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요시오카 세이쥬로: "칼싸움, 좋아하지?")
"좋아합니다!"
'싸움의 신이여, 나를 낳아줘서 고맙소!'
요시오카 세이쥬로와의 결투에서
"좋아합니다!"
'싸움의 신이여, 나를 낳아줘서 고맙소!'
요시오카 세이쥬로와의 결투에서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에서 무사시가 첫 등장 때 부터 사용하였던 초명(初名). 본 문서에서는 상기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만화 배가본드에 등장하는 신멘 다케조(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해 서술한다.[1] 역사상의 무사시에 대해서는 미야모토 무사시 문서를 참조.
2. 작중 행적
배가본드의 주인공일본 오카야마 현 북부 사쿠슈(作州) 요시노의 미야모토 마을 출신. 신멘 무니사이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귀신같은 사무라이 아버지 밑에서 어미의 정을 모른 채 자랐다.[2] 타고난 힘과 야성으로 지녀 13세 때 마을에 들린 떠돌이 사무라이를 묵사발로 만들어서 죽였고[3] 17세 때 세키가하라 전투에 고향 친구인 혼이덴 마타하치와 서군으로 참전하였다. 역사대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이 패해 패잔병으로 전락하자 패잔병 사냥꾼들과 교전하며 도망가는 도중 죽은 병사들의 물품을 훔쳐 살아가는 오코와 아케미 모녀에게 구해졌다. 얼마 안 가 오코에게 사심을 품은 산적 두령 츠지카제와 맞닥뜨렸는데, 진검을 든 거한의 산적 두령을 목도만으로 쓰러트리는 위용을 보인다.
츠지카제 패거리와의 교전 후 여행을 떠나려 했으나, 친구인 마타하치가 오코와 바람이 나 떠나버리는 바람에 마타하치의 노모(老母)와 약혼녀 오츠에게 마타하치의 생사를 보고하려 귀향하였다. 그러나 평소 아들을 꾀어내어 전쟁터로 향하게 만들었다며 다케조를 밉살스레 여기던 노모는 왜 마타하치를 버려두고 네놈 혼자 돌아왔냐며 원망하는가 싶더니 그래도 아들 친구라며 목욕이라도 하고 가라는 말로 발을 묶어두고, 귀향길 중 주 경계선의 관문에서 추적병을 살해한 뒤 달아난 사유로 다케조를 쫓고 있던 군인들에게 신고당해 벌거벗은 상태로 대치하다 도주하나 도중 마을 사람들에게도 붙들려 악귀라느니 마을의 수치라느니 미움을 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뒤 추적병들과 마을 사람들을 따돌려 산속에서 도주 생활을 하던 중 히메지 성주(城主)의 친우(親友)이자 승려인 타쿠앙과 오츠에게 붙들려 칠보사(七寶寺)의 나무에 매달리는 고초를 겪게 된다.
나무에 메달려서도 빌거나 죄를 뉘우치긴 커녕 어서 죽이라며 외치는가 하면 악착같이 수 일을 죽지않고 버티어 내던 중 산속에서 도피중에 조우했던 츠치카제의 동생 고헤이가 나타나 나무의 줄을 끊고 죽임 당하려던 차에 타쿠앙에 의해 구해지고, 마을이 훤히 보이는 언덕에서 타쿠앙의 설교와 격려[4]로 신멘 다케조라는 이름을 버리고 미야모토 무사시로 개명하여 천하 제일을 목표로 방랑을 떠나게 된다.
그 뒤 21살에 교토에 상경,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요시오카 도장에 들려 당주 요시오카 세이쥬로와의 대결을 청하나 당주의 부재로 제자들과 대결, 다섯을 쓰러트리고 자신의 검이 교토에서도 먹힌다는 사실에 기세가 등등해진 찰나 사범 대리인 우에다 료헤이와 대결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세이쥬로의 동생인 요시오카 덴시치로가 돌아와 당주라 칭하며[5] 료헤이와 서로 자신이 상대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던 중 당주인 세이쥬로가 도장에 돌아오게 되고, 아까 길에서 마주쳤던 무사시를 알아보며 좋은 술을 줄테니 돌아가달라고 청하나 무사시는 술을 할 줄 모른다며 단칼에 술병을 깨부수는 패기를 선보이고[6] 기고만장한 언동에 화를 내는 덴시치로에게 이마 깨지기 전에 가짜 당주는 빠지라는 말을 건낸 직후 세이쥬로의 일섬에 무사시는 목도와 함께 이마를 베이는 역관광을 당하게 되나 물러서길 바라는 세이쥬로에게 다시금 결투를 신청, 허나 재차 거절당하고 세이쥬로가 자리를 뜨는 통에 덴시치로와 맞붙게 된다. 덴시치로의 어깨에 상처를 내고 무사시 본인도 가슴을 베이는 등 난생 처음으로 호각의 결투를 벌이던 도중 밖에서 몰래 이를 지켜보던 혼이덴 마타하치가 도장의 지하에 숨어들었다가 술창고에서 술을 바닥내고 쓰러져 자다 쓰러트린 촛불로 인해 요시오카 도장이 화재로 불타버리게 되어 더 이상 싸울수 없게되고, 힘을 키워 실력을 더 쌓은 후 다시 결투를 하자는 제안을 받고 수행을 떠나게 된다.
요시오카 도장을 나온 뒤 길에서 기절한 무사시를 마타하치가 업어 주막에 맡겨두고 죠타로라는 고아 소년에게 보살핌을 받아 사흘만에 눈을 뜨는데 오랜만에 타쿠앙과 재회하여 오츠가 야규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7] 마침 야규가(家)와 호조인 등 강자가 많은 나라(奈良)를 목표로 떠나려던 무사시였으나 타쿠앙이 함께 곧장 야규로 가겠느냐 묻자 수행을 위해 애둘러 멀리 가는 길을 택하여 갈림길에서 헤어지고, 무사가 되고 싶다며 무사시의 뒤를 따라온 죠타로와 함께 우선 창술로 유명한 호조인 인에이를 쓰러트리기로 목표를 잡고 인에이가 있는 보장원이라는 절로 향한다. 호조인과 대결을 앞두고 밭에서 만난 노(老)스님에게 보장원으로 가는 길을 묻다 하룻밤을 함께 하게 되고, 강함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다 술에 취해
인슌과 싸운이후 천하무적이라 불리는 야규 세키슈사이에게 도전하러, 또 오츠를 만나러 야규에 도착한 무사시는 야규도장을 견학한다는 목적으로[9]야규성에 들어가고 야규의 문하생을 도발함과 동시에 결투를하여 혼란을 만든사이 오츠와 야규 세키슈사이를 만나게된다. 세키슈사이는 잠을자고 있던 도중이었고, 무사시는 그사이에 세키슈사이를 죽이려하지만 자신을 죽이러 왔음에도 태평하게 잠을 자고 있는 야규에게 놀라고 천하무적에 대한 의문을 느끼며 세키슈사이의 기백에 눌려 아직 자신은 천하무적에 한참 멀었다는 사실을 깨닫게된다.
천하무적에 가까워 지기위해 많은 일문들과의 싸움을하면서 수행을하면서 시시도 바이켄이란 강자의 대한 소문을듣고 그와 승부를 내기위해 그를 찾아가지만, 그의 정체는 4년전 미야모토 촌에서 만났던 츠지카제 고헤이였다.[10]그리고 그와의 싸움에서 더이상 아버지의 환상은 보이지 않게되고 고헤이와의 승부에서 이기게된다.
요시오카 덴시치로와의 약속된 결투의 시간이왔고 덴시치로의 형 세이쥬로는 결투전에 무사시를 죽이려하지만 강해진 무사시에게 패배하여 목숨을 잃었고 덴시치로도 너무나도 강해진 무사시 한테 처참하게 지고말았다. 그리고 그의 제자 70여명과 정면대결에서도 모두 베어버리고(몇 명은 겨우 살아남았으나 누가 봐도 곧 죽을 몸이라 죽여달라고 한 걸 다 죽여줬다) 이름을 떨치지만 우에다의 최후의 일격으로 그도 다리 한쪽에 큰 치명상을 입게된다.
요시오카 도장에서의 일을 들은 도쿠가와 막부는 '70명을 아무 이유 없이 죽였다'란 이유로 무사시를 감옥으로 보내지만 사실은 어떻게든 대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런 트집을 잡아 붙잡아 놓은 것이고, 귀한 손님 대접[11]을 해준다. 또한 직접 대면해서 검술사범 제의까지 하지만, 무사시는 거부하고 아예 달아나 피하며 떠돌게 된다.[12] 그 뒤 자신을 노리려고 찾아오는 칼잡이들이나 요시오카 도장 소속이었던 이들이 찾아오면서 계속 싸우다가[13][14] 양자가 되는 이오리를 만나 이오리의 죽은 아버지를 묻어주고 이오리 집에서 머물면서 농사를 지으며 지내게 된다.
이오리나 마을 사람들이 이름을 물어보자 "미야모토...다케조"라고 하면서 같이 지내면서 누구랑 싸우지도 않았고 이오리가 뒤에서 밀칠때도 힘없이 쓰러져서 이오리는 별거아닌 칼잡이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이오리를 돌보며 마을에서 떨어져 살던 옹고집 노인 슈사쿠는 다케조를 보고 사람을 많이 죽여본 자라고 비아냥거렸다.[15]
그러다가 나중에 마을로 쳐들어온 양아치 15명[16]과 일대일로 맨주먹으로 싸워 몇명을 두들겨패버리고 나머진 겁을 먹고 달아나게 하는데 이오리도 저렇게 강했냐면서 놀라워하며 쳐다본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그를 알아본 슈사쿠가 한 "알겠어..저 자는 요시오카 도장의 70여명과 홀로 싸워 이겼다는 그 미야모토 무사시야!" 말을 듣고 그에 대하여 알게 된다. 당연히 이오리도 경악하게 된다. 그 후 누리떼 휩쓸고 마을이 흉년으로 고생하는 와중에서도 코쿠라에서 찾아온 이들의 반 강압적인 초빙도 거부하며(무력으로 데려가려 한 상대를 일격에 쓰러뜨렸다) 묵묵히 밭을 갈고 있다.
그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잘 못자서 빼빼 마른 상태에서도 열심히 밭을 갈았고 그를 견제하고 무서워하던 마을 사람들도 영양실조로 일시 기절한 그를 보곤 "이 사람도 결국 사람이구나." 많이 견제를 풀고 같이 밭일을 돕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흉년으로 노약자가 하나둘 죽어가고 여전히 밭은 엉망인 상태가 이어지자 마침내 그도 모든 자존심을 굽히고 스스로 코쿠라에서 온 막부 고위 인물에게 빌면서 마을 사람들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만다. 이는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에게 빌면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 다쿠앙은 그 이야기를 듣자 자신밖에 모르는 놈이 타인을 위해서 머리를 숙일줄도 알게 되었냐며 감탄했다.[17]
그래서 마을 사람들을 모두 구해주는 조건으로 코쿠라로 가기로 하고 쌀과 생필품을 받아온다. 다 죽어가던 이오리에게도 미음을 만들어 먹이고 마을 사람 모두가 겨우 살아남게 되면서 다케조에게 고마워하고 마을에서 영웅이 된다. 다리도 점점 나아가던 중 아녀자들이 그에게 적어도 자기 몸을 지킬 정도만이라도 검을 수련하고자 찾아오자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러자 과거에 코쿠라에서 그를 무력으로 데려가려다가 다케조에게 목검 한방에 넉다운 당한 무사[18]가 그의 곁에서 왜 코쿠라에 안 돌아가 보채자 그가 만든 논에서 첫 추수를 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조건(...)을 이야기한다. [19]결국 322화에서 다케조의 농사 스승이라 할 만한 옹고집 늙은이 슈사쿠가 허약해져 쓰러지자 그를 간호하다가 그가 죽고 벼를 거둘 시기가 다가오자 코쿠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미래에 중년이 된 마타하치의 말에 따르면 다리의 상처는 끝까지 낫지 않았다고 한다. 70인과의 대결 후 간류지마의 대결까지 7년간의 행적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하는데, 그동안 어느 성에서 머무르면서 하루 종일 책을 읽는다던지, 어느 마을로가서 농사를 짓는다던지, 산속에서 혼자서 칼을 휘두른다던지 여러 활동을 한 듯하다.[20] 이는 실제 미야모토 무사시가 생전에 50석의 녹봉 밖에 못 받은 것에 대한 밑밥으로 보인다. 작중에서 이미 미야모토 무사시는 금욕적이면서 물욕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70인과의 대결 때부터 이미 출세에 대한 미련이 사라진 상태다. 출세하기 위해서 검에 매진을 했기보단 오히려 스스로의 답을 찾기 위해 검에 매진하는 상황. 연재가 다시 재개된다면 저 50석의 녹동도 받기 싫었던 것을 마지못해서 예의상 최소한만 받은 것처럼 묘사 될 수도 있다.
70인의 대결 이후 검사로서의 모습보다는 스스로의 답을 찾기위한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더 보이고 있는데, 이는 훗날 집필할 '오륜서'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21]
만화가 기나긴 휴재인 와중에 작가의 개인전에서 무사시의 노년이 공개됐었다. 실제 역사상 오륜서를 집필한 장소로 알려진 레이간도(霊巌洞) 동굴에서 은거하고 있다. 이마엔 새로운 상처가 나있으며[22] 나이가 들어 각혈하는 등 많이 쇠약해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찾아온 노인이 된 호조인 인슌과 재회하며 과거 결투를 추억하기도 하고, 장성하여 야규 가문에 들어간 제자 죠타로가 손주를 데리고 찾아와 인사한다. 참고로 오츠와는 끝내 이어지지 못했고 오츠는 같이 동행하던 죠타로와 결혼한듯 하다.[23]
3. 검술실력
현재 작중 세간에서는 천하무적이라고 불리며 그 위상은 타 검사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검을 수련하는 이들은 무사시야말로 천하무적이며 그의 존재와 최후가 어떻냐에 따라 검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검 그 자체의 운명이 좌우된다며 무사시를 칭송할 정도. 교토 소사대는 쇼군가의 검술사범인 야규 무네노리와 오노 타다아키도 무사시처럼 검을 휘두르지는 못할 거라며 혀를 내둘렀고 심지어 촌구석 마을의 늙은이인 슈샤쿠조차 '당대 최고의 검호'로 무사시를 기억하고 있다. 그 외 간간이 무사시에게 덤비는 무사 수행자들도 "지금 이름을 날리는 최고의 방법은 무사시 널 베는 것."이라며 현재 무사시가 검사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라는 걸 넌지시 알려준다. 그도 그럴 것이 천재검호이자 교토최강인 요시오카 세이쥬로와 그 동생 덴치시로를 연달아 격파하는 것도 모자라 요시오카 일문 70여 명을 사투 끝에 홀로 전부 죽여버렸으니 무사시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운 것으로 검사 중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듣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무사시가 1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도장 깨기 이외에도 목숨을 건 실전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세키가하라 전투 때 생사를 오가는 경험을 한 것을 물론이고, 요시오카와의 재대결 이전까지 시시도 바이켄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과 목숨을 건 결투를 하였다. 그렇다 보니 도장 안에서만 대련을 했던 덴치시로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만 상대하고 주색잡기에 빠져서 수련을 게을리했던 세이쥬로는 발전이 있을 수가 없었다.
하나 그런 세간의 평가와는 별개로 무사시는 스스로 사사키 코지로보다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했고 요시오카 일문과의 사투로부터 한참 지난 지금도 그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 사사키 코지로가 장난 삼아 휘두르는 막대기로 눈사람을 벤다던가, 무의식적으로 휘두른 동작이 상당히 치명적이라던가, 귀가 안 들려도 온몸의 감각으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는 등 여러 방면에서 코지로가 자기보다 더 강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무사시는 귀가 안 들리는 상황을 만들어서 주변을 느끼는 수련 등을 시작하였다. 다리에 치명상을 입은 무사시에게 어찌 보면 새로운 방법으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방법은 본의 아니게 제시해 준 것.
그 외에도 무사시보다 직간접적으로 강한 실력을 가졌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는 이토 잇토사이 역시 무사시보다 코지로가 더 강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사사키 코지로를 만난 건 무사시가 아직 천하무적으로 성장하기 전 일이며, 이토 잇토사이의 평가도 무사시의 다리가 부상 때문에 제 실력을 못 냈을 때 얘기니 [24][25] 진짜 사사키 코지로와의 비교는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4. 관련 문서
[1] 소설이 원작이기는 하나 배가본드의 무사시는 이노우에 선생의 재해석이 들어가 상당히 다른 캐릭터가 되어있다. 소설판의 무사시는 초반을 제외하면 검의 길을 일직선으로 달리는 과묵한 수행자 같은 캐릭터로 딱 갈데 없는 이 사람 같은 성격. 애초에 이런 부류의 캐릭터 원조가 소설판의 무사시다.[2] 이혼 후 어머니가 보고싶어 아버지 몰래 찾아갔으나 어머니는 이미 재혼하여 씨다른 동생을 낳아 기르며 살고 있었고 다케조를 반겨주기는 커녕 아버지에게 돌아가라며 모질게 뒤돌아섰다. 이를 계기로 다케조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누구보다 강해지겠노라 다짐하였다.[3] 이 즈음부터 마을 내에서 꺼림칙한 존재로 여겨졌다.[4] 어머니에게 버림 받고 아버지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살아온 삶과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방황했던 다케조는 깨끗이 죽고자 거듭 죽이라는 말을 하나 타쿠앙은 네놈은 사람을 제멋대로 죽여와놓고 자신은 무사답게 깨끗이 죽고싶어 하느냐며 일갈, 이에 바위에 머리를 박아 자살하려는 다케조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마저 버릴 셈 이냐며 어둠을 모르는 자에겐 빛도 없는 법, 어둠을 뚫고 살아가라는 말로 다케조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준다.[5] 당주이자 형인 세이쥬로는 작은 체구에 계집애 같은 얼굴로 주색(酒色)을 밝혀 제자들에게는 걱정을, 마을에서는 선대인 요시오카 겐보를 끝으로 요시오카 도장은 끝났다며 비웃음을 당하기 일수였다. 덕분에 모두 당주로는 동생인 덴시치로가 제격이라 여기고 있었고 덴시치로 자신도 은근히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눈치지만 형인 세이쥬로의 검실력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덴시치로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6] 술병을 깨부순 것 까진 좋았으나 그 직후 이름난 강적을 앞에 둔 흥분을 억누르지 못 하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여 요시오카의 제자들에게 왜 이리 떠냐며 입만 살았다고 비웃음을 듣기도 한다.[7] 기절해 있는 동안 잠꼬대로 오츠의 이름을 부를 정도로 오츠의 꿈을 계속 꾸었고 은연중에 오츠가 보고싶음을 깨닫는다.[8] 1대 만큼 세냐는 질문에 아마 자신이 더 셀거라고 말을 하자 다른 스님들이 여든이 넘어 은퇴하신 분하고 애초에 비교가 되겠냐고 말 한다. 말 할 필요도 없지만 1대 호조인은 밭에서 만났던 노스님.[9] 야규성에 입성하는 에피소드가 재밌는데 야규가 자른 꽃의 단면에 비범함을 느낀 무사시가 똑같이 자른 꽃의 단면을 보내고 긍의 비범함을 신기하게 여긴 야규의 제자에 의해 성내 견학이 이뤄진다. 야규는 이름난 검성이 아니면 도전자체를 받아주지 않는 프라이드가 있었다.[10] 츠치카제 역시 강자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던 중 평범한 (?)산적두목 이었던 바이켄을 죽이고 그의 딸(아마도 어디서 납치해온것으로 추정)인 린도에게 사슬낫을 배우고 그것을 무기로 도전해오는 강자들을 물리치며 린도의 양부처럼 정착해서 살고 있었다.본격적으로 이도류술을 펼친 무사시에게 손가락이 짤리는 중상을 입고 더이상 싸울수 없게 되자 그는 린도를 위해 목숨을 구걸하게 된다.[11] 부상 간수 잘하게 독방으로 배치하고, 면회도 아무 간섭하지 않으며 간수가 연습용 막대기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들어줄 정도로 사실상 귀한 손님대접을 한다.[12] 그렇게 검으로 출세를 하고 싶었던 신멘 타케조 때와 달리 현재는 본인 스스로가 누굴 가르칠 능력과 교양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13] 이때부터 부상당한 다리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수비적으로 싸우게 된다. 대략 검으로 선을 긋고 이 선을 넘어오면 베겠다고 경고한 뒤 상대가 덤비면 피한 뒤 베는 식.[14] 70명과의 대결 때 자신의 눈에 준비가 된 사람과 안된 사람을 구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불필요한 살인을 하지 않기 위해 진심으로 대결을 원하는 사람은 원안에 들어오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도망간다.[15] 슈사쿠 노인의 나이를 감안하면 평생동안 전국시대의 수라장을 겪은 사람이다. 그만큼 평생 사람이 죽는 것과 죽인 사람을 수없이 보아온 것.[16] 어중이떠중이라 그런지 그냥 몽둥이로만 무장했다.[17] 그만큼 무사시가 인격적으로 성장을 하였단 의미.[18] 코쿠라 영주의 신하가 되었는데 예전에 마을에 오기전, 이름을 높이고자 무사시에게 도전하려다가 무사시가 내뿜는 살기에 겁먹고 그냥 가버렸다. 사실 무사시는 그의 복장과 칼을 보고 또 높으신 분이 보낸 사람이란 것을 알아채고 쫓아낼 생각이었다. 나중에 그걸 부끄럽게 여겼는지 코쿠라 영주 부하가 되어서 다케조를 강제로 데려가려던 영주의 명령으로 목검을 들고 정면으로 도전했으나 한방에 넉다운(.....). 이걸 마음에 품어서 다케조를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마을 사람들 보는 앞에 맥없이 당해서인지 듣보잡으로 무시당해 마을 아녀자들에게 기초 검술을 가르쳐보라는 다케조의 지시에 마을 사람들이 너무 약해서 저 사람은 안된다고 모두 거절당하는 수모를 당했다...[19] 물론 이때도 머리를 숙여가며 부탁했다.[20] 이런 행적이 훗날 오륜서를 적게되는 밑거름이 되었을 수 있다. 당시 책들은 유교 관련 서적들이니 다양한 철학을 공부할 수 있었고, 마을에서 농사를 지을 때 슈사쿠로 부터 만물의 흐름에 대해 배운바가 있어서 계속 복습하는 일환이었다. 즉 무사시는 칼을 휘두르기보단 내면을 다스리는 수련을 하고 다닌 것.[21] 그렇게 원하던 천하무적이란 것은 아지랭이에 불과하다던지, 잇토 이토사이와 싸울 때도 아무리 생각해도 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거나, 농사를 통해서 모든 것은 다 순리가 있는 등 이런 부분에 더 집중을 하고 있다.[22] 정황상 코지로와의 최후의 결투에서 입은 상처로 추정된다.[23] 사별한 아내가 8살 연상이라 언급되고 죠타로가 야규의 성을 쓰는걸 보면 야규 세키슈사이의 양녀나 다름없던 오츠와 이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24] 무사시 본인이 마을 아낙네들에게 검술을 가르쳐주며 다리 다친 거 때문에 얼마나 약해졌는지 설명하는데, 다리를 못 쓰니 팔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고 원래 검술을 잊어버린 수준으로 약해졌다고 말한다. 물론 자가진단 같은 거고 실전이란 모르는 일이지만, 정말 그 설명 그대로라면 무사시가 정상 컨디션이었다고 가정 시 이토 잇토사이를 쓰러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25] 잇토사이 또한 말은 코지로가 더 강하다 하지만, 실제로 싸운 뒤 무사시의 검이 너무 빨라 자기 검은 뽑지도 못하고 맨손으로 밀치는 게 다였다고 말한다. 덧붙여 이때 무사시는 위에 자가진단대로 70인과의 싸운 뒤 상처 및 여러 정신적 문제로 몸 상태도 실력도 최악으로 떨어진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