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19:57:48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6.25 전쟁의 전투 및 작전 목록 파일:북한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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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군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인포그래픽

1. 개요2. 전개
2.1. 1차 시도2.2. 2차 시도
3. 기타

1. 개요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은 6.25 전쟁 중인 1952년 1월 12일부터 1월 15일까지 4일에 걸쳐 대한민국 공군이 벌인 폭격 작전이다.

2. 전개

승호리 철교는 평양 동쪽의 대동강 지류 중 하나인 남강에 놓인 철교였다. 이는 평양 남쪽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평덕선 철로의 일부로, 강 서안의 청룡역과 동안의 립석리역을 이었다. 평덕선은 원래 평안남도 북부의 탄전지대에서 나오는 석탄을 운송하던 산업철도 역할을 하는 노선이었지만, 원산을 향하며 동-서부전선를 이어주는 핵심 간선인 평원선(현재의 평라선)과 교차하기 때문에 이의 우회 노선으로서도 중요했다.

원래의 승호리 철교는 이미 미군 제5공군이 파괴한 바 있었다. 하지만 북한군은 기존 철교의 북쪽(하류 방향) 약 200m 지점에 목재를 쌓아 임시 교각을 만들어 복구를 해 놓고 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당시 동-서 교통로 파괴를 위해 평원선 전체를 난타하고 있던 미 공군은 이 임시 승호리 철교에도 폭격을 퍼부었다. 북한군 및 중국인민지원군도 철교 방어를 위해 다수의 대공포를 주변에 배치해놓고 집요한 방어를 펼쳐, B-29 500소티 이상을 출격시켰어도 완전 파괴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미군에서는 밑져야 본전이란 식으로 한국 공군에게 폭격 임무를 맡겨 보기로 한다. 이에 작전을 맡은 공군 제10전투비행전대장 김신 대령[1]은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을 달성한 조종사인 김두만 소령[2]에게 임무를 맡겼다.

2.1. 1차 시도

1952년 1월 12일 아침 7시 40분, F-51 5기로 이루어진 폭격 편대가 강릉기지에서 출격했다. 각 기체는 500파운드(226.8㎏) 짜리 통상폭탄 2발, 5인치 고속항공로켓탄(HVAR) 4발을 장비하였다.
  • 편대장 김두만 소령
  • 2번기 장성태 대위
  • 3번기 김금성 대위
  • 4번기 이기협 대위
  • 5번기 전봉희 대위

하지만 이 첫 작전은 미군의 폭격작전과 마찬가지로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기관총과 로켓으로 대공포대를 제압하고 투하한 폭탄은 모두 빗나가서 모래바닥 위에 떨어졌다.

같은 날 오후, 머스탱 3기로 이루어진 두 번째 편대가 폭격을 시도했으나 다리 위의 철로만 손상됐을 뿐 다리는 부수지 못했다.
  • 편대장 윤응렬 대위
  • 2번기 주영복 대위
  • 3번기 정주량 대위

2.2. 2차 시도

김신 대령은 참모들과 숙의한 끝에 8,000ft(2438m)에서 강하를 시작하여 3,000ft(914.4m)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미군 전술을 포기하고 위험성이 훨씬 더 크지만 폭격 명중률을 크게 높일 수 있도록 안전 고도보다도 더 낮은 4,000ft(1219m)에서 강하를 개시해서 1,500ft(457.2m) 상공에서 폭격하는 것으로 작전을 전환한다.

1월 15일 오전 8시 25분, F-51 6대가 2개 편대를 이루어 재차 공격에 나섰다. 1편대가 로켓으로 다리를 일차 공격한 뒤 주변의 대공포 진지를 제압하고, 2편대가 로켓탄과 폭탄을 투하하여 마침내 철교를 부수는 데 성공했다.
  • 1편대장 윤응렬 대위
  • 2번기 정주량 대위
  • 3번기 장성태 대위
  • 2편대장 옥만호 대위
  • 2번기 유치곤 대위
  • 3번기 박재호 대위
파일:image__2017_108865_15816556382779504.jpg
폭파 전과 후 비교 사진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은 훨씬 경험 많고 능력있는 미군조차 실패하고 있던 상황을 신출내기 한국 공군이 해내면서 그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고, 작전 성공 이후 2000년대 넘어와서까지도 평양 대폭격 작전, 351고지 전투 항공지원작전과 더불어 대한민국 공군의 쾌거로 늘 거론되고 있다.

3. 기타

  • 영화 《빨간 마후라》에서 이 승호리 철교 폭파적전을 각색해 절정부에 써먹었다. 당시 촬영 환경의 한계로 실제 투입된 P-51 머스탱이 아닌 영화 촬영 당시 한국 공군에서 운용하던 F-86 세이버가 투입되는 모습이며, 실제로는 다리를 끊고 모두 생환했지만 영화에서는 피격당하고 중상을 입은 한국 공군기가 자폭 공격으로 희생하여 끊어낸다.
  • 제주특별자치도에 있는 항공우주박물관에서 대한민국 공군의 활약상을 전시해 둔 곳에서도 소개가 되어 있다.
  •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베테랑 조종사들은 대부분 이후 대한민국 공군의 주요 지휘관으로 성장했다.
    • 1편대장 윤응렬은 공군작전사령관(소장)을 역임하고 2022년 10월 24일 오후 2시에 사망하였다.
    • 2편대장 옥만호는 제12대 공군참모총장(대장)을 역임하고 2011년 5월 13일에 사망하였다.
    • 1편대의 정주량은 1952년 12월 5일 사천비행장 부근에서 비행 중 사고로 2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 1편대의 장성태는 공군본부 작전참모부장(준장)을 역임하고 2007년 9월 8일에 사망하였다.
    • 2편대의 유치곤은 공군 제107기지단장(대령)으로 재직하다 1965년 1월 1일에 과로로 사망하였다. 사후 준장 계급이 추서되었다.
    • 2편대의 박재호는 공군작전부사령관, 제11전투비행단장(준장)을 역임하고 현재까지 생존해있다.

[1]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2] 작전 당시의 계급으로, 나중에 공군참모총장(대장)까지 지낸다.[3] 유치곤 장군 동상 옆에는 아들 유용석 소령의 흉상도 세워져있다. 유용석 대위(사후 소령 추서)또한 아버지의 뒤를이어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조종사가 되었지만 제주 C-123 추락사고로 인하여 순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