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00:04:44

부건빌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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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전투 목록 | 아시아/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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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건빌 전역
The Bougainville Campaign
태평양 전쟁의 일부
파일:1280px-U.S._Soldiers_at_Bougainville_(Solomon_Islands)_March_1944.jpg
날짜
1943년 11월 1일 ~ 1945년 8월 21일
장소

파푸아뉴기니 부건빌 일대
교전국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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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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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깃발 명칭
]][[틀:깃발|]]코가 미네이치
결과
연합군의 승리
영향
일본군이 종전 때 항복해 군사적 영향을 끼치지 못함
전력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미군|]]
144,000명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호주군|]]
30,000명
항공기 728대
45,000~65,000명
항공기 154대
피해규모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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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깃발 명칭
]][[미군|]]
724명 전사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호주군|]]
516명 전사
1,572명 부상
20,000~40,000명 전사

1. 개요2. 배경3. 정보 수집4. 상륙 준비
4.1. 연합군 전투서열
5. 상륙

[clearfix]

1. 개요

부건빌 전역태평양 전쟁 중이던 1943년 11월 1일부터 종전 후인 1945년 8월 21일까지 현 파푸아뉴기니 부건빌과 그 주변 슈아죌, 트레저리 섬 등에서 벌어진 연합군과 일본 제국군 사이의 전투이며, 수레바퀴 작전의 일부이기도 하다.

2. 배경

1942년 3월, 일본군이 남방작전을 시행하면서 남태평양 지역의 수많은 섬들을 점령했고, 라바울부건빌도 그 중 하나였다. 특히 부건빌은 1차 세계대전까지 독일령이었던 곳이라 추축국인 일본에게 협조하는 원주민들이 많았고, 이들은 호주 연안감시대 병력들을 소탕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1942년 과달카날 전역을 승리로 이끌었던 연합군의 다음 목표는 라바울 본영이었다. 태평양 전쟁 내내 캐롤라인 제도가 일본의 후방기지였다면, 라바울은 전방 기지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바울은 연합군이 일본 본토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라바울은 일본군에서 보기 드문 명장 이마무라 히토시 장군의 지휘하에 섬 전체가 요새화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1942년까지도 미군은 라바울에 직접 상륙해 점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군참모총장 겸 참대총사령관이었던 어니스트 킹 제독과 해군을 중심으로 한 중부태평양해역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들은 라바울을 우회해 중부태평양으로 직접 진격한 후 사이판 등 일본 본토를 폭격할 수 있는 비행장을 하루빨리 손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들의 계획을 위해서는 중부태평양 진격에 필요한 해병사단들이 필요했는데, 남서태평양해역군이 별개로 라바울에 상륙하면 라바울은 태평양의 모든 육, 해병대 사단을 자석처럼 끌어모을 것이 확실했다.

결국 어니스트 킹 제독은 남서태평양해역군의 라바울 상륙을 막기 위해 그들이 가지고 있던 병력수송함 등을 중부태평양해역군에게 옮기는 조치를 취했으나, 당연하게도 더글러스 맥아더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들은 협상 끝에 앞으로 일본 본토로의 진격 전략을 확보했다.

전략의 골자는 병력수송함들은 남서태평양해역군에게 남아있는 대신, 해군을 중심으로 한 중부태평양해역군이 중심이 되어 진격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해군이 생각하던 라바울 우회 전략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라바울은 여전히 일본군의 전진기지로서 꼭 무력화시켜야 할 장소였다. 이를 위해서 세워진 것이 1943년 6월에 시작될 수레바퀴 작전이었다. 1943, 44년의 미군의 주요 전략이었던 일명 개구리 뜀뛰기 작전의 시작이었다. 이 작전에 따르면 미군은 라바울을 고립시킨 후 항공 및 해상 공격으로 지속적으로 타격해 제대로 된 역할은 하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리고, 공중에서 라바울을 타격하기 위한 항공 기지가 될 곳이 바로 부건빌이었다.

3. 정보 수집


파일:USA-P-Rabaul-15.jpg

수레바퀴 작전을 수립한 연합군의 입장에서, 중형폭격기로는 라바울을 폭격할 수는 있었으나 경폭격기나 호위기의 사거리가 모자란 상황이라 부건빌 전체를 점령할 필요는 없고 비행장만 건설하면 되었다.

부건빌의 토로키나 곶 주변의 엠프레스 오거스타 만은 일본군이 비교적 적었고 비행장도 없어서 곧 상륙지점으로 낙점되었고, 체리블라썸 작전으로 명명되었다.

4. 상륙 준비

부건빌은 맥아더가 지휘하는 남서태평양해역군 관할이었고 맥아더는 윌리험 홀시가 지휘하는 제3함대로 하여금 상륙 준비를 하게 했다. 3함대는 상륙에 앞서 일본군에게 혼돈을 주기 위해 쇼트 아일랜드 남서쪽 트래저리 섬과, 솔로몬 제도 슈와즐 섬에 제3뉴질랜드사단 8여단을 보냈다.

4.1. 연합군 전투서열

5. 상륙

11월 1일 오전, 상륙군 사령관 시어도어 윌킨슨 제독은 빠른 수송품의 하역과 수송선의 빠른 전장 이탈을 기도하여 수송선에는 가용 수송능력의 절반만을, 화물선에는 1/4만을 채워놓고 상륙병력의 30%를 물자 하역에 할당하였다. 이때 해당 지역의 일본군은 기껏해야 소대 규모였고, 제8함대 사령관 사메지마 토모기게가 급히 54보병연대 예하 1천명을 급파하였지만 미군은 모든 병력과 물자를 해가 지기 전까지 상륙시킬 수 있었다.
한편 급파한 일본군과 그 호위부대는 병력 수송 도중 발각되자 수송선은 라바울로 돌려보내되 호위부대는 원래 목적지인 토르키나 곶으로 보내고 , 2일 아침 엠프레스 오거스타 만에서 애런 스탠튼 메릴 소장이 이끄는 함대와 교전하여 경순양함 센다이와 구축함 하츠카제를 잃었다.
이에 일본군 코가 제독은 중순양함 7척을 라바울에 보냈고 홀시 제독은 프레더릭 C. 셔먼 소장 휘하의 제38임무부대로 하여금 라바울을 두들겨 라바울로 보낸 중순양함들을 철수하도록 압박하는 것으로 응수하였다.

[1] 제3해병사단장. 이전 사단장인 찰스 D. 바렛에서 교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