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2 17:22:19

일본어 잔재설

일본어 잔재론에서 넘어옴
1. 개요2. 설명3. 실제로는 일본어 잔재가 아닌 것
3.1. 언어학 요소3.2. 예시
3.2.1.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단어3.2.2. 국명, 지명, 역사3.2.3. 외래어
4. 왜 이런 잘못된 속설이 퍼졌나?
4.1. 한문 지식 부족4.2. 일본식 한자 읽기에 대한 오해4.3. ≪국어ㆍ조선어 자음 및 용자 비교례≫4.4. 검증을 게을리하는 매스컴과 포털4.5. 국까스노비즘
5. 실제로 일본어 잔재인 것6. 일본어 잔재인지 불확실한 것7. 관련 문서


日本語 殘滓說

1. 개요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일본어 잔재가 아직도 한국어 안에 남아있다는 주장.

2. 설명

사실 서로 다른 두 문화가 접촉할 때 국력, 문화적 영향력 같은 힘의 차이가 있으면 언어도 영향을 받아 의도치 않게 종속되거나 사멸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한 언어가 다른 언어와 상호작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본래 있던 단어나 표현을 외국어가 대체한다고 해도 관점에 따라서는 큰 문제가 아니다. 다만 한국일본제국주의식민지 관계로 얽힌 복잡한 근현대사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광복 이후 한국에서는 일본 잔재의 청산 문제가 계속 제기되어 왔고, 그 연장으로 한국어 속에 남은 일본어 잔재도 청산해야 한다는 시각이 꾸준히 존재했다.

영문학자 이재호 교수는, 한국 광복 이후 미군정이 들어오자 필요에 의해 영한사전을 편찬하던 중 시간과 돈이 모자라 당시 일본이 가지고 있던 영일사전을 그대로 가져온 탓에 일제식 언어문화도 남아서 이런 현상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나온게 1946년 류형기 목사의 ≪신생영한사전(新生英韓辭典)≫이었고, 현대 사전들도 이를 충실히 본받아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하고 있다. 영문학자가 영어사전 보다가 빡쳐서 쓴 버그리포트 ≪영한사전 비판≫에 자세한 내용이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일독을 권함.

공영방송을 비롯한 주요 언론 매체에서는 일본어 잔재 청산 논리가 상당부분 통용되며, 국립국어원이나 학계의 다수견해로 채택된 사례도 있으니 몇몇 사례는 참고하는 것이 좋다. 다만 시중 고시 또는 공무원 수험서는 일본어 잔재인지 아닌지 분명하지도 않은 사항에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고 진리처럼 싣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특히 깨알같은 재정국어 여기에는 인터넷 맞춤법 검사기도 한 몫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별다른 근거도 없이 "일본어 잔재다!"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매우 많고, 대중들 역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문제삼으면 매국노 내지는 친일파라고 여긴다. 사안이 복잡한 만큼 모두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이 문제는 단순하게 접근하기에는 좀 복잡한 양상을 띈다. 이런 저런 문제가 뒤섞여 있어서 파고들 수록 새로운 사안이 많고 언어적 접근과 함께 역사적 접근이 상당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민학교처럼 일본 제국주의 정신을 담고 있어서 반드시 청산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본어에서 온 말이 아니어도 오해받는 경우또한 상당히 많다. 순 우리말 토시처럼 일본어로 오해받는 한국어인 경우도 있고, 일본제 한자어라고 생각했던 단어가 고려, 조선 시대의 사료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던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경성(京城)과 부락(部落).[1]

이렇다 보니 심지어 전문가들도 실수로 잘못 판단하는 일이 종종 빚어진다. '해외'(海外)가 한 때 국립국어원의 순화 대상이었던 것도 그런 사례인데, 당시에는 '섬 나라인 일본을 기준으로 한 표현이다.' 라며 '국외'(國外)로 순화하라고 했으나, 역사학자들의 지적을 받아 2012년에는 순화 대상에서 빠졌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식 한자어 문서에서 추천 도서로 언급된 ≪사쿠라 훈민정음≫ 같은 경우도 고대 중국에서부터 쓰였던 '산보'(散步)를 일본식 한자어로 지목하는 등 은근히 오류가 있다. 무엇이 진짜 일본어 잔재인지 판단하는 것은 결코 혼자만의 독단적인 사고로는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사안인 것이다.

왜 복잡한가 하면 역사적으로 한국어와 일본어가 오랫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고, 계통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2] 예를 들어 한국어 ''과 일본어 시마(島) 같은 단어의 상관관계를 논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은 고대 문화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백제가야를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처럼 국립국어원에서 고유어을 살펴보다 보면 소리와 뜻이 일본어와 유사한 것들이 많다.

반면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식 표현이 들어와 당시 조선어, 한국어에 영향을 끼쳤다. 가령 '-하고 있었다' 같은 과거 진행형 표현은 이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원래는 유럽어식 표현이었던 것이 번역 문체가 되어 일본을 거쳐 유입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경제'라는 economy의 한자번역이 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 이 단어를 《사기》에서 유래한 理財(이재)라고 번역하고 일본인들은 《대학》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표현에서 차용한 経済(경제)라고 번역했다. 이재가 이코노미의 원의미와 실제적 의미 모두를 살린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돈벌이라는 표현보다 진중한 가치를 내재하는 경제가 압도적으로 통용되면서 이재는 치부(致富)의 표현이 되고 경제가 economy를 뜻하게 되었다.[3] 과거 일본식 한자어가 유입되던 현상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국가들이 비슷하게 겪었던 현상이다.

그러나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력이 차례로 발전함과 더불어 한국은 꾸준히 일제잔재 청산과 우리말 순화운동을 진행하였고 현대에는 서양과 직접 교류하며 청년층에서부터 영어식 외래어를 쓰는 경우가 늘어나 기존의 한자어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또한 중국은 상당수의 용어를 재검토하고 자체적으로 꾸준히 조어해오고 있기 때문에 드립으로 써먹는 씹덕말투를 제외하면 앞으로도 일본식 한자어가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요원하다.

여담으로 일본어 잔재는 타이완에서도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아저씨를 가리키는 歐吉桑(어우지쌍, 오지상), 아줌마를 歐巴桑(어우바쌍, 오바상)이 있으며[4] 최고를 一級棒(이지빵, 이찌방)이라 한다. 이외에도 운전기사를 가리키는 運將(윈장, 운짱) 등 한국어, 중국어보다도 훨씬 다수가 섞여있는데 이쪽은 언어순화 운동을 안 하므로 미디어 매체에서 그대로 나오기도 한다. 타이완은 한국과 다르게 일본 식민지배 역사에 대한 감정이 좋아서 그렇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3. 실제로는 일본어 잔재가 아닌 것

몇몇 일본어의 잔재가 아닌 말들이 일본어의 잔재로 오해받는 이유는 네티즌들이 자주 이용하는 맞춤법 검사기가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적한 사례들의 대부분은 맞춤법 검사기를 통해서 퍼진 잘못된 정보들이다. 정작 일본에서는 쓰이지 않는 한자어도 맞춤법 검사기에서는 일본식 한자어라고 잘못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지자체의 병크도 이를 부추긴다. 2015년 4월 서울시에서 발표한 행정 순화 용어 목록에는 식비(食費)를 일본식 한자어로 분류했지만, '식비'는 조선왕조실록에 이미 등장했던 단어다.
…濫徵綿布、銅器於匠人, 爲酒食費, 其判事任孝明…
…함부로 면포(綿布)와 동기(銅器)를 장인(匠人)들에게서 징수하여 주식비(酒食費)로 삼았으며, 그 판사(判事) 임효명(任孝明)은…
≪단종실록≫ 12권, 단종 2년 10월 29일 丁未, 2번째기사
이로써 식비는 주식비에서 만 빠졌을 뿐 짜임새가 같은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하 예시는 잘못 알려진 주장-일본어의 잔재가 아닌 이유 순이다.

3.1. 언어학 요소

  • 말 끝에 붙는 "~요"는 일본어의 잔재다.
    일본어 종조사 よ 또는 조동사 よう와 국어의 보조사 요는 3개 다 기능이 서로 다르다. 예를 들면, '가요'라는 말에서 보조사 '요'는 '가'라는 반말을 존댓말로 바꿔주는 기능을 하지만 '行こうよ'에서 'よ'는 '行こう'의 권유의 의미를 강조할 뿐, 존대의 의미는 없다.
  • 효과를 /효꽈/로 읽는 등, 된소리가 늘어난 건 된소리가 많은 일본어의 탓이다.[5]
    이미 조선시대부터 활발히 사용되던 "사이시옷" 현상이 확산된 결과다. 오히려 20세기 초반의 대세는 일본어의 무성파열음을 평음으로 적는 것이었다.(예를 들자면 山本(야마모토) - 야마모도) 다만 임진왜란 이후 두음의 된소리화가 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일본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건 세상살이가 험란해질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한국전쟁 당시 북한소련(러시아어)[6]의 영향이라는 논리를 펴도 들어맞을 수 있다.
  • 조사 는 일본어에서 온 것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
    보통 조사 를 남용하여 문장을 읽기 곤란할 때는 의를 지우지만, 조사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이를 확대해석하여 조사 를 아예 쓰지 말라는 과격한 주장을 펴기도 한다. 주로 글 잘 쓰는 요령을 알려 준다는 블로그 포스팅에서 볼 수 있는 주장인데, 애초에 출처도 없거니와, 논술 전문가나 국어 학자, 현직 국어 교사의 주장도 아니니 의심해 볼 여지가 많다. 가 일본식으로 쓰인 경우는 주로 ~에의, ~로의처럼 다른 조사와 결합하여 쓰이는 경우인데, 조사 하나만 써도 뜻이 통하는 경우에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순화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극단적으로 조사 를 배격한다면, 오히려 말을 잘못 해석하게 된다. 실제로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가 나왔을 때 이를 언니의 별명이 신데렐라인 줄 알았다는 시청자가 있었다(언니 = 신데렐라). 하지만, 드라마의 내용은 주인공인 언니를 동화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의붓언니에 비유한 것이었다(언니 = 의붓언니).
    또한, 형태만 달랐을 뿐 조선시대에도 조사 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조사가 이미 존재했다. 결코 별도의 조사 없이 단어만 늘어놓고 문장을 썼던 것이 아니다. 15세기 국어에 쓰였던 사잇소리가 그러한 예이다. 링크 이것이 나중에 조사 로 대체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우리말의 조사 에 대해서만 따로 분석한 책도 있으니 참고해 보자. 링크

3.2. 예시

예시는 가나다 순으로 정렬하도록 한다.

3.2.1.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단어

일제강점기 때 옮겨온 단어는 일본식 한자어 문서를 참고하자.
  • 가족(家族)을 식구로 써라.
    가족과 식구는 뜻 자체가 다른 단어다. 일단 가족은 족보를 따지는 차원에서 쓰는 경향이 있고, 식구는 핏줄과는 관계 없이 한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을 묶어 부르는 말에 가깝다. 즉, '강아지도 우리 가족'보다는 '강아지도 우리 식구' 쪽이 자연스럽다. 과거 일본의 한국인 모 교수가 주장했던 이야기로, 역시 검증되지 않는 글이며, 마치 일부에게 정설처럼 퍼진 말이다. 집 가(家)자를 쓰는 가족과, 먹을 식(食)을 쓰는 식구는 뜻 자체가 다른 단어, 실제로 식구보다 가족이 많이 문헌에 등장한다. 중국의 여러 문헌에도 등장하며 현재도 쓰인다. 단 일부 지방에서는 고대어로 본다고. 예:) 한국고전 - 死徙相望 家族分離
  • 감사(感謝)는 일본사람들이 사용한 어휘다.
    중국의 전근대 문헌에도 보이는 표현이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등장한다. 애초에 지금 중국어에서도 실생활에서 쓰이는 말로, 단어 그대로 고마움을 느낀다는 말이다. 빈도의 증가는 일어의 영향일 수 있지만 원래 국어에 있던 표현이다. 2009년도에 독서신문 편집자가 쓴글인데, 검증없이 일부에게 퍼졌다. 심지어 SBS '파워 FM'에서 짬 시간에 내보내는 <SBS 생활 정보>도 이런 잘못된 정보를 내보냈다. 2월 21일 오후 3시 30분께에 내보낸 해당 방송에서는 고맙습니다는 신을 의미하는 고대 순우리말 '고마'가 어원으로 신처럼 소중히 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반면, '감사합니다'는 일제 강점기에 쓰인 한자어라고 주장했다.
    해당 방송에서 설명한 고맙다의 어원은 국립국어원의 공식적인 견해와는 다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또한 이 주장은 일본 혐한 극우들이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었다'며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개소리로 이용하기도 한다.
  • 구두라는 말도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일본어로 신발을 뜻하는 쿠츠(くつ, 靴)와 발음이 비슷해서 나온 주장이지만 정확한 어원이 불분명하다. 일단 공식적으로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일본어 くつ(靴)를 어원으로 보고 있고, 그 이후에 출간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다음에서 제공)에서는 어원이 분명치 않으나 くつ(靴)가 어원이 아닐까 추측한다고 되어 있다. 이전 서술에서는 백제 시대부터 쓰던 말이라고 되어 있었다. 몽골어에서 번역된 말이라는 주장도 있으니 참고. #1#2
    이 글에 따르면 일본의 어원 검색 사이트에서 くつ(靴)의 어원이 한국어 구두에서 온 말 뭐지? 순환논증? 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 오히려 한국어에서 일본어로 넘어간 말일 가능성도 있다.
  • 근성(根性)은 일본 곤조에서 유래한 단어다.
    1492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시문집을 편찬한 동문선에 '근성이 작아…'란 대목이 있다. 그리고 조선 정조 때 간행된 홍재전서의 무인기문에는 '그의 충의의 근성은 평소에 온축된 것', 화평귀주 치제문에 '효우근성(효성과 우애가 타고난 천성)'이란 기록이 있다. 옛날에도 타고난 성질이나 천성 또는 뚝심, 배포, 끈기와 비슷한 뜻으로서 현재 사용되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 농악(農樂)은 일제가 조선 음악을 천대해서 만든 말이다.
    한동안 학계에서도 농악이란 낱말이 1936년 일본인 학자 무라야마 지준의 '부락제'에서 처음 나왔다고 알려져 있었다. 또는 일본 전통 탈극인 노가쿠(能樂)를 연원으로 한 일본식 음악조어로 만들어졌단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아래의 예문처럼 농악은 조선시대부터 이미 보편화된 단어였다. 지역에 따라 풍물(風物), 풍장, 매구, 굿, 두레, 걸궁, 걸립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지만 당시 사대부들의 문헌에는 농악이 주로 많이 쓰인 편.
농악은 편안하다. 또한 모두의 음악이 각기 절주가 있고, 조리가 있다. 난잡한 듯하여도 난잡하지 않다. 나는 곧 농악과 군악을 심히 즐겨한다.
18세기 문인 옥소 권집의 문집
대개 시골에서는 여름철에 농민들이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논을 맸다. 이것을 농악이라고 한다.
1890년 황현의 매천야록
야삼경에 마을 사람들이 농악을 크게 울리며 말하기를 모두 한 무리를 유지해 가락암으로 가서 화적을 물리치자고 했다.
1894년 충남 서천의 유생 최덕기가 쓴 일기
  • 대하(大蝦)는 일본어 '오오에비'(おおえび)의 일본식 한자 표기이므로 '왕새우'로 순화해야 한다.
    거짓이다. 대하라는 단어 역시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한 당대 기록에 숱하게 나온다. 특산품으로 대하를 바쳤다는 공문서에 大蝦라는 단어를 쓰고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서 각 지역의 특산품이 대하라고 소개하는 기록에서도 제대로 大蝦라고 표기하고 있다. 우선 일본어에서 'オオエビ'는 '쿠루마에비'(クルマエビ, 車海老)와 같은 말로 이는 '보리새우'에 해당하는 말이고, 새우를 가리킬 때도 '蝦' 대신 '海老'라고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대하(Fenneropenaeus chinensis )는 한국 서해, 중국 보하이(渤海), 동중국해 연안을 주요 서식지로 하는 새우로, 역설적이게도 일본어 정식 명칭도 コウライエビ(高麗海老), 즉 한국새우라는 뜻이다. 일본에서도 한때 잡았으나 지금은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수입업체 이름에서 비롯된 '타이쇼에비'(大正海老)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 도합(都合)은 일본어 '쓰고우'(つごう)의 한자표기이므로 ‘합계’ 등으로 순화해야 한다.
    도(都)가 ‘모두’이고 합(合)이 ‘합하다’이므로 ‘모두 합하여’라는 뜻의 지극히 정상적인 한자어다. 승정원일기조선왕조실록, 일성록에도 등장하는 표현이며 어떤 물품들의 총합을 표시할 때 사용했다. 그와는 별개로 일본어 '都合'에는 합친다는 뜻 외에도 형편, 융통하다 등의 뜻이 더 있으므로 주의하자. (언어간 동형이의 한자어 문서 참고.)
    …貿銀之數四五百同, 都合二千六百餘同

    …은을 무역할 대금 4, 5백 동 등 도합 2천 6백여 동에 달합니다



  • 명일(明日) 금일(今日) 작일(昨日) 익일(翌日)은 일본어 잔재다.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고려사절요, 그 외의 야사나 문집 등 고전문헌에서 용례를 풍부(...)하게 찾아 볼 수 있는 한문 유래 단어다. 원래 한중일 한자문화권에서 계속 써온 말이다. 그런데 최근 군대에서는 자기들이 일본 출신이 많으면서 일본에서 온 말이라며 없애라 하는 추세(...) 정확하게는 한문/문어투의 표현이며, 이런 단어들은 일본어 잔재여서라기보다는 같은 의미를 잘 전달하는 일상적인 단어(내일,오늘,어제,다음 날등)가 이미 있음에도 구태여 뉘앙스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입말과 괴리된 채 쓰여 의미전달에 오히려 지장[7]을 주기 때문에 쉽게 고쳐쓰자고 하는 게 맞다. 옛날에는 입말과 글말이 철저히 분리되어 글(한문)로 쓸 때는 今日이라고 쓰고 입으로는 오늘이라고 말했지만, 언문일치에 한글전용이 원칙인 현대 한국어에서는 오늘을 나타내는 단어로 그냥 오늘을 그대로 쓰면 되니까.
  • 민초(民草)는 백성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어다.
    조선시대 문집에도 등장하는 표현이다. 조선 초기의 학자인 권근이 개국공신 조준을 찬양한 시에 민초들이 단비를 바라듯 하였거니 천명이 돌아가는 것을 알았으므로 라는 표현이 나타나며[8], 성종 때의 학자인 이석형의 문집 '저헌문집'에도 民草已從風草偃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이 표현은 《논어》 〈안연편〉 19장에서 나온 군자(君子)[9]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小人)[10]의 덕은 풀과 같으니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쏠리게 마련이다.[11] 라는 말에서 온 말이다. 이 구절은 '군자'의 통치를 받아 '교화되는 대상'으로써의 '민'을 속성을 규정지은 말로써, 여기의 '초'가 '민'과 묶여 '민초'라는 말로 파생된 것이다.[12]
  • 부락(部落)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부락(部落)은 조선왕조실록에 422회 등장하는데, 거의가 ‘야인’, ‘평안도’, ‘왜인’ 등과 함께 등장한다. 즉 오랑캐(조선인 눈에)의 마을/촌락은 ‘부락’으로 지칭한다는 얘기. 중국 쪽에서도 비슷한데, 그네들 어휘 해석으로는 ‘원시사회에 혈연이 가까운 씨족 종족 등이 모여 형성된 집단’을 부락이라 칭한다. 결국 비슷한 의미이며 조선시대 사람들은 여진족이나 왜인들을 미개인(원시인)으로 간주했으므로 그네들 마을을 특히 ‘부락’으로 칭한 것이다. 일본은 특이하게 근대에 와서도 ‘부락’이라는 용어를 자국민 일부에게 사용했는데, 일본 국내에서 차별받는 천민들 마을을 특히 部落이라 불렀다. 이것이 역으로 한국으로 알려져, 부락이 일본어 잔재라고 말하는 선무당들이 생겼다. 다만, 만약에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인 마을만 특히 부락이라 불렀다면 그건 차별적 용어가 맞다. 허나, 部落이라는 어휘 자체는 한서(漢書)나 신당서(新唐書)에도 등장하는 만큼, 조선왕조실록 또한 물론이고, 굳이 일본어 잔재라는 평가는 무의미하다. 1920 ~ 1930년대에 조선의 문인들의 문예동인지(同人誌) 이름으로 부락이 들어간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요즘도 잘만 쓴다), 이들은 과연 조선식의 ‘오랑캐/미개인 모임’이라는 의미로 썼을까? 아니면 일본식의‘천민집단’이라는 의미로 썼을까? 이들은 소위 문인(文人)으로서, 글을 파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비하하는 그런 이름을? 답은 자명하다. 바로 ‘혈연이 가까운 씨족’을 상기하면,‘혈연에 비할 만큼 친밀한, 동인(同人)들의 모임’이라는 의미. 친밀감 일체감의 강조이다. 애초 일본에서도 부락이 차별 용어로 자리 잡게된 건 피차별부락민을 줄여서 부락민이라 부르면서 부터다. (아바타와 비슷한 경우.) 그 이전에는 한중일 다 집락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썼다.
  • 산보(散步)는 일본식 한자어다.
    한자문화권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던 단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시에서 숱하게 발견되는 산보라는 단어들이 명확한 증거가 된다. 정작 일제강점기 때 산보보다 더 고급스럽게 인식된 단어는 조깅이나 하이킹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외국어를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마 구한말 외국어 시험 때문에 자살까지 했던 사례가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자
  • 십분(十分)은 '아주 충분히'를 의미하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이므로 '충분'으로 순화하자.
    이는 위의 식비, 도합과 마찬가지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보이는 단어일 뿐만 아니라, 일본어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다른 근거도 있다. 바로 강조 표현에 관한 것인데, 일본어에서도 같은 의미로 十分(じゅうぶん)이라는 표현이 있으나 강조해서 말하고자 할 때는 十二分(じゅうにぶん)이라는 말을 쓴다. 반면 한국어에선 十分의 강조 표현으로 백분(百分)/만분(萬分)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예: 네 심정은 백분 이해한다.) 상식적으로 이 말이 일제강점기 때 건너왔다고 가정해도, 두 언어에서 강조 표현이 분리될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확한 어원을 짚자면 할푼리가 일본에서부터 도입되기 전엔 분리호(分厘毫)를 썼다. 즉 십분은 100%, 십이분은 120%, 백분 천분은 1,000%하고 10,000%라는 뜻이다.
    아마도 이 단어에 대한 오해는 十分이라는 한자에서 '아주 충분히'라는 의미를 도출하기는 어렵다는 점, '충분'에 쓰이는 '充'자 역시 일어 음독으로 'じゅう'이라는 점 때문에, 充分과 十分이 일어에서만 같이 쓰이는 것으로 착각한 것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帝嘗求十分純潔光姸好細白紙于我…

    일찍이 황제가 십분(十分) 순결(純潔)하고 광채가 좋으며 가는 백지[細白紙]를 우리에게 요구하였으므로…



  • 애매하다(曖昧-)는 일본식 한자어이니 '모호하다'(模糊-)라고 써야한다.
    애매라는 단어가 일본어에서 왔다는 설이 있으며 근거로 발음의 유사성을 들고 있는데 애매하다는 말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모두 사용되며 같은 한자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음이 전부 비슷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한자어인 경우 일본어와 한국어의 발음이 유사한 경우는 엄청나게 많다. '애매(曖昧)'와 순우리말 '애매'가 있으며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한자어 '애매(曖昧)'는 희미하여 확실하지 못한 것을 말하고 순우리말 '애매'는 '애꿎다, 억울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애초에 '애매(曖昧)'와 '모호(模糊)'는 둘 다 원래 아주 작은 수를 가리키는 불교 용어다. 오히려 '애매'에 '모호'를 붙여서 쓴 '애매모호'가 일본식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흔치 않은 표현이다. 오히려 한국어로 작성한 문장에서 압도적으로 애매모호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 중 논란이 되는 것은 한자어 '애매(曖昧)'인데, 일본에서는 애매모호모호도 자주 쓰지 않으니, 자연히 애매(曖昧)라는 단어가 사용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일본식 표현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가졌을 법하지만, 이건 아래 예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록에서도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前日上言聽納之說, 獲蒙兪允。 雖臣等識淺才疎, 豈敢以曖昧之說, 仰干聰聽?

    전일에 상언(上言)한 바, 간언(諫言)을 들어주어야 된다는 설(說)은 윤허(允許)를 얻었는데, 비록 신 등이 견식이 얕고 재주가 쓸모없지마는, 어찌 감히 애매(曖昧)한 말로써 우러러 임금에게 듣기를 요구하겠습니까?




    여담으로 한자어 '애매'와 '모호'는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애매는 '단어의 의미'가 불분명한 것을 의미하며[13], 모호는 '단어의 기준'이 불분명한 것을 의미한다.[14]
  • 에누리란 말도 일본이 만들었다.
    옛날부터 잘만 쓰이던 순우리말이다. 사타구니, 소쿠리, 야코, 뺑소니, (후술할) 토시 등도 비슷한 경우인데, 받침 없는 음절이 여럿 나오다 보니 발음이 일본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괜한 의심을 사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에누리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널리 쓰이고 있는 할인(割引)이 순일본말에서 온 단어이다(割り引き:わりびき). 일본식 한자어 참조.
  • 오뎅은 '어묵'으로 순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얽혀 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생선살을 으깨어 이것저것을 넣고 익혀서 응고시킨 음식’을 오뎅에서 어묵으로 순화하는 문제다. 이 경우에는 순화하는 것이 맞다. 왜냐면 일본어에서 ‘오뎅’은 요리 이름이지 요리 재료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어 ‘오뎅’은 어묵, 묵, 유부, 곤약 등을 끓는 장국에 넣어 익힌 요리 이름이고, 어묵은 일본어로 ‘스리미(すり身)’ 또는 가마보코(かまぼこ)이다. 한국어에서 오뎅은 의미가 변질되어 어묵을 가리키지 탕을 가리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음식점 메뉴의 안주 이름이 ‘오뎅탕’이며, “길거리 분식점에서 오뎅을 두 꼬치 먹었다.”라고 하는 등이다. 또, 부산오뎅은 부산에서 만드는 어묵이지, 부산식 탕요리 이름이 아니다. 이러한 오뎅은 어묵으로 순화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고, 순화함이 바람직하다.
    두 번째로 일본의 탕요리인 ‘오뎅’을 어묵탕으로 순화하는 문제이다. 오뎅은 '어묵을 비롯해 여러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요리의 총칭'을 말하는 것으로서, 실제로 어묵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하므로 어묵탕과 1:1로 대응하기 어렵다. 또 일본 사람들이 먹는 일본의 요리 이름을 우리가 순화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오뎅’이라는 일본 고유요리 이름을 인정하면 되고, 아무 문제 없다. 같은 맥락에서 소설가 박계주가 이런식으로 일본 고유어를 한국어로 순화하는 운동을 비판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 고유요리 다쿠앙을 단무지로, 우동을 가락국수로 순화하는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서상 김치를 기무치로 발음만 바꿔도, 반발심리를 표출하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다. (물론 이건 김치가 외국에서 기무치로 통용되는 것에 대한 경각심에 의해 시작된 심리라 맥락이 다르긴 하다. 이 때문에 일본과 문화싸움을 하기도 하였고.) 이건 흡사 스팸을 부대찌개라 순화하는 격이다.
  • 오케바리는 일본어로 '결정'을 뜻하는 단어 '오키마리'(お決まり)에서 유래했다.
    '오케바리'의 어원은 아직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단지 '단어도 비슷하고 뜻도 비슷하니까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다. 'OK. Buddy.'라는 영어 문장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참고
  • 왕녀(王女)는 일본에서 만든 정체불명의 한자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나올 뿐 아니라, 중국의 역사서인 사마천사기, 진수삼국지 등에도 많이 나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왕녀나 공주란 한자어 대신 '히메(姬)'라는 고유어를 더 자주 쓴다. 원래 천황제이기 때문에 황녀라면 몰라도 왕(王)이 들어가는 표현을 쓸 이유가 없다.
  • 정상(頂上)은 산꼭대기라는 의미의 일본식 한자어다.
    고려 말엽부터 쓰인 한자어다. 다만 산꼭대기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고스락'이라는 말이 있긴 하다.
  • 토시는 일본식 표현으로 '덧소매'로 순화해야 한다.
    완전히 잘못된 지식. 토시는 순우리말이다. 덧소매 형태의 의복을 가리키는 일본어 중에 토시라는 말은 없다.

3.2.2. 국명, 지명, 역사

  • Korea: 한국의 영문 표기인 Korea는 원래 Corea였는데 일본이 일본의 영문표기인 Japan보다 뒤 순서로 놓기 위해 의도적으로 C를 K로 바꿨다.
    일본어 잔재설 중 가장 논란이 큰 대표적 떡밥이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이미 "Corea"와 "Korea"는 혼용되고 있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라틴어 계통에서는 "Corea"를, 게르만어 계통에서는 "Korea"를 사용한 정도. 지금도 남유럽 쪽에서는 "Corea" 혹은 "Coree"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볼 때 해방 후 게르만어 계통의 직계인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이 관여하는 바가 많았던 해방 이후 미국이 자주 쓰면서 굳어졌다는 추측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사용한 한국의 공식 영문 명칭은 "조선"의 일본어 발음인 "Chosen"이었다. 또한, 당시 일본의 영문표기도 "Japan"이 아닌 "Nippon"이었기에 C를 K로 바꾼다 해도 알파벳 순서상에서는 변화가 없다. 정작 대한제국(조선) 정부는 그 직전 왕조, 즉 '고려'가 공식으로 쓰이는 상황을 달갑지 않게 여겨 "Chosun"이나 "Empire of Dai Han"으로 표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홍보 부족으로 실패한 뒤에도 내부 기록은 자기식으로 할 정도였다.
    2016년 1월 12일 JTBC 뉴스룸에서는 김필규 기자의 팩트 체크 코너를 통해 이러한 주장의 진위 여부를 가렸는데, 결론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필규 기자가 여러 논문을 조사하고 국내 사학자들의 의견을 수집해 본 결과 이러한 표기는 미국과 영국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올림픽 입장 순서는 어차피 개최국 언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므로 알파벳 순서 때문에 일본이 의도적으로 C를 K로 바꾸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국내 논문에는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만 있는 반면, 일제가 영문 표기를 바꾸었다고 주장하는 논문은 북한의 김일성대학에서 나온 논문이 유일하다는 것이다.[16] 그런 점에서 최초로 이러한 주장을 한 사람이 누군지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각하(閣下): 각하라는 경칭도 일제가 만든 단어다. 디씨에서 만들었다
    閣下益以講和息民之義, 謀議於大相國…

    각하(閣下)는 더욱 화호를 강구하고 백성을 쉬는 뜻으로 대상국(大相國)에게 꾀하고 의논하여…




    '각하'가 일제강점기 이후 그 잔재로 역대 대통령들의 권위주의적 경칭으로도 쓰인 점을 들어 '각하'라는 호칭도 일제의 잔재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본에서 자주 쓰인 것은 맞지만 단어 자체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각하라는 말의 각(閣)의 아래(下)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각하가 일제의 잔재가 된다면 왕을 뜻하는 전하(殿下)역시 일제가 만들어낸 말이된다. 전하나 각하와 같은 말은 집의 등급은 전(殿),당(堂),합(閤),각(閣),제(齊),헌(軒),루(樓),정(亭)을 따르는 말로 왕만이 쓸수 있는 전이라는 칭호에서 전하라는 말이 유래된것이다. 이 외에도 지위가 높은 대신, 왕자들을 가리키는 합하, 각하, 황제를 가리키는 폐하, 족하, 왕세자, 공후(公侯)등을 가리키는 저하, 편지를 받는 사람을 높이는 궤하, 좌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승이나 왕세손을 각하라 칭한 적도 있으며, 중국에서도 청나라 때 이홍장이 '북양대신 각하'로 불렸다.
十五年, 京城旱.
15년, 경성이 가물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남해차차웅 15년
世子還京城
세자가 경성으로 돌아왔다.
≪세종실록≫109권, 세종 27년 7월 12일 갑신, 1번째기사
일단 '한성', '한양', (일제 강점기의) '경성' 등은 한강 하류에 있는 특정 지역의 지명이고, (원래 의미의) '서울'이나 '경(京)', (원래 의미의) '경성'은 한 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므로 이 둘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경성이란 이름은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 등 과거의 문헌에서 다방면으로 자주 등장한다. 신라 때는 서라벌이 수도였으므로 경성이라 불렀고, 조선 시대에도 지금의 서울시 지역의 행정구역상 정식 명칭은 '한성부'(漢城府)였지만, 이 외에도 서울(한성)을 가리키는 수많은 별칭이 있었다. 잘 알려진 한양(漢陽)을 비롯해 경조(京兆), 경락(京洛), 경사(京師), 경성(京城), 경도(京都), 장안(長安), 수선(首善)[17] 등 다양한 별칭들이 있었다. 경성도 그 중의 하나로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쓰였다.
경부선, 경의선 등의 철도 노선들이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된 근대에 부설된 점을 들어 이러한 노선명도 일제의 잔재라고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아니다. 단지 수도, 즉 서울을 뜻하는 의미로 한자로 京이라 적은 것일 뿐이다. 그렇게 따지면 경기도(京畿道), 경시서(京市署)[18], 경강 상인(京江商人)[19] 같은 단어도 일제의 잔재가 되어버린다.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장에 해당되는 한성판윤 역시 경조윤(京兆尹) 또는 경윤(京尹)이란 별칭으로도 불렸다. 게다가 경인선(1899), 경부선(1905), 경의선(1905)의 경우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한성부가 경성부로 개칭되기 전에 개통되고 명명된 노선들이다. 도시 이름이 아직 경성으로 바뀌지도 않았는데 철도 노선명에 경성의 경을 넣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즉, 상기한 철도 노선명의 경은 경성의 경이 아닌 수도(서울)라는 의미로서의 경이 맞다. 게다가 중국에서도 징후선(경호선, 京湖線), 징광선(경광선, 京廣線) 등등 수도 베이징에서 출발하는 철도 노선명에 경(京)자가 들어간다. 중국 수도 북경의 여러 이름 중 하나가 과거도 지금도 징청(京城) 즉 경성이다. 그러므로 경(京)자가 들어간 노선명이 일제의 잔재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 남대문(南大門): 숭례문의 또다른 명칭인 남대문은 일제가 깎아내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正南曰崇禮門, 俗稱南大門

    정남(正南)은 숭례문(崇禮門)이니 속칭 남대문이라 한다.




    실록에도 숭례문의 속칭[20]이라 되어 있으며, 실록 다른 부분에서도 숭례문이라는 명칭보다 남대문이라는 명칭이 더 많이 나온다. 일반적 공식적인 기록인 실록조차 이럴 정도니 사실상 민간에서 숭례문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남대문과 동대문이 숭례문과 흥인지문으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일본식 잔재를 없애려는 의도가 아니라 전국에 동대문이니 남대문이니 하는 지명이나 문이 많아서 명확히 구분지으려는 의도이다. 다만 서대문은 원래는 신문(新門/새문)이라고 불렸고, 허물어진 뒤 일본인들의 입말에 오르내리면서 만들어진 표현이다 '새문안'이란 이름이 대표적.
  • 대영제국(大英帝國):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자신들을 대일본제국이라고 칭한 것에서 '대(나라 이름) 제국'이 유래되었기 때문에 대영제국이라는 명칭은 일제의 잔재이며 그냥 영제 영제국으로 순화시켜야 한다.
    대영제국에서의 대(大)는 일본이 서구화되기 한참 전에 중국에서 먼저 만들어졌고(大不列顛王國, Kingdom of Great Britain, '다 부례둔' 왕국), 영문 명칭의 'great'도 위대하다는 뜻이 아니라 해당 도서지역을 브리타니아로 부를 당시 영국 본토섬이 다른 브리타니아 지역(고대에는 아일랜드, 중세에는 브르타뉴)보다 상대적으로 컸기 때문에 전자를 대大브리타니아, 후자를 소小브리타니아로 불러 구분한 용례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소 순다열도처럼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대영제국 문서 참조. 참고로 대한제국도 원래는 위대하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한'(韓)과는 다르며, 또한 고구려, 백제, 신라 삼한을 합쳐 더 큰 한이 되었다(great 또는 greater)는 뜻에서 대한이다.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역시 대한제국을 승계한다는 의미로 이어 받았다.
  • 산본(山本): 산본은 야마모토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진주만 공습을 지휘한 일본 해군 제독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의 무훈을 기리는 명칭이라는 루머. 그러나 산본신도시조선 시대부터 과천현 남면 산본리였기 때문에 일본식 한자어가 아니다. 여기서 '산본'은 '산 아래', 또는 '산 밑'을 한자어로 변환한 것이기에, '산본 마을 = 산 아래 마을'이 된다. 일본의 경우 자기의 고향 또는 근거지에 위치한 각종 자연물이나 지형을 자신의 성(姓)으로 삼은 경우가 많았기에, 일본의 성씨와 우리나라의 지명이 우연히 일치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여담으로 산본역에서도 야마모토와는 무관하다고 역사 내 안내판에 쓰여 있다. 하지만 삼릉(三陵)은 빼도 박도 못하는 일제의 잔재. 당산역은 토오야마역 부산시덕천동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기리는 명칭이라는 루머는 없는 게 용하다
  • 왕(旺): 인왕산(仁旺山), 의왕시(儀旺市→義王市), 천왕동(天旺洞) 등의 '旺(왕성할 왕)'은 일제가 덴노를 기리고자 억지로 王에서 旺(= 日+王)으로 바꾼 것이므로, 王이 올바른 표현이다.
    '일왕'이란 호칭이 보편화된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를 일본에도 밑도 끝도 없이 그대로 대입해 버린, 지극히 한국 중심적인 시각으로 생각한 잘못된 루머. 일본에서는 반드시 '天皇'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日王'이란 단어를 매우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日王'으로 표기하는 한국 언론사 측에게 이를 '天皇'으로 표기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정도. 그런 일본이 '덴노'가 아닌 '일왕'을 기리고자 지명에 들어간 王을 旺으로 고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자기네들의 덴노에게 빅엿을 먹이는 그네들에겐 대단히 '불경스러운' 행위다. 더욱이 과거 문헌에서는 지명 표기에 旺을 사용한 사례가 매우 흔하게 발견된다.[21] 어처구니없는 오해로 인해 지명에서의 퇴출이 잇따르고 있는 불쌍한 한자. 오히려 '의왕'의 경우는 지명 자체가 일제의 잔재다. 의왕시 문서 참조.
    일각에서는 '일본이 왕성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王'을 '旺'으로 고쳤다는데, 이것도 글쎄... 일본의 우월성을 강조하고자 지명을 변경하였으면 총독부 차원에서 이의 사용을 강제하는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이 상식적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한국 지명에서의 '王' 표기는 일제강점기 내내 흔히 발견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바로 당대에 발행된 신문인데, 엄격한 검열과 잇따른 정간이 일상화된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명에서의 '王' 표기는 잘만 쓰였다. 한 예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동안 '仁旺山'의 표기 사례는 61건, '仁王山'의 표기 사례는 42건이 검색된다. 한마디로 당시 지명에서의 '王'과 '旺'은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용되었으며, 지명에 '王' 표기를 썼다고 하여 총독부가 "감히 旺이 아닌 王을 써? 이런 고얀 놈"이라면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지도 않았다는 얘기... 정말로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서 '王'을 '旺'으로 바꾼 거라면,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지명에서의 '王'의 표기를 이처럼 순순히 내버려뒀을 리 없다.
  • 을미사변(乙未事變): 을미사변이나 을사조약은 일제의 시각에서 본 용어이므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나 '을사늑약'으로 불러야 한다.
    을미사변은 한국 측의 이름으로, 끔찍한 사건을 두루뭉실 하게 돌려 말하는 뜻으로 '사변'(事變)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말이다. 예전부터 이런 불미스러운 일들은 에둘러서 표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제1차 왕자의 난 같은 참변들은 흔히 '사냥'이라고 불렸으며, 민씨들이 일으킨 '을미의 변'이라는 이름이나 매천 황현이 쓴 '을미년의 변'이라는 표현도 있다.
  • 을사조약(乙巳條約): 을사'보호'조약의 경우엔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을사조약은 가치 중립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제2차 한일협약이라고 부른다. 외교권 박탈의 역사적 상징으로서 읽는 것이 아니라 협약 자체의 정식 명칭으로서 읽을 때는 제2차 한일협약이라 읽는 것이 맞다.
  • 이조(李朝): 이조는 조선을 깎아내리기 위한 일제의 악의적인 표현이다.
    베트남 대월의 경우 국호는 바뀌지 않고 왕족의 성만 바뀌었는데, '진조', '이조' 등의 표현을 사용하였다. (베트남/역사 항목 참조.) 고조선, 위만조선 등까지 고려한다면 "이씨조선"이란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게 된다. '이씨조선'이란 명칭이 단순히 비하적 의미만을 지니고 있다면 '기자조선', '위만조선' 또한 깎아내리기 위한 표현이라는 말이 된다.
    삼국지의 삼국을 표기하는 '조위', '유촉', '손오', 또 후에 등장하는 '유송' 등도 잘만 쓰이고 있다. 이에 통일왕조의 경우에는 이당이나 조송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지만, 실제로는 가끔 통일왕조인 당나라도 이당으로, 통일왕조인 송나라도 조송으로 이렇게 불렀다. 그러한 표현이 잘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당이나 송이 압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특히 李唐의 경우 남송대의 유명한 화가와 이름이 일치하여 혼란을 주기 때문에 왕조국가로서의 당의 별칭으로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송나라의 경우 유송-조송으로 구별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유송-북송/남송 아니면 유송-양송兩宋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역사학자인 진인각(陳寅恪)이 "화하(華夏)민족의 문화는 천 년 동안 변천을 거치면서 조송(趙宋)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고 한 말에서도 나타나듯이 안 쓰이는 말도 아니고 비하의 의미로 쓰는 말도 아니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을 한반도를 일컫는 지역명으로 사용했으므로, 왕조명 '조선'을 지역명 '조선'과 구별할 필요도 있었다. 현재 북한(김씨조선)에서도 스스로 조선이라 부르기 때문에 구별을 위해서 여전히 리씨조선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고려왕조가 우리 민족 역사 전체인 Korea의 뜻이 있어서 왕건의 고려왕조를 왕씨고려라 부르기도 하는데 물론 비하가 전혀 아니다. 구분하기 위해서일 뿐. 다만, 이조라는 표현을 현재 남한땅에서는 굳이 쓸 이유는 없다.
  • 친왕(親王): 친왕이라는 호칭도 일제가 만든 단어다.
    親王以下大臣文武官員, 一年不作樂, 百日不嫁娶, 二十七日釋服。

    친왕(親王) 이하 대신(大臣)과 문무 관원들은 1년 동안 연락(宴樂)을 하지 않게 되어 있으며…




    대한제국영친왕, 의친왕 등의 '친왕'이 일본의 친왕제도를 본뜬 것이라 하여 '영왕', '의왕'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틀렸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청나라의 섭정왕 도르곤도 '예친왕'이었는데? 친왕이란 칭호는 당연히 중국에서 나온 것이다. 청나라도 지배한 일본? '영왕'과 '의왕'의 이름도 당연히 '친왕'의 이름이다.
    친왕봉호망단자를 둘째 황자의 칭호는 의 자, 셋째 황자는 영 자를 쓰기로 하다




    ≪고종실록≫에서 '영왕'과 '의왕'으로 봉한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정식으로는 '친왕'이 아니라 '왕'으로 책봉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실록의 기록은 약칭으로 보아야 한다. 영친왕 본인이 쓴 서명이나 영친왕이 사용한 도장, 왕부에서 사용한 도장, 책봉시 사용한 금책에서 모두 '친왕'이라고 표현하므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 한강(漢江): 한강, 금강, 영산강, 남산, 북한산, 중랑천은 일제가 지은 이름이다.
    漢江邊不豫, 留四日。

    한강(漢江)가에 머물렀는데, 임금이 병이 나서 4일 동안을 머물었다.




    모두 실록에 나오며, 조선 시대부터 이미 사용된 이름이었다. 한강을 예로 들자면 옛 서울의 이름인 '한산주(漢山州)', '한주(漢州)', '한성(漢城)', '한양(漢陽)'이란 말 자체가 한강에서 따온 이름인데, 정작 강 이름을 나중에 일제가 붙였을 리는 없다. '한양'은 '한수(한강)의 북쪽'이란 뜻이다. 고대 중국, 한국 등의 지명에서 '양(陽)'은 강의 북쪽을, '음(陰)'은 강의 남쪽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다. 더군다나 중천은 변중량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설도 있다. 량(良과 梁이 혼용된다)자가 랑(浪)자로 바뀐 것에는 일제 잔재설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랑 대신 량을 고집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편이다. 북한산(삼각산)의 경우는 고구려의 남평양을 북한산으로 부른다는 기록으로 보아 지명 자체가 산의 이름으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신라 때는 부아악(負兒岳) 부왘이 아니다. 이라고도 불렀다. 다만 청계천은 원래 개천으로 일제 강점기 때 생겨난 어원이 맞고, 백악산이라고 불리던 북악산은 일제 강점기의 이름인지 의심은 받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세종실록의 한성 관련 자료 참고.
  • 한반도(韓半島): 한반도는 일본인들이 한국을 반쪽짜리 섬으로 비하하기 위하여 붙인 잔재이므로 '한근지'(韓根地)라고 불러야 한다.
    라틴어 paeninsula 혹은 그에서 유래한 영어단어 peninsula의 한자 차용어다. 형태소를 분석하면 paene(almost)+insula(island)로 pen(paene) 부분을 半으로, insula를 島로 대응해서 단어를 만든 것. 참고로 독일어로는 Halbinsel인데 Halb는 반, Insel은 섬.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半島라는 표현을 공통으로 쓰고, 일본어에서도 발칸반도, 스칸디나비아반도 등 半島라는 표현을 매우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을 비하한다는 주장은 억지다. 반도가 일본어에서 처음 번역되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半島란 번역이 처음 나온 출처는 분명하지 않다. 또한 '한근지'의 '근지'도 이게 뭔지 이렇게 이름 붙일 근거가 없다. 류근지

3.2.3. 외래어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을 거쳐 들어온 외래어의 상당수는 국립국어원에서도 문제 삼지 않을 정도로 우리 언어의 일부로 정착했다. 독일에서 유래한 외래어가 대표적.

하지만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세대들은 일본식 발음으로 마개조된 외래어라고 오해한다. 맥도날드마쿠도나루도라고 하는 식으로, 영어 발음이 서툰 일본인들이 영어를 잘못 표기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일본식으로 마개조된 발음이라면, 아래에서 설명할 알레르기아레루기라고 표기되었을 것이다. 일본어로는 ㄹ받침 발음을 표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텔레비전을 테레비라고 하시는 것도 같은 맥락. 물론 실제 독일어 발음과 다른 것은 사실이나, r 발음이 강조되지 않는 점만 다를 뿐, 우리말의 받침 발음과 대응하는 L 발음은 살아 있다.

이는 20세기에 초,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와 21세기에 초,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가 배운 교과서가 달라서 빚어진 오해이다. 20세기에 초,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가 사용했던 교과서는 독일식 외래어가 기준이었지만, 현재 학령 인구들이 사용하는 교과서는 대한화학회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영어식 명칭으로 통일되어 있다.
  • 게르마늄 - 현재는 대한화학회에서 제시한 기준을 따라 저마늄이 원칙이나, 국립국어원에서는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한다. 애초에 저 원소 명칭 자체가 독일과 관련이 있으니 독일식 외래어이다. 링크 그리고 일본식 표기법이라면 받침 발음 표기가 어려운 일본어의 특성상 게루마니우무(ゲルマニウム)라고 표기되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비공식적으로 쓰이는 일본식 외래어들은 일본 현지 표기법과도 다르긴 하지만, 한국식으로 변형된 일본식 외래어들은 발음이 로 변형되는 패턴이 많다. 예를 들면 쟈크(チャック)가 작구가 되는 식. [22]
  • 맛세이(당구) - 프랑스어 Massé(찍다)에서 온 단어다.
  • 뽀록 - 일본식 발음이지만, 영단어 fluke에서 왔다.
  • 알레르기 - 대표적으로 오해를 받는 외래어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이에 대한 해명을 내놓은 바가 있다. 그리고 국립국어원의 기준에 따르면 표준어는 아직까진 알레르기이며, 영어식 명칭인 알러지는 표제어로 실려 있지 않다. 아마, 글자의 형태가 비슷한 알거지로 잘못 볼까 봐 그런 듯하다.
  • 호르몬 - 동음이의어인 일본의 고기 요리와 혼동하여, 일본식 외래어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영어 발음은 영국식은 '호먼', 미국식은 '홀먼'에 가깝고 독일어 발음은 '호-몬'에 가깝게 들리므로, 근본 없는 표기법이라고 여길 수는 있겠지만, 원래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은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으며, 원칙도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따라서 이를 일본식 표기법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 후루꾸 - 일본식 발음이지만, 영단어 fluke에서 왔다.

4. 왜 이런 잘못된 속설이 퍼졌나?

4.1. 한문 지식 부족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문해율
사실 알고 보면 일본식 한자어 논란의 역사는 꽤 길다. 이미 1955년에 학술 용어 순화에 대한 의견이 신문에 실린 바 있다. 글쓴이는 이 글에서 어떤 것이 우리식 한자어이고, 어떤 것이 일본식 한자어인지를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명확히 구분하며, 기존 한자어를 무조건 순우리말로 바꾸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속설은 한글 전용으로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들에게 잘 먹히는 편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당시 세대에서는 한자 문화권의 공통점을 강조하면서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쓰는 한자어를 일본산 단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언어 순화 운동이 활발했지만, 문제가 되는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가 아닌 주로 전문 용어로 쓰이는 단어들이었다. 예를 들면 '취입'(吹入)을 '녹음'으로 순화하자는 정도였다. 반면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국어 사전에 나오는 단어가 일본어 사전에도 나오면 별 근거도 없이 일본식 한자어라고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한자어를 일본식이라 문제 삼는 주장은 한문 교사 같은 한자 전문가 집단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주로 순우리말 운동가 중에서 많이 보인다. 게다가 앞서 언급된 잘못된 주장들은 극단적인 혐일 성향을 보이는 한문교사, 심지어 환빠일지라도 하지 않는 주장이다. 그런 점으로 보아, 현재 나도는 일본어 잔재론은 과격한 순우리말 운동가들이 한자어를 배격할 목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지를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23]

또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주변국과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한중일 문화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강조하는 글이 더욱 호응을 얻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물론, 중국, 일본과 갈등을 빚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유교 문화를 강조했던 과거에는 그래도 같은 유교 문화권이란 이유로 이념적인 공통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과거에 어린이 교육용으로 나온 각종 서적에 나온 한중일 일화가 좋은 예이다. 중국 사례로는 공자, 맹자 관련 일화가 많았고, 일본 사례로는 우동 한 그릇이라든가 오싱처럼 효 사상과 관련 있는 일화들을 주로 소개했다. 즉, 역사적으로 악연이 있는 주변국이지만, 그래도 효를 중시하는 점은 같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중일의 공통 이념인 유교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가 한자였으므로 단순히 일본에서 쓰는 것과 같은 단어라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유교 사상이 약해진 현재는 한중일을 이어 주는 공통 이념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일상 생활에서 한자어의 사용이 줄어들며, 어르신 세대에게는 익숙한 한자어일지라도 젊은 세대들은 일본 대중 문화를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는 단어인 경우가 많다. 즉 한자어 자체가 젊은 세대들에겐 이질적인 것이며, 더 이상 같은 유교 문화권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이념적인 공통성도 없기 때문에, 한자어의 유래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4.2. 일본식 한자 읽기에 대한 오해

더 자세한 내용은 일본식 한자어를 참조할 것.

일본어 사전에 올라온 한자어 중에는 표기는 한자로 하지만 읽을 때는 일본의 고유어로 읽는 단어들도 많다. 비유하자면 鷄卵이라는 한자어를 쓸 땐 그대로, 읽을 땐 계란이라고 읽지 않고 달걀이라고 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글이 없던 시절 이두나 구결처럼 한자를 사용해 우리말을 적어 온 선조들은 일본의 이러한 한자 읽기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한글만으로 언어 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이라면 오해하기 쉬운 상황인 것이다.

앞서 예시로 나온 명일(明日) 금일(今日) 작일(昨日)에 대한 오해가 이러한 케이스다. 적을 때는 한자로 이렇게 적어도 실제로 읽을 때는 일본어 고유어로 明日(あした/아시타, あす/아스), 今日(きょう/쿄, けふ[24]/쿄]), 昨日(きのう/키노[25])라고 읽었다. 이들 단어는 중국어에도 존재하지만, 발음은 일본어와 매우 다르다. 明日 발음 듣기, 今日 발음 듣기, 昨日 발음 듣기 즉, 한자만 같을 뿐 사실상 별개의 언어인 것이다.

여담이지만, 우리말 대부분이 한자어라는 주장도 사실은 한글 창제 이전에 한자를 이용해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식이 있었음을 몰라서 빚어진 오해다.

4.3. ≪국어ㆍ조선어 자음 및 용자 비교례≫

하지만 일본어 잔재론이 모두 불순한 목적에서 비롯된 주작은 아니며, 한문 지식이 부족한 비전문가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측면도 크다. 이런 추정의 근거는 조선총독부 편찬 ≪국어[26]독본≫이나 이 ≪국어독본≫을 추려서 관립한성외국어학교(官立漢城外國語學校)에서 펴낸 ≪국어ㆍ조선어 자음 및 용자 비교례(國語朝鮮語字音及用字比較例)≫(1911년)(이하, ≪용자 비교례≫)라는 소책자의 존재다. 이 책자에는 식구/가족, 일수/명인, 삼촌/숙부, 동생/제, 등과 같은 방식으로 국어(일본어)/조선어로 대비하고 있어서, 이것이 조선식 한자어와 일본식 한자어를 구분하는 근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해 볼 수 있다. 참고로 몇 가지 예시들을 보자.(조선어/일본어 순 배치)
  • 궁구(窮究)/공부(工夫)
  • 기별(奇別)/통지(通知)
  • 기운(氣運)/기분(氣分)
  • 남편(男便)/부(夫)
  • 내일(來日)/명일(明日)
  • 농군(農軍)/농부(農夫)
  • 다정(多情)/친절(親切)
  • 당면(當面)/대면(對面)
  • 동기(同氣)/형제(兄弟)
  • 득남(得男)/남자탄생(男子誕生)
  • 득녀(得女)/여자탄생(女子誕生)
  • 매사(每事)/만사(萬事)
  • 목수(木手)/목공(木工)
  • 문장(文章)/학자(學者)
  • 미성(尾星)/혜성(彗星)
  • 병정(兵丁)/병사(兵士)
  • 삼촌(三寸)/숙부(叔父)
  • 상오(上午)/오전(午前)
  • 상종(相從)/교제(交際)
  • 생산(生産)/출산(出産)
  • 생신(生辰), 생일(生日)/탄생일(誕生日)
  • 수도(水道)/하수(下水)
  • 숙수(熟手)/요리인(料理人)
  • 실과(實果)/과실(果實)
  • 오정(午正)/정오(正午)
  • 외방(外方)/지방(地方)
  • 일색(一色)/미인(美人)
  • 잡귀(雜鬼)/악마(惡魔)
  • 장원(壯元)/우등(優等)
  • 적실(的實)/확실(確實)
  • 지각(知覺)/상식(常識)
  • 지동(地動)/지진(地震)
  • 하오(下午)/오후(午後)

사실 이 책자들의 의의는 조선인의 일본어 학습시, 또는 조선 파견 일본인 관리 등의 일본인의 조선어 학습시, 조선어와 일본어가 같이 한자를 쓰면서도 용례가 다른 데서 비롯하는 동음이의어 혹은 이음동의어에 따른 오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즉 조선식 한자어와 일본식 한자어를 구분해 놓은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쓰는 한자어 중 일본인들이 언뜻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일본에서'도(!)' 통용되는 한자어로 대응해 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길사(吉事)/혼인(婚姻)' 항목처럼 '길사'라고 하면 바로 못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에 조선어에서 '길사'란 보통 '혼인'을 의미한다고 알려둔 것이다. 그런데 이 '혼인'이라는 단어부터가 혼인지례(婚姻之禮)의 줄임말인데, 이 것 조차도 일본식 한자어라고 주장하며, 역시 혼인지례의 줄임말인 '혼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문학자들이 있다(그나마 국어학, 한문학, 민속학 전공자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매사(每事)/만사(萬事)'도 마찬가지 예다. 조선어에서 '매사', '만사'를 다 썼지만, 일본어에선 '매사'라는 한자어를 잘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쓰던 '만사'라는 단어로 의미를 밝혀 놓은 것이다. '적실(的實)/확실(確實)'도 마찬가지다. 조선어에선 '적실', '확실'을 다 썼다. 틀림없다는 의미로는 '적실'을 주로 쓰고, '확실'은 성품이 진실되다는 의미로 썼지만, '확실'을 틀림없다는 뜻으로 쓴 예로 있다. 또 '선배(先輩)/유자(儒者)'도 있다. 조선어에서 '선배'라는 단어는 대개 유생(儒生)이나 유학자로서 선학(先學)을 가리켰기 때문에 '유자'로 대응한 것이다. '장원(壯元)/우등(優等)'도 마찬가지로 조선어에선 다 썼다. 예를 대자니 끝도 없어질 거 같아서 그만 여백이 좁아서...

즉 한문에 별다른 지식이 없거나 고문헌에 조예가 없는 자가 ≪조선어독본≫이나 ≪용자 비교례≫를 보고서 여기 국어(일본어)로 표기된 한자어가 조선어에는 없는 일본식 조어라고 주장한 것이 현재의 일본어 잔재론의 시발이 아니었을까 하는 유력한 가설이다.

하지만 학술어, 신조어 외에도 분명히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용례가 추가되거나 일본어에서 도입된 한자어로서, 현재 아무 문제 없이 널리 쓰이는 단어가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예를 들어 '발명(發明)/변명(辨明)' 이라는 대목을 보자. '발명'은 조선어, 일본어에 모두 있는 한자어이다.
발명(發明): 1. 고안하다. 2. 잘못이 없음을 밝히다. 3. 의미를 깨우치다. 등등
당대 조선어에서는 주로 2번의 의미로 썼기 때문에 주로 1번의 의미로 쓰던 일본어와 소통이 삐걱거릴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2번의 뜻과 같은 의미를 가진 일본어인 (한자어) '변명'을 대응시켜 '발명'의 주요 용례를 밝혀둔 것이다. 이 '발명'이라는 한자어는 현대 국어에서는 1번의 고안하다는 의미로 쓰이지, 2번의 뜻으론 더이상 쓰이지 않는다.[27]

4.4. 검증을 게을리하는 매스컴과 포털

매스컴이 이러한 잘못된 속설의 확산에 불을 지핀다. 검증이 안 된 인터넷 언론들에서 특히 이런 병크를 잘 저지르지만, 비교적 공신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대형 언론사에서도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앞서 언급했듯이 SBS 라디오도 이런 병크를 저질렀다. 또한 언론사가 유독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외부 필자와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는 경우에도 이런 병크가 빚어진다. 야채가 일본식 한자어라는 속설이 좋은 예다. 해당 언론사는 창간 초기에 외래어와 알파벳 사용을 자제하고 순우리말 사용을 앞장서서 권장하는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언론인들이 세대 교체되어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외래어를 자유롭게 쓰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영향이 남아 있는 듯하다.

또한 언론계와 출판계의 위선도 무시할 수 없다. 21세기에도 이 분야 현장에선 야마, 사스마와리, 하리꼬미 같은 일본어가 여전히 쓰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일본어 사용을 비판한다. 주로 삼일절이나 광복절, 한글날에 나가는 특집 기사가 그러한데, 이미 과거에 나갔던 기사를 재탕할 수 없으니 한중일 공통 한자어를 걸고 넘어지거나 어감이 일본어스러운 속어를 걸고 넘어지는 무리수를 두었을 것으로 보인다.

4.5. 국까스노비즘

본래는 민족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주장이지만, 이것이 역이용되기도 한다. 일본과 무관하거나 일본과의 연관성이 확실치 않은 것까지 일본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여 일본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불고기 관련 논쟁을 둘러싼 일빠들의 반응이 그러한 예다.

5. 실제로 일본어 잔재인 것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국어의 외래어/일본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일본식 한자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일본어 잔재인지 불확실한 것

  • 한자 뒤에 '-하다'를 붙이는 경우
    • 관하다 - 関する·かんする
    • 논하다 - 論ずる·ろんずる
    • 달하다 - 達する·たっする
    • 대하다 - 対する·たいする
    • 벌하다 - 罰する·ばつする
    • 속하다 - 属する·ぞくする
    • 알다 [28] - 存じる·ぞんじる
    • 칭하다 - 称する·しょうする
    • 통하다 - 通じる·つうじる

위 낱말들은 일본어 잔재라기보다는 한문 번역/직역체의 영향 및 한자어 선호에 잠식당한 고유어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외자 한자어의 경우 본디 그에 해당하는 고유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사맟다-通하다 말미암다-因하다 굳세다-强하다) 한문 번역과정에서 고유어로 옮기기보다는 해당 한자에 하다만 붙여 직역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글투가 문장어로 정착한 결과, 고유어가 쇠퇴하여 없어지거나, 세력이 현저히 여려진 것이다.[29] 일부 낱말은 아예 잊혀 버려 대신할 고유어가 없어진 것도 있다.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믿다'라는 뜻의 '信じる(신지루)', '느끼다'라는 뜻의 '感じる(칸지루)' 등은 한자 음독으로 읽는다.

7. 관련 문서



[1] 옛 문헌 검색 페이지들을 통해 찾아보면 이 두 단어가 많이 나온다. 다만 부락같은 경우엔 일본어 부락민의 뜻이 섞여 원래 뜻과 다르게 변질됐다는 점은 있다. 원래 부락이라는 말은 촌락이나 읍락같은 다른 한자어나 동네, 고을같은 우리말도 두루 있다.[2] 다만 현재 언어학계에서 한국어와 일본어의 계통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정설이 없다.[3] 일부에서는 한자 종주국인 중국 마저도 일본식 한자어가 60%를 차지한다고 하지만 출처와 근거가 분명한 주장은 아니다. 위키백과의 '일본제 한자어' 항목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일본식 한자어가 본래 쓰던 한자어와 경쟁하며 도태된 경우가 많다는 서술이 존재한다.[4] 둘 다 부정적인 어감을 담고 있다.[5] 이 낭설에는 나무라의 사례처럼 일본어의 청음(무성음)이 단어 중간에서 무기음으로 바뀌는 발음 규칙도 한몫 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어는 유성·무성으로만 자음을 구별하는 언어이므로 대다수 일본인들은 서양인처럼 본인이 발음하는 무성음이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6] 러시아어도 무성파열음이 된소리로 소리나는 언어다.[7] 명일, 작일 따위의 말을 내일, 오늘에 비교하여 구어체에서 얼마나 쓰고 있는지, 사람들이 그 단어들의 의미를 한 번에 누구나 잘 알아듣는지 떠올려보자[8] 民草望霖雨 灼知天命歸[9] 여기서 군자란 '지위가 있는 사람'(有位者), 혹은 봉토를 갖고 있는 사람의 뜻이다.[10] 봉토가 없는 자영농을 말한다.[11]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必偃[12] 이 외에 신영복 선생의 표현인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누가 알랴? 풀은 바람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草上之風草必偃 誰知風中草復立)라는 글귀를 들어 여기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고, 이 말이 《시경》에서 유래했다는 말이 있는데 잘못된 말이다. 신영복의 언급에 나온 문장은 《시경》에 나오는 문장도 아닐 뿐더러, 신영복의 말을 보면 《시경》 가운데 한 장르인 '풍(風)'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한 말임을 알 수 있다.[13] 예를 들어 '가깝다'의 의미가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것인지, '심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것인지 불분명한 경우. 그래서 애매어의 오류를 모호어의 오류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14] 예를 들어 키가 몇 cm 이상일 때 '키가 크다'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15] 조선시대에는 야채와 채소의 의미가 같지 않았다. 야채는 나무뿌리, 칡뿌리 등 캐서 먹는 것이었고, 채소는 배추와 비슷한 식물들을 의미했다. 당시에는 야채를 빈곤한 사람들이 많이 먹었기에, 평시 수라상에 못 들어갔고, 채소가 들어갔다. 다만 세종대왕은 채소까지 수라상에 못 올리게 했다. 명불허전 고기성애자[16] 실제로 북한은 국명을 Corea로 바꾸는걸 추진하고 있다.[17] 조선 시대 한성부를 그린 지도 중에 '수선전도(首善全圖)'가 있다.[18] 조선시대 한성의 시전(市廛, 오늘날의 재래시장) 업무를 맡던 관청.[19] 경강(京江)이란 한강의 서울 일대 유역을 가리키던 별칭이다.[20] '속칭'의 '속(俗)'은 '저속하다'는 뜻이 아니라 '일반'이나 '민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하의 의미가 아니다.[21] 조선왕조실록에서의 관련 사례로 인왕산(仁旺山), 인왕사(仁旺寺), 세종대왕의 능(영릉)이 소재한 여주 왕대리(旺垈里), 포천 왕방산(旺方山), 창녕 화왕산(火旺山)이 있으며, 기타 과거 문헌들의 원문이 수록된 사이트 한국고전종합DB에서도 수많은 용례들이 좌르륵 뜬다. 이 중 '화왕산' 또는 '화왕산성'은 '火旺山' · '火旺山城' 표기 사례가 '火王山' · '火王山城' 표기 사례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이것마저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야 억지로 바꾼 거라고 우기는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교수도... 일단 '화왕산' · '화왕산성'의 공식 한자어 명칭은 지금도 여전히 '火旺山' · '火旺山城'이다.[22] 쟈크의 어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일본식 한자어 상표명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영어 chuck이 변형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23] 그런데 한자어중 일제잔재설에 흔히 인용되는 귀화, 국민학교, 대통령, 각하 같은 경우를 보면 한자 지식보다는 그 단어의 배경 및 용례와 관련된 지식의 결핍이 주요 원인이고, 심지어 노년층에서 자신의 한자해석을 통해 견강부회식의 일제잔재론을 내놓는 사례 역시 흔히 볼 수 있으며, 이것은 과거에도 다르지 않았는데 링크 링크 , 이것을 한자 지식 부족과 순우리말 운동 탓이라 주장하려면 추가적인 예시와 설명이 필요해보인다.[24] 전전(戦前) 당시의 역사적 가나 사용법. 발음보다 규칙을 우선시한 표기법으로 쓰기만 けふ라고 쓸 뿐 발음은 현대와 같다.[25] 앞의 쿄와 더불어 이 두음은 장음으로 발음한다.[26] 일본어[27] 과문한 탓으로 못 찾은 것일 수 있으니 근대 또는 그 이전 시기에 '발명'이 1번의 의미로 쓰인 예와 '변명'이라는 낱말이 등장하는 예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좋겠다.[28] 일본어 겸양어의 '알다'를 의미한다[29] 强하다 弱하다의 경우 해당하는 고유어인 세다,여리다의 쓰임이 매우 여려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