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23:48:23

유병우

<colcolor=#fff><colbgcolor=#004EA1> 유병우
俞炳宇 | Yoo Byung-woo
출생 1954년 10월 13일
서울특별시
사망 2024년 4월 1일 (향년 69세)
부모 아버지 유상근
형제 유영구, 형 유병진
자녀 장녀 유재희
차녀 유재경
장남 유재선
본관 기계 유씨
학력 휘문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중퇴
명지대학교 외국어학과 졸업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 Div
캘리포니아 신학대학원 Ph. D
현직 명지대대학교 원로목사
명진교회 담임목사
경력 관동대 기독교학과 교수 및 교목실장
명지병원 원목실장
명지학원 선교실장
명지대학교교회 담임목사

1. 개요 및 가족관계2. 생애 및 목회 철학3.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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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및 가족관계

유병우 목사는 유상근 박사의 3남이다. 명지대학교교회 담임목사로 2002년부터 2021년까지 시무하였으며, 2024년 4월 1일 향년 69세로 별세하였다.

유병우 목사가 시무했던 명지대학교교회는 학교법인 명지학원을 '학원 복음화, 민족 복음화, 인류 복음화'의 정신으로 설립한 그의 부친 유상근 박사가 1969년 설립한 교회로 한국 교회사에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유상근 박사의 장남 유영구는 현재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 이사장이다.

유상근 박사의 차남 유병진 교수는 전 관동대학교 총장, 명지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한 후 현 명지대학교 총장이며,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낸 경력이 있기도 하다.

유병우 목사는 부친의 명지학원 설립정신에 따라 학원 복음화, 민족 복음화, 인류 복음화에 일평생을 헌신하였으며, 이 땅의 교회들에게 칼뱅에 의한 개혁과 복음주의 신앙 노선을 제시하며 탁월한 스토리텔러 설교가로서 명지대학교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병우 담임목사가 부임할 당시만 해도 등록 성도 1400명에 불과했던 명지대학교교회는 출석 성도만 2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다.

2. 생애 및 목회 철학

유병우 목사는 유상근 박사의 기독교 교육 정신을 가장 잘 승계한 아들로 평가받는다.

부친 유상근 박사의 업적은 한국 교육계에 그치지 않았고, 그가 세운 명지대학교교회는 교육과 신앙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유상근 박사의 비전을 유병우 목사는 기독교 교육의 확장을 통해 한국 사회와 교회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소명의식으로 이어갔으며, 유상근 박사의 명지대학교교회 설립 못지 않게 유병우 목사의 이러한 기여는 한국 교회사에서 높이 평가될 만하다.

유병우 목사는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교회를 지향했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예배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훈련된 제자가 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생활의 영성을 추구하는 교회로 나아가고자 했던 그의 목회 철학은 기독교계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유병우 목사는 반기독교적 해방 신학과 좌경 세력으로 인해 변질된 진보 신학, 분열과 대립이 난무하고 이단과 적그리스도의 거짓에 속고 있는 이 땅의 교회들에게 칼뱅에 의한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신앙 노선을 제시하였고, 명지대학교교회가 '학원복음화, 민족복음화, 인류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며 이 시대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는 교회로서 계속 성장해 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병우 목사는 탁월한 보수 복음주의 스토리텔러 설교가로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등의 온라인 채널을 통해 설교 영상을 전혀 홍보하지 않았는데, 예배당에 출석하여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라는 확고한 신념과 함께 온라인 예배를 선호하는 세태에 대한 우려가 컸다고 한다. 또한 하나님은 성도가 직접 와서 드리는 예배와 예물을 기뻐하신다는 예배관을 가졌던 유병우 목사는 코로나 기간에도 온라인 헌금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3. 사망

2024년 4월 1일 향년 69세로 사망하였다[1]. 빈소는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는데, 박지만 EG 대표이사 회장, 온누리교회 이재훈 담임목사, 자유통일당 장경동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의 각 정당의 대표들과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 및 기독교계 거물급 인사들과 법조인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자녀들 결혼 때와 마찬가지로 부의금은 전혀 받지 않았다.

구제홍 목사는 유병우 목사가 ‘소명을 완수한 삶’을 사셨다고 증언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평가할 때 두 가지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고 말하며 그 두 가지 기준을 ‘하나님의 소명에 충실한 삶’과 ‘사랑’이라고 볼 때 “유병우 목사는 하나님의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삶과 동시에 사랑으로 섬긴 사람”이라며 그를 평가했다.

구 목사는 “유병우 목사는 주의 종으로 부름 받아 교수로서, 담임목사로서 사명감을 갖고 예배 중심의 목회, 완벽한 예배를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하며 “그는 면밀한 사람이었기에 예민해 남모를 고통이 있었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며 그의 사역에 대한 얘기를 전했다.

이어 구 목사는 “유 목사는 사랑이 많고 베풀기를 좋아했다”고 말하며 “그는 대접받는 것보다 대접하는 것을 좋아했고, 목회하면서도 연로한 성도들을 먼저 사랑으로 챙겼다[2]”며 그가 베푼 사랑에 대해 얘기했다.

신철웅 목사는 "우리에게 유병우 목사님은 단순히 '담임목사님'이나 '유 목사님'이 아니었다. 우리가 '목사님'이라고 할 때, 그 말은 유병우 목사님 한 분을 지칭하는 것이었다."라며 남다른 존경심을 표현했다. 이는 후배 목사들에게 유병우 목사가 깊은 존경의 대상으로서 하나의 대명사로 여겨졌음을 의미한다.

장례 후 유병우 목사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기억하며 추모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3]


[1] https://m.kmib.co.kr/view.asp?arcid=0019961986&code=61221111&sid1=lif&sid2=0001[2] https://m.newspower.co.kr/58277[3] https://www.threads.net/@phuquocthayan/post/C5VnGoRRKY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