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4 15:00:24

사무라고우치 마모루 대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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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무라고우치 마모루는 누구인가?3. 고스트라이터 기용 사실이 들통나다
3.1. 니이가키 타카시3.2. 니이가키의 기자회견 이후 동향
4. 사무라고우치의 공식 사과문
4.1. 사무라고우치의 반박 기자회견
5. 사건의 후폭풍6. 이후 관계자들의 동향7. 기타

1. 개요

일본작곡가 사무라고우치 마모루(佐村河内守, 1963.9.21.~)가 1996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18년 동안 대리 작곡가(고스트라이터)를 기용해 대작을 한 사실을 고백한 사건. 이 사건으로 일본 음악계는 충격에 빠졌다.

2. 사무라고우치 마모루는 누구인가?

히로시마시 사에키 군 출신의 사무라고우치는 일본에서 신동이자 청각장애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피해자의 후손으로 음반사와 공연기획사, 언론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소속사가 내세운 공식 이력에 따르면 네 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다섯 살 때 첫 작품으로 '마림바를 위한 소나티네'를 작곡했다. 이후에도 계속 피아노와 작곡을 병행했지만, 열 살 때 본격적으로 작곡가의 길을 걷겠다고 생각해 음악이론과 화성법, 대위법, 악기론, 관현악 편곡 등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1980년에 자신의 첫 교향곡 작곡을 시작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편두통이명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로 갔지만, 현대음악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음대 진학을 하지 않고 육체 노동에 종사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하지만 청각장애로 인해 일하기 힘들어지자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임대료 체납으로 거소에서 쫓겨나 노숙자 신세가 되기도 하고, 또 록 음악 보컬리스트로 전향했다가 난청 증세의 악화에 동생의 교통사고로 인한 급사 등의 불운이 겹쳐 이마저도 힘들어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1996년에 코스모스라는 영화의 OST 작곡을 의뢰받았는데, 이 시점에서 왼쪽 귀의 청력이 완전 상실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2년 뒤 캡콤의 게임 귀무자의 OST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오른쪽 귀 역시 청력을 잃어 청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타고난 절대음감과 촉각으로 느껴지는 음의 울림에 의지하며 작업을 속행해 완성한 뒤, 자신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했다. 기자회견에서 왜 이렇게 늦게 고백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동정표를 받거나 그것이 마케팅 수법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답했다.

1999년에는 귀무자 OST의 일부를 교향 모음곡 '라이징 선'이라는 제목의 관현악 작품으로 개작했는데, 무려 200명의 연주 인원을 필요로 하는 초대편성 작품으로 화제가 되었다. 게임 음악의 2차 창작 작품임에도 이 곡의 초연은 화제가 되었고, 공연 후 CD로도 발매되었다. 비슷한 아이디어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OST를 교향곡으로 개작한 '바이오하자드 교향곡~죄와 벌'의 음반도 화제가 되었다.

이들 게임 음악과 그것을 개작한 관현악 작품들이 호평을 받으면서 작곡가로서 다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80년 이래로 계속 미완성 상태로 방치했던 교향곡 제1번도 2003년에 'HIROSHIMA'라는 부제의 작품으로 완성시켰고, 이어 2005년에는 교향곡 제2번도 완성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정신 착란 증세를 보여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하는 등 개인적으로 상당한 시련을 겪었고, 2008년에 교향곡 1번의 1악장과 3악장이 히로시마에서 부분 초연된 후 아쿠타가와 작곡상[1]에 곡을 공모했다가 낙선하면서 정신질환 증세가 점점 심해졌고, 약물 요법을 병행해가며 후유증을 극복해야 했다.

2010년 4월에는 교향곡 1번의 1악장과 3악장이 도쿄에서 재연되었고, 공연 직후 미발표였던 2악장을 포함한 전곡을 오토모 나오토 지휘의 도쿄 교향악단이 녹음해 이후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전곡의 공개 초연은 8월에 아키야마 카즈요시 지휘의 교토 교향악단 연주로 개최되었고, 이 작품을 계기로 영화·게임 음악 작곡가에서 클래식 작곡가로서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교향곡 외에 피아노 소나타와 현악 4중주,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샤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피아노를 위한 레퀴엠 등 독주곡이나 실내악 영역에서도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특히 레퀴엠의 경우 도호쿠 대지진 희생자들에게 헌정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레퀴엠 초연 직후 NHK에서 사무라고우치의 인생 역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혼의 선율~소리를 잃은 작곡가~'가 방영되었고, 방영 직후 교향곡 1번의 CD 매출이 가파르게 상승해 10만 장을 가볍게 넘기며 그 주의 오리콘 차트 음반 부문 종합 2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3년 8월에는 교향곡 1번의 전곡이 첫 녹음을 제작한 바 있던 오토모 나오토 지휘의 도쿄 교향악단 연주로 재연되었고, 이 실황은 이후 DVD로 제작되어 시판되었다. 9월에는 피아노를 위한 레퀴엠을 확장시킨 피아노 소나타 제2번이 한국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연주로 요코하마시에서 초연되었고, 이 곡 역시 사무라고우치의 다른 피아노곡들과 함께 녹음되어 음반으로 나왔다. 2014년에는 김 세이쿄와 알렉산드르 아니시모프가 지휘자로 출연하는 교향곡 1번 전국 순회 공연 일정도 발표되었다.

3. 고스트라이터 기용 사실이 들통나다

2014년 2월 5일에 사무라고우치의 개인 변호인이 언론을 통해 중대 발표를 했는데, 이 발표로 일본 음악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발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1996년의 '코스모스' OST 제작 위탁을 받았을 때 청력이 심하게 상실되어 작업의 절반 이상을 다른 작곡가가 맡아야 했다.
  • 이후에도 사무라고우치 명의의 작품으로 발표된 곡들은 사무라고우치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사무라고우치가 작품의 대략적인 이미지를 세우고 그것을 다른 작곡가에게 위탁해 만들어졌다.[2]
  • 팬들을 실망시키고 관계자들을 기만한 것에 대해 깊이 사죄한다.
하지만 이 발표는 사무라고우치 스스로가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서 자백한 것이기 보다는, 바로 다음 날 발매 예정(2014년 2월 6일)이었던 주간지 주간문춘에서 이미 이 사실이 폭로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선수를 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간문춘은 사무라고우치의 고스트라이터로 10여 년을 활동해 왔다고 고백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니이가키 타카시(新垣隆)에게 제보를 받아 이 사건을 기사화했는데, 니이가키 자신도 사무라고우치의 변호인이 내놓은 발표 직후 '고스트라이터로 활동해 온 사실을 폭로하고 또 공개 사과하는 의미의 기자회견을 2월 6일에 열겠다'고 발표했다.

3.1. 니이가키 타카시

1970년생인 니이가키는 토호가쿠엔대학(桐朋学園大学) 음악학부 작곡과를 졸업했고, 모교에서 비상근 강사로 재직하며 작품 발표와 연주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인물이다. 예정대로 자신이 먼저 이 사건을 털어놓았던 인물인 논픽션 작가 카미야마 노리오(神山典士)가 동석해 열린 기자회견에서, 니이가키는 자신이 폭로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남자 피겨 스케이팅 대표 선수인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자신이 작곡한) 사무라고우치의 '바이올린 소나티네'를 연기 음악으로 고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소나티네는 사무라고우치가 장애인 음악 교육 센터에서 알게 된 한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헌정한 곡이었는데, 그녀는 오른팔을 잃은 상태였지만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의수로 바이올린의 활을 켜면서 연주를 했기 때문에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 쓰게 되었다고 홍보된 곡이다. 하지만 진짜 작곡가인 니이가키는 이 곡의 홍보 과정을 알게 된 뒤, 만약 사무라고우치가 진짜 작곡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해당 바이올리니스트가 알게 될 경우 매우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게다가 사무라고우치는 헌정한 바이올리니스트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점차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결국 2013년 11월에 사무라고우치 측이 일방적으로 절연을 선언하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다고 밝혔다.[3]

게다가 시사 월간지 '신초 45' 2013년 11월호에서 음악학자 노구치 타케오(野口剛夫)[4]가 사무라고우치의 청각장애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실은 바 있었는데, 사무라고우치는 이 소식을 접하고 니이가키가 동요할 것을 우려했는지 '계속 작업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부는 동반자살할 것'이라고 자살 협박까지 더해가며 간청했기 때문에 일단 고스트라이터를 그만두겠다고 확언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다카하시가 사무라고우치의 곡을 선곡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이렇게 되면 다카하시 역시 나와 사무라고우치의 뒷거래를 치장하는 장식물로 전락할 것이다'고 생각해 결국 진실을 밝혀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 지금까지 사무라고우치의 명성은 주로 일본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세계적인 경기 대회에서 사무라고우치의 음악이 쓰여 유명해질 경우 더 큰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해서 카미야마에게 자신이 사무라고우치의 고스트라이터로 일해 왔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밝혔다.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서 니이가키는 자신과 사무라고우치 사이에 있었던 작업 동기와 과정 등에 대해 더 자세히 언급했다. 사무라고우치는 청각장애는커녕 멀쩡히 들을 수 있어서 자신이 대리 작곡해준 작품을 들으며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매우 정상적인' 상태로 작업했고, 작품의 작업 노트 등 매스컴에 보여주기 위한 문서 자료는 사무라고우치가 작성하는 식으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무라고우치가 '나는 청각장애인이다'라고 선언하고 이것이 마케팅에 이용되자 점차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니이가키는 이어 사례금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1996년부터 지금까지 스무 곡 가량을 써주고 그 대가로 700만 엔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대표작으로 널리 선전되고 있던 교향곡 1번 역시 니이가키가 작곡한 '현대전례'라는 교향곡에 사무라고우치가 'HIROSHIMA'라는 제목만 붙인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 곡으로 사무라고우치가 아쿠타가와 작곡상에 응모했다는 사실을 알고 상당히 당혹스러워 했다고 밝혔다. 또 사무라고우치는 자신이 매우 어릴 적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피아노 실력도 그냥 초보자에 지나지 않고 그가 썼다는 자필보도 모두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스트라이터 기용과 관련된 법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질문은 아직 잘 모르겠다면서 다소 두루뭉실한 식으로만 답변했고, 사무라고우치 명의로 발표된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저작권 주장이나 추가 저작권료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런 일로 사무라고우치에 대한 원한이나 분노 같은 것은 느끼지 않고 있고, 그는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작업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식의 긍정적인 평가도 일부 했다.

니이가키는 기자회견장에서 향후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도호학원 음악대학 측에 전화로 비상근 강사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고 대답했다. 대학 측도 니이가키의 퇴임을 결정했지만, 학생들이 온라인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퇴임 반대 여론이 많아 며칠 뒤 결정을 번복했다. 하지만 니이가키는 자신이 고스트라이터로 벌여 놓은 문제의 매듭을 짓고 싶다면서 13일에 대학 측에 공식적으로 '3월 말에 퇴직하겠다'는 내용의 사직서를 제출했다.

만약 니이가키의 말대로 사무라고우치가 고스트라이터 기용 뿐 아니라 청각장애인 코스프레까지 했다면, 사무라고우치는 지금까지 일본 언론들이 일본의 베토벤이라고까지 치켜세운 대작곡가에서 한 순간에 추락할 수도 있다.

3.2. 니이가키의 기자회견 이후 동향

사무라고우치 측에서는 니이가키의 기자회견 후 개인 변호인을 통해 '사무라고우치가 청각장애 2급 장애인 수첩을 소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으며, 니이가키와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입 모양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니이가키가 '사무라고우치는 대화는 물론 음악까지 들을 수 있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추가 반박은 없는 상태다.

히로시마에 살고 있는 사무라고우치의 장모는 니이가키의 기자회견 하루 뒤인 7일에 닛칸스포츠와 가진 인터뷰에서 '16년 동안 딸과 소식을 주고 받지 못했지만, 지인에게 사무라고우치가 청각장애로 고통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또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려는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해 니이가키가 주장한 가짜 청각장애인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장모의 말에 따르면 사무라고우치는 결혼 초기에 아내가 뼈빠지게 일하며 생활비를 버는 와중에도 취업 의지가 없어 결혼 후 7년 동안 고작 20만 엔을 벌었을 뿐이고, 그나마도 유흥비로 탕진하는 방탕한 삶을 살았다고 주장했다.[5] 출근 때 자신의 실수로 청바지를 찢어먹자 회사 측의 실수로 옷을 버렸으니 배상하라고 하는 등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던 인물이었다고 하며, 사무라고우치의 집에는 피아노도 없어 곡을 쓰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대신 곡을 써주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고 덧붙였다.

또 사무라고우치의 최대 히트작이었던 '교향곡 1번'의 작업 노트도 '필체를 확인해 보니 사무라고우치가 아니라 내 딸의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딸은 어릴 적에 피아노를 배웠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음악 지식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감안하면 니이가키가 쓴 곡에 사무라고우치가 자신의 음악적 주장을 더하는 과정을 같이 했을 가능성도 있다. 장모는 마지막으로 딸에게 동반자살까지 종용하는 남편(사무라고우치)과 이혼하고 히로시마의 친정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고, 니이가키의 폭로에 감사하고 있으며 직접 만나고 싶다고도 밝혔다.

후지 테레비의 생활정보 쇼프로그램인 '토쿠다네!(とくダネ!)'의 2월 7일 방영분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면서 익명을 요구한 사무라고우치의 고등학교 시절 동창생이 남긴 증언을 소개했는데, 어릴 적부터 작곡가를 꿈꿨다는 공식 프로필과 달리 배우가 되고 싶어해 가출 소동까지 벌였다고 한다. 액션 배우와 스턴트맨을 육성하는 재팬 액션 클럽과 악역 배우 전문 소속사인 악역상회에 잠깐 몸 담기도 했다고 하는데, 해당 기획사들에 사무라고우치의 가입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정식 회원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도쿄에 가서 보컬리스트로 입신하려 했다는 프로필은 어느 정도 사실로 보인다. 다만 이것이 순탄치 않았던 데 대해서는 오랫동안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몇 가지 증언이 나왔다. 사무라고우치는 1988년 초에 대중음악 작곡가 겸 프로듀서 오쿠라 몬도(大倉百人)에게 자신이 부른 노래의 녹음을 담은 카세트 테이프를 보내 오디션을 요청했다고 한다. 오쿠라는 사무라고우치의 목소리가 좋았다고 평하고 자신의 사무소로 영입한 뒤, 음반사 아홉 군데의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 테스트 겸 소규모 라이브 공연을 가졌다.

오쿠라는 이 공연 뒤 사무라고우치를 '제2의 야자와 에이키치(矢沢永吉)[6]'라고 언론에 홍보하면서 두세 군데의 음반사에 사무라고우치와 계약할 것을 제의했는데, 5월 말에 산케이 스포츠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목표로 삼는 사람은 없다. 일본의 록이 가지지 못했던 힘을 보여주고 싶다'고 자신의 자뻑 포부를 밝히는 등 꽤 기세등등해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무라고우치의 동생이 사고사하고 오쿠라도 사무라고우치가 자주 거짓말을 하는 등 불성실한 자세를 보이자, 여름 무렵에 소속사에서 방출해 버렸다고 한다.

이후에도 나오고 있는 관련 증언이나 기사 역시 사무라고우치 측에 불리한 것들이 압도적이다. 주간지 'AERA'는 2013년 6월에 사무라고우치와 인터뷰를 했지만 기사화하지 않고 보류했음을 밝혔는데, 기자가 사무라고우치의 자택을 방문해 인터뷰를 마친 직후 나오는 길에 사무라고우치를 만나러 온 다른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자 바로 '나갑니다'라고 말하며 문을 열어주는 모습을 보고 청각장애에 대한 의혹이 생겨 편집부와 논의한 끝에 기사화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음악 종사자들도 사무라고우치의 고스트라이터 기용이나 청각장애 의혹에 대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뒤늦게 숟가락을 얹으며 고백하고 있는데, 음악평론가 스즈키 아츠후미(鈴木淳史)는 자신의 트위터에 사무라고우치 명의로 발표된 작품들이 사실은 니이가키의 작품임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썼고, 동료 평론가 쿄 미츠토시(許光俊)도 2년 전쯤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알았으면 왜 일찍 폭로 안했는데

4. 사무라고우치의 공식 사과문

상황이 겉잡을 수 없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사무라고우치는 12일에 역시 개인 변호인을 통해 친필 사과문을 언론에 공개했다. 사과문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약 3년 전부터 몸 상태에 따라 주변이나 자신의 소리를 어느 정도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재검사한 뒤 필요하다면 장애인 수첩도 반납하겠다.
  • 니이가키에게 준 작곡 지침 등은 내가 직접 썼으며, 아내의 것이라는 장모의 주장은 오해다. 드디어 나왔다! 오해드립
  •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부모의 피폭자 행세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부모는 모두 피폭자 건강 수첩을 가지고 있다.
  • 고스트라이터 기용과 작업은 나와 니이가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아내도 모르고 있었다. 아내가 원하면 이혼에도 응하겠다.
  • 변호인에게 진실을 털어놓는 것이 두려워 뒤늦게 사과하게 됐다. 가족과 니이가키, 팬과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 번 사과하며 조만간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다시 사과하겠다.
변호인은 이 사과문 공개와 함께 사무라고우치의 청각장애인 코스프레 의혹이 계속 불거지자 7일 자신에게 '사실 청력이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하며, 전문의의 소견으로는 '(2급 청각장애인이) 제한적으로라도 대화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청각장애의 원인이 (물리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 충격이었다면 회복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라고 전했다.

15일에는 사무라고우치 측의 의견 발표와 조율을 담당해 온 개인 변호인 두 사람이 사임을 발표했다. 이들은 사무라고우치의 향후 대응 방침에 대한 의견 차이가 너무 컸고, 또 사무라고우치가 자신의 청각장애인 행세 의혹에 대한 해명을 일관되게 하지 않고 있는 등 신뢰 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사임 이유를 밝혔다.

4.1. 사무라고우치의 반박 기자회견

사무라고우치는 2월 12일에 예고했던 공개 기자회견을 3월 7일에 가졌는데, 고스트라이터 기용에 대한 사죄의 뜻을 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청각장애 의혹이나 니이가키의 폭로에 대한 반박에 할애되었다. 요코하마에서 장애에 대한 재검사를 한 결과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고 중등도 난청이라고 나왔고, 일본 신체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장애인 수첩 교부 대상은 아니며 장애인 연금도 원래 받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 3년 전부터 소리가 들리고 있지만 왜곡되어 들리기 때문에 보청기도 별 소용이 없어서 수화와 독순술을 익혀왔다고 했고, 기자의 요청에 따라 수화를 일부 보여주기도 했다.

니이가키의 기자회견에 대해서는 그가 주장한 고스트라이터 단념의 동기나 청각장애는 거짓이라는 기자회견 내용이 모두 허위라고 주장했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스트라이터를 기용하게 된 동기는 현대음악에 밀려나 찬밥 신세였던 조성음악을 동경했고 그것을 복권시키고자 한 것이었다고 밝혔고,[7][8] 청각장애 작곡가라는 언론의 보도에 대한 집착이나 현시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퍽이나 또 니이가키에게 고스트라이터 역할을 맡기기 이전부터 NHK의 다큐멘터리 '산천동경'의 OST를 비롯한 전문적인 작곡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니이가키가 주장한 것처럼 자신이 작곡 분야에서 아마추어는 결코 아니라고 강변했다. 아내와는 이혼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지만 아내 쪽에서 거부했다고 밝혔고, 장모의 대필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여전히 부인했다.

사무라고우치의 기자회견 다음 날 니이가키는 닛칸스포츠와 가진 인터뷰에서 사무라고우치가 자신과 정상적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작품의 시연 녹음을 들은 뒤 의견을 낸 것은 모두 진실이며, 사무라고우치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이에 따라 사무라고우치와 니이가키의 대립 양상은 상호 간의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사무라고우치는 사건 이후 교향곡 제1번 'HIROSHIMA' 의 전국 투어 취소로 인해 기획사로부터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상황이고, 자신의 이미지도 구겨질 대로 구겨진 상황이라 니이가키 측에 대한 법적 대응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사건의 후폭풍

사무라고우치의 실토와 니이가키의 폭로 직후 관련 업계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경기까지 불과 1주일을 앞두고 이 소식을 들은 다카하시 다이스케도 역시 충격을 받았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음악을 바꾸고 안무를 다시 짜기는 불가능했는지 '내가 좋다고 느껴서 고른 음악이고, 작곡가가 누가 되든 간에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기사. 일본 피겨 스케이팅 연맹도 이 사건과 관련된 연기 음악의 변경은 없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대신 연맹에서는 사무라고우치의 이름을 삭제하고 사용하기로 했는데, 국제 피겨 연맹 측에서는 '연기 음악을 선곡하고 통보할 때 굳이 작곡자의 이름까지 같이 제출할 필요는 없으며, 해당 곡을 연기 음악으로 사용하는 것에 문제는 없다'고 답변했다.

사무라고우치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던 월간지 '가정화보' 2014년 2월호는 사무라고우치의 발표 직후 추가 인쇄가 정지되었고, 교향곡 1번과 '피아노 작품집', '현을 위한 작품집' 같은 음반들로 대박을 쳤던 일본 콜럼비아는 공식 성명을 통해 사죄의 뜻을 밝혔다. 또 사무라고우치의 자서전 '교향곡 제1번 ~어둠 속의 작은 빛~'도 발표 직후 절판 조치되었고, 사무라고우치 작품이 연주될 예정인 콘서트들도 취소 혹은 프로그램 변경이 속출하고 있다.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하며 사무라고우치 열풍에 일조했던 NHK도 '취재와 제작 과정에서 검토가 있기는 했지만, 사무라고우치가 진짜 작곡가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없었다'는 해명을 했다. 13일에는 NHK 회장 모미이 카츠토(籾井勝人)가 정례 회견에서 진실과 다른 방송을 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고,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된 조사를 계속 진행 중이며 향후 사무라고우치의 고스트라이터 기용과 청각장애 의혹에 대한 검증 방송도 기획도 시사했다.

교향곡 1번의 작곡 공로로 사무라고우치에게 히로시마 시민상을 수여한 히로시마 시청도 2월 6일에 사무라고우치의 개인 변호인을 통해 시민상을 자진 반납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뒤 이튿 날 시청 앞 게시판에 '사무라고우치의 히로시마 시민상 수상을 취소한다'는 내용의 공고문을 붙였고, 사무라고우치의 개인 변호인에게 표창장 반환 요청을 했다.

도호쿠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현 모토미야 시에서 사무라고우치에게 위촉한 시민의 노래 'みずいろのまち'도 이 사건으로 인해 파기되었다. 모토미야 시청 측은 사무라고우치에게 2014년 1월 이 노래의 악보를 받아 도호쿠 대지진 3주년 추모 행사를 통해 처음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사건이 불거지자 계획을 취소하고 다른 작곡가에게 재위촉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또 시청 측에서 사무라고우치에게 지급할 예정이었던 작곡 사례금 200만 엔도 지급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일본 레코드협회도 2014년 2월 7일에 교향곡 1번의 음반이 갖고 있던 '골드 디스크' 인증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골드 디스크는 판매고가 10만 장을 넘는 음반에 일괄적으로 주어지는 인증인데, 일본 음반 중 이 인증이 취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다만 이 결정은 협회 측이 직접 내린 것이 아니라 발매 음반사인 일본 콜럼비아 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하며, 콜럼비아 측의 발표에 따르면 이 사건이 일으키고 있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협회 측에 인증 취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상술한 신초 45의 의혹 제기 기사가 사실상 결정타가 되었지만, 사실 이전에도 사무라고우치의 작품에 대한 비판이나 그의 청각장애에 대한 의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베스트셀러 음반이 된 교향곡 1번의 경우에도 교향곡이라기보다는 구스타프 말러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같은 후기 낭만파 관현악 작곡가들이 남긴 형식적인 클리셰만을 따르는 대규모 시대착오적 통속 영화음악 같다는 평이 많았고, 귀무자 교향 모음곡에서 보듯이 곡의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를 남발하여 곡 자체의 수준을 저하시킨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현대음악에 대한 공개적 거부나 록과 음악에 대한 디스 등의 어그로도 문제가 되어 왔다. 하지만 장애를 극복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그 동안 큰 힘을 못 써 왔고, 오히려 일본의 유명 음악인들은 사무라고우치의 작품을 보기 드문 대작 등으로 극찬하면서 그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져주었다.

그리고 사무라고우치의 발표 직후 이들은 곧 자신의 의견을 번복하거나 사과해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고, 전문가들 뿐 아니라 그의 음악을 좋아해온 팬들 역시 멘붕에 빠진 상태다. 일본의 현대음악 작곡가인 후지쿠라 다이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작곡가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음악에 감동받았다는 이들이 말을 바꾸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 사건에 대해 간단히 평했다.

다만 사무라고우치의 작품을 호평한 음악 관계자들은 그들 자신이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음에도 '시대착오적 작품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교향곡 1번 'HIROSHIMA'를 공개적으로 절찬한 작곡가 사에구사 시게아키(三枝成彰)[9]요시마츠 타카시(吉松隆)[10], 음악평론가 스즈키 아츠후미와 쿄 미츠토시가 이런 경우인데, 스즈키와 쿄의 경우에는 '니이가키의 기자회견 이후의 동향' 문단에서도 나오듯이 자신들이 사무라고우치 작품에 대한 호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터지자 '이미 이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경솔하게 입을 터는 바람에 '그걸 알고 있었다면 왜 침묵하고 있었나. 평론가로서 부끄럽지도 않느냐'는 비아냥을 알아서 듣게 되었다. 본인 말대로면 공범이네

이 사건에 따라 사무라고우치 명의/니이가키 작곡으로 만들어진 곡들에 대한 저작권 분쟁도 예상되고 있다. 일본 저작권법에 따르면 상호 계약이 성립되었을 때 저작물 권리가 타인에게 양도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저작인격권의 양도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 사무라고우치가 니이가키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니이가키 자신이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에 대한 소송이나 이의제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법적 절차를 밟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니이가키 자신도 유명인의 인기를 등에 업고 고스트라이터 짓을 장기간 해온 공범으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면할 수 없기 때문에, 소송이 진행되더라도 개인이 아닌 회사 차원에서 일어날 확률이 높다. 일단 JASRAC에서는 2014년 2월 5일부터 해당 작품들의 저작권과 저작인격권 문제가 명확히 해결될 때까지 모든 연주와 녹음, 방송 허가를 보류한 상태다. 이에 따라 일본 내에서 사무라고우치 작품이 수록된 모든 음반과 영상물의 발매와 유통도 공식 중지되었다.

오랫동안 고스트라이터를 기용하고 가짜 청각장애인 의혹까지 있는 사무라고우치 개인 외에도 업계의 고질적인 악습이나 장애인 판정의 허술함을 지적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니이가키의 지인이라는 작곡가 이토 켄(伊東乾)은 이 사건이 일본 음악계에서 경력을 과장되게 각색해 마케팅에 이용하고 대리 작곡가를 기용해도 눈감아 주거나 진실을 밝히기 꺼리며 감춰온 풍토 탓도 있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12일에 열린 일본 내각 국무회의에서도 이 사건이 거론되었는데, 후생노동대신 타무라 노리히사(田村憲久)는 사무라고우치의 청각장애 의혹 해명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장애인 수첩 발급을 취소할 수도 있으며, 정부가 지급해 온 장애인 연금 지급도 다시 재조사한 뒤 반환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어 18일에 열린 일본 국회 중의원 예산회의에서 민주당 의원 후루카와 모토히사(古川元久)가 사무라고우치의 청각장애 의혹과 관련해 타무라에게 행한 질의에 대해서는 '이 사건에 대한 사실 관계를 파악한 뒤 청각장애인 테스트 방법의 수정도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한국에서도 이 사건이 화제가 되었는데, 2013년에 사무라고우치의 피아노 곡들을 연주하고 음반으로 내면서 사무라고우치 열풍에 동참한 피아니스트가 상술했듯이 손열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열음은 사건이 계속 전개되고 있는 동안 침묵을 지켰고, 논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무대응을 유지했다. 이는 손열음 뿐 아니라 사무라고우치의 곡들을 공연하고 녹음했던 연주자나 지휘자, 관현악단도 마찬가지였다. 하기야 그들도 사무라고우치의 사기 행각을 처음부터 알고 그런 것이 아닌 이상, '흑역사'라면 몰라도 '공범' 취급을 받는 것은 억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 이후 관계자들의 동향

2월에 이 사건이 공표된 지 약 반 년이 지난 2014년 8월 현재 사무라고우치는 아무런 대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스트라이터로 일했던 니이가키의 경우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인지도가 높아졌고, 7월 19일 밤에는 약 5개월 만에 도쿄 아리아케의 TFT홀에서 공연했다. 자신이 고스트라이터임을 폭로한 매개 잡지인 주간문춘 편집부에서 6월에 위촉했다는 '교향곡 HARIKOMI' 라는 곡을 재즈 노넷(9중주단)과 현악 4중주 편성으로 초연했는데, 이 공연은 니코니코 동화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공연 영상. 이 곡은 불과 11분 정도밖에 안되는 모던 재즈 스타일의 작품이지만, 굳이 교향곡이라고 칭하고 알파벳 대문자로 제목을 만든 것은 자신이 사무라고우치의 고스트라이터로 써준 '교향곡 HIROSHIMA'에 대한 조롱성 패러디로 여겨진다.

공연 후 니이가키는 니코니코 동화 이용자들에게 이 곡의 2차 창작을 공식 허가한다고 발표했고,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차후 보컬로이드를 이용한 곡도 쓸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이 사건 이후 자신의 수입이 약 1.5배 가량 늘었고, 노총각이지만 결혼도 하고 싶다는 발언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니이가키의 행보는 자신도 공범이었다고 술회한 폭로 회견 때의 반성적인 태도를 지나치게 빨리 철회한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다. 물론 최대 책임은 사무라고우치에게 있지만, 그의 유령 작곡가로 행세한 니이가키 역시 아직은 자숙하고 반성해야지 이렇게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다닐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무라고우치와 친분을 쌓았던 이들은 대부분 침묵으로 일관하며 후폭풍을 피했지만, '교향곡 HIROSHIMA'의 일본 전국 투어에 발탁된 지휘자들 중 김 세이쿄의 경우에는 오히려 구설수에 휘말려 커리어에 오점을 남긴 인물이 되었다. 김은 사무라고우치가 직접 '내 동생 같은 사람'이라고 공연 기획사이자 2013년 4월 부터 김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던 사몬 프로모션에 직접 소개해 발탁되었는데, 사무라고우치의 유명세를 이용해 기획사 사장과 유명 연예인, 음악인, 사무라고우치의 팬들로부터 2억 엔에 달하는 거액의 돈을 빌린 뒤 사비로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고스트라이터 사건이 일어나고 전국 투어가 취소되면서 공연 비용으로 돈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채무 불이행으로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고, 사몬 프로모션은 사무라고우치 교향곡 전국 투어 취소로 발생한 9100만 엔의 손해 중 6100만 엔에 대해 오사카 지방법원을 통해 사무라고우치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해 소송이 진행 중이다.

김 세이쿄 역시 자신이 빌린 돈에 대해 거의 책임을 지지 않는 안하무인의 자세로 일관해 주간문춘 2014년 12월호에서 폭풍까임을 당했고, 자신이 진 빚은 아버지가 대신 자택을 팔고 자신이 받던 연금으로 땜질하면서 간신히 갚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몬 프로모션도 김과의 매니지먼트 계약을 해지했고, 이후 김은 소재 불명의 소규모 소속사로 이적했다. 이 사건으로 일본 음악계에서 제대로 찍혔는 지, 그 동안 일본에서 누렸던 인기를 크게 잃고 이렇다 할 공식 직책 없이 가끔 들어오는 객원 지휘 의뢰에만 응하고 있다.

2014년 11월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전문 감독 모리 타츠야(森達也)가 이번 사건을 영화화했는데, 모리는 사무라고우치와 니이가키의 쌍방 주장을 가능한한 객관적으로 취합하고 있다면서 '그 동안 악한으로만 평가받고 있던 사무라고우치의 이미지를 재평가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예정대로 해당 영화는 'FAKE'라는 제목으로 2016년 6월에 개봉되었는데, 주로 2014년 9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사무라고우치의 자택에서 촬영한 영상을 사용했다. 영화 후반부에서 사무라고우치는 자신이 여전히 니이가키의 도움 없이 충분히 작곡을 할 수 있다고 강변하며 신디사이저와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최근에 작곡했다는 음악을 들려주는데, 그 퀄리티가 니코니코 동화의 아마추어 동인 뮤지션들만도 못한 수준이라 오히려 '그 동안 니이가키한테 그 정도밖에 못 배워 먹었냐'는 비아냥을 샀다. 이후에도 사무라고우치는 같은 해 10월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았다며 JASRAC을 제소하는 적반하장급 태도를 보여 빈축을 샀고, 그와 별도로 12월에는 사몬 프로모션이 사무라고우치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오사카 지방법원이 피고 사무라고우치 측에 5670만 엔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냈다.

니이가키 타카시는 사건 이후에 오히려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데, 2015년 6월에 '음악이라는 "진실"(音楽という“真実”)'이라는 책을 쇼가쿠칸에서 출판했다. 이 책에서는 자신의 음악관 뿐 아니라 이 사건에 대한 반성적 회고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16년 9월에는 후쿠시마에서 도쿄 실내 관현악단을 지휘해 교향곡 '연도(連祷)'와 피아노 협주곡 '신생(新生)'등 자작곡 세 곡을 공연했고, 협주곡에서는 피아노 독주도 직접 맡았다. 이 공연의 실황녹음이 같은 해 11월에 데카에서 음반으로 발매되었는데, 니이가키의 첫 메이저 레이블 데뷰 앨범으로 화제를 모았다. 일본 타워레코드의 음반 소개 페이지. 2018년엔 정재은나비잠 사운드트랙을 담당하면서 영화 음악가로도 데뷔했다.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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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이름과 읽는 법, 그리고 긴 기간 동안 일본 전역을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속여 온 사실 등이 역전재판 시리즈의 말도 안 되는 사건의 현실화라며 조롱받았고, 급기야는 실제로 역전재판을 소재로 한 MAD가 나오기도 했다. 전편이 2014년 3월 7일에 만들어졌는데, 니코니코 동화에서 역전재판 태그로 1등을 먹으며 백만 재생을 뛰어넘었다. 참고로 태그의 경우 치열한 수정전쟁반달들의 깽판으로 인해 편집금지가 걸린 상황. 이후 이 MAD를 만든 제작자는 노노무라 류타로 사건을 놓고 후속작 격인 MAD를 만들기도 했다.

사운드 호라이즌의 작곡가 Revo가 자신을 사무라고우치 마모루와 혼동한 사람에게 '당신의 CD를 두 번 다시 사지 않겠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Revo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밝힌 것도 화제가 되었다.

2014년 8월 10일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코너인 Surprise Secret에서 이 부분을 다루었다. 단, 해당 인물들은 가명[11]으로 나왔고, 각색을 해서 무라이 슈고(니이가키 타카시)가 겐고 쇼이치(사무라고우치 마모루)에게 협박편지를 보내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2014년 일본의 '최악 사회 문제' 3위에 올랐다. 1위는 STAP 세포로 알려진 만능세포 연구논문 조작 사건이며, 2위는 노노무라 류타로 전 의원의 정무활동비 사건이다.


한편 사무라고우치 마모루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그가 작곡했다고 하는 사운드트랙들이 재조명(?)받게 되었는데, 특히 바이오하자드 듀얼쇼크판의 사운드트랙이 혹평을 받으면서 이건 혹시 본인이 직접 쓴 게 아니냐는 개드립 아닌 개드립이 돌고 있다(...). 귀무자 리마스터 버전에서 그의 곡들은 싹 다 갈려나가고 재녹음을 할 방침이라고 한다.

페르소나 5의 보스 중 한 명인 마다라메 이치류사이의 행적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다만 실제 사건과 달리 작중에서는 유명 화가의 도작 사건으로 바꿔서 묘사된다.

청각장애를 다룬 마루야마 마사키의 소설 <용의 귀를 너에게>에서 이 사건이 언급된다.
ㅡ청각장애 있는 척한 거 아니야?
아마 마루우치의 머릿속에는 최근 주목을 받은 '농인 음악가'인 인기 작곡가에게 사실 고스트라이터가 있었다는 사건이 분명 박혀 있을 것이다.
해당 음악가는 중도실청자[12]로 청각장애가 있으면서 게임 음악이나 교향곡 등을 작곡하여 각광을 받았지만 그 곡들이 고스트라이터가 대작했다는 사실이 발각됨과 동시에 청각장애의 정도에 대해서도 의심을 받았다. 음악가가 연 사죄 기자회견에는 실로 400명이나 되는 보도진이 달려왔고 텔레비전으로도 생중계되었다. 아라이[13]는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들은 바로는 마치 '인민재판'의 현장과도 같았다고 했다.
음악가가 몇 가지 '거짓'을 말한 것이 확실하기에, 그에 따라 상처를 입은 상대에게는 사죄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사실과 그의 청각장애 레벨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아라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 장애인이 만든 곡이기 때문에 칭찬을 했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가치는 없어지는 건가. 아니, 분명 그러했다. 역사상의 고명한 음악가에 비유했던 홍보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듯, 모두 그가 '전혀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곡했다.'는 점에 감탄했다.
그렇다고 해도 기자회견에서 규탄에 가까운 말을 쏟아내는 기자나 코멘트를 더한 '전문가'들은 청각장애를 어느 만큼 이해하고 있을까. 기자회견장에서는 "왜보청기를 끼지 않았는가."라든가 "수화 통역이 끝나지 않았는데 대답하는 것이 이상하다."라는 목소리도 날아들었다고 한다. 음악가의 현재 청각 레벨을 두고 장애 수첩[14] 교부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거론하며 부정 취득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일괄적으로 '난청'이라고 해도 원인이나 들리는 정도에 따라 증상은 제각각이다. 사람들이 지적하는 보청기도, 병환 등으로 외이나 중이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전음성 난청'이라면 몰라도 음악가가 진단받았다고 하는 '감음성 난청'에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한다. 후자는 내이나 그보다 더 안쪽에 있는 중추신경계에 장애가 있어서 고음역이 극단적으로 작아지거나 누락될 뿐 아니라 음이 왜곡되기도 한다. 보청기를 장착해도 왜곡된 음이 커질 뿐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물론 아라이는 그 음악가가 정말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들린다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그것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의 파장은 꽤 컸고 장애인 수첩 교부에 관한 조건이나 청력 검사 내용이 엄격해졌다고 들었다. 청각자애인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도 안 좋아졌다.
ㅡ사실 들리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마루우치의 말에 그것이 나타났다.

[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3남인 작곡가이자 지휘자 아쿠타가와 야스시의 이름을 딴 작곡 콩쿠르.[2] 사실 이런 예는 한국에서도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이런 형태로 참여했다면 적어도 편곡이라는 형태로라도 이름을 올린다.[3] 이 대목은 기자회견 후반에 카미야마에 의해 낭독된, 니이가키가 아닌 해당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버지가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써 보낸 수기다.[4] 니이가키의 모교인 도호가쿠엔대학에서 음악학을 전공했고, 작곡가와 지휘자로도 활동하면서 엘렉톤 합주단인 재팬 일렉트로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과 일본 푸르트벵글러 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다.[5] 게다가 학창시절 아내를 처음 본 뒤에 어찌어찌해서 아내를 다시 만날 때 자신을 '(아내의) 남동생의 친구'라고 소개했으나, 나중에 장모가 자신의 아들(아내의 남동생)에게 사무라고우치에 대해 물어보니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고.[6] 1970년대 후반~198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히로시마 출신의 록 보컬리스트로, 1977년에 도쿄의 무도관에서 단독 공연을 가진 첫 일본 록 싱어로 유명하다. 서브컬쳐 관련 악곡으로는 용과 같이 3의 주제가로 사용된 'Loser(용과 같이 3를 위해서 만든 곡이 아니라, 야자와 에이키치의 곡을 세가에서 허가받고 사용한 것)', 뱀파이어 헌터 OVA의 테마곡으로 사용된 'THE TROUBLE MAN' 등이 있다.[7]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물론 아르놀트 쇤베르크안톤 베베른 등을 중심으로 무조음악 혹은 음렬음악 기법이 도입되었으며, 이후 올리비에 메시앙이나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과 같은 작곡가들이 이러한 기법을 발전시키고 변용하여 오긴 했으나, 이 사람들도 현대(contemporary) 서양음악 기준으로는 한두 세대 전에 해당하며, 현 세대의 작곡가들은 조성음악과 무조음악의 무조건적인 이분법과 관계 없이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장 죄르지 리게티나 필립 글래스 같은 작곡가들만 봐도 오히려 굉장히 간결한 조성음악에 가까운 현대음악을 만든다.[8] 그리고 조성음악이 찬밥 신세였던 적은 더더욱 없는데, 현대음악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건 서양음악 레퍼토리의 최소 60% 이상은 아르놀트 쇤베르크 이전의 조성음악이다. 현대음악을 비교적 많이 소개하고 보급한다는 사이먼 래틀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같은 오케스트라에서도 조성음악의 연주 비율은 50%가 넘어간다.[9] 클래식을 중심으로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중견 작곡가로, 기동전사 Z 건담의 음악도 담당한 바 있다.[10] 신낭만주의 성향의 작곡가로, 주로 클래식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11] 사무라고우치 마모루→겐고 쇼이치, 니이가키 타카시→무라이 슈고. 이름이 처음 뜰 때 옆에 가명이라고 나왔다. 마지막에 실제 인물이 나오는 장면에서 실명이 나왔다.[12] 후천적 청각장애인.[13] 주인공. 수화통역사이며 코다(청각장애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이다.[14] 한국의 장애인등록증(복지카드)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