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7:48:59

일본 안티 카페

일안카에서 넘어옴
종류 네이버 카페
매니저 크롬
(resistance01)
부매니저 테디베어
(zelatore_)
회원 수 6,111명
(2018년 2월 28일 기준)
랭킹 나무 1단계
주소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
2.1. 20112.2. 20122.3. 20132.4. 20142.5. 20152.6. 20162.7. 20172.8. 2018

1. 개요

2011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네이버 카페 서비스에 기반한 네이버 키배 카페.

수치상으로 보이는 카페의 적은 회원수와는 달리 중소 규모라고 하기에는 8년이 넘어가는 지속성과 커뮤니티가 가지는 차별화된 특수성을 통해 나무 2단계라는 랭킹을 얻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2. 역사

2.1. 2011

8년이 넘게 이어지는 카페를 처음 만들었던 초대 매니저는 헨리라는 닉네임을 쓰던 유저였다.

주로 일본 찬양론자들이 자주 모이던 네이버의 너우일이라는 카페에서 한국쪽 입장에서 반대쪽 입장을 상대하던 입장이였는데, 어느날 카멘스타라는 닉네임을 쓰는 유저가 네이버에 너우일 카페를 신고하게 되면서 카페가 강제 페쇠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이에 헨리는 자기자신이 직접 카페를 하나 만들게 되는데, 그 카페가 일안이라는 네이버 카페였다.

이후 한국의 입장과 일본의 입장을 서로 주장하는 네티즌들이 이 카페에 모여서 자기 입장을 전달하는 설전을 하면서 일안은 여타 어느 카페보다도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카페 중 하나로 거듭나며 큰 성장세를 보였다.

보통의 인터넷 카페들이 자신의 카페 입장과 다르면 무조껀 강제 탈퇴를 시키거나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헨리는 자유방임적으로 카페를 방치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헨리의 귀차니즘이 오히려 카페가 더욱 성장하게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2.2. 2012

2012년도에 들어서 한일 관련 이슈가 줄어들면서 카페가 점점 침체되기 시작한다. 이에 카페 운영을 고심하던 헨리는 카페를 주도하는 유저에게 그 당시 최고 등급인 엑시드를 부여하는 것으로 카페를 살리려고 했던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엑시드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직후 엑시드가 되기 위해서 활동하는 유저들이 생겨났고, 이때 활동하던 유저들을 중심으로 이후 떡밥이 사라져 다 죽어갈때 마다 카페에 생명 호흡기를 달아주던 유저들라고 할수 있겠다.

당시 엑시드 중 하나인 nets_prince의 경우, 모델 지망생이면서, 그 당시 네이버에서 유지되던 말싸움 카페에서도 꽤 유명했기 때문에 1An내에서도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많았는데, 이후 nets_prince는 카페 유저들과 함께 단체로 헨리와 대립하며 헨리의 직책을 상실하게 만들었다.[1]

결국 카페는 nets_prince 위주로 일안카가 돌아가긴 했지만 nets_prince는 카페정책과 같은 부분에서는 별다르게 신경쓰지 않다가, 얼마 후 다시 본진으로 돌아갔고, 일안카는 그렇게 다시 공백기로 접어들었다.

2.3. 2013

2013년에 들어서 여성부 폐지가 여론에 관심을 받자, 당시 일본 입장을 꾸준하게 대변하던 '도날드 덕' 이라는 유저는 군대 5년 찬성카페라는 허무맹랑한 카페를 만들어 일안카에서 광역 어그로를 끌기 시작한다.

이에 정시 브레이커, Master, 김유진 등 여러 유저들이 도날드 덕을 참 교육시켜주기 위해서 논쟁을 벌이며 도날드 덕을 지지하는 측과 두달이 넘는(?) 긴 싸움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일본 안티 카페 회원들의 지속되는 공격에 방어 의지를 상실한 도날드 덕은, 정시 브레이커의 제안인 매니저빵을 수긍하고 이후 패배하여, 반성문을 쓰며 카페를 떠났고 군5년 찬성 카페의 매니저 직위를 양도받은 정시 브레이커는 해당 카페를 일본안티 식민지라는 이름으로 바꾸는데 성공한다.

이후 여기서 유입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일 관련 떡밥이 식어가던 일본 안티 카페는 2차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명예훼손이나 법률해석이 명확하지가 않던 시기였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서로 논쟁하는 기조가 이어질수 있었다.

또한 2013년은 가장 스케일이큰 사건이 많았던 해중 하나로서 중후반기에 들어서 스틸카페vs일본안티카페의 전쟁도 있었으며 이때 스틸카페애들이 몇몇 유입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일안카의 키배서열 상위권과 중상위권엔 스틸카페출신의 키배러들이 자리잡으며 하위권과 중하위권에는 카카오스토리(일명 카스충) 키배러들까지 유입되면서 키배 서열은 대격변이 일어나게된다.

그리고 이때 스틸vs일안카의 전쟁때 스틸진영을 주도하고 이끌었던 스틸카페의 매니저인 파보는 14년도에 일안카스탭까지 등극하게된다.

그후엔 이때 카스충 키배러들 몇몇이 기어와서 일안애들에게 개털리고 지마군 같은 카스충 퇴치에 앞장섰던 애들이 카스까지 찾아가서 카스충들을 후려밟고 항복선언을 받아왔다.

이때 지마군은 협객이라는 카스충 출신 키배러를 앞잡이로 썼으며 협객은 자신의 동족들이었던 카스충들을 앞장서서 퇴치한 대가로 지마군과 함께 일안카에서 명예 파이터 호칭까지 받아서 '파이터지마군' 그리고 '파이터협객' 으로 명성을 알리게됨

2.4. 2014

14년도에는 작년에 유입된 카스충 출신이던 권동진이 일안카에서 어그로를 끌며 애들에게 다굴 당하면서 일안카의 그 유명한 일안아이돌 '몽쉘문도'가 탄생하게 된다.

몽쉘문도는 일안카의 이기남,패왕프린스,달막화와 함께 당시 일안 최고의 인기스타이자 면상까지 팔려 인기가 폭팔하던 4대 아이돌 이었으며 처음에는 애들이 혐오하고 기피했으나 나중에 갈수록 빻았지만 웃음을 주는 면상으로 인해 애들의 조롱거리정도로서의 가치는 지니게 되었다.

이 바이러스급 사진을 처음 퍼트린 사람은 일안을 좀 했던 올비로 추정된다.

사카타 킨토키라는 유저로 추정

또한 2014년도 중후반 들어서 고정닉들이 하나 둘씩 접으며 카페를 떠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조금씩 명예훼손이라는 개념이 인터넷에 확산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이에 14년도 당시 스텝을 하던 김유진은, 일베를 상대로 어그로를 끌어 유입을 시켜 카페내 떡밥을 키워보자는 제안을 하는데, 그당시 남아있던 많은 고정닉들은 대부분 이대로 카페가 망하기를 바라지 않았으며, 상당수가 김유진의 제안에 따라 그의 낚시 행보에 동참하게 된다.

그렇게 테러에 동참한 일본안티 카페 회원을 중심으로, 일베의 정사 게시판에 테러를 강행했는데 특히나 한국을 모욕하는 위안부 보상 문제와 광주 정신 모독을 일삼던 일베를 당시 민주계열 성향을 가지고 있던 정시 브레이커는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테러에 동의했다.

테러 방식은, 굉장히 단순했는데, 정사겔 같은곳에 가서 위안부나 광주 관련 글이 보이면 들어가서 공격하면서 우리가 ~에서 왔다는 식으로 링크를 남겼고, 그렇게 일베 저장소의 고정닉들이 대거 일본 안티카페로 넘어오면서 일베 vs 1an의 대결 구도가 성립되었다.

일베 저장소 측은 무슨 말을 해도 빨갱이나 홍어로 몰아가며 전두환이 탱크를 타고 다니는 사진을 올리는 식으로 대응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보드 배틀로 단련된 일안의 고정닉들을 이길수는 없었고 결국 이들은 해봐야 소용없다는 정신승리를 하며 도망갔으며, 일본 안티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외에도 타진요나 혹은 연예인 안티 카페를 상대로 그런식의 테러를 하며 카페를 유지하다, 이런 떡밥에도 이제 슬슬 사람들이 질려 빠져나가면서 카페는 점점 암흑기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도에 있던 스케일이 크던 사건중에 하나는 바로 티앤-사시미로 이어지는 공개처형.

티앤과 사시미 둘다 원래는 당시 일안카의 키배 상위권 랭커들 이었으나 너무 지나치게 도를 넘어버려서 화를 불렀다.

티앤은 수빈이라는 넷상창녀와 랜선러브를하며 사귄다는것과 사시미는 배꼽 패티쉬가 있다는것으로 관종짓을 하며 병신으로 전락했으며 나중엔 이기남과 달막화 급으로 병신으로 전락해버리고 애들에게 까이다가 결국 접었다.

여담으로 2014년도의 최악의 장애인이자 역대 일안카를 통틀어서 또라이짓 하나만으론 정점을 찍은 장애인인 칼리스토가 스탭을 했던 2014년도는 그야말로 당시 활동하던 모든 회원들이 고통에 신음하며 반발하고 극혐하고 칼리스토 마음에 안들면 하루쯤 활정을 먹여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까지 되어버려 칼리스토가 스탭 짤리기 전까진 많은 회원들이 카페를 떠나게 한 원인이기도했다.
(이런 저능아가 스탭이 되면 카페 꼬라지가 어떤식으로 떨어지는지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쓰레기의 표본)
한마디로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일안 역사상 최고의 수치이자 흑역사인 일안을 통째로 말아 먹고 일안을 망하게 한 원흉이나 다름없음.

2.5. 2015

위의 연혁들에서 보듯 알수 있겠지만, 일본 안티카페는 초기에 2ch테러를 위해 카페의 성향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모았고, 이후에는 일베 저장소와 타진요 같은 곳을 상대로 정의구현을 하면서 어떤 네이버 카페보다도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로 거듭났다. 이런 이유로 일본 안티 카페는 자기 비하를 하면서 카페를 까는 사람, 이상한 사진을 올리다가 제지 당하는 사람,수능정보 교환, 일안 앱 개발자, 정보글, 간간히 벌어지는 한일 논쟁등 그야말로 도대체 여기가 뭔지 당최 이해가 안가면서도 그런 점에 웃고 즐기며 카페를 하는 다문화적 성향의 기조가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2014년 김유진을 포함해 많은 유저들이 카페를 접은 이후 카페는 다시 암흑 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Master라는 닉네임을 쓰던 유저를 중심으로 카페가 입시와수능 정보 공유를 하는 친목 카페의 성격을 가지게 되면서 다 죽어가던 카페에 산소 호흡기를 달아 유지시킨다.

2.6. 2016

고정닉을 쓰던 한 여성 유저가 자신의 사진에 모욕성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일부 일본 안티 카페 유저들을 경찰서에 고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2]
이 사건을 기점으로, 그나마 조금이라도 살아 있던 카페 내 논쟁 분위기가 거의 죽었으며, 활동 유저수도 급감하였다.
이후 2016년은 사실상 사람이 없는 유령카페화 되어 간간히 쓰는 뻘글로 겨우겨우 명맥만 유지되었다.

그러나..!

2016년 후반기엔 블랙잭과 체르노빌 그리고 가끔 들리던 돌아온 헨리 등등 몇몇 애들끼리 시비를 털며 키배를 뜨던게 발단이 되어 다시 키배캎으로 부활 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이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미 16년도 후반기부터 청담라운지바라는 키배전문 카페가 생겨났으나 채팅으로 키배를 뜨던 방식이라 일안카의 댓글타자와는 차이가 좀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청담라운지바와 일안카의 직접적인 충돌
자체는 하지 않았으나 채팅타자vs덧글타자를 두고 뭐가 더 매리트가 있는지 언쟁까지 하게 된다.

2.7. 2017

인터넷을 접었던 애들이 하나 둘씩 복귀하고, 간간히 카페에 눈팅을 하던 유저들도 이시기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당시 키보드 배틀을 주제로 다루는 모 카페의 매니저인 특이점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유저와 서로 충돌이 일어나면서 카페와 카페간 전면전 구도직전인 준전시상태까지 치닫게 되었고 2016년의 혹한기 이후 이렇다할 방향이 없었던 일본 안티 카페는 키보드 배틀을 성향으로 한 컨텐츠를 제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2017년 4월 솔라시라는 메이플 출신 유저가 유입돼서 카페를 살리고 키배화를 시키면 카페가 살아날것이라고 일안카의 모든 회원을 대상으로 제안했다.

솔라시가 카페개선을 목적으로 추진했던 정책들로는 크게 3가지가 있으며

첫번째로는 타카페 유저들 유입시키기(청담이나 세라픽과 일반안티카페의 키배 유망주들 유입 및 크아,메이플 등등 게임에서 타자치던 유저들 끌어오기 등등)

두번째로는 복면타왕 개최로 키배러들 양성과 서열 세분화

세번째로는 샌드백설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좆목단톡방을 만들어서 키배러들을 초대하여 애들간의 유대감을 형성시켰다.

첫번째로 실천한것은 애들을 많이 불러들어와 키배카페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결과 성공이었으며

두번째또한 청담라운지바의 복면타왕을 좀 따라했던 감이 있긴하지만 복면타왕 개최로 덕을 본 애들이 많고 하위권에서 실력을 인정 못받던 애들도 중위권내지 상위권까지 끌어 올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세번째로는 샌드백설치인데 바로 일안카가 조금 활발해진 틈을 타서 어그로를 끌던 '몽쉘문도' 를 공식 샌드백으로 지정하여 애들을 위한 펀치기계로 만들어서 애들간의 협력을 더 활성화 시켯다.

또한 줄리라는 유저가 솔리시가 하는것에 반감을 품고 자신만의 카페를 따로 만들었던 일도 있었는데 이 줄리가 바로 일안카 연차로만 따자면 대 올비급인 김유진이다.

사실 비슷한 사건은 청담라운지바에도 있었는데 청담라운지바를 마음에 들어하지않던 과거 노블레스와 큐플레이의 유저 에너미가 따로 대체카페랍시고 만들어서 애들 빼돌리기 작전을 실행했는데 실패함과 마찬가지로 줄리의 일안 시즌3 카페 또한 오래 못가서 묻히게 된다.

그러나..

17년도 후반기로 접어들고 유저들도 하나 둘씩 떠나고 상당수의 멤버들이 군대가거나 공부등등 때문에 카페 활동이 소홀해지고 몇달이나마 활발하며 살아났던 카페 또한 다시 서서히 시들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11월달에는 매니저와 솔라시마저 군대를 가버린데다가 부매니저 조차 접고 카페관리가 힘들어진 상황까지 되어버리자 다시 하류 어그로들이나 몇몇 쩌리 키배러들만 남은 상태까지 되어버렸다.

2.8. 2018

일안카의 공백기와 개선방향을 논의중에 아이디어가 오가며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 말하는 보이는 글리젠 만으로 카페가 망했다고 일안카의 가치를 평가하다고 보기는 힘든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일안카에서 빠져 나간 후, 친목만을 위주로 운영을 하는 세라픽 커뮤니티의 경우 하루 글리젠 수 100개는 기본으로 넘기는 점이나

2.가끔씩 꿀잼 정보글이 올라오기도 하며

3.왠만한 대형 커뮤니티 보다도 오히려 정모같은 부분에서 잘 친목이 구축되어 있는 점

4.몇 안되는 고정닉들이 최소 3~4년 이상 꾸준히 방문하는 애호가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가치를 단지 보이는 숫자로만 보고 평가할수는 없다는 점

5.매니저나 스텝이 꾸준히 관리를 하는 점

6.타 커뮤니티에 비해서 비교적 제제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곳에서 보기 힘든 예측 불가능한 여러 상황이 유동적으로 발생한다는 점

이렇게 6가지 정도가 있다고 볼수 있겠다.



[1] 단 이 부분에 대해서 헨리가 다른 이유로 카페활동이 힘들어 졌다는 부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지며, nets_prince 단독으로 헨리를 밀어냈다고 보기도 힘들다.[2] 진행결과는 추가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