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3 12:38:04

이시미네 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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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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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cccccc,#323232> '''<1군>
21 요시이 마사토 [[감독#s-1.1|
]] · 70 후쿠우라 카즈야 · 71 무라타 슈이치 · 73 카나자와 타케시
80 오츠카 아키라 · 82 오노 신고 · 84 구로키 토모히로 · 87 네모토 슌이치
88 가네코 마코토 · 90 미츠야마 히데카즈'''
<2군>
72 미키 료 · 75 호리 코이치 · 76 에무라 나오야 · 77 구리하라 켄타
78 오토나리 켄지 · 81 이시미네 쇼타 · 83 모로즈미 켄지 · 86 사부로
<재활/잔류군>
79 마츠나가 타카히로 · 85 오타니 토모히사
<트레이닝>
1군 키쿠치 다이스케 · 네모토 준페이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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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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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드래프트 제도 미시행 오츠카 야스오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소노다 요시노리 무라타 쵸지 아리토 미치요 마에다 고스케 히에이 다다오미(5)
1971년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이노우에 케이이치 다테 야스지 사토 히로마사 박덕용(키쿠무라 토쿠요) 다나카 요시오
1976년 1977년 1978년 1979년 1980년
모리 시게카즈(5) 하카마다 히데토시 후쿠마 오사무(4) 다케모토 유키오(5) 아이코 다케시
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이베 야스지 이시카와 마사루(4) 히가 요시토모(4) 가사하라 에이이치 이시다 마사히코(4)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세키 기요카즈 이라부 히데키 마에다 유키나가(4) 코미야마 사토루(4) 고이케 히데오(5)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요시다 아츠시 타케무라 준이치로 가토 다카야스(3) 사부로 사와이 료스케(4)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시미즈 마사우미(3) 와타나베 마사토 고바야시 마사히데(3) 다카하시 카오루(3) 다나카 료헤이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키타 타카시 니시오카 츠요시 우치 타츠야 쿠보 야스토모(3)
테지마 사토시(3)
야나기타 마사토시(1)
네모토 슌이치(2)(6)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오미네 유타(1)
코베 타쿠미(2)(6)
카라카와 유키(1)
핫토리 야스타카(2)(4)
키무라 유타 오기노 타카시 이시미네 쇼타(4)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후지오카 타카히로 마츠나가 타카히로(4) 이시카와 아유무 나카무라 쇼고 히라사와 타이가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사사키 치하야(4) 야스다 히사노리(4) 후지와라 쿄타 사사키 로키 스즈키 쇼타(4)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마츠카와 코 키쿠치 리쿠(4) 우에다 큐토(4)
(1) 고교생 드래프트
(2)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3) 역지명, 희망 입단 범위
(4) 하즈레 1라운더
(5) 지명 후 미입단
(6) 1순위가 아니지만 그 해 첫 번째로 지명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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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伊志嶺翔大2024.jpg
치바 롯데 마린즈 No. 81
이시미네 쇼타
伊志嶺翔大 / Shota Ishimine
생년월일 1988년 5월 12일 ([age(1988-05-12)]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출신지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시
학력 오키나와 대학 부속 고등학교 - 토카이대학
프로입단 2010년 NPB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 (2011~2019)
지도자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주루·타격보좌·외야수비보좌코치[1] (2020~2022)
치바 롯데 마린즈 2군 주루·육성야수코치 (2023~)
등장곡 ケツメイシ - カーニバル
응원가 응원단 자작곡[2]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치바 롯데 마린즈
2.2.1. 2011 시즌2.2.2. 2012 시즌2.2.3. 2013 시즌2.2.4. 2014~2016 시즌2.2.5. 2017 시즌2.2.6. 2018 시즌2.2.7. 2019 시즌
2.3. 지도자 시절
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성적5. 기타

[clearfix]

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야구코치이자 전 일본프로야구 선수. 데뷔 첫 해 혜성같이 등장해 최고의 리드오프 자리에 올라섰으나 바로 다음 해 부터 백업자리도 간당간당한 플레이를 보이며 추락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오키나와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3]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스즈키 이치로의 사인을 받은 후 프로야구 선수를 꿈꿨다고 한다.

아버지는 육상 코치였기 때문에 중학교 때까지 육상과 야구를 병행했고, 현 대회에서 200m 금메달을 따는 등 촉망받는 육상 유망주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때 육상을 포기하고 야구에 전념하기로 결정.

고시엔에 나간 적은 있으나 별 활약은 없고 대학 진학 이후 대학리그 최고의 외야수로 거듭나며 국가대표팀에도 뽑히는 등 상위지명이 확실한 특급 유망주로 성장하였다.

2.2. 치바 롯데 마린즈

2010년 드래프트에서 치바 롯데 마린즈 외에 오릭스 버팔로즈도 1위로 지명을 했다.[4] 하지만 추첨 끝에 결국 롯데가 지명권을 가져가며 치바롯데에 입단. 계약금만 한화로 거의 10억원을 받았다.

2.2.1. 2011 시즌

입단 이후 8월 달에 잠깐 편도선염으로 빠지기는 했으나 그 외에는 거의 전 경기를 출장하며 그 해 데뷔한 신인 중 유일하게 규정타석 달성에 성공하였다.

또한 10년 만에 신인 30도루에 성공하면서 최고의 리드오프로 거듭나는데 성공했다.

시즌 성적은 126경기 타율 .261 2홈런 21타점 30도루. 데뷔 첫 시즌부터 110안타를 치며 100안타도 넘겼다.

2.2.2. 2012 시즌

시범경기에서 1번타자로 계속 고용될 정도로 기대를 많이 받았으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소포모어 징크스만 보여주면서 24경기 출장으로 1군에 별로 못 있었다. 그래도 2군에서 38도루(11도루자)를 기록하며 도루왕을 차지했다.

2.2.3. 2013 시즌

2012년보다 월등히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지만 감독이 주로 플래툰으로 기용하였기 때문에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다. 주로 좌완 선발일 때 선발로 출전하였고 그 외에는 주로 오기노 타카시의 대수비로 기용되었다.

시즌 성적은 106경기 타율 .234 3홈런 11타점 8도루. 하지만 플래툰과 대수비를 왔다갔다 했기 때문에 150타수도 되지 않았다.

2.2.4. 2014~2016 시즌

2014년에는 89경기에 나왔지만 타율은 2할을 겨우 넘겼고, 8도루를 기록했지만 도루자도 6개나 기록하면서 주루 플레이에서도 강점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2015년에는 아예 백업 경쟁에서도 밀려 34경기 출장에 그쳤고, 2016년에는 부상까지 겹치면서 겨우 3경기에 나와 타율 .000을 기록했다.

2016시즌이 끝난 후 2011년 자신이 입단할때부터 달았던 등번호 5번에서 38번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부활에 성공하지 못하고 줄곧 2군에서 보낸 이시미네 자신조차도 순순히 이를 받아들였으며, 훗날 5번은 2017년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팀에 입단한 야스다 히사노리에게 들어간다.[5]

2.2.5. 2017 시즌

부상에서 회복되었는지 초반에는 스타팅 멤버로도 나오는 등 나름 중용되었지만 1할 7푼이라는 식물타격 때문에 오기노 타카시, 로엘 산토스 등 라이벌들에게 밀려서[6] 중반에 2군으로 내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7]

시즌 성적은 52경기 타율 .173 0홈런 4타점. 안타를 18개 쳤는데 그 중 16개가 단타였다.

2.2.6. 2018 시즌

시즌 초반은 2군에서 맞았다가 4월 12일 후타키 코타 대신 1군으로 콜업되어 그날 바로 6번 지명타자로 나섰다. 이날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 후로 한 경기에 대타로 나와 번트를 댄 후 4월 18일 2군행으로 내려갔다. 대신 그 날 선발을 맡기로 한 카라카와 유키가 콜업되었다. 6일 동안 1군에서는 2경기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4월 28일 기준 치바롯데 꽃미남 투표에서 8위를 기록하고 있다.[8]

7월 10일 오기노 타카시가 부상으로 2개월간 재활하게 되면서 1군에 돌아왔다.

7월 16일 후쿠우라 카즈야대주자로 나와 끝내기 도루자를 기록하면서 말아먹었다.

7월 18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로 폭망.

7월 20일에도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였으나 전 경기와 반대로 3안타로 활약.

오기노의 부상 덕에 얼떨결에 주전 중견수 자리를 차지했다.

7월 24일에도 6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한다.

그 후로 몇 경기 더 중견수로 나왔으나 얼마 못가 2군행. 기회를 너무 못 받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올 시즌을 끝으로 방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중.

2.2.7. 2019 시즌

일단 이 시즌은 살아남았는데 이구치한테 단단히 찍힌 핵심멤버 중 한 명이라 올해도 앞날이 가시밭길이다.

현재 2군에서 13경기에 나와 타율 .290에 1도루 1도실 기록중. 근데 안타가 전부 단타이다.

6월 17일 기준 34경기에서 타율 .211에 2도루로 최악. 안타는 여전히 단타밖에 없다. 이게 1군 성적도 아니고 2군 성적이다.

예상대로 방출당했고 은퇴 의사를 밝혔다. 2군 최종전 때 오랜만에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왔는데 그게 사실상 은퇴경기의 의미였던 것.

방출 후 인터뷰를 보니 구단에서 코치나 프런트 쪽 자리를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구단에서 영입 제의가 왔다고 한다. 고민한다는 기사가 나온 거로 봐서는 은퇴를 미루고 다른 팀에서 마지막 도전을 해 볼 수도 있을 듯. 일단 롯데는 1군 코치라는 나름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고 한다.[9]

결국 롯데의 코치제안을 수용하며 파란만장했던 1라운더 잔혹사를 종결하였다.

11월 17일 팬 감사제에서 은퇴식을 치러주었다. 그래도 원클럽맨이라고 챙겨 주는 듯.

2.3. 지도자 시절

2020년에는 롯데의 1루 주루코치를 맡았다. 딱히 특별히 주루플레이에서 이상한 짓을 한다거나 하진 않는 중. 그러던 중 10월 6일에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대신에 네모토 슌이치가 1군 주루코치로 복귀.

와다 코시로에게 도루 스킬을 가르쳐주기도 했다고 한다. 의외로 보이겠지만 이시미네의 통산 도루성공률은 74.7%로 꽤 높고 커리어하이인 2011년에는 84.2%로 도루 능력은 상당했다. 와다는 덕분에 입단 4년차이자 1군 데뷔 2년차에 대주자로만 나와서 도루왕을 딸 만큼 리그 최고의 스피드스타로 성장한다.

2023년부터는 2군 주루코치 겸 육성야수코치로 보직이 바뀌었다.

3. 플레이 스타일

발이 빠르다. 발이 빠르기 때문에 수비범위가 넓어서 중견수를 충분히 볼 수 있는 자원이다. 하지만 은근히 유리몸 기질이 있다.

타격은 대학 시절에는 뛰어났으나 파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슬랩성 타구를 자주 날렸다. 한마디로 똑딱이. 그래도 대학 시절에는 특급 교타자 자원으로 주목받았는데 프로에 가니 교타 능력도 안 통해서 망했다.

의외로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도루센스가 상당히 좋았다. 전성기 시절에는 오기노 타카시와 거의 동급이었다. 물론 전성기 이후에는 성공률이 떨어져서 통산 성공률은 74.7%긴 한데 이 정도만 돼도 도루실력이 출중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수준.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사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1 치바 롯데 마린즈 126 422 .261 110 16 6 2 21 32
(4위)
43 .341 .329
2012 24 60 .200 12 2 0 0 1 1 3 .238 .233
2013 102 137 .234 32 2 0 3 11 8 18 .323 .314
2014 89 118 .220 26 6 1 1 8 8 12 .292 .314
2015 34 86 .291 25 3 0 0 12 5 10 .357 .326
2016 3 2 .000 0 0 0 0 0 0 0 .000 .000
2017 52 104 .173 18 1 1 0 4 4 9 .239 .202
2018 18 46 .283 13 2 0 0 2 1 8 .389 .326
2019 1군 기록 없음
NPB 통산
(8시즌)
448 975 .242 236 32 8 6 59 59 103 .314 .310

5. 기타

  • 1990년생인 동생 이시미네 다이치도 같은 고등학교와 같은 토카이대학을 나온 야구선수였다. 하지만 형과 달리 프로에 가지 못하고 실업야구 쪽으로 진출. 대신 이쪽은 2021년 현재도 현역이다. 이외에도 1984년생 형이 한 명 있는데, 두 동생과 달리 고향인 오키나와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직급은 부부장. 또한 아버지도 고등학교 교장 선생이라고 한다.
  • 대학교 때 얼마나 잘했냐면 세계대학야구 일본 대표팀이 이시미네 재팬으로 불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 자신이 상대해본 투수 중 가장 뛰어난 투수로 마에다 켄타를 꼽았다.
  • 일본에선 나름 이케맨 대접을 받는 듯 하다. 호불호 갈릴 인상이긴 해도 약간 제프 하디닮은 훈남이긴 하다. 실제로 치바롯데 꽃미남 투표에서 2016년에 5위를 기록했다.
  • 사토자키 토모야는 의외로 A급으로 분류했다. 배팅 센스도 있었고 도루 능력도 있었으나[10] 수비에서 입스 비슷한게 와서 송구능력 저하 문제가 온 게 컸다고 평가했다.


[1] 주루는 1루를 맡는다.[2] 熱い風巻き起こせ 情熱込めてゆけ(イヤササ) さぁ遠くまで遠くまで飛ばそうぜ チバリヨ 伊志嶺(뜨거운 바람을 일으켜라 졍열을 담아서 가라(이야사사)(イヤササ는 오키나와 고유의 추임새이다. 오키나와 출신인 오릭스의 오오시로 코지와 DeNA의 미네이 히로키의 응원가에도 이야사사가 나온다.) 자 멀리까지 멀리까지 날려버려라 힘내라(チバリヨ는 오키나와 사투리로 힘내라는 뜻이다.) 이시미네[3] 여담으로 어릴 때 야구 연습이 없으면 바다에서 수영하면서 물고기를 잡는 게 취미였다고.[4] 사실 롯데도 오릭스도 첫 지명에서 추첨에 패해 두번째 지명을 한 거였다. 여기서 롯데가 이기면서 오릭스는 꿩 대신 닭으로 야마다 테츠토를 지명. 근데 그 야마다도 야쿠르트와 중복지명이었기에 야쿠르트가 야마다를 데려가게 되었다. 결국 3연속 꽝을 뽑은 오릭스는 고토 슌타를 지명하게 되었다.[5] 지바롯데의 고졸야수가 입단하자마자 한자릿수 등번호를 받은건 니시오카 츠요시 이후 15년만이었다.[6] 시즌 초에 중견수 자원만 무려 3명이나 됐다. 문제는 그 3명 다 식물타격을 보여줬다. 그나마 오카다 요시후미가 40타수 무안타 행진을 벌이다가 일찌감치 2군으로 밀려나 주었는데 그 유리몸 오기노 타카시가 풀 시즌을 완주하였고, 5월 달에는 또다른 식물타격 중견수 자원 로엘 산토스가 영입되었다.[7] 중견수 외 코너 외야수의 경우는 타격이 상당히 중요한데, 이미 좌익수에는 타격왕을 두 번이나 차지한 카쿠나카 카츠야가 있고, 우익수에는 이시미네보다 타격이 좋은 기요타 이쿠히로, 가토 쇼헤이 등이 있기 때문에 이시미네가 갈 곳이 없다.[8] 치바 롯데 마린즈는 매년 꽃미남 1-5위까지를 투표로 뽑는다. 참고로 15-17시즌까지 3년 간 오기노 타카시가 1위를 해서 18시즌에서 그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으로 취급하여 투표가 불가능하다. 인터넷/현장 투표를 받으며 남녀 모두 투표할 수 있지만 여성 표만 집계에 들어간다.[9] 아마 외야수비나 주루코치 쪽으로 추정. 마침 1루 주루코치 네모토 슌이치도 2군 코치로 밀렸다.[10] 2011년 1년차의 성적만 보면 오기노 타카시가 잘 할 때랑 큰 차이가 없다. 2011년 퍼시픽리그는 리그 전체 ERA가 2점대일만큼 극도의 투고타저였으니 타격이 조금 아쉬워보이겠지만 저정도는 똑딱이여서 그렇다는 걸 감안하면 훌륭한 1번타자감. 1년차부터 저런 성적을 찍을 만한 선수는 1라운드감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