차하긴 했지만 이미 런닝맨에서 10년을 넘게 활동하면서 어느순간부턴 단순히 런닝맨에 있는 이광수라서 인기가 많은것이 아니라 그냥 이광수가 있기 때문에 런닝맨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즉, 어느순간부턴 이광수가 런닝맨의 톱니바퀴의 일원으로 활약이 아니라 본인이 프로그램을 살리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런닝맨을 하차했음에도 여전히 이광수를 섭외하려는 예능pd들이 많았고 오히려 이광수 본인이 예능을 자제하는 중이다.[69] 워낙에 런닝맨에서 독보적인 자신만의 롤을 만들었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예능전체를 통틀어 아무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하차이후에도 이광수는 예능에서 자신의 상품성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고 그 상품성을 활용해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상품성도 유지하는 선순환 상황을 만들고 있다.
  • 이덕화
    이 분야의 원조. 대학 시절 TBC 공채에 합격하면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아버지 이예춘도 유명한 배우였지만 본인의 힘으로 영역을 개척했다. 젊은 시절에는 주로 하이틴물에 출연해 임예진과 함께 이름을 알렸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야성미 넘치는 상남자 캐릭터로 인기를 얻었다, 대표적으로 사랑과 야망의 박태수 역. 이후 중년 배우가 되면서는 사극, 현대극, 시대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인기를 이어갔다. 또 악역, 코믹 연기 등 여러 시도를 하면서 이미지 변신도 꾀했다. 예능 활동은 8~90년대엔 주로 MC로 활동했다.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는 10년 이상 진행했을 정도. 지금도 회자되는 유행어 부탁해요가 이 당시 나온 말이다. 이후 연기 활동에 전념하며 예능과 멀어지는 듯 했지만 2010년대부터 다시 예능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댄싱 위드 더 스타', 나는 트로트 가수다 등의 MC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공을 살린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에 출연하며 맹활약 중이다.
  • 이천희
    패밀리가 떴다를 하차하지 않고 계속 유재석 라인을 탔으면 이광수만큼은 아닐지라도 계속 인기를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딱 1년만 패밀리가 떴다를 하고 바로 하차했고 연기에 사활을 걸었는데 연기는 풀리지 않았고 인기는 급속하게 식어버렸다. 이천희도 패밀리가 떴다를 통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에 패밀리가 떴다는 국민 예능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배우로서의 집중을 위해서 패밀리가 떴다에서 하차했다.[70]그리고 예능을 하차하자 마자 거품이 다 빠져버렸다.[71] 드라마와 영화에서 부각을 받지 못해서 대중들의 관심도 식어버린 것이다. 물론 패밀리가 떴다는 그가 하차하고 나서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종영되어서 하차를 안 해도 생명 연장의 수준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결혼도 하고 후속 예능이었던 런닝맨에도 게스트로 여러 번 출연하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이어받은 이광수와 좋은 케미를 보여주었다.
  • 임원희
    미우새에 고정멤버로 활동을 하고 있다. 다만 본인의 말로는 미우새에서 너무 못생긴 이미지가 찍혀서 현재 작품에 캐스팅이 잘 되지 않는다면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중이다. 예능에서 딱히 말이 많은 스타일은 아닌데 대신에 말을 할때 유효타가 꽤 많아서 효율이 높은 스타일이다.
  • 정상훈
    오랫동안 snl에 고정중이면서 배우로도 열심히 활동중에 있다. 다만 배우로는 뭐 이렇듯할 배역을 남기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영화와 드라마를 꾸준히 찍고 있는 편에 속한다.
  • 정성화
  • 전소민
    자력으로 자신의 전성기를 맞게 한 케이스. 전소민은 2017년에 런닝맨을 합류하기는 했지만 사실 합류 당시에 런닝맨은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한 번의 삽질도 있었기에 여론은 나빠졌고 그야말로 새 멤버가 런닝맨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다. 물론 전소민 본인이 굳이 런닝맨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래 못 가서 예능이 없어지더라도 유재석과 같이 예능을 한 것이 본인에게도 좋은 경험이고 썩어도 준치라고 런닝맨은 황금 주말 시간대에 하는 주말 예능이었기 때문에 인지도 상승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새 멤버의 합류에 대한 반응은 냉랭했고 해외는 7명의 원년 멤버에 대한 애정이 컸던 만큼 새 멤버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하지만 런닝맨의 원년 멤버였던 이광수와 엄청난 활약으로 다 쓰러져가던 런닝맨을 정상화하는 데 성공했고 좋지 않았던 여론도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호의적인 여론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런닝맨을 통해서 광고도 많이 찍고 인지도도 올리고 해외 팬미팅도 하게 되고 부모님에게서 독립해서 좋은 집에 이사를 하는 것도 성공했으므로 전성기를 맞이했다고도 볼 수 있다. 런닝맨이 잘 나갈 때 합류했으면 그저 운이 좋을 연예인이라고 칭할 수도 있지만 런닝맨이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을 때 합류를 해서 정상화를 이루어낸 것이므로 본인의 힘으로 자신의 전성기를 맞이한 성공적인 멀티 엔터테이너의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배우로서는 한동안 주춤하긴 했지만 쇼윈도: 여왕의 집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연기 쪽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2023년 11월 12일부를 기점으로 런닝맨을 하차했기 때문에 전소민 입장에서도 새국면을 맞이한것으로 보인다. 물론 런닝맨을 하차한것이지 아얘 예능을 안하는것이 아니기때문에 유재석이랑 다른 시즌제 예능을 할수는 있겠지만 전소민은 이광수와는 다른 느낌이긴하다. 일단 이광수는 런닝맨을 하차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능을 아얘 그만둔것이 아니기에 다른 예능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전소민의 경우엔 아얘 유재석이 700회 라이브에서 하차할때 연기에만 집중한다고 했기에 그 이후에 아얘 예능을 나오고 있지 않는중이다.[72] 그리고 이광수는 굳이 예능에서 유재석과 엮이지 않아도 이광수 본인만으로도 확실한 캐릭터를 구축했기에 예능적으로 수요가 많지만 전소민의 경우엔 초반엔 미친 똘끼로 센세이션했지만 그 이후엔 본인 밥값은 했지만 전소민만의 매력은 점점 줄어들었다.[73] 그리고 예능이 아니라 배우로서만 봤을때도 마찬가지다. 우선 전소민의 경우에 뭔가 흥행작에 주연으로 쓰기엔 그정도의 배우는 아니고 주연이 아니라도 조연으로라도 껴놓기엔 아무래도 런닝맨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차라리 뻔하더라도 이미 검증이 된 조연배우를 넣던가 아니면 아얘 신인배우나 인지도가 제대로 쌓이지 않은 배우를 넣는게 낫다. 이광수의 경우엔 예능적이미지가 강해도 우선 코믹쪽으로는 어느정도 자신의 입지가 다져져있고 진지한 연기쪽으로도 완전 주연은 아니더라도 주조연급으로는 넣을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이광수는 아시아프린스로라고 불릴정도로 해외인기가 높기에 요즘같은 해외시장도 같이 겨냥하는 드라마나 영화시장에서 이광수의 예능이미지가 걸릴 순 있어도 그럴가치가 있다. 게다가 이광수는 연예계 인맥도 꽤 좋은 편에 속한다. 이광수가 친한 송중기,김우빈,도경수, 조인성, 성동일 등 본인과 작품도 많이 같이 하는 배우들도 있으며 노희경사단에 속하여 노희경 작품도 꽤 많이했으며 그러다보니 업계에서도 꽤나 평판을 쌓은 편이다. [74] 하지만 냉정히 전소민의 경우를 살펴보자. 아무리 전소민도 런닝맨멤버였다지만 원년멤버가 아니다보니 업계에서 경쟁력 있을만큼 해외인기가 있는것도 아니며 전소민은 이광수만큼 배우계에 인맥이 좋은편도 아니고 그리고 냉정히 전소민이 확실히 강점이 있는 연기가 있는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코믹연기를 하기엔 코믹연기에 강점이 있는 여배우는 전소민보다 훨씬 많고 그렇다고 진지한 연기도 런닝맨 이미지 때문에 리스크가 있다. 그러다보니 뭔가 흥행하기 힘든 영화만 현재 예정되어있다.[75] 물론 사람일은 알수 없으니 이러다가 작품이 하나 터질수도 있겠지만 사실 굳이 런닝맨을 하차할 이유가 있었나 의문이 드는건 사실이다. 오히려 런닝맨을 할때는 전소민 런닝맨때문에 코믹이미지가 강한데 전소민 다르게 보인다라는 칭찬을 할수 있지만 런닝맨을 하차하다보니 전소민이 작품을 해도 관심도가 떨어지는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차라리 연기에 집중을 할거면 1~2년 바짝하고 하차를 하든가 했어야지 6년이나 하고서 연기에 집중한다고 하차하니 선택미스가 아닐까 싶다.게다가 2024년 5월 9일 이후로 전소민은 킹콩 by 스타쉽 소속사도 떠나게 되었다. 그래도 나름 스타쉽이 업계에서 대기업에 속해서 전소민팬들은 소속사가 계속 전소민을 지원해주기를 바랐지만 결국 전소민이 소속사를 떠나게 되면서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76]
  • 안재현
    신서유기에 합류하면서 예능과 연기 쪽 모두 잘 풀린 케이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의 동생인 천윤재 역을 맡으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이후 신서유기에서 군입대 문제로 하차하게 된 이승기의 추천으로 그가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전의 발연기 논란도 있어서인지 비판 여론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까보니 엉뚱한 면모, 몸치 캐릭터, 무지함, 그리고 은지원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독한 모습을 보여 호평을 받았으며 본편은 시즌6, 외전은 강식당 3까지 출연했다. 중간중간 드라마에서의 연기력도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즌 7부터는 구혜선-안재현 이혼 논란으로 인해 합류하지 못했지만 그의 예능 복귀를 바라는 팬들이 많은 걸 보면[77] 그의 예능에서의 활약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서유기 스페셜 스프링 캠프부터 복귀했다.
  • 조형기[78]
  • 임현식[79]
  • 주현영
    snl에서 주기자로 빵 떴으며 그 이후에 snl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추가해가면서 snl의 명실상부 에이스로 성장을 하였다.[80] 그리고 snl에서 같이 활동중인 김아영과 지예은의 케이스와는 달리 배우로도 주현영은 계속 족적을 남기고 있는 중이다. 물론 엄청 비중이 높은 배역은 아닐지언정 우영우에서도 동그라미 캐릭터로 인기를 꽤 끌었고 계속 작품에 꾸준히 캐스팅도 잘되는 중이다. 사실상 snl 멤버중 유일하게 멀티엔터이너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연예인이다.[81]
  • 지상렬
    이쪽은 굉장히 판단미스를 한 케이스이다. 전성기 때는 특유의 언어 센스와 비난 개그로 여러 예능에서 게스트로 활약하고 간간히 사극도 병행했지만, 이산에 캐스팅되어 배우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고정 출연 중이던 1박 2일을 하차했는데 정작 이산에서 본인 배역은 큰 편이 아니었고 그 이후에 1박 2일은 시청률 40%를 넘는 국민예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사실 배역이 작아서 충분히 병행하려면 할 수 있었는데 괜히 욕심을 부리다 아무것도 안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꾸준히 잘하던 라디오도 고정 스케쥴이 들어왔다고 하차했는데 그게 하필 패떴 시즌 2였다. 이후로 예전만큼 일도 안 잡히다가 이때 진행한 노모쇼 MC 경력을 통한 잃을 게 없는 개그맨 컨셉으로 예전에 잠깐 엮인 적있던 무한도전의 쓸친소 특집에서 녹슬지 않은 입담으로 큰 활약을 한 후 어느 정도 안정적인 방송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 최수종

2.5. 멀티 엔터테이너 전업 사례

데뷔 후 멀티 엔터테이너를 염두에 두었으나 활동 분야에 올인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활동 분야에서 완전히 이탈한 연예인들의 사례 몇 가지들을 추려본다.
  • 김아중
    원래 가수 지망생이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국 연기자로 데뷔하여 각종 드라마에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다가, 2006년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가창력 퀸인 주인공 한나 역을 맡으며 영화의 흥행을 이끌어내는 주인공이 되며, 비만 특수분장과 더불어 그녀의 가창력이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82] 외국 곡을 번안한 OST에 수록된 타이틀곡 Maria는 영화와 더불어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덕분에 2007년 골든디스크 특별상까지 거머쥐며 우연찮게 가수로서의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노래의 인기와 더불어 그녀의 가창력이 주목받으며 가수 데뷔 제의들이 물밀듯이 들어올 정도였지만, 정작 김아중 본인은 당시 영화에서 연기자로서 가수인 주인공 캐릭터를 연기했을 뿐 가수는 아니라며 가수로의 정식 데뷔는 없다고 단정지었고 현재까지도 연기자로서만 활동하고 있다. 최근엔 강호동과 함께 국세청으로부터 세금포탈 의혹을 제기받으며 논란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강호동 덕분에 묻힌 감은 있으나 그동안 잘 쌓아왔던 이미지를 많이 깎아먹은 것은 사실이다.
  • 남규리
    2006년 여성 3인조 그룹 씨야로 데뷔, 송혜교와 닮은 마스크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그룹 내에서 여신으로 군림했으나, 소속사와의 문제로 씨야에서 갑작스레 탈퇴하고 솔로로 데뷔하며 겸업으로 연기 활동도 시작한다. 어찌 보면 본의 아니게 멀티엔터테이너의 길로 들어선 연예인일 수도 있다. 영화 고死: 피의 중간고사의 흥행으로 나름대로 멀티 엔터테이너의 기질을 보이는 듯 했으나 반짝 인기로만 그치고 소속사 문제로 꾸준한 활동이 불가능했기에 결국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2011년에 들어서 소속사 문제가 해결된 후 드라마 49일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재기에 성공했다.
  • 박정아
    과거 여성 4인조 그룹 쥬얼리의 맏언니로서 그룹 탄생부터 함께한 원년 멤버로 얼굴마담이기도 했다. 쥬얼리 활동을 통해 가수로서의 인기와 인지도를 탄탄히 했고, 그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연기자로 도전. 처음에는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웃어라 동해야, 당신뿐이야 등의 드라마를 통해 점점 연기자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KBS1 일일연속극 단골 그러다 2013년에 내 딸 서영이가 터지면서 여배우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된 듯.
  • 박하나
    2003년 혼성그룹 퍼니의 멤버로 데뷔했으나 음반이 처참하게 실패 후 10년 이상의 오랜 무명 생활을 겪게 되었다. 단역부터 시작해오다 2014년 압구정 백야의 주연을 맡으며 드디어 큰 인지도를 얻고 그 이후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 성유리
    1998년 여성 4인조 아이돌 그룹 핑클로 데뷔, 핑클의 얼굴 마담으로 인기를 톡톡히 보다가 핑클의 활동 중단 이후 2003년 SBS 드라마 '천년지애'의 주연으로 연기자 데뷔를 한다. 당시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수준 미달의 연기력을 선사함으로서 아이돌 인기로 밀어붙이는 거냐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책 읽듯이 내뱉는 '나는 남부여의 공주 부여 주다'라는 대사가 유행어처럼 번질 정도였다. 이후 소속사를 옮기고 연기자로 전업하여 발음 교정, 연기 연습을 통해 연기력을 향상시켜 KBS 드라마 '눈의 여왕'. '쾌도 홍길동', '로맨스 타운'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다. 2013년에는 출생의 비밀을 통해 애엄마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다만, 그룹 활동 당시에도 본인의 비중이 적은 편이었고, 실력도 빼어나다고 볼 수는 없었기에 솔로 가수로서의 활동은 없는 상태다.
  • 유진
    1997년 여성 3인조 아이돌 그룹 S.E.S.로 데뷔, 그룹의 주역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2002년부로 S.E.S.가 해체되면서 바로 연기자로 데뷔, KBS 드라마 '러빙유'에서 박용하의 히로인 역을 맡았고[83], 이 드라마를 계기로 박용하와 실제 연인으로 교제를 하면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2004년까지는 솔로 가수와 연기자의 활동을 병행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인기도 예전만 하지 못하고 가창력 문제 등의 논란도 불거지면서 이후의 가수 활동은 없다. 그 후 연기자로 거의 전업하였으며 가수 활동은 간간히 OST 앨범이나 다른 가수들의 앨범 피처링 참여 정도이다. 그러나 2011년 겟 잇 뷰티가 케이블 뷰티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화장품 모델 파워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제빵왕 김탁구, 백년의 유산 등으로 배우로서 히트작도 뒤늦게 터지고 있다. 그리고 2020년 배우로서 커리어 중 최고의 작품이 탄생했다.
  • 윤은혜
    1999년 여성 5인조 아이돌 그룹 베이비복스로 데뷔하여 인기를 얻고, 2005년 연기자의 길로 발을 내딛으며 드라마 에서 인기를 얻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도 자주 출연하며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김종국과의 스캔들까지 섭력하는 등 솔로 독립으로 성공한 아이돌 출신 연예인이 되었다. 트리플 크라운 영역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베이비복스 시절에는 그룹내 존재감이 별로 없었고 예능에서도 김종국과의 러브라인 밖에 없는 반면, 연기 부분에서 워낙 대박을 쳤기 때문에 전업 항목에 작성. 김태희도 없는 대박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덕분에 현재 활동이 뜸한 상태여도 인지도는 여전히 높다.
  • 이동건
    잘 모르는 이들은 연기자로 데뷔한 줄 알지만 원래 가수로 데뷔한 인물이다. 1999년에 데뷔하여 2집까지 내었지만 별 다른 히트도 없이 주목도 못 받고 망해가고 있던 중, 2001년에 그냥 기회가 되어 우연히 출연한 시트콤 세친구에서 빵 터지면서 인지도가 급상승하게 되어 연기 쪽으로 발을 붙이더니 결국 2004년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기점으로 연기자로 대성한다. 다만, 가수로서의 미련은 남아 있는지 자신이 출연하는 드라마의 OST에 한 곡 정도씩은 본인의 곡을 넣는 편이다.
  • 이진
    성유리와 마찬가지로 핑클 출신의 연기자다. 이진은 원래부터 가수가 아니라 연기자를 꿈꿔왔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성유리보다 훨씬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여왔다. 논스톱3를 통해 연기를 시작했고, 이후 신현모양처, 왕과 나, 전설의 고향, , 제중원 등에 출연했다. 크게 반향을 일으킨 작품에 등장하진 못했지만, 장편 사극에 두 번이나 출연하는 것을 보면 시청자는 물론 제작자들에게도 안정적인 연기력을 인정받은 모양이다. 2013년에는 핑클 동료 성유리와 출생의 비밀에 출연했다.
  • 전혜빈
    여성 3인조 그룹인 LUV로 데뷔해서 빈이란 예명으로 활동했으며 강호동의 천생연분에서 댄스 개인기로 유명세를 탔다. 빙글빙글 턴을 잘해서 이사돈[84]이란 별명도 얻었다. 소녀가장으로 열심히 돌았지만 본인의 인지도만 올랐고 그룹은 시망. 솔로앨범도 나름 화제를 모았지만 후속 가수 활동은 없었으며 이후 연기자로 전업해서 십여편에 이름을 올렸지만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래도 JTBC의 사극 인수대비에서 채시라와 연기 대결을 펼칠 정도로 연기력이 성장했고 폐비윤씨의 광기를 제대로 보여줬다. 특히나 사약씬은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열연이었다. 그리고 연타석으로 정글의 법칙에서 남자들을 능가하는 생존 능력을 보여주면서 화제가 되었고, 이를 통해 한물간 연예인에서 배우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2013년에는 드라마 직장의 신금빛나 역으로 출연하고 또 오해영에도 출연하면서 배우로 정착한 상황이다.
  • 정려원
    2000년 걸그룹 샤크라로 데뷔했으나 가수로서의 인기는 초반에 반짝하고 미미한 정도였다. 그룹 탈퇴 후 조연급 연기자로 활동하다 내 이름은 김삼순안녕, 프란체스카가 대박을 내면서 곧바로 인기 여배우로 자리잡는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종횡무진 활동 중.
  • 주원
    2006년 프리즈라는 아이돌의 멤버로 데뷔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 후 2007년 뮤지컬 배우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 채정안
    1995년에 연기자로 데뷔해서 나름대로 신선한 마스크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999년부터 가수로서 활동을 시작해서 나름대로 3집까지 내며 인기도 나름대로 얻는 등 선전했다. 3집 활동 당시에는 KBS에서 드라마 '미나'에서 자신의 3집 활동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간 주인공인 가수 미나 역[85]을 맡기도 했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그야말로 전설이 된 한유주로 분한 이후엔 연기자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 최송현
    2006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 활동하다가 2008년에 퇴사한 뒤 엄정화, 김래원 주연의 인사동 스캔들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배우로 데뷔한다. 이후 로맨스가 필요해가 케이블 드라마로서는 좋은 반응을 얻으며 연기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제국의아이들
    2009년에 데뷔한 아이돌이지만 소속사의 난해한 프로듀싱으로 가수로서는 성공하지 못하고 몇몇 멤버들의 개인 활동만 빛이 난 케이스이다. 황광희는 예능 쪽에서, 임시완과 박형식, 김동준이 배우로 활약 중이다.

2.6. 멀티 엔터테이너 실패 사례

당연하지만, 무슨 일이든 한 가지라도 잘하기 어려운데 두 가지 이상 잘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연예계에서는 위처럼 성공 사례들도 있지만 그만큼 보이지 않는 실패 사례 또한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유명 연예인들의 실패 사례 중 몇 가지들을 추려본다.
  • 고지용
    젝스키스 해체 후 배우 데뷔를 준비하려 했으나 드라마와 영화 캐스팅이 되었다가 번복되었고 이후 실패하여 연예계를 은퇴한 뒤 사업가로 전향했다.[86]
  • 성시경
    2004년 SBS의 <지금은 연애중>에서 주연 채림의 상대역으로 잠시 얼굴을 비췄다가 2005년 SBS때려의 주연으로 파격 캐스팅 되었으나 발연기 논란으로 온라인에서 엄청난 후폭풍을 맞닥뜨려야 했다. 이후 연기 활동은 아예 중단되었고 몇년 후 한 예능에 출연해 “혹시 연기에 욕심이 있느냐”는 MC의 질문에 성시경은 “드라마 '때려' 이후로 두 번 다시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때려 이후 MBC 최고의 사랑에서 윤계상이 맡은 배역의 역할도 먼저 제의가 왔으나 고사했다고 밝혔다. 뮤직비디오나 카메오 특별출연을 제외하고 정극 연기는 은퇴한 셈.
  • 동호
    유키스 활동과 천하무적 야구단 등의 예능활동을 하며 인기를 이어갔으나 연기 도전이 혹평을 받으며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결혼과 이혼 등 사생활 이슈로 화제가 되고 있다.
  • 신현준
    90년대 충무로에서 아주 잘 나가는 주연 배우였다가[87] 2000년대 들어 출연한 영화들이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하고 스캔들 등에 연루되어 더 이상 영화판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할 수 없게 되자, 2010년 연예가 중계 진행을 시작으로 여러 예능 프로그램과 대종상 시상식을 계속 진행하고 있고, 2010년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등 큰 행사 진행을 맡고 있다. 문제는 애당초 워딩 실력이 뛰어나진 않는 데다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사전에 잘 파악하지 못해 저지르는 실수 등이 잦아 비판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연기보다는 진행이나 예능 출연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대중들 역시 이젠 그를 배우가 아닌 개그맨으로 여길 정도로 배우 이미지가 아예 없어졌다. 2010년대 들어서 울랄라 부부각시탈 등에서 연기자로 복귀해 연기력에 있어 호평을 받으며 다시 배우로써 입지를 다져나가는 중이었는데... 몇 년 후인 2016년 드라마 무림학교와 영화 나쁜놈은 죽는다에서 다시 성적이 참패하며 간만의 복귀작이 관짝을 찍고 말았다. 게다가 나이가 50이 넘어버렸고, 본인도 굳이 연기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지라[88] 사실상 배우 생활은 끝난 걸로 보인다. 현재 네티즌들에겐 어느 축구선수와 닮은 것도 모자라 제 이름마저 잃어버린 신세가 된 케이스.
  • 안재모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폭발적인 인기에 그 해 연기대상까지 수상하는 등 연기자로서 절정의 가도를 달린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가수로 데뷔했으나 완전히 실패했고[89] 이후 연기자로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4년 정도전에서 이방원 역을 잘 소화해내며 부활에 성공했다.
  • 이광기
    배우로 데뷔했으며 연기 경력은 상당한데, 이상하게 상복이나 인기와는 인연이 없다. 가수로서 앨범을 냈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해 다시 배우로 활동을 개시했다.
  • 이병헌
    연기자로 데뷔하여 1999년 SBS 드라마 '해피투게더'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본인의 이름으로 정규 1집을 발표했지만 큰 인기는 끌지 못 했다.
  • 이의정
    연기자로 데뷔했으며 90년대 후반 최고의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면서 각종 CF도 섭렵했다. 시트콤에서 '서울구경' 노래를 부르며 하던 안무를 살려 1997년 '우노&베티'라는 이름의 그룹을 결성해 <난중난색>을 발표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2005년 '알모너'라는 이름으로 디지털 싱글을 냈다가 이상야릇한 가사 때문인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 이휘재
    90년대 초반 '인생극장'에서의 대박 인기로 예능계의 블루칩으로 인정받은 뒤 당시 황금기였던 가요계에도 참여해서 음반을 2장이나 냈지만 모두 처참한 실패로 끝났고, 그에게 가끔씩 가수 시절 이야기를 물어보면 흑역사로 생각하면서 괴로워한다.
  • 장혁
    1998년 청소년 드라마 '학교' 데뷔 이후 정우성과 닮은 마스크로 급부상하며 1999년부터 삼성전자 애니콜 전속 모델로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 2000년에는 가요계에 도전장을 내밀어 'T.J Project'라는 이름으로 바닥을 기어다니며 속삭이는 듯한 랩을 선보이며 가요 차트에서 10위 권 안에 드는 등 좋은 반응을 보여주었고 그 뒤에는 가수 활동을 접고 연기자로 올인했다. 장혁 흑역사[90] 2004년 송승헌과 함께 병역비리 혐의로 인기가 추락하는 듯했으나, 전역 후에 한층 성숙된 연기력을 인정받아 드라마 '추노'를 통해 KBS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등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 조세호
    '대신맨'과 '타짱'으로 개그맨으로서 나름대로 인지도와 인기를 얻으며, 2007년 앨범 '친구의 전화번호'를 내며 가수로 데뷔하나 처참하게 실패한다. 이후 개그맨으로서 인지도도 떨어져 김구라가 언급해주길 감사해하는 B급 연예인으로 전락한 상태였으나, 역시 비슷한 처지였던 남창희와 함께 코미디빅리그에 출연하면서 조금씩 살아났으며, 2010년대 후반 유재석의 파트너가 되어 완벽히 재기했다.
  • 최민수
    90년대 최고의 배우로 연기자로서 명성을 다진 것은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2000년에 룰라 리더 이상민의 꼬심으로 록그룹 '록산밴드'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대차게 말아먹었다. 그래도 최근에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는 등 가수로서의 꿈을 접지는 않은 듯. 예능엔 고정 출연하고 있지만 연기 출연도 게을리 하지 않은 덕에 과거의 영광을 경험한 대중들은 그를 아직도 '연기의 신'으로 추대하고 있다.
  • 테이
    SBS 드라마 사랑은 아무나 하나에서 교포 출신 가수 지망생 대니 서 역으로 연기했으나 연기력이 그리 좋지 않았으며, 시청률이 낮아 그가 연기자 신고식을 했다는 자체를 아는 이가 별로 없다. 가수로서 공연계에서는 여전히 두각을 보이고 있고, 대식가 기질이 예능을 통해 공개되어 꽤 화제몰이하고 있다.
  • 홍경민
    2000년 '흔들린 우정'으로 라틴 댄스의 황태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2002년 군입대 전까지 가수로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군 전역 후에 연기에 잠시 도전했지만 결국 가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 홍경인
    아역부터 시작하여 연기자로서의 경력은 상당한 실력파 연기자. 90년대 후반 최고의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의 인기에 힘입어 가수로 데뷔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진 못했다.
  • 박기량
    치어리더로서 큰 인지도를 얻으며 방송인으로도 종종 활동했고, 이에 힘입어 음반까지 내며 가수로도 데뷔했지만 심심치 않은 논란과 부진한 성과로 아쉬움을 남겼다.

3. 대상 수상자들

연기, 음악, 연예의 세 가지 분야에서 모두 대상을 수상한 경우는 아직 전무하다. 대상 수상이 성공의 척도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인기, 수익성, 평론의 삼박자를 모두 갖추었다는 뜻이기에 별도 항목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다만 대상이 아니어도, 음악의 경우 (특히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1위 수상, 영화의 경우 관객 수, 드라마나 예능의 경우 시청률 등이 성공의 척도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엄정화와 이정현의 경우 여우주연상 수상 경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가요 프로그램 1위 곡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이승기 역시 연예대상 수상 경력과 함께 1위 곡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3.1. 두 가지 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한 경우

3.2. 한 가지 분야에서 2회 이상 대상을 수상한 경우

4. 멀티 엔터테이너의 현실과 문제점

연예계에서도 사실 각자 분야에 대한 경계가 뚜렷한 편이기에 멀티 엔터테이너에 대한 인식이 좋지는 않다. 특히 해당 분야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인기 영합주의로 낙하산처럼 내려온 케이스가 많기에 인식이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좋은 예로 발연기 문서에도 나오듯이, 아이돌 그룹 출신 가수들이 아이돌 인기만으로 영화나 드라마의 주요 배역들을 차지해서 기존 배우들 및 팬들과 마찰을 빚는 사례가 있다. 배우 유오성은 가수 출신 연기자와 촬영 중에 연기에 임하는 태도 문제로 싸운 적도 있다고 한다.

멀티 엔터테이너로 활동하는 연예인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라 평가받는 임창정은 (본인을) 예능계에선 영화인으로, 영화계에서는 예능인으로 본다고 토로한 바 있다. 탁재훈나의 주무대가 어디인지에 대한 고민, 어느 분야에 가서도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걱정 등을 토로하기도 하는 등 멀티 엔터테이너로서의 근본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게임에서 하이브리드 클래스가 뜨거운 감자인 것과 같은 맥락.

다만 이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것이, 다름 아닌 2000년대 이후 가요계의 불황으로 급증한 '가수들의 멀티 엔터테이너化' 현상 때문이다. 그리고 가요계가 2001년 이후로 음원으로 넘어가면서 음반 시장의 인기가 사그라들고, 지금처럼 배우 출연료가 급등하기 이전에는 반대로 배우들이 살 길을 찾아 앨범을 내고 가수 겸업을 선언하는 경우가 상당히 잦았다. 더해서 대표적인 멀티 엔터테이너로 꼽히는 임창정, 탁재훈은 비슷한 시기에 가수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이는 꼭 가수 본인이 직접 의도하고 도전하는 경우보다는 소속사의 지시나 생계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노래에만 집중하고 싶다며 음악 외의 모든 활동을 최소화한 가수 박효신도 잠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가수 홍경민의 경우 드라마 출연 시에 함께 출연하는 모 연기자와 함께 이런 문제에 대한 가수와 연기자 간의 입장차에 대한 토론도 해보았다고 한다. 연기자 입장에서 가수들이 연기한다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모 연기자가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자, 홍경민은 당신은 연기만 바라보고 연기만 파고들 수 있었겠지만, 나는 현실이 노래만 할 수 없어서 예능 프로 나가서 웃기라면 웃기고, 번지점프 뛰라면 뛰고, 공을 굴리라면 굴리고, 멘트로 한 시간을 끌라면 끌어야 했던 처지여서, 솔직히 연기 빼고 다 해본 거나 마찬가지기에 연기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입문한 것 뿐이다라고 가수로서의 솔직한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2010년 들어서 레트로화와 트로트의 인기에 아이돌의 인기가 줄어들면서, 다른 아이돌은 연기에 도전해 연기돌(이나은, 찬희, 아린 등) 혹은 뮤지컬 배우(김나영, 김채원 등)로 활동하거나, 개인 혹은 소속사의 투자로 유튜버 활동을 하는 등(솔라, 효정, 오하영 등) 아이돌 쪽에서도 멀티 엔터테이너가 늘어나고 있다. 2016~2018년엔 방탄소년단의 성공과 더불어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흥행 성공으로 아이돌들이 많이 주목받았지만, 2019년 하반기에 프로듀스 101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으로 몰락한 뒤 내일은 미스트롯의 흥행으로 트로트 쪽으로 주도권이 넘어오면서 아이돌들의 주목도가 다시 줄어든 상황이다.

일단 방송/연예계 내부적으로는 연예인들의 효율적인 관리 및 다양한 능력 배양 등의 이유를 들어 멀티 엔터테이너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당분간 멀티 엔터테이너의 배출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한 분야에 깊게 파고들지만 인지도나 명성은 다소 부족한 정통파 연예인들의 상대적인 피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지라 이들에 대한 방송/연예계의 내부적인 배려와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5. 관련 문서


[1] 대표적으로 빙 크로스비, 프랭크 시나트라가 있다.[2] 1997년 KBS 가요대상 대상 수상.[3] 2008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수상.[4] 90년대 초중반 주말 KBS 예능 프로그램에서 '금촌댁네 사람들'이라는 시트콤 비슷한 코너를 통해 개그우먼 정선희와 바보 캐릭터에 가까운 조금 모자란(?) 부부 연기를 하여 큰 인지도와 인기를 얻었다.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그만두었는데 출연 전만 해도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지 않았으나 이걸로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연기와 노래 쪽으로도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이후로 신동엽 대신 남자셋 여자셋에 출연하는 등 타고난 입담으로 각종 예능 프로에서 꾸준히 활약했다.[5] 이 기록을 보유한 가수들로는 임창정 외에 조용필, 박남정, 김민우, 변진섭, 서태지와 아이들 등이 있다.[6] 다만 연기 쪽은 그 이후로 커리어가 예전의 명성에 비해 아쉽다는 의견이 있다.[7] 당시 스펀지, 해피투게더 등과 KBS 예능 양대산맥이었다.[8] 절친인 홍경민과 2016년에 잠깐 "홍차쏭"을 발표하긴 했었다.[9] 실제로 슈가맨에 출연했을때도 10대들은 차태현이 가수였던 사실을 몰랐으며, 반가워하는 표정의 다른 세대들과 다르게 놀랍다는 표정만 보여줬다.[10] 후배 성우 홍시호의 유튜브 홍시호의 홍SHOW에 출연하여서 아들의 배우 데뷔 과정을 언급하기도 하였다.[11] 2018년 기준, 음원 스트리밍 21억 건 및 다운로드 9700만 건을 돌파했다. 2010년대엔 음악을 듣는 수단이 음반에서 음원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이 기록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12] 당시 최대 음원 플랫폼인 멜론에서 최다 진입 이용자 수 기록최다 24시간 이용자 수 기록을 경신했으며, 당해 연간차트 14위를 기록했다.[13] 사내맞선, 오늘의 웹툰[14] 중화권 연예인 중에서는 매우 드물게 '전업 가수' 이미지인 채의림조차 데뷔초에는 연기를 겸업했다.[15] 사실상 여기가 원조다.[16] 그 유명한 밥 딜런마이클 잭슨이 직접 본인의 입으로 "시나트라와 비교되는 것 자체가 영광스럽다"라고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17] 참고로 해당 넘버는 이현도가 제공해주었다.[18] 당시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TBC 방송가요대상부터 4년 연속 대상을 차지한 조용필을 제치고 수상했다.[19] 사실 소녀시대 데뷔 전 이미 9회말 2아웃 드라마에 조연을 맞은 적이 있다.[20] 이건 셀린 디옹도 마찬가지다.[21] 이 때문에 손지창은 이모부의 성씨를 따랐으며 이모부를 친아버지처럼 모시고 있다고 한다.[22] 실질적인 데뷔는 1997년 혼성그룹 '윌'이 기존 남자 멤버들이 모두 탈퇴하며 재편되는 과정에서 새로 들어갔을 때였다.[23] 논스톱의 구리구리 양동근 캐릭터를 참고한 제목이다.[24] 다른 한 명은 이정재.[25] KBS 2회, MBC 1회.[26] 다만 냉장고를 부탁해에서의 태도 논란으로 인해서 그 뒤 활동은 뜸한 편이다.[27] 김C는 그 당시 자신의 캐릭터를 '쟨 뭐야?'라는 한 마디로 정의했다.[28] 제자리 걸음 18관왕 + 사랑스러워 11관왕 + 별,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랑 3관왕[29] 사랑스러워(3위), 제자리 걸음(8위), 별,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랑(11위)로 TOP 10 근처에는 한 가수당 한 곡 뿐이었지만, 김종국은 유일하게 무려 3곡을 랭크시켰다.[30] TOP 10 근처에 한 앨범에서 무려 4곡이 등급 메달을 달아서 최다 1위 판매량 수치를 얻었다.[31] 사랑스러워(6주), 별,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랑(6주)로 총 12주 1위를 달성했다.[32] SK텔레콤 벨소리&컬러링 연간차트에서는 사랑스러워(2위), 제자리 걸음(7위) / KTF 벨소리&링투유 연간차트에서는 사랑스러워(1위), 제자리 걸음(3위), 별,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랑(9위) / LG텔레콤 벨소리&필링 연간차트에서는 사랑스러워(1위), 제자리 걸음(5위), 별,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랑(10위)로 다른 가수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2~3곡을 TOP 10에 랭크시켰다.[33] 참고로 MBC, KBS, SBS 방송 3사 역대 연예대상 수상자들 중 최연소 수상자(만 23세)이기도 하다.[34] 2018년 MBC 방송연예대상 신인상 수상자이다.[35] 당시 6위가 옥동자로 인기를 끌던 개그맨 정종철이었다.[36] 이성진도 주접쟁이 콘셉트으로 예능 활동을 활발히 했지만 천명훈처럼 고정 출연하지는 않았고 NRG 공백기에는 천명훈과 반대로 방송 활동 자체를 줄였기 때문에 의외로 멀티 엔터테이너까진 아니다.[37] 07년에 연예계에 병역비리 논란이 일면서 부실복무 의혹을 받았지만 그나마도 논란이 일자마자 사표를 내고 재복무해서 끝까지 마쳤다.[38] 영화 슈퍼배드에서 서현과 함께 우리말 더빙을 했는데 둘 다 프로 수준의 더빙 실력이라는 극찬을 받았다.[39] 원래 슈퍼주니어 데뷔 전 드라마로 데뷔한 배우이기도 하지만 현재 배우 활동은 거의 접었다고 볼 수 있다.[40] 시즌1 주연은 오마이걸아린이었지만 스케줄상으로 시즌2에선 하차하고 최예나가 대신 주연을 맡았다.[41] 엠 카운트다운 최장수 MC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미연에 의해 깨졌고 현재 2번째로 장수한 MC이다.[42] 연기 경력도 있지만 음악, 예능에 비해 출연과 활약이 미미해서 음악-예능 항목에 추가했다.[43] 다만 박예진의 경우는 이천희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박예진은 당시에 선덕여왕으로 대박이 터지고 연기적으로 바빠질 시기에 나간 거라 하차한 게 이해가 된다는 평들이 많았다. 그에 반해 이천희는 완전히 모험 그 자체였고.[44] 대부분의 배우-예능 멀티 엔터테이너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고정 예능 1개만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멀티 엔터테이너로 도전했던 그 고정 예능이 종영을 하게 되면 그 때부터는 연기에 전업을 하든 또 예능에 도전을 하든 그것은 자기 마음이다. 하지만 굳이 이미 자기가 하고 있는 예능을 하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45] 사람 심리라는 게 이랬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프로그램을 끝까지 마치고 연기에 집중을 하면 그 이후에 잘 풀리지 않으면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넘기면 된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하차하고 그 이후에 일이 잘 안 풀리게 되면 아, 그때 하차하지 말고 그냥 계속 있을 걸이라고 후회하게 되고 네티즌들도 에휴, 그러게 그냥 하차하지 말고 계속 있지라는 소리를 듣는다.[46] 물론 연기 쪽으로 성공했는데 예능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차태현, 유해진, 차승원처럼 말이다.[47] 근데 예능을 안 했으면 배우로서 인식이 더 강할 게 아니냐고 물어보면 그것도 아닌 게 예능을 안 했으면 그냥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을 사람들이 엄청 많이 있기 때문이다. 즉 배우로서의 자신은 몰라줘도 연예인으로서 자신을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48] 그리고 애초에 예능을 도전해도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예능에 도전했는데 예능이 잘 안 되어서 진짜 이도저도 안되는 경우도 숱하게 많다. 그러니 예능이 잘되어서 인지도가 올라가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의미.[49] 유튜브에 익숙한 연예인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들어가게 되는 게 사람 심리다. 즉 예능인으로 있으면 몰입이 안 된다는 말을 들음과 동시에 관심도 많이 받는다. 사람들한테 익숙하다 보니까 그만큼 관심도 받는 것...[50] 왜냐하면 그 프로그램에서 독보적인 에이스역할을 한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리 그 프로그램에서 잘했어도 그냥 프로그램내에서 멤버들과의 케미가 잘 어울리는것이고 그 프로그램의 멤버이기에 관심이 가는것인데 하차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그 멤버가 다른 예능에서는 그 역할을 못해서 다른 예능을 해도 관심을 못 끌 가능성이 크다.[51] 이천희는 패밀리가 떴다에서 하차하자마자 CF가 다 끊겼다고 한다.[52] 그리고 다른걸 다 떠나서 이광수는 런닝맨에서 본인이 캐리해서 쓴 레전드가 많아도 너무 많다. 전소민도 런닝맨에서 잘해주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광수와의 케미 다른 사람과의 케미에서 나오는 재미가 많다면 이광수의 경우에는 그냥 본인 스스로 만들어낸 레전드 장면이 너무 많다.[53] 한마디로 말해 이광수 예능캐릭터는 남들이 대체할 수 없는 캐릭터이기에 런닝맨을 하차해도 지속적인 대중의 관심을 받을수 밖에 없는것이다.[54] 이는 프로그램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김수로는 같이 출연했던 서경석, 샘 해밍턴과 함께 당시 복무 기간 21개월을 모두 채웠기에 출연 기간이 짧다고 하기는 힘들다.[55] 이 드라마로 2006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56]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를 이어 말해야 하는데 실수로 '구탱'이라고 발음하면서 붙은 별명이다. 사실상 김주혁의 인지도가 가장 크게 올라가는데 기여한 별명.[57] 사망 당시 촬영 중이었으나 김주혁의 분량은 촬영을 모두 마친 상태였다.[58] 박예진은 데뷔 때부터 연기력으로 주목받는 배우였는데 패떴의 그 이미지로 인해 몰입이 잘 안 되어 연기력 논란까지 나올 정도였다. 패떴에서 하차하고 극의 진행이 박차를 가하면서 그녀의 연기력 논란도 사라지게 되었다.[59] 원래 이병헌의 여자친구 배역은 고소영이었지만 13회까지만 촬영한 뒤 중도 하차하자 새로운 히로인으로 등장한 것인데,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60] 파라파라퀸으로 가수 활동을 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이 항목에 넣었다.[61] 아이러니하게도 런닝맨에서는 별명이 꽝손 of 꽝손이다.[62] 이광수의 데뷔는 2008년이다.[63] 물론 런닝맨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이광수의 활약이 커서 이것을 단순히 행운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예능이란 게 원래 본인이 잘해도 폐지될 수 있다. 게다가 런닝맨이 이렇게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뜻밖에 해외에서 잭팟이 터진 것이 크다. 원래 처음으로 해외 촬영을 했던 태국 편 전까지는 폐지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64] 그 당시 유재석은 무한도전으로 유느님이 되었을 시절이고 강호동의 1박 2일도 풀이 꺾이면서 사실상 유재석 단독체제가 굳어졌을 때이다. 즉, 이 당시 유재석은 같이 하고 싶어하는 연예인들이 줄이 섰을 때인데 당시 경력이라곤 하이킥 그것도 주인공도 아니고 조연 중에서도 비중 없는 조연이던 이광수가 런닝맨에 캐스팅된 건 로또 1등과 맞먹는 행운이다. 런닝맨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유재석이 추천했다고 한다.[65] 이광수 본인이 인터뷰에서 여러 번 런닝맨이 끝나고 또 다른 예능을 하고 싶지 않다고 인터뷰했을 정도. 런닝맨은 데뷔 초기부터 함께한 애착이 있는 프로이기에 런닝맨 이외의 예능은 가끔 게스트로만 출연하는 게 전부다. 초기 런닝맨 PD였던 조효진과 김주형(멱PD)가 연출하는 범인은 바로 너!는 예외.[66] 일단 외모 자체가 드라마, 영화 주인공 스타일도 아니고 연기를 잘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송강호, 이병헌 급으로 연기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야 꾸준히 찍을 수는 있겠지만 작품으로 인기 자체를 끌기가 어렵고 인기를 끌어도 오랫동안 유지하기는 많이 힘들다는 의미이다.[67] 그리고 런닝맨이 10년 넘게 했으니 이제는 런닝맨이 끝나더라도 오랫동안 인기 유지했으니 이제는 인기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배우에 집중할 수 있고 예능을 하더라도 런닝맨 같은 버라이어티 예능이 아닌 삼시세끼 같은 배우들이 하는 예능을 하면서 배우 이미지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다.[68] 뭐 차태현 같이 이미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공고히 다진 배우들은 예능을 여러 개 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광수 같이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정확히 확립이 안 된 사람이 예능을 여러 개 하면 그냥 업계 사람들도 얘는 배우가 아니라 예능인이구나라고 판단하고 캐스팅을 잘 안 할 수 있고 캐스팅을 하더라도 진짜 쩌리 역할만 맡길 수도 있다.[69] 유재석이 핑계고에서 예능pd들이 다 이광수를 탐낼수 밖에 없고 단지 이광수가 예능을 잘 안하는것 뿐이라고 했다.[70] 이천희는 앞서 박예진의 케이스와 달리 예능을 그만두는 게 확연한 도박 그 자체였다. 물론 이천희도 그 당시 하고 있던 대왕세종이란 드라마가 성공하기는 하였다. 하지만 알아야 할게 대왕세종은 중장년층에 시청층이 확연히 몰려 있는 드라마이다. 사실 업계에서 구매력 있고 화제성으로 다가오는 세대는 10대에서 40대까지 젊은 세대들이다. 근데 이천희는 냉정히 이런 젊은 세대에 각인을 찍을 만한 연기를 전혀 보여주지 않고 예능에서 하차하는 큰 모험을 펼친 것이다. 예능을 그만두면 관심이 떨어지게 되므로 작품 섭외도 줄어들기 쉽다.[71] 애초에 이천희가 패밀리가 떴다에서 잘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막 예능계에서 에이스다, 없어서는 안 된다는 존재는 절대 아니었다. 대체가 불가능한 자리도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금방 잊혀지게 되었다.[72] 이광수의 경우엔 하차하자마자 홍보를 이유로 여러 예능에 나왔었다.[73] 우선 똘끼도 확실히 줄어들었고 나이가 들다보니 러브개구리 속성도 자제하게 되었다.[74] 당장 백상에서 조연상을 받을 때도 만장일치 표를 받았다고 한다.[75] 전소민이 현재 확정된 차기작 영화중 하나는 김도연과 같이 주연이며 하나는 신승호가 주연이다. 그리고 전소민말고 유명한 배우도 없다시피한다. 과연 이러한 영화가 성공할 수 있겠는가..아마 언급조차도 되기 힘들것이다.[76] 사실 말이 상호계약 해지지 소속사가 전소민을 팽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런닝맨을 그만두고 전소민의 상품성은 완전히 유통기한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예능적으로도 냉정히 런닝맨을 그만둔 이상 별다른 경쟁력이 없고 연기적으로는 더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77] 휴식 중 나홀로 이식당에서 이수근이 신서유기 멤버로 안재현을 언급했을 때도 환호하는 팬들이 있었을 정도다.[78] 1991년에 음주운전 및 뺑소니 사건을 일으켰으나 2017년까지 활동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연예계 활동을 못하고 있다.[79] 상습 음주운전으로 인해 위의 조형기와 마찬가지로 연예계 활동을 못하고 있다.[80] 광고도 엄청 많이 찍었다.[81] 다만 이건 과거 기준이고 2024년 현재는 김아영도 배우로 캐스팅이 잘되는중이고 족적을 남기고 있다.[82] 사실 대역 가수의 목소리로 더빙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김아중 본인이 가수의 미련이 있었는지 몰라도 자신이 직접 소화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영화 촬영 전에 가수 지망생들처럼 혹독한 보컬 트레이닝도 받았다.[83] 다만 러빙유 출연 자체는 S.E.S. 해체 이전이었다.[84] 24시간 돈다.[85] 초반에는 채정안이 주연이었지만 주인공이 방송 활동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완전히 얼굴이 바뀌는 설정이어서 후에 김사랑이 연기했으므로 결국 실질적인 주인공 '미나' 역은 김사랑이었다.[86] 이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잠시 나온 바 있다.[87] 1990년에 개봉한 데뷔작 '장군의 아들'은 그를 포함한 출연진 전원이 연기 경력이 전무한 신인 배우였다. 그 당시 한국 영화판의 배우 층이 아주 얇아서 배우들이 돌려쓰기를 남발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가 대박 흥행을 기록함과 동시에 몇 년 후 TV 드라마로 주가를 올리던 일부 연기자들이 충무로로 유입되면서 배우 세대교체가 이뤄진다. 만약 신현준이 연기력을 좀 더 쌓고 병크짓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세대교체를 알리는 배우로 어느 정도 인정은 받을 수 있었다.[88] 얼마 전부터 그가 나오는 예능 프로에 건강식품 비슷한 물건이 같이 등장하는데 본인이 사업을 하는 회사의 건강식품을 홍보하는 것으로 보인다.[89] 그래도 가창력은 좋았고 "한 사람을 위해"라는 노래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90] 한때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했을 때 당시 가수 활동 장면을 보여 주었더니 매우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