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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에 하루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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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스에하루카타.jpg
陶晴賢 (すえ はるかた) 도청현
(1521년 ~ 1555년 10월 16일)

1. 개요2. 생애
2.1. 오우치 요시타카 가신 시대2.2. 갈등과 모반2.3. 주가 장악과 죽음
3. 평가4. 대중 매체에서

1. 개요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그 군사적 재능으로 오우치 가의 세력 확장에 이바지하였으나, 주군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기 자신마저도 결국 목숨을 잃으면서 가문의 멸망의 원인이 된 인물이다.

2. 생애

2.1. 오우치 요시타카 가신 시대

오우치 요시오키의 심복인 스에 오키후사의 아들로 태어나 요시오키의 적자 오우치 요시타카의 가신으로서, 아마고씨와의 싸움에서 공을 세우면서 두각을 나타낸다. 미남이었던 관계로, 주군 요시타카와 애인 관계에 있었다고도 한다. 이 당시의 이름은 스에 타카후사(陶隆房)로, 오우치 요시타카의 '타카'를 하사받은 이름이었다.

서국 무쌍의 사무라이 대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용을 겸비한 무장이었으며, 가문 내 무단파의 실권자였다.

2.2. 갈등과 모반

센고쿠 시대 이전 안정된 시대부터 수백년간 주고쿠 지방의 명문가였던 오우치가는 원래 무(武)보다는 문(文)을 중시하는 가풍이었으나, 요시타카의 대에 와서는 그 정도가 심해지게 된다. 이러한 기풍이 강해짐과 동시에 아마고 정벌에 실패한 무단파보다 문치파를 중용하게 되면서 문치파의 실권자인 사가라 타케토(相良武任)와의 대립도 점점 심해져 갔다.[1] 사가라 타케토는 자신과의 경쟁자인 하루카타의 입지를 낮추기 위해 여러 가지로 손을 쓰게 된다.[2]

이로 인해 주군과의 갈등이 극에 달한 하루카타는 반란을 일으키고, 1551년 9월 1일 주군 요시타카를 다이네이지(大寧寺)에서 자결시킨다(다이네이지의 변).

2.3. 주가 장악과 죽음

하루카타는 주군인 요시타카에게 반기를 들었음에도 주가 자체를 찬탈하려는 뜻은 없어 요시타카 자결 이후, 요시타카의 조카인 오우치 하루히데(오토모 하루히데)를 오토모 가문에서 데려와 주군으로 옹립하고, 명실공히 가문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와 함께 자기 이름도 새 주군 '하루'히데와 맞춰 '하루'카타로 개명했다. 오우치 하루히데가 이후 요시나가로 개명했을 때에는 자신이 아닌 아들 '나가'후사와 주군의 이름을 맞춰주었다.

그는 군비 강화에 힘쓰고 세력을 넓히는 데 주력하였는데, 이러한 정책이 주위의 반발을 사게 된다. 이 중의 하나가 모리 모토나리로, 원래는 스에 하루카타와 협력했으나 모리 모토나리의 근거지인 아키(安芸) 지방에 스에 하루카타가 자기 가신을 배치하면서 사이가 벌어져, 살해된 요시타카의 매형인 요시미 마사요리와 협력하여 하루카타를 공격한다.

이에 하루카타는 요시미 마사요리 토벌에 나서고, 주력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모토나리가 기습하여 아키 지방을 손에 넣게 되었다. 분노한 하루카타는 모토나리를 토벌하기 위해 1555년 10월 6일에 직접 군사를 이끌고 아키의 이츠쿠시마(厳島)를 침공하나 모토나리의 기습으로 대패하고 도주하던 중에 자결하게 된다.

죽을 때 남긴 사세구
무엇을 아쉬워하고, 또 무엇을 원망하리. 본디 이러한 운명이었던 것을.
(何を惜しみ 何を恨みん 元よりも この有様に 定まれる身に)
이 전투가 일본 3대 기습 중 하나인 이츠쿠시마 전투이다.

하루카타의 죽음 후, 강대 세력을 자랑하던 오우치 씨는 급격히 쇠퇴하게 되고, 2년 후인 1557년, 결국 모토나리에게 멸망하였다.

3. 평가

'서국 무쌍의 사무라이 대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우수한 인물이었으나, 독단적이고 의심이 많으며, 냉혹한 성격이었다고 전한다. 또한 무리하게 아마고 가문을 공격했다가 패배하여 주군인 오우치 요시타카가 정치에 흥미를 잃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이후로도 문치파와 대립하고 주군을 배반한 것도 모자라 모리 모토나리의 계략에 말려들어 주가를 멸문시켰다는 오점을 남겼다.

부하들에게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1차 갓산토다 성 전투 이후 패주하는 와중에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고 정작 자신은 잡어의 내장과 물만으로 허기를 달랬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남겼으나, 한편으로는 사소한 일로 의심을 품고 가신을 잔혹하게 살해하기도 했다. 에도 시대의 산문집 <오토기보우코>에 의하면 아츠사 단조라는 가신이 하루카타를 배반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하루카타는 미소를 지으면서 무죄함을 호소하는 아츠사를 산 채로 태워 죽였고, 그 직후에 벌어진 전투에서 하루카타가 말에서 떨어졌는데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아츠사의 망령이 하루카타를 낙마시키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모리 모토나리가 퍼뜨린 헛소문에 속아넘어가 유능한 가신을 주살한 일도 있다.

4. 대중 매체에서

파일:陶晴賢2.jpg 파일:陶晴賢.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파일:external/www.nobuwiki.org/0063.jpg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오우치 가의 무력을 담당. 다른 능력치도 나쁘지는 않다. 미남으로 이름 높고 단명했음에도 삽화는꽤 오랫동안 아저씨로 나오다가 창조 PK에선 꽃미남으로 등장. 예전 삽화들은 주군을 갈아치운 권신의 이미지에 맞췄나 싶은 느낌이 든다. 모리 전국전에선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며 이츠쿠시마 전투 이벤트에선 결국 패배하고 자결한다.

실제 역사를 반영해서인지 야망이 높아서 초창기 게임에선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았고 오우치 요시타카가 나오는 시리즈에선 역사대로 모반을 일으켜 요시타카를 죽이고 오우치 요시나가를 후계자로 앉히는 이벤트도 동반된다.[3] 심지어 무장풍운록에선 범용 이벤트긴 하지만 랜덤으로 자기가 수립했던 요시나가까지 반란으로 죽여버리고 스스로 다이묘에 앉는 이벤트까지 나올 정도.

태합입지전5에서도 등장하고 능력치 자체는 전형적인 무관인데 영 대우가 좋지 않다. 1554년 시나리오에서 오다 노부카츠, 사이토 도산과 함께 이벤트로 사망하는 3명 중 하나. 오우치 요시나가 or 스에 하루카타로 시작하면 첫 평정 때 바로 이츠쿠시마 전투가 강제 이벤트로 발생하는데 스에 하루카타로 할 경우 오우치가는 다른 가신이 없고 스에 하루카타 혼자 대장, 나머지 네 부대는 그냥 비대장 뿐. 거기에 병력은 8000명 vs 11000명인데 무려 해전이고[4] 상대는 무라카미 해군 + 모리가 정예가 다 나온다(모리 모토나리, 킷카와 모토하루, 코바야카와 다카카게) 또한 무라카미 해군은 거의 절대적으로 첫턴 호접진(해적판 풍림화산)을 써오니 답이 안 나오는 상황.

이츠쿠시마 전투 발생 전, 무라카미 다케요시를 만나면 이벤트가 발생하여 무라카미 해군이 중립을 지키게 되어 이츠쿠시마 전투에 참전하지 않으므로 전투가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해당 이벤트를 발생시키고 기요스 마을에서 놀고 있는 키노시타 히데요시나 기타 재야 무장을 등용한 후 전투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다. 모리 가문의 장수들 능력치가 높긴 하지만 어차피 바다 위에서 부대가 약화되는 것은 동일하기 때문에 상륙을 최대한으로 저지하면 되기 때문.

다이묘인 오우치 요시나가로 시작할 경우 평정을 열면 역시 이츠쿠시마 전투 이벤트가 발생하며 분기에 따라 이츠쿠시마 전투를 피할수 있는데 피할 경우 아무일 없고, 전투 이벤트를 볼 경우 수동 전투 없이 그냥 텍스트로 스에 하루카타가 전사하고 가신이 없는 상태에서 꾸려나가야 한다.

PS2판 및 DX에서는 1549년 시나리오로 시작할 경우 다이네이지의 변 이벤트를 볼 수 있다. 1551년 이후 발생하며 전용 CG도 존재. 오우치 요시타카와 야전을 하게 되며 8000 vs 3000에 사기치도 높고 압도적으로 유리한 전투이기 때문에 지기가 더 힘들다.

센고쿠히메2에 군주로 등장. 원래 주군인 오우치 요시타카로 부터 오우치가 영토 절반을 양도 받았단다. 생긴 건 거의 악당급 포스. 하지만 3에서는 활달한 소녀로 변경. 혐오하는 사가라 타케토와는 주인공과 H를 통해 화해한다... 이후 짤렸다가 6에서 부활. 오우치 요시타카와는 친구라는 설정. 여전히 사가라 타케토와는 사이가 나쁘다.

NHK 대하드라마 모리 모토나리에선 진나이 타카노리[5]가 스에 하루카타 역할을 맡았는데 드라마 상에서는 오우치 요시타카를 보좌하여 일본을 통일하겠다는 포부를 갖는다. 그러나 요시타카가 아마고와의 싸움에서 패한 이후 전쟁을 피하고 노(能) 같은 문화 생활에만 몰두하자 여러번 격하게 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을 신뢰해주는 요시타카를 배신할 수 없어 괴로워하다가, 오우치 가문의 앞날을 위해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모반을 일으킨다. 모리 모토나리와 그의 장남 타카모토하고는 절친한 관계였으나 모리가 세력을 키우면서 사이가 틀어지며 모리와 전쟁을 벌이나 모토나리의 계략에 의해 죽게 된다.

모리 모토나리 맹세의 세 화살에선 사실상 1장의 최종 보스. 초반에 지원군으로 나오는등 모리 모토나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스에의 하극상 이후 결국 갈라지게 된다. 이후 이츠쿠시마 전투에서 패배한뒤 사망. 원래는 어두우면서도 샤프한 느낌의 미남자인데 하극상 이후 얼굴이 초췌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1] 이전부터 사가라 타케토는 아마고 침공은 너무 성급하다는 의견이었고 스에 하루카타는 아마고 침공을 서두르자는 의견으로 갈등을 빚었다.[2] 하루카타의 영지 일부를 도다이지(東大寺)에 바치도록 권하는 방법까지도 쓰게 된다.[3] 다만 천상기의 경우엔 이벤트 작성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요시나가가 후계자가 되지 않고 스에가 그대로 다이묘가 되어 버린다.[4] 일반적인 해적과 교전할 때의 맵이라 육지가 일부 있긴 하지만 면적도 좁은 데다가 재수없으면 하루카타가 상륙하는 데만 3턴 이상 걸린다.[5] 군사 칸베에에서 우키타 나오이에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