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9 17:55:56

자넷 잭슨

재닛 잭슨에서 넘어옴
자넷 잭슨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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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로큰롤 명예의 전당 로고.pn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folding [ 펼치기 · 접기 ]이름자넷 잭슨
JANET JACKSON
멤버(개인자격)
입성 연도2019년
후보자격 연도2008년
후보선정 연도2016년, 2017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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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6px"
※2018년 빌보드가 발표한 빌보드 Hot 100 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순위다. 얼마나 많은 곡들을 차트에 높은 순위로 진입시키고 유지했는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리스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싱글을 많이 낸 뮤지션들이 더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 새롭게 순위가 업데이트된다면 수정 바람.
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 마돈나 엘튼 존 엘비스 프레슬리 머라이어 캐리
6위7위8위9위10위
스티비 원더 자넷 잭슨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리아나
11위12위13위14위15위
롤링 스톤스 폴 매카트니 비 지스 어셔 시카고
16위17위18위19위20위
슈프림즈 프린스 홀 앤 오츠 로드 스튜어트 올리비아 뉴튼 존
21위22위23위24위25위
드레이크 아레사 프랭클린 마빈 게이 테일러 스위프트 케이티 페리
26위27위28위29위30위
필 콜린스 빌리 조엘 다이애나 로스 포 시즌스 템테이션스
31위32위33위34위35위
도나 서머 비치 보이스 라이오넬 리치 브루노 마스 닐 다이아몬드
36위37위38위39위40위
카펜터즈 마룬 5 보이즈 투 멘 잭슨스 코니 프랜시스
41위42위43위44위45위
비욘세 브렌다 리 케니 로저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브라이언 애덤스
46위47위48위49위50위
셰어 조지 마이클 블랙 아이드 피스 핑크 바비 빈튼
51위52위53위54위55위
존 멜렌캠프 쓰리 도그 나이트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 글로리아 에스테판 본 조비
56위57위58위59위60위
처비 체커 레이 찰스 포리너 크리스 브라운 쿨 앤 더 갱
61위62위63위64위65위
글래디스 나이트 앤 더 핍스 리키 넬슨 듀란 듀란 저스틴 팀버레이크 코모도스
66위67위68위69위70위
이글스 레이디 가가 TLC 폴 앵카 배리 매닐로
71위72위73위74위75위
디오네 워윅 하트 넬리 에벌리 브라더스 바비 다린
76위77위78위79위80위
R. 켈리 제임스 브라운 폴라 압둘 에미넴 앨리샤 키스
81위82위83위84위85위
켈리 클락슨 린다 론스테드 리처드 막스 스타쉽 데스티니스 차일드
86위87위88위89위90위
카녜 웨스트 셀린 디옹 제이지 미라클스 밥 시거
91위92위93위94위95위
플리트우드 맥 닐 세다카 저스틴 비버 브루스 스프링스틴 포인터 시스터스
96위97위98위99위100위
존 덴버 포 탑스 토니 올란도 앤 던 50 센트 피프스 디멘션
출처
같이 보기: 앨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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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6px"
※2015년 빌보드가 발표한 빌보드 200 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순위다. 얼마나 많은 앨범들을 차트에 높은 순위로 진입시키고 유지했는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리스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앨범을 많이 낸 뮤지션들이 더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 새롭게 순위가 업데이트된다면 수정 바람.
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 롤링 스톤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가스 브룩스 엘튼 존
6위7위8위9위10위
머라이어 캐리 허프 알퍼트 테일러 스위프트 시카고 마이클 잭슨
11위12위13위14위15위
레드 제플린 브루스 스프링스틴 로드 스튜어트 에미넴 휘트니 휴스턴
16위17위18위19위20위
빌리 조엘 마돈나 산타나 이글스 플리트우드 맥
21위22위23위24위25위
밥 딜런 스티비 원더 셀린 디옹 에릭 클랩튼 닐 다이아몬드
26위27위28위29위30위
존 덴버 핑크 플로이드 자넷 잭슨 프린스 캐롤 킹
31위32위33위34위35위
마일리 사이러스 니켈백 팀 맥그로 밴 헤일런 비치 보이스
36위37위38위39위40위
U2 아델 엘비스 프레슬리 브리트니 스피어스 어셔
41위42위43위44위45위
템테이션즈 린킨 파크 제이지 앨런 잭슨 본 조비
46위47위48위49위50위
건즈 앤 로지스 샤니아 트웨인 캐리 언더우드 몽키즈 에어로스미스
51위52위53위54위55위
제임스 테일러 슈프림즈 앨리샤 키스 메탈리카 데프 레파드
56위57위58위59위60위
폴 매카트니 린다 론스테드 저니 메리 제이 블라이즈 제쓰로 툴
61위62위63위64위65위
래스칼 플래츠 포리너 존 멜렌캠프 사이먼 앤 가펑클 케니 체스니
66위67위68위69위70위
키드 록 앤디 윌리엄스 조지 스트레이트 백스트리트 보이즈 마이클 볼튼
71위72위73위74위75위
피터 폴 앤 메리 라이오넬 리치 아레사 프랭클린 캣 스티븐스 밥 시거
76위77위78위79위80위
AC/DC 비욘세 펄 잼 토비 키스 더 후
81위82위83위84위85위
폴 사이먼 무디 블루스 저스틴 비버 노라 존스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86위87위88위89위90위
넬리 두비 브라더스 핑크 조쉬 그로반 닐 영
91위92위93위94위95위
프랭크 시나트라 그린 데이 딕시 칙스 어스 윈드 앤 파이어 하트
96위97위98위99위100위
레이디 가가 R. 켈리 보이즈 투 멘 케니 지 비 지스
출처
같이 보기: 싱글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2018년 빌보드에서 Hot 100 차트 60주년 기념으로 1958년부터 2018년까지 차트에 오른 곡들을 분석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여성 아티스트들을 발표했다.
1위2위3위4위5위
마돈나 머라이어 캐리 자넷 잭슨 휘트니 휴스턴 리아나
6위7위8위9위10위
올리비아 뉴튼존 아레사 프랭클린 테일러 스위프트 케이티 페리 다이애나 로스
11위12위13위14위15위
도나 섬머 코니 프랜시스 비욘세 브랜다 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16위17위18위19위20위
셰어 핑크 글로리아 에스테판 레이디 가가 디오네 워윅
21위22위23위24위25위
폴라 압둘 앨리샤 키스 켈리 클락슨 린다 로스텔드 셀린 디옹
26위27위28위29위30위
브리트니 스피어스 토니 브랙스톤 아델 제니퍼 로페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31위32위33위34위35위
헬렌 레디/모니카 신디 로퍼 니키 미나즈 로버타 플랙 테일러 데인
36위37위38위39위40위
메리 제이 블라이즈 티나 터너 케샤 데비 깁슨 시나 이스턴
41위42위43위44위45위
칼리 사이먼 브랜디 마일리 사이러스 페튤라 클라크 퍼기
46위47위48위49위50위
나탈리 콜 알리야 벳 미들러 아샨티 앤 머레이
51위52위53위54위55위
팻 베나타 에이브릴 라빈 조디 와틀리 차카 칸 페이스 힐
56위57위58위59위60위
미시 엘리엇 에이미 그랜트 스티비 닉스 캐롤 킹 주스 뉴턴
{{{#000000 출처
같이 보기: 남성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6px"
※2015년 빌보드 스태프들이 차트 성적이나 판매량이 아닌 영향력, 음악적 유산 등을 고려하여 Top 35 선정.
1위2위3위4위5위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스모키 로빈슨 레이 찰스 아레사 프랭클린
6위7위8위9위10위
제임스 브라운 마빈 게이 프린스 휘트니 휴스턴 알 그린
11위12위13위14위15위
빌 위더스 라이오넬 리치 커티스 메이필드 루서 밴드로스 R. 켈리
16위17위18위19위20위
베이비페이스 자넷 잭슨 다이애나 로스 차카 칸 메리 제이 블라이즈
21위22위23위24위25위
비욘세 패티 라벨 배리 화이트 아이작 헤이즈 도니 해서웨이
26위27위28위29위30위
아니타 베이커 앨리샤 키스 샘 쿡 티나 터너 에리카 바두
31위32위33위34위35위
어셔 디안젤로 맥스웰 질 스콧 에타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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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folding [ 펼치기 · 접기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png
이름자넷 잭슨
JANET JACKSON
분야음악
입성날짜1990년 4월 20일
위치1500 Vine Street }}}

}}} ||
파일:20191013_200113.jpg
이름자넷 잭슨 (Janet Jackson)
본명자넷 다미타 조 잭슨 (Janet Damita Jo Jackson)
국적미국 파일:미국 국기.png
출생1966년 5월 16일, 인디애나 주 개리
직업가수, 배우, 안무가
신장163cm
데뷔1982년 1집 <Janet Jackson>
활동1973년 - 현재
종교이슬람
가족9남매(6남 3녀) 중 막내
오빠 마이클 잭슨
슬하 1남
링크공식사이트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소개2. 성장과정과 활동
2.1. 성장과정과 데뷔2.2. 성공2.3. 전성기2.4. 대형사건과 하락세2.5. 성공적인 복귀2.6. 2018년
3. 가창력4. 댄스5. 음악 스타일6. 게이 아이콘7. 자넷을 동경하거나 팬이라고 밝힌 유명인사들8. 여담9. 디스코그래피
9.1. 싱글/뮤직비디오
9.1.1. 빌보드 1위9.1.2. 빌보드 2위9.1.3. 빌보드 3~10위9.1.4. 빌보드 11~20위
10. 기록(노미네이트 제외)
10.1. Grammy Awards10.2. Emmy Awards10.3. Billboard Music Awards10.4. American Music Awards10.5. MTV Video Music Awards10.6. Soul Train Music Awards
11. 콘서트/투어

1. 소개

자넷 잭슨은 마돈나와 더불어 레전드로 대우받는 몇 안 되는 여성 댄스 가수이며 댄스 디바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인물[2]이다.

댄서와 안무는 그렇다 쳐도, 자넷 잭슨이 작곡까지 한다는 것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3집부터 거의 모든 곡의 공동 작곡가로 참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편곡, 세션 작업(3집의 키보드 세션)에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자넷 잭슨의 1위 곡 중의 하나인 Black Cat[3] 같은 경우는 본인이 혼자 작사, 작곡한 곡으로서, 여성 아티스트가 단독 자작곡(공동작곡이 아닌)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까지 오른 경우는 팝 음악계에서 극히 드물다. 이런 기록을 가진 사람이 역대 열 손가락도 채 안 될 정도.[4]

음악적으로는 R&B, 힙합, 소울에서부터 백인 음악인 로큰롤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탁월하게 소화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넷의 앨범들이 트렌디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이유도 이러한 능력 덕분인 듯.

특히 팝 역사상 오로지 자넷만이 보유하고 있는 기록인, 그래미 어워드에서 5가지의 완전히 다른 장르(팝, R&B, 댄스, 록, 랩)의 후보로 지명된 이력(그중 2개의 부문에서 수상)이 있다는 사실은, 자넷 잭슨의 음악이 해당 장르의 인기에 편승한 얄팍한 겉핥기 수준이 아니라, 대중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크게 인정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오빠인 마이클 잭슨보다는 덜 유명한 탓에 단순히 '마이클 잭슨 여동생', '잭슨 닮은 여자(...)'와 같은 소리를 듣고 있지만[5] 미국 본토와 해외에서는 그녀는 80년대 신디 로퍼를 제친 마돈나가 독주하던 시절 마돈나의 유일한 라이벌이었고, 3집의 메가 히트 이후 1980,1990, 2000년대에 걸쳐 무려 15년 간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5개의 정규 앨범을 연달아 히트시켜 현재까지도 1억 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린 가수이다. 사실 팝계에서도 이 정도로 긴 전성기를 누린 가수는 손에 꼽을 정도. 특히 90년대의 인기와 명성은 마돈나는 물론이고 3대 디바인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온과 맞먹을 정도였다. 또한 여가수, 특히 댄스 여가수 수명이 비교적 짧은데 반해[6]수십 년에 걸쳐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7], 이러한 자넷의 커리어와 맞먹는 댄스 여가수는 마돈나 , 카일리 미노그밖에 없다. 참고로 오빠에 비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100위 안에 든 곡이 약간 더 많은 지라 잭슨 가의 막내가 오빠를 뛰어넘었다는 반응도 나오기도 했다. 사실 오빠와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충분히 레전드 가수 대접을 받을 만한 가수이다. 애초에 3집 이후부터는 완전히 가족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도 하였고... 아무튼 '형 만한 아우없다'라는 속담이 빗겨나갈뻔한 몇 안 되는 케이스. 물론 넘어서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오빠가 워낙에 레전드라... [8]

특히 댄스에 있어서는 팝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는데, 작든 크든 무조건 그녀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보면 된다. 특히 자넷을 롤모델로 삼거나 그녀의 절도있고 파워풀한 댄스에 영향을 받은 거물급 여가수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나열만 해봐도 비욘세[9],제니퍼 로페즈[10],브리트니 스피어스[11] 등. 이외에도 남녀를 불문하고 아주많은 후대 가수들이 자넷에게 영향을 받았다.

전성기가 엄청나게 길었던 가수이기도 한데, 1986년 3집부터 2001년 7집 활동 시기까지 자그마치 15년 동안 하락세 없이 긴 전성기를 누렸다. 자넷만큼 꾸준한 인기를 누렸던 팝가수는 없었다고 보면 되는데, 마돈나,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마저도 마의 10년을 넘지 못했다. 물론 앞의 두 가수는 재기 했지만 말이다.
파일:external/images5.fanpop.com/love-michael-and-janet-jackson-24729202-500-354.png

전에 마이클 잭슨 루머에 자넷 잭슨은 마이클 잭슨이 여장한 아이덴티티라는 황당한 루머가 돌았다. 물론 둘이 남매라서 많이 닮긴 닮았지만 헛소리다, 애초에 둘이 같이 공연도 했는데...[12]

한국에서 미국 팝의 인지도는 현지와는 상당히 괴리가 있는 편인데, 유달리 괴리가 심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가수가 자넷 잭슨이다.

2. 성장과정과 활동

2.1. 성장과정과 데뷔

파일:022813-fashion-beauty-janet-jackson-hair-childhood-child-1970.jpg
어린시절의 자넷 잭슨

자넷은 1966년 인디애나 주 개리(Gary)에서 잭슨 가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음악가 집안인지라 그녀는 매우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이후 진로를 탐색할 틈도 없이 어린 나이부터 가수를 준비하게 된다. 1974년 8살 때는 언니 라토야 잭슨과 처음으로 쇼 무대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 이후 1976년에는 당시 남자 형제들만 출연하고 있었던 TV프로 'The Jacksons'에 언니들과 함께 첫 출연한다. The Jacksons는 그녀의 최초의 방송커리어로 이후 시트콤 'Good Times' , 드라마 'Different Strokes' 등에 출연하며 배우의 길을 걷는다. [13] 그러던 중 언니 라토야 잭슨의 앨범 제작에 참여하게 되고, 백 코러스를 맡으며 언니의 곡을 따라 부르던 중 아버지 조셉 잭슨의 눈에 띄게 되어 솔로 아티스트로의 데뷔를 권유받는다. 자넷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아버지의 긴 설득 끝에 솔로 가수로의 데뷔를 결심한다.
파일:66dd28319fc4e71754482ad32f77f2ce.png
1982년 1집 시절의 자넷 잭슨

이후 1982년 A&M 레코드와 계약을 하고, 16살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첫 정규 앨범인 'Janet Jackson'을 발매한다. 수록곡은 대부분 디스코/펑크 장르로 구성 되었다. Young Love와 Come Give Your Love To Me가 싱글차트에서 58, 64위에 올랐으나 잭슨가라는 타이틀 외에 큰 주목은 받지 못 했다.

이후 1984년 오빠 마이클 잭슨과 말론 잭슨이 프로듀싱 한 2집 앨범 'Dream street'를 발매하지만 싱글차트에 진입 실패하며 1집보다 더욱 저조한 반응만 얻는다. 이 무렵 자넷은 어릴적부터 친해왔던 가수 제임스 드바지와 사랑에 빠져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을 하게 된다.[14] 그러나 결혼 후 가족과 점점 사이가 멀어진데다 남편 드바지는 마약 중독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결국 자넷은 고심 끝에 1985년 첫번째 이혼을 하게 된다. 연이은 앨범 부진과 이혼으로 자넷은 심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다.

2.2. 성공

1집과 2집의 실패 이후 자넷은 큰 결심을 하게되는데, 바로 자신의 아버지이자 그동안 자신의 매니저로서 연예계생활을 뒷받침해준 조셉 잭슨 으로 부터 독립하는 것이었다.[15]

이후 아버지 밑에서 독립한 자넷은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A&M 레코드의 수석 부사장인 존 매클레인의 철저한 기획과 관리 아래 보컬 훈련, 다이어트, 댄스 레슨을 받는 등 고된 훈련을 받게 되고, 이후 프린스의 밴드 The Time의 멤버였던 Jimmy Jam과 Terry Lewis를 소개받아, [16] 그들과 함께 3집 앨범 'Control'을 프로듀싱한다. 이때 자넷의 나이는 만 19세.

파일:external/static.vibe.com/janet-jackson-control-30-years-640x640.jpg
3집 Control (1986)의 앨범 커버

역대 빌보드 앨범 200 70위

1986년 발매한 3집 Control[17], 빌보드 앨범차트 1위와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100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대히트를 치게 된다.[18] 또한 세 번째 싱글 When I Think of You가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3주 동안 1위를 차지했으며, 앨범에서 컷된 싱글 7개 중 무려 5개의 싱글이 빌보드 차트 Top 5[19] 에 드는 쾌거를 기록한다.[20]이 앨범의 성공으로 자넷은 언론으로부터 '차세대 도나 서머'라는 타이틀과 함께 평단과 대중 양쪽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특히 3집 앨범 Control은 80년대 팝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매우 중요한 앨범이기도 한데, 이 앨범에서 보여준 Funky, R&B스타일의 음악을 기반으로 한 강렬한 댄스 비트 스타일은, 이 앨범 이후로의 많은 흑인 댄스 가수들, 예를 들면 Lisa Lisa & Cult Jam, Karen White, Jody Watley 같은 후배 여가수들을 비롯한 80년대 주류 흑인 댄스 음악의 스타일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길게 보자면 초기 New Jack Swing스타일에 영향을 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 들어도 신선한 사운드는 당시 팝계에 미친 임팩트가 엄청나게 컸음을 보여준다.

또한 당시에는 매우 드물게 싱글컷한 7개 싱글 중 6개의 뮤직비디오를 모두 제작했는데, 뮤직비디오들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자넷은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에 이어 뮤직비디오의 시대 개막에 이바지 함과 동시에 당시 몇 안되는 비쥬얼 스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된다.

그녀는 이 앨범 한 장으로 빌보드 어워즈에서 6관왕을 달성함과 동시에 그래미 어워즈에도 올해의 앨범상 후보에 오르게 되었으며, AMA에서는 12개 부문의 후보로 오르며 4관왕을 달성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그녀의 이런 대성공은 가족의 후광이 아닌, 자넷이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서 혼자 당당히 일구어낸 것이기에 더 값지다고 볼 수 있다.

2.3.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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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 Janet Jackson's Rhythm Nation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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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연말 차트 1위 앨범(1975~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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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1px; margin-top:-8px; margin-bottom:-6px"
1975 1976 1977 1978 1979
파일:external/tworoomslive.com/Greatest-Hits.jpg 파일:Frampton Comes Alive.jpg 파일:external/wordsformusic.files.wordpress.com/148776_700x700min_1.jpg 파일:Saturday Night Fever.jpg 파일:81oaJzaPW3L._SY355_.jpg
Elton John's Greatest Hits Frampton Comes Alive! Rumours Saturday Night Fever: The Original Movie Sound Track 52nd Street
엘튼 존 피터 프램튼 플리트우드 맥 비 지스 & Various Artists 빌리 조엘
1980 1981 1982 1983 1984
파일:external/be263e1a63bf5e89ec168c755ae33fcc4152f1968bc3e83f458f9ae5ec668203.jpg 파일:Hi Infidelity.jpg 파일:R-706690-1373503626-5918.jpeg.jpg 파일:Thriller.jpg 파일:Thriller.jpg
The Wall Hi Infidelity Asia Thriller Thriller
핑크 플로이드 REO 스피드왜건 아시아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
1985 1986 1987 1988 1989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710p7yzLdgL._SL1050_.jpg 파일:71c9zUjR8rL._SY355_.jpg 파일:6ecac4be30233f4383b95e704b0f7f39.800x800x1.jpg 파일:george-michael.jpg 파일:Bobby Brown dont be.jpg
Born in the U.S.A. Whitney Houston Slippery When Wet Faith Don't Be Cruel
브루스 스프링스틴 휘트니 휴스턴 본 조비 조지 마이클 바비 브라운
1990 1991 1992 1993 1994
파일:Janet Jackson Rhythm Nation 1814.jpg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51TALdcoAVL.jpg 파일:medium-1991_ROPIN_THE_WIND_Album_cover_sq.jpg 파일:The Bodyguard Soundtrack.jpg 파일:adc5a1e6d899d7de05127c49fdc4cd32.1000x1000x1.jpg
Janet Jackson's Rhythm Nation 1814 Mariah Carey Ropin' the Wind The Bodyguard Soundtrack The Sign
자넷 잭슨 머라이어 캐리 가스 브룩스 휘트니 휴스턴 & Various Artists 에이스 오브 베이스
1995 1996 1997 1998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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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cked Rear View Jagged Little Pill Spice Titanic: Music from the Motion Picture Millennium
후티 & 더 블로피쉬 앨라니스 모리셋 스파이스 걸스 제임스 호너 백스트리트 보이즈
1956~19741975~199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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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theuncool.com/rs937.jpg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
277위

역대 빌보드 200앨범 94위

3집 앨범이 그녀를 미국 내에서 확고한 스타덤에 올려놓은 앨범이었다면, 1989년 발매한 4집 Janet Jackson's Rhythm Nation 1814는 그녀를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만드는 계기가 된 중요한 앨범이다.

무엇보다 메시지의 측면에서 앨범이 거둔 성과는 한층 돋보였는데, 3집이 팝스타 패밀리 출신에서의 '홀로서기'에 관한 의지를 표출했다면, 이번 작에서는 개인의 자유부터 인간관계, 사회문제[21] 등으로 시각을 확대시켰다.

4집 Rhythm Nation 1814은 자넷의 커리어에서도 중요한 앨범이지만, 아티스트로서의 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앨범이다. 특히 팝 댄스 앨범 중에서는 독특하게도 전체 앨범의 수록곡들이 Interlude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록명반들에게서 보이는 컨셉 앨범의 성향이 짙은데, 아무래도 이 앨범에서 자넷이 이야기 하고픈 여러 가지 사회 이슈들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하기에는 이런 컨셉 앨범의 포맷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듯하다. 이와 같이 전곡이 Interlude로 연결되어 '컨셉앨범화'한 포맷은 이 이후로도 쭈욱 이어지게 되며, 자넷 앨범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22]

특히 4집은 싱글차트 Top5에 진입한 곡이 7곡이며 이는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23] 그중 차트 1위 곡은 무려 4곡. 지금이야 리패키지로 얼마든지 성과를 낼수 있지만 그냥 한 앨범에서 7곡의 싱글컷을 해서 그 곡이 전부 Top5에 올랐다는건 실로 엄청난 기록이다.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200만장 가량 팔렸으며, 특히 미국 내에서만 85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8×Platinum 인증을 받는데, 1990년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자넷은 이 앨범으로 무려 빌보드 어워즈 15관왕을 달성하게 된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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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Rhythm Nation Tour 공연 중인 자넷.

'Rhythm Nation 1814'을 발매하면서 처음으로 월드투어를 가지며 북미를 포함한 일본, 유럽 등을 방문하게 된다.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으면서 투어를 성공시키게 되고, 첫 투어에서 28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게 되는데, 이는 1990년 팝스타 투어 수익 순위에서 5위, 여성 아티스트로는 수익 순위 탑10에 오른 유일한 아티스트이며, 현재까지 첫 투어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아티스트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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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넷의 트레이드 마크인 리듬네이션 의상

이 당시 그녀가 입었던 검정 제복과 바지,그리고 열쇠 귀걸이는 지금까지도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로서 인식되고 있다. [25] 이것 때문인지 코난 오브라이언이 DMZ를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 군인 복장을 보고 자넷잭슨 백댄서 같다고 한 적이 있다.

90년도에는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며 명실상부한 레전드 반열에 이름을 올린다. 이후 91년 A&M을 떠나 버진 레코드로 이적 하게 되는데, 이 때 금액이 당시 최고 금액이었던 4천만 달러였다.

당시 자넷 잭슨은 3집과 4집의 엄청난 성공으로 오빠의 자리와 대적할 만한 막강한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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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집 Janet. (1993)

역대 빌보드 200앨범 119위

새로운 섹시 디바의 탄생

5집 앨범 제작 이전부터 자넷은 큰 고민에 빠졌는데, 자넷 본인은 그 전부터 본인의 건강한 섹시미를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26] ,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특히 아버지)때문에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더군다나 80년대 후반에 언니인 라토야 잭슨이 플레이보이지 누드 파문을 겪고 집안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아티스트 본인으로서는 이런 급작스러운 섹시 컨셉이 더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듯.
하지만 이 앨범을 발매할 때 이미 27살이나 되었었고, 전작에서 사회 문제에 대해 다룬 것에 이어, 5집 Janet부터는 '(흑인)여성으로서의 당당한 자신감, 섹시함을 내세우기로 결심한다.
이를 바탕으로 1993년 다섯 번째 앨범 'janet.'이 발매되었다. 전작과 달리 자넷 잭슨이 모든 곡 작곡에 참여했으며, 이전까지는 주로 오빠와 비슷한 강렬한 비트 위의 댄싱머신 컨셉을 추구했다면, 5집부터는 R&B 음악에 기반을 둔 섹시 컨셉으로 전환하며 큰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앨범을 공개하자마자 엄청난 수위의 앨범 자켓이 큰 화제가 되었다.후방주의 [27] 무엇보다 음악적 변화도 컸는데, 이전까지는 빠르고 강렬한 비트의 댄스곡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번 앨범은 부드럽고 잔잔한 R&B곡, 힙합 같은 흑인 음악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수록곡 That's the way love goes나 If같은 곡들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음악 노선과 컨셉을 각인시켰으며, 특히 그 중 Anytime, Anyplace의 뮤직비디오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수위가 높아져서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28]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총 1400만장 정도를 판매하며 어마어마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데, 특히 첫 싱글인 'That's The Way Love Goes'는 부드럽고 잔잔한 멜로디 위에 리듬을 결합시키는 독특한 구성으로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8주 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한다. 총 6개의 싱글이 싱글차트 탑텐에 들어갔고, 첫 싱글과 'Again'이 싱글차트 1위를 거머쥐었다. 이 앨범의 첫 주 판매량이 35만장 이었는데, 당시 여자 가수중 첫 주 판매량 넘버원 이었다.
음악적으로는 팝, R&B적인 기반위에 힙합, 스윙재즈, 트립합, 테크노하우스, 록, 클래식오페라 같은 다양한 요소를 도입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자넷은 이전의 파워풀한 댄스와 더불어 여태껏 시도하지 않았던 섹시 컨셉의 조화를 통해 이미지 변신에 완전히 성공하며, 차세대 섹시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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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집 <Janet.> 활동시절의 자넷
이 시기가 자넷의 나이가 만 27살때 로 외모가 가장 황금기였던 때다. 섹시 컨셉으로 전환한지라 아름다운 외모가 더욱 부각된 듯 하다.

아래 영상은 전작과는 확연히 달라진 이미지를 한껏 보여준 1993년 MTV Music Awards에서의 That's The Way Love Goes & If 메들리 공연 [29]




또한 동년에는 투팍 샤커와 함께 영화 Poetic Justice의 여주인공인 저스티스(Justice)를 연기하며 영화배우로도 데뷔한다.
당시 엄청난 라인업으로 큰 화제가 되었지만, 영화 자체는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TLC , 투팍 , 자넷 잭슨 , 어셔등이 참여한 트랙이 큰 인기를 누렸고,[30] 자넷이 영화에서 입고 나왔던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크게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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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앨범 Design Of a Decade 1986-1996 (1995)

이후 1995년에는 베스트 앨범 Design of a Decade 1986~1996 - 을 히트를 시키면서 마돈나와 함께 여성 댄스 가수 투톱 체제를 굳건히 유지한다.[31] 이 시기 그녀는 마돈나와 함께 'Queen Of POP'이라는 타이틀로 평론가들에게 불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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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am 뮤직비디오 中(1995)

동년 95년에는 오빠 마이클 잭슨과 함께 'Scream'을 발매. 큰 화제를 일으켰다. 뮤직비디오 제작비만 700만 달러가 투입된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그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뮤직비디오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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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집 The Velvet Rope (1997)
파일:external/www.theuncool.com/rs937.jpg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
259위

이후 몇 년의 공백기동안 자넷은 감정기복이 심해지며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우울증 극복 후 좀더 깊고 성숙해진 감성을 바탕으로 1997년 6집 정규앨범 The Velvet Rope가 발매된다. 매우 어두운 분위기를 띠는 이 앨범은 자아, 자존감, 관계, 감정, 사랑, 심지어 데이트 폭력이나 동성애 [32]같은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심오한 주제들을 다루었다.

특히 다양한 장르를 한 앨범에 녹여냈던 이전 앨범과 달리, 당시 초강세를 보이던 힙합과 끈적한 R&B 등 흑인음악이 주를 이루는 앨범으로 자넷의 앨범들 중 음악적으로 가장 뛰어난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의 곡들과 대중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다루었음에도, 앨범은 세계적으로 1000만 장 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 Together Again은 전세계 각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33], 대한민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34]
지금도 가끔씩 국내 방송에서 들을 수 있다.


첫 싱글 <Got Til It's Gone>은 모든 것들은 빈자리가 느껴질 때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감동적인 내용의 곡으로, 당시 트렌드였던 힙합을 바탕으로 한 R&B곡이다. 포크송의 여제 조니 미첼의 Big Yellow Taxi를 샘플링 한 곡이다. 힙합 컨셉의 R&B곡에 포크송을 샘플링 했다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평단의 극찬을 한몸에 받았다. 흑인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냄과 동시에 자넷의 아프리카계 흑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표현한 뮤직비디오는 그해 그래미 최우수 뮤직비디오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래 영상은 American Music Awards에서 공연한 Together Again 영상, 이 공연에서는 리믹스 힙합버전[35] 으로 완벽한 퍼포먼스로 호평을 받았다.




한동안의 휴식기 이후, 2000년 인기배우인 에디 머피와 함께 영화 Nutty Professor 2에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OST에도 참여. 트랙 수록곡 중 그녀의 곡 Doesn't Really Matter는 같은 해 9월 싱글차트에서 3주간 1위를 차지하며 그녀가 건재함을 팝계에 알렸다. 이곡은 평단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아래는 2000년 MTV 어워드에서의 공연[36]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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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집 All For You (2001)

2001년에는 7집 정규앨범 All For You가 발매되었다.

이 시기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 데스티니스 차일드 , 제니퍼 로페즈 등 팝 음악계의 초대형 신인들이 전 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시점이었음에도 밀리기는 커녕, 첫 싱글 All For You가 싱글차트 7주 연속 1위를[38] 차지했으며, 총 800만장에 달하는 높은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초대박을 친다. 당시 자넷의 나이는 35세. 이 앨범까지 15년간 무려 5개의 넘버원 스튜디오 앨범들을 연속으로 배출하며[39], 자넷은 트렌드를 정말 잘 타는 가수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고[40], 특히 이 시기에는 당시 하락세를 타던 오빠 마이클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같은 해 2001년도에는 음악계에 끼친 공로가 인정되어 MTV Icon 어워즈에서 상을 받았다. 특히 여러 쟁쟁한 레전드들을 제치고 1대 MTV Icon으로 선정된것만 봐도 당시 자넷의 인기와 명성이 어느정도 였는지 알수있다.[41]

MTV Icon awards 에서의 어셔, 마야, 핑크가 함께한 트리뷰트 영상



MTV Icon awards에서의 All For You 공연 영상


2.4. 대형사건과 하락세

니플게이트 사건 (2004.2)

2004년 슈퍼볼 XXXVIII 하프타임 가슴노출 사건(니플게이트 사건이라고 부른다.). 4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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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집 Damita Jo (2004)

2004년 2월, 칸예 웨스트와 작업한 8집 앨범 Damita Jo를 발매하기 직전 올랐던 슈퍼볼 공연에서 자신의 가슴을 노출해 어마어마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 당시 수퍼볼 공연을 기획했던 MTV 측은, MTV 감독하에 진행했던 리허설때는 없었던 퍼포먼스였으며, 자넷 잭슨이 계획한 퍼포먼스라고 주장했다. 자넷 잭슨의 공식 대변인의 발표에 의하면, 해당 퍼포먼스는 애초에 자넷 잭슨의 겉옷을 뜯어내서 붉은색 브라를 노출하는 정도로 계획했었지만, 뜯겨나간 겉옷에 브라가 함께 딸려서 뜯겨 나갔다고 설명했다. 물론, 자넷 잭슨측의 대변인의 발표가 사실인지 변명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옷이 뜯긴 직후에 자넷 잭슨과 저스틴 팀버레이크 모두 당황한 표정이 잡힌 사진과 자넷 잭슨이 황급히 손으로 가슴을 가린 사진이 공개된 것으로 보아, 공식 발표가 사실일 가능성도 있다. 팀버레이크가 미친놈도 아니고 연예계에서 오래 활동한 가수인데 혼자 독단적으로 대스타이자 선배인 자넷잭슨의 가슴을 노출시키는 애드립을 할 리가 없었고[42], 잭슨 측도 노출 퍼포먼스 자체는 기획된 것이 맞다고 밝혔으니 이 해명으로 팀버레이크는 크게 욕을 먹지는 않았다 문제는 노출당시 자넷잭슨이 화려한 유두장식을 달고 있었다는 것. '브라만 노출할 생각이었다'는 해명과는 다르게 여봐란 듯이 가슴에 요란한 장식을 달고 있었으니[43] 대중은 '자넷 잭슨이 화제거리를 만드려고 의도적인 노출을 계획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

당초 2004년도 그래미 시상식에 예정되어있던 초청도 취소당했으며 약 55만 달러의 벌금을 자넷 측이 배상해야했다.[44] 설상가상으로 라디오 DJ들과 MTV를 비롯한 각종 매체들 역시 자넷의 신곡들을 보이콧하는 바람에 새로 나온 앨범의 프로모션 역시 제대로 꼬이고 말았다. 약 3년 만에 발매되는 자넷의 신보였기에 기대도가 한참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토크쇼를 쫓아다니며 사과 발언을 하는데 방송 활동을 전부 쏟아부어야 했고[45] 앨범 판매량 또한 전작이 전 세계 8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던거에 반절도 못한 300만장 남짓한 판매량을 거두는데 그쳐야 했다. 4번째 싱글로 내정되어 있던 R&B Junkies는 보이콧 여파 + 반대 여론으로 인해 뮤직비디오 촬영도 못한 채 활동을 마무리 해야만 했다. 또한 그 해 예정되어있던 빅토리아 시크릿 공연이 취소되었으며 디즈니월드에 있는 리듬네이션 의상을 입고있던 미키 마우스 동상도 철거되었을 정도(...) 자넷의 이미지가 얼마나 폭락했는지 보여주는 부분. 게다가 2004년 구글 검색어 키워드 1위가 "자넷 잭슨"이었다고. 놀랄만한 사실은 이 영상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Jawed Karim 이라는 사람은, 이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서 동영상 공유 검색 서비스 YouTube 를 개발했다고(...) 이 사건의 엄청난 파급력을 볼 수 있다.


이 사건 이후로 미국의 주요 공중파 생방송경기를 이런 사건등의 이유로 딜레이 생중계하도록 의무화 했다. 또한 슈퍼볼에서 현역 팝스타 초청 공연을 중단하고 사고를 낼 일이 없는 올드팝 스타들로 선회하는 등 이 사건으로 자넷 잭슨의 이미지가 곤두박질치고말았다.

그러나 이전 앨범까지도 초대박이 터지며 수천만장의 판매량을 올려온 자넷이 왜 다시 재기하지 못하고 십년 동안 지지부진 했는지는 미스테리. 특히나 당시 자넷의 콘서트 파워는 마돈나 못지 않았던 만큼, 마돈나처럼 콘서트파워를 통해 극복할 수도 있었고, [46] 이후 줄줄이 발매된 앨범들도 퀄리티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 다만 마돈나와 자넷은 댄스디바에 섹시 컨셉을 내세웠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실제 이미지는 매우 상이했다. 마돈나는 데뷔 당시 때부터 온갖 논란의 중심으로 파격적이고 과감한 이미지의 여가수로 유명했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파격적인 태도를 보여줘도 기존 이미지의 후광(?)으로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 한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돌출 행동들을 일종의 캐릭터로 밀고 나갔던 가수였기 때문에 차라리 마돈나가 이러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면 자넷보다 더 복귀가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자넷은 어렸을 때 부터 잭슨가에서 혹독한 트레이닝과 연예계 생활을 거치며 매우 절제된 사생활과 태도로 정평이 나 있던 가수였다. 인터뷰 영상들만 찾아봐도 매우 조곤조곤하고 예의 바른 모습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반대 급부로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더 이미지 타격이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장 미국에서 인기 많은 래퍼들만 봐도 굉장히 험악하고 살벌한 사건사고가 많지만 아무런 이미지 타격 없이 잘만 활동하는 이들이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참고로 한국도 아니고 개방적인 미국에서 이러한 노출 사고가 큰 이슈가 된것에 의문을 가지는것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먼저 미국은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국가라 의외로 그닥 개방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보수적인 면들이 꽤 많은데, 특히 아이들에 관한 면에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다. 이러한 점에서 어린이들도 자유롭게 시청가능한 슈퍼볼에서 노출 사고가 일어나면서 자연스레 큰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것이다. 아무리 별별 이슈를 다 불러 일으키는 가수들이라도 슈퍼볼에서만큼은 어그로를 자제한다.[47]

14년 후 저스틴이 다시 슈퍼볼 무대에 올랐다 카더라 3번째 슈퍼볼 공연이다


Damita Jo 앨범과 그 다음 앨범인 20 Y.O. 앨범은 빌보드 앨범차트 2위가 최고 성적일 정도로, 자넷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실패...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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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집 20 Y.O (2006)
20주년 기념으로[48] 2006년에 나왔던 9집 앨범 20 Y.O는 기존의 평론가들의 평가 또한 안 좋아 몇몇 곡들을 제외하곤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자넷에게는 특별한 의미의 앨범 임과 동시에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대부분의 수록곡에 샘플링을 적용하여 지루하다는 평이 주류였고, 그나마 인기를 누린 싱글 Call on me도 넬리의 Dilemma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평이었다.

2007년에는 영화 <Why did I Get Married>에 주연 패트리샤 역으로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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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집 Discipline (2008)

2008년도에 나온 10집 앨범 Discipline은 기존의 프로듀서였던 테리루이스와 지미잼 체제에서 벗어나 니요, 스타게이트와 같은 신세대 프로듀서들과 같이 작업하고 나온다. 당시 여성 R&B 댄스 앨범중에 이만큼 진지하고 트렌디하게 음반을 뽑아낸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기에 평론가들의 평또한 매우 좋았으며, 우수한 완성도를 보인 앨범으로서 All For You앨범 이후로 오랜만에 앨범차트 1위를 달성하게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07년 선공개한 싱글 Feedback이 높은 스트리밍수 및 뮤직비디오로 화제가 됨과 동시에 빌보드 싱글차트서 19위를 차지하며 간만에 차트 Top20에 들게된다. 그러나 이후 2번째 싱글부터 반응이 미적지근해지자, 새로 옮긴 소속사인 데프잼은 더욱 프로모션 지원에 박차를 가해야 할 판에 프로모션 행사를 통으로 취소해 버리는 등 막장 행각를 보였다. 결국 자넷 잭슨이 직접 사비를 털어 프로모션을 돌아야 했을 정도로 열악한 상태에서 프로모션을 해야 했다.
2001년도 All For You 투어이후 7년 만에 진행하게 된 Rock With You투어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전성기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투어 규모와 판매율로 씁쓸함을 맛봐야 했다. [49] 그래도 40세가 넘은 나이에 춤과 노래를 완벽히 소화해내는 자넷의 모습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같은 해 앨범을 발매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 또한 자넷의 투어를 보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50]

2009년도에는 자신의 활동 곡들을 집대성한 베스트 앨범 The Best를 발매하였고 이후에는 월드투어를 진행하며 처음으로 홍콩, 대만중화권을 방문했다. 이미 전성기를 한참 지났기 때문에 티켓 판매 반응 모두 저조하였지만 많은 나이에 무대 퍼포먼스와 라이브를 완벽히 소화하는 자넷의 모습은 언론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2010년에는 2007년 본인 주연의 영화였던 <Why did I Get Married?>의 후속작 <Why Did I Get Married Too?>에 주연 패트리샤 역으로 다시 한번 출연했다. 또한 영화 사운드트랙인 'Nothing'을 발표한다.

이후에는 카타르의 갑부와 결혼해서 이슬람교로 개종 후 결혼 생활을 보내며 본인도 가수로서의 생활에 별로 미련이 없어보이는 듯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팬들도 격려를 보내고 있었는데..... 14년도 8월 쯤해서 주변인으로 부터 "다음 앨범을 준비 중에 있다."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만세 단순한 찌라시일수도 있지만 자넷 최측근인데다가 자넷의 남편 측근으로 부터도 같은 소식이 들려와 자넷의 팬들은 대환호 중.

2.5. 성공적인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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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집 Unbreakable (2015)

2015년 5월 16일 드디어 복귀를 선언했다. 복귀와 동시에 투어를 발표했다. 앨범은 기존의 프로듀서였던 테리루이스와 지미잼이 총 프로듀싱을 맡았다. 특히 이번작에서는 전작들에서 드러나는 섹슈얼한 컨셉을 과감히 버리고, 과거 90년대의 영광을 연상케 하는 R&B, 댄스 곡들과 오빠 마이클 잭슨을 그리는 등 베테랑 가수로서의 보다 성숙하고 차분한 노선을 택했다.



6월 22일 첫 싱글 'No Sleeep'(e가 3개)을 발표했는데 점수 짜게 주기로 유명한 피치포크에서 bnm을 줄정도로 평이 괜찮다!

또한 싱글 No Sleeep이 빌보드 싱글 차트 Top 100에 진입하며 최고 63위를 기록했다.[51] 특히 음악적으로 이번 작은 '90년대 풍으로의 회귀'를 멋지게 표현함으로서, 아티스트로서의 감각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20년 전 사운드를 요즘에 맞게 적절히 리파인한 곡들과 자아성찰을 보여주는 깊이있는 가사가 호평을 받은 듯.

10월 2일 앨범 'Unbreakable'을 발표했다. 메타크리틱 평점이 무려 75점으로 매우 좋은 평을 얻고있다.

그리고 상업적으로도 흥하고 있는데 무려 초동 116,000장을 기록하며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만들어냈다.

결국 이 앨범으로 자넷 잭슨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40년대에 걸처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한 여성 아티스트가 됐다.

이듬해인 2016년 5월 4일 싱글 Dammn Baby를 발매했다. 감성 R&B곡인 No Sleeep과 달리 강렬한 리듬의 트렌디한 댄스곡으로, 곡의 브레이크 다운 (Break Down) 파트에 특이하게도 본인의 곡인 "I Get Lonely"를 샘플링 하였다.



2008년 Discipline 이후 무려 7년 만의 신작으로서 성공적인 복귀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52]

2.6. 2018년

2017년에 이어 2018년까지 State of the World 북미투어를 진행중이다. 라이브 영상을 보면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전성기 시절의 댄스실력을 뽐내며 관객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5월 23일에는 2018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아이콘 어워드을 수상했다. 더불어 축하공연에서는 Nasty, If, Throb 등 과거 히트곡을 휼륭하게 소화해내 극찬을 받았으며, 더불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53]

8월 17일에는 대디 양키와 콜라보 한 싱글 Made For Now가 공개되었는데, 1일만에 유튜브 조회수 400만을 달성하며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번 싱글이 주목 받는 이유는 자넷의 음악인생 36년 동안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라틴 장르곡이기 때문. BET 시상식 참가 외에 아무런 홍보도 하지 않았던 11집 활동시기와는 달리, 이번에는 지미 팰런쇼, 각종 라디오 방송 및 인터뷰에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홍보로 인한 화제 덕분인지 8월 마지막 주 싱글차트에 88위로 진입하였다.

오랜만에 나온 신곡 Made For Now를 라이브로 선보여서 엄청난 갈채를 받은 지미팰런쇼 공연영상


12월 14일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최종 헌액되었다.

2018년 12월 14일 홍콩에서 열린 MAMA에 출연하여 인스피이레션 부문을 수상했다. 예상치 못했던 한국 팬들은 몹시 당황(...)[54] 그런데 이때 MC가 자넷을 소개할 때 "빌보드 차트 1위곡이 100곡이 넘을 만큼(...)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독보적인 팝의 여왕"[55]이라고 소개하는 병크를 저질렀다. 비틀즈: ??? 한국 시상식 등장에 지나치게 황송한 나머지 빌보드 신기록을 갱신시켜 드렸나보다 실제 자넷의 빌보드 차트 1위곡은 10개[56]다. 가수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안해보고 초청했다는 뜻인데 자넷의 진정한 위치와 입지를 생각하면 무례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3. 가창력

가성이 아름다운 가수하면 대표적으로 손꼽힌다. 특유의 고혹적인 음색과 가성 덕분에 장기인 댄스팝, R&B 등에서 장점이 발휘되는 가수. 댄스 디바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에는 휘트니 휴스턴이나 머라이어 캐리와 같은 정통파 디바들의 보컬 스타일과 다르다는 이유로 꽤나 저평가 받기도 하였다. 당시에도 라이브 실력에 대해서는 모두들 인정하는 분위기였지만 객관적으로 과연 '노래를 잘하는 가수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90년대 이후로 여성 댄스 디바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하고, 본인의 목소리와 잘 맞는 음악들을 내보이면서 재평가 받기 시작한다. 비록 폭발적인 성량과 괴물같은 고음으로 승부하는 가수는 아니지만 자넷이 노래마다 내세웠던 '당당하고 섹시한 여성상' 에 부합하는 음색이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하면서 호평을 받게 된 것. 또한 발군의 곡 해석력과 독특한 발성 등 새로운 디바의 정의 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찌보면 오늘날의 리아나의 어머니격 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지만 리아나는 댄스가수도 아닌데 라이브 실력이 영..---

그러나 자넷 잭슨이 가장 호평받는 부분은 역시 라이브. 콘서트 영상을 보면 '폐에 산소통 달았나' 싶을 정도로 격렬한 안무를 소화하면서 흔들림없는 음정을 보여준다. 물론 전부 다 라이브를 하는 것은 아니고, 난이도 높은 안무의 노래를 부를땐 립싱크를 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라이브를 할 때 있어서 실수를 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특히 요즘 댄스 아티스트들의 잦은 립싱크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자넷은 3집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부터 꾸준히 라이브를 해왔다. 물론 립싱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타 댄스 가수들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라이브의 비중이 크며, 라이브를 자주, 그리고 아주 잘 한다는 것이 특히 강점. 심지어 50이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뛰어난 실력으로 후배 가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아무래도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엄격한 특훈을 받아서 커온 집안 환경에서 비롯된 것일 듯. 유튜브 같은곳에서 자넷의 라이브 공연을 흔히 볼 수 있으니 관심있으면 검색해볼 것.
라이브영상

4. 댄스


댄스 실력으로는 역대 댄스 디바들 중에서는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57] 매우 과감하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많은 댄서들의 귀감이 되었다. 안무를 소화하는 능력이 굉장히 탁월한데 리듬감이 너무 뛰어나서 다른 백댄서들이 따라가기 힘들다고 토로할 정도. 안무를 만드는 능력 또한 탁월해서 데뷔 초창기에 히트했던 노래들의 안무는 거진 자넷의 손을 거친 안무들이 많다. 이러한 댄서로서의 명성 덕분에 그녀의 백댄서를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비디오 댄서쪽에서는 댄서들 사이에서 상당히 인정을 해주는 편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도 브리트니 스피어스 , 엔싱크 등 많은 후배가수들이 자넷의 안무에서 영감을 얻어 안무를 만들기도 했다.

사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자넷 잭슨의 안무를 표절하거나 참조하는 사례가 왕왕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박남정 ㄱ,ㄴ춤 - Plesure Principle(1986)(1:41초 부터)
룰라의 엉덩이 춤 - You Want This(1993)[58](동작 자체를 고대로 베낌)
채리나의 알잖아 안무 - All For You(2001)의 전체적 컨셉 차용
나미의 설득 안무 - Together Again(1997)의 전체적 컨셉 차용
베이비복스의 Get Up 안무 (대략 2분경) - If (1993)(3:47초 동작)
도시의 아이들 달빛 창가에서 - Control의 키보드를 연주하는 백댄서들의 컨셉 차용

당시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자넷 잭슨의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터라(...) 묻혔던 사례들.

그리고 1991년 김완선이 CF에서 자넷의 Rhythm nation와 Miss you much의 안무를 그대로 재현하기도 했다. 링크1 , 링크2

아직까지 미국에서 댄스 쪽으로는 여성 가수는 자넷 잭슨, 남성 가수는 마이클 잭슨을 뛰어넘는 가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애초에 이렇게 춤 잘추고 노래 잘하는 가수들은 죄다 자넷 잭슨이나 마이클 잭슨을 동경해서 댄스가수가 된 케이스가 대부분인지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우리나라 90~00년대 비디오 댄스계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던 인물. 특히 자넷의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에 대놓고 동작을 베껴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 시절 몇몇 댄서들은 위에 보이는 대로 걍 마구잡이로 베껴다 썼다(...). 지금이야 케이팝의 발달로 우리나라도 수준높은 안무가들과 댄서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 시절에는 그랬다.

5. 음악 스타일

위에서 서술했듯 음악적으로는 댄스팝[59] ,R&B[60], 힙합[61], 소울[62], 발라드[63], 레게[64], 클럽[65], 라틴[66]에서부터 백인 음악인 로큰롤[67]까지 매우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탁월히 소화해낸다. 특히 잭슨의 음악 스타일 중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을 뽑자면 멜로디보다는 리듬과 비트가 강하게 두드러지는 곡들이 많다는 것.[68] 대표적으로 3집의 펑키한 리듬이 주를 이뤘던 What Have You Done For Me Lately나 Nasty, Control이나 뉴잭스윙을 기반으로 한 4집의 Miss You Much, Rhythm Nation 등이 있다. 이후 R&B와 힙합 색채가 두드러지는 5집에서도 That's The Way Love Goes, Throb 등에서 강렬한 힙합 리듬을 기반으로 한 곡들을 시도했다. 이와 같은 경향은 마돈나의 음악과 상당히 대비되는데, 마돈나는 같은 댄스 가수 였음에도 자넷과 정반대로 멜로디와 팝 위주의 곡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

6. 게이 아이콘

자넷의 뛰어난 실력과 멋진 스타일, 과감한 성적 표현과 당당한 이미지 등은 게이층에도 어필하는 요소 중 하나. 특히 흑인 동성애자층이 자넷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자넷 또한 대외적으로 게이팬층에게 어필하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다. The Velvet Rope의 수록곡인 'Free Xone'은 게이들에게 바치는 헌신곡이었다. 또한 당시 활동하던 싱글 'Together Again'의 수익 일부를 미국에이즈조사협회에 기꺼이 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69]

대체적으로 동성애자 단체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 하지만 예기치 못한 실책이 있던 적도 있었다. 2002년도에 대표적인 호모포비아로 알려진 'Beenie Man'과 듀엣 싱글을 발매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성애자 단체들의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이에 자넷은 본 싱글은 자신의 의사가 아닌 레이블에 의해 이루어진 계약이었다며 인터뷰를 통해 직접 사과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2004년도에 싱글 All NIght(don't Stop)을 발매하면서 자신의 싱글에 호모포비아인 Elephant Man의 리믹스 버전을 수록하면서 또 다시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2010년도에는 어린 동성애자들을 위한 단체인 'The Trevor Project'의 광고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여기

7. 자넷을 동경하거나 팬이라고 밝힌 유명인사들

사실 웬만한 흑인 아티스트나 댄스가수들은 전부 자넷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아무로 나미에 - 연예계 입문하기 전부터 자넷 잭슨의 팬이었음을 밝힌바 있다. 격렬한 안무를 소화하면서 흔들림 없는 가창을 소화하는것을 동경한다고. 일본의 자넷 잭슨이라는 컨셉으로 여타 유명 힙합/R&B 뮤지션들과 함께 EP음반인 Suite chic 프로젝트를 벌인 바 있다. 그녀의 싱글인 WILD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자넷 잭슨의 오마쥬인가 싶을 정도로 자넷잭슨의 뮤직비디오를 상당히 참조한 부분을 읽을 수 있다.
Feedback-자넷 잭슨VSWild-아무로 나미에
  • 보아 - 어릴 적 자넷 잭슨의 Rhythm Nation 뮤직비디오 속 안무를 따라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일본의 토크쇼에서 밝힌 바 있다.
  • 제니퍼 로페즈 - 자넷 잭슨의 백댄서 활동을 통해 연예계에 입문. 특히 자넷 잭슨의 Pleasure Principle의 뮤비에 나오는 자넷의 현란한 몸동작을 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밝혔다. 인터뷰에서 자넷 잭슨의 안무를 보며 영감을 얻는다고 밝힌 바 있다.
  • 이효리 - 3집 발매 당시 엠넷에서 방송된 다큐 형식의 프로그램 오프 더 레코드에 나와 "자넷 잭슨 티셔츠를 입고 레코딩을 하면 녹음이 잘 된다"고 밝힌 바 있다.링크 특히 아이돌에서 솔로 데뷔에 성공하며 댄스 가수로 전향한 후인 2000년대 초중반 10 minute, Any motion 등 에서 흑인 음악을 시도하며 자넷의 안무나 스타일을 차용하기도 했다.
  • 바다 - 솔로1집 발매 당시 "정적인 발라드 혹은 R&B 가수로 전환하기보다는 나이가 들어도 정열적으로 무대에서 노래하는 마돈나(Madonna)와 자넷 잭슨(Janet Jackson)처럼 되고 싶다"라며 자넷 잭슨을 언급했다.
  • 박진영 -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 중 한 명이라고 꼽았다. 소속 가수였던 진주가 인터뷰에서 박진영이 자신을 프로듀싱할 당시 한국의 자넷 잭슨을 모토로 삼아 댄스 트레이닝을 시켰는데 너무 몸치라(...) 포기했다고 밝혔다. 프로듀서로서 미국 진출 시도 당시 자넷 잭슨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앨범 참여는 실패하고 가수 비타민 앨범에 참여했다는 전설이. 하지만 이후 윌 스미스의 마지막 정규 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하면서 망신살 회복. 케이팝스타에서도 자신은 자넷 잭슨을 좋아한다고 말했고, 그외에도 심사평을 할때 자넷 잭슨을 자주 언급한다.
  • 소녀시대 - 무대에서 자넷잭슨의 안무를 재현한 바 있고, 특히 멤버 유리는 인터뷰에서 영광스러웠다고 밝힌 바 있다.
  • 카라
  • 가희 - 2010년 애프터스쿨 활동 시절 김정은의 초콜릿에 출연해 평소에 매우 존경하던 아티스트인 자넷 잭슨의 Rhythm Nation 오마주 무대를 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 비욘세 - 명실상부한 자넷 잭슨의 팬이다. 자신의 음악관과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자넷 잭슨을 꼽았다. 데스티니스 차일드 시절부터 자넷 잭슨을 존경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솔로 데뷔 후엔 차세대 자넷 잭슨이라고 불렸다.
파일:external/media.toofab.com/1019-beyonce-new-810x960.jpg

할로윈 데이에 딸 블루 아이비와 함께 잭슨 남매 코스프레를 하고 트위터에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하고 자신의 콘서트에서 자넷 잭슨이 춘 안무를 그대로 재현하기도 했다.
특히 비욘세의 경우는 마이클 잭슨도 존경하며, 롤모델이었다고 밝혔다.
이외에 또 다른 사례들이 있으면 추가 바람.

8. 여담

자타공인 고무줄 몸매다. 활동을 쉴 때는 요요 현상 때문에 아예 굴러 다닐 정도로 심각하게 살이 불어오른다. 농담이 아니고 파파라치 찍힌 샷을 보면 좀 통통한게 아니라 정말 심각하게 뚱뚱하다. 2008년 Disciplin 발표 전에 110kg까지 찐 적이 있어서 컴백이 불가능하다는 예측도 있었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뚱뚱한 자넷을 매니저가 일으켜 세워주는 샷도 있을 정도. 활동기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쭉 빼고 돌아오는 것이 미스테리. 먹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고 성격이 느긋한 편이라서 살이 쉽게 붙는다고. 육덕진 몸매는 어릴 때부터 그랬던 모양인데 어린 시절에 뚱뚱한 자넷을 보고 오빠 마이클 잭슨이 붙여준 별명이 덩크(donk)라고 한다.[70]그러나 태연한 성격의 자넷은 "내가 할머니가 된 후에도 덩크라고 불러도 상관없삼. 난 원래 뚱뚱하니까."라고 되받아쳤다 카더라.(...) 오빠나 동생이나 멘탈이 보살이다 휴식기에 너무 뚱뚱해진 자넷을 보고 오빠 마이클이 "제발 운동 좀 해라. 동생아!!" 하면서 런닝머신을 사준 적도 있다고(...) 마이클 잭슨은 춤을 위해 평생을 조금 먹으면서사실?? 마른 몸매를 유지했다.

위 사진에서만 봐도 상당한 거유로 앨범 자켓 수위도 상당히 아슬아슬한 것이 많다. 니플게이트 사건 때도 보도 사진에 유두를 스티커로 가려놨지만 워낙에 가슴이 큰지라 소용이 없어서 자극적인 보도에 혈안이 된 언론사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결혼을 총 3번 했다. 잭슨가의 언니 오빠들처럼 결혼을 일찍 한 편으로 1984년 18살 때 가수 제임스 드바지와 결혼했다. 1년 후에 드바지와 이혼한 후 91년에는 뮤직비디오 감독인 르네 엘리존도[71]와 재혼했다가 2000년에 이혼했다. 그 이후에는 저메인 듀프리와 7년 가까이 연애를 하다가 2009년에 헤어졌다. 2013년에는 카타르의 억만장자인 8살 연하의 위삼 알 마나와 비밀 결혼을 하여 화제가 되었으나 첫 출산 후인 2017년 이혼했다.

마이클 조던이 현역 시절에 시카고 불스 동료들과 '자신이 실제 알고 지내는 가장 유명한 인물과 전화통화하기.' 내기를 했을때 한 동료가 조던에게 자네는 누구하고 전화 통화가 되느냐고 묻자 조던은 "누굴 불러줄까?"라고 물어, 그 포스가 마치 미국, 더 나아가 지구의 모든 유명 인사들과 다 알고 지내는 사이인 것 같았고, 이에 그 동료가 자넷 잭슨을 거론해 마이클 조던이 자넷 잭슨에게 전화 메시지를 남겼고 얼마 후에 자넷 잭슨에게 전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이때 조던의 동료들은 그가 자신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인물이라는걸 실감했다고.(....)차라리 미국 대통령이나 '국토안보부' 장관이나 UN 사무총장이나 교황을 거론하는게 나을 뻔했다. 그 분들은 사적으로 통화하기 힘들잖아.

무대 위 카리스마와 달리 실제로는 굉장히 수줍음을 많이 탄다고.. 오빠와 성격마저 비슷하다.

2016년에는 임신 중이라고 발표했다. 마침내 2017년 1월 4일 50세의 나이에 첫 아들을 출산하였다. #
아들의 이름은 아이사 알 마나(Eissa Al Mana). 마이클의 딸 패리스 잭슨과 마찬가지로 외모가 백인에 가깝다. 아버지를 더 닮은 듯. 아들의 종교는 무슬림이라고 한다.
2017년 4월 아들을 출산하고 얼마 안된 시점에서 결국 이혼했다. 남편과의 불화로 인해 결국 이혼을 택했다고한다. 이로써 자넷은 3번째 이혼을 하게 되었다. 출산후 5개월만에 무려 30kg역시 자타공인 고무줄몸매을 감량하고 9월부터 본격적으로 투어를 돌 예정이라고 한다. 2017년 9월 현재 다시 복귀하여 State of world tour를 진행중이다.[72] 라이브 영상을 보면 전성기 못지 않게 휼륭하시다.

최근 50대에 접어들면서 음역대가 살짝 낮아져 마이클과 목소리나 창법이 더욱 비슷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낸 Unbreakable 앨범수록곡들만 하더라도 창법이나 음색이 마이클을 연상케 한다.

9. 디스코그래피

자넷 잭슨/음반 목록 항목 참고.

9.1. 싱글/뮤직비디오

9.1.1. 빌보드 1위

  • When I Think of You (1986) [73] 2주 연속

  • Miss You Much (1989) [74] 4주 연속

  • Escapade (1990) 3주 연속


  • Love Will Never Do (Without You) (1990) 1주

  • That's the Way Love Goes (1993) [77] 8주 연속

  • Again (1993) [78] 2주 연속

  • Together Again (1997) 2주 연속

  • All for You (2001) 7주 연속

9.1.2. 빌보드 2위

  • Rhythm Nation (1989)

  • Come Back to Me (1990)

  • Any Time, Any Place (1994) [80]

후방주의

9.1.3. 빌보드 3~10위

  • What Have You Done for Me Lately (1986) [81]
  • Scream (Duet with Michael Jackson) (1995)

  • I Get Lonely (1998)

9.1.4. 빌보드 11~20위

  • The Pleasure Principle (1987)

  • Feedback (2008)

10. 기록(노미네이트 제외)

역대 빌보드 Hot100 아티스트 7위
역대 빌보드 200 아티스트 28위
빌보드 집계 1990년대 최고의 가수 2위[83]

10.1. Grammy Awards

1990년 Rhythm Nation 1814 / Best Music Video(장편) 부분 수상
1994년 That's The Way Love Goes / Best R&B Song 부분 수상
1996년 Scream / Best Music Video(단편) 부분 수상
1998년 Got 'Til It's Gone / Best Music Video(단편) 부분 수상
2002년 All For You / Best Dance Recording 부분 수상
Recording Academy's Governors Award 부분 수상

10.2. Emmy Awards

1999년 Janet: The Velvet Rope live on HBO / Outstanding Technical Direction/Camera/Video for a Special 부분 수상

10.3. Billboard Music Awards

1986년 Top Black Artist (combined LPs & singles) 부분 수상
Top Black Singles Artist 부분 수상
Top Dance Club Play Artist 부분 수상
Top Dance Sales Artist 부분 수상
Top Pop Singles Artist 부분 수상
Top Pop Singles Artist(여성) 부분 수상
Top Pop Album Artist(여성) 부분 수상
Nasty / Top Black Single 부분 수상

1990년 Top Selling Album of the Year 부분 수상
Top Selling R&B Album of the Year 부분 수상
Top Selling R&B Albums Artist of the Year 부분 수상
Top Selling R&B Artist of the Year 부분 수상
Top R&B Artist of the Year 부분 수상
Top Hot 100 Singles Artist of the Year 부분 수상
Top Hot 100 Singles Artist of the Year(여성) 부분 수상
Top Dance Club Play Artist of the Year 부분 수상
Top Hot Dance 12" Singles Sales Artist of the Year 부분 수상
Top R&B Female Artist of the Year 부분 수상
Best Female Video Artist, Black/Rap 부분 수상
Best Female Artist, Dance 부분 수상
Rhythm Nation / Director's Award, Black/Rap 부분 수상
Alright / Director's Award, Dance 부분 수상
Rhythm Nation / Tanqueray Sterling Music Video Award for Artistic Achievement

1993년 That's the Way Love Goes / Top R&B Single – Airplay 부분 수상
Janet / Top R&B Album(여성) 부분 수상
Top R&B Artist(여성) 부분 수상
Top Billboard 200 Album Artist(여성) 부분 수상
Top Pop Albums Artist(여성) 부분 수상

1994년 If / Dance Clip of the Year 부분 수상
Top R&B Singles Artist(여성) 부분 수상

1995년 Scream / Pop/Rock Video Clip of the Year 부분 수상
Artist of Achievement Award 부분 수상

1998년 Top R&B Female Artist of the Year 부분 수상

2001년 Artistic Achievement Award 부분 수상

2018년 Icon Award 부분 수상

10.4. American Music Awards

1987년 Favorite Soul/R&B Female Video Artist 부분 수상
Nasty / Favorite Soul/R&B Single 부분 수상

1988년 When I Think of You / Favorite Pop/Rock/Soul/R&B Video 부분 수상

1990년 Miss You Much / Favorite Soul/R&B Single 부분 수상 , Favorite Dance Single 부분 수상

1991년 Favorite Pop/Rock Female Artist 부분 수상
Favorite Soul/R&B Female Artist 부분 수상
Favorite Dance Artist 부분 수상

1999년 Favorite Soul/R&B Female Artist 부분 수상

2001년 Award of Merit 부분 수상

2002년 Favorite Pop/Rock Female Artist 부분 수상


10.5. MTV Video Music Awards

1987년 Nasty /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부분 수상

1988년 The Pleasure Principle /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부분 수상

1990년 Video Vanguard Award 부분 수상
Rhythm Nation /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부분 수상

1991년 Love Will Never Do (Without You) / Best Female Video 부분 수상

1994년 If / Best Female Video 부분 수상

1995년 Scream / Best Dance Video 부분 수상
Best Choreography in a Video 부분 수상
Best Art Direction in a Video 부분 수상

2018년 Global Icon 부분 수상

10.6. Soul Train Music Awards

1987년 What Have You Done For Me Lately / Music Video of the Year 부분 수상
Control / Album of the Year– Female 부분 수상

1988년 Control / Music video of the Year 부분 수상

1990년 Rhythm Nation 1814 / Album of the Year, Female 부분 수상
Miss You Much / Single of the Year, Female 부분 수상
Rhythm Nation / Music Video of the Year 부분 수상

1991년 Alright / Music Video of the Year 부분 수상

1992년 Sammy Davis, Jr. Entertainer of the Year Award 부분 수상

1994년 If / Music Video of the Year 부분 수상
That's the Way Love Goes / Single of the Year, Female 부분 수상

2000년 What's It Gonna Be? / Music Video of the Year 부분 수상

2001년 Doesn't Really Matter / Best Song from a Movie 부분 수상

2004년 Quincy Jones Award for Outstanding Career Achievements: Lifetime Achievement Award 부분 수상

11. 콘서트/투어

  • Rhythm Nation World Tour (1990)
  • Janet. World Tour (1993–1995)[84]
  • The Velvet Rope Tour (1998–1999)
  • All for You Tour (2001–2002)
  • Rock Witchu Tour (2008)
  • Number Ones, Up Close and Personal World Tour (2011)
  • Unbreakable World Tour (2015–2016)
  • State of the World Tour (2017–2019)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2] 데뷔 연도만 따져봐도 마돈나보다 엄연히 먼저 데뷔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선 자넷을 댄스 디바의 시초로 본다.[3] 참고로, Black Cat같은 경우엔 재미있는 게, 본인의 주특기(팝, R&B 댄스 스타일)가 아닌 정통 로큰롤 스타일의 곡이다. 이 곡이 1위하고 나서 본인이 재미를 들였는지, 그후 앨범에 꼭 1~2곡씩 록 스타일의 곡이 수록되는게 앨범의 기본 포맷이 됐다.[4] 공동작곡으로 1위에 오른 경우는 매우 흔하지만, 단독 자작곡으로 1위까지 간 경우는 돌리 파튼("9 to 5"), 데비 깁슨("Foolish Beat", "Lost in Your Eyes"), 글로리아 에스테판("Don't Wanna Lose You"), 로린 힐("Doo Wop(That Thing"), 앨리샤 키스("Fallin'") 등 극소수 뿐이다.[5] 자넷이 마돈나와 함께 Queen of Pop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8, 90년대에 신기하게도 국내에서만큼은 타 팝가수들에 비해 인기나 앨범 판매량 면에서 뒤쳐졌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아주 인기가 많았었는데, 실제로 14살 때 일본을 처음 방문해 데뷔 전 일본 TV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고,한참 큰 인기를 끌던 90년대에도 일본을 꼭 방문해 투어를 돌거나 광고에 출연하기도. 2015년 투어에도 아시아에서는 일본두바이만 방문.[6] 대표적으로 안무가 출신 댄스 가수 폴라 압둘 (Paula Abdul)이 있다. 8, 90년대 자넷과 마돈나의 영향으로 수많은 댄스 여가수들이 나왔지만 그중 아직까지 왕성히 활동하는 가수들은 본인들 뿐.[7] 2018년 현재 가수 데뷔 36년 차[8] 빌보드 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목록에서 싱글 기준으론 자넷이 7위, 마이클이 8위이지만 앨범 기준으론 마이클이 10위, 자넷이 28위이다. 특히 잭슨의 Thriller앨범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다. 또한 둘의 앨범 발매갯수 차이도 있고 해서 누가 더 성공했는지 여부를 딱 잘라 말하긴 애매하다. 애초에 두 뮤지션 중 누가 더 위대하냐 딱 순위를 매기는 것도 웃기는 것이고... 그냥 둘 다 뛰어난 뮤지션. 다만 최전성기 당시의 임팩트 면에서 마이클 잭슨에 비견될 만한 아이콘은 대중 음악계 사상 거의 없었다. 그리고 빌보드 1위곡도 마이클이 더 많다. 즉, 마이클처럼 전성기 당시 전세계를 말 그대로 광분하게한 어마어마한 임팩트는 없어도 더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낸 게 자넷이란 것. 그리고 임팩트 얘기도 어디까지나 마이클에 비해서라는 거지 빌보드 1위곡 갯수가 보여주듯 자넷의 세계적인 인기도 엄청났다. 또한 마이클이 90년대부터 외모와 스캔들, (무혐의로 밝혀진) 아동 성추행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이미지였다면 자넷은 2004년 니플게이트 이전까지 그 정도 안티는 없었다.[9] 어린시절 자넷의 Rhythm nation 뮤직비디오의 칼군무 댄스를 보며 댄스 가수를 꿈꾸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고 실제로 그녀를 롤모델로 삼고 그녀의 앨범이나 스타일, 댄스에서도 자넷의 컨셉을 일부 차용한 바있다.[10] 역시 자넷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1986년 pleasure principle의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자넷의 현란한 댄스 동작을 보고 "저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다!" 라 하며 댄스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한다. 실제로 데뷔 이전 자넷의 백댄서로 활동하기도 했고 자넷의 일부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11] 마돈나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 크지만 댄스 면에서는 자넷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브리트니 역시 "Stronger" 뮤직비디오에서 자넷의 Miss you much의 의자춤 안무를 그대로 재현하였다.[12] 1993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자넷이 마이클에게 특별 시상을 했었는데 이때 마이클이 "드디어 하나의 루머가 해명이 됐네요." 하면서 자넷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한 일이 있었다.[13] 이 당시 그녀는 또래의 흑인 청소년들, 특히 여학생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백인 위주로 돌아가던 당시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현실을 볼 때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녀가 방송에서 하고 나오던 헤어 스타일과 패션 스타일을 모방하던 흑인 여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14] 여담으로 이 시기 투어 중이었던 마이클은 한참 후에야 자넷의 결혼소식을 접했다고.[15] 자넷 이외에도 모든 잭슨가의 사람들은 아버지 조셉의 손에 의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6] 이때 일화가 있는데 아버지 조셉 잭슨이 Jimmy Jam과 Terry Lewis에게 '내 딸의 음악이 프린스 같이 들리지 않도록 해주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인 즉슨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노래는 만들지 말라는 엄포인 듯.[17] 앨범 타이틀이자, 타이틀곡 이름이기도 한 Control은 한사람의 인간으로서의 '독립'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가사의 내용을 보면 '내 인생은 내 것이니,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컨트롤 하겠다'라는 당차고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18] 이 당시 작업했던 프로듀서인 테리 루이스와 지미 잼은 이 앨범의 성공을 시작으로 이후 앨범 작업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준다.[19] What Have You Done For Me Lately 4위, Nasty 3위, When I Think of You 1위, Control 5위, Let's Wait Awhile 2위, The Pleasure Principle 14위, Funny How Time Flies (When You're Having Fun) UK 59위[20] 당시 동생이 노심초사 끝에 낸 앨범이 대성공하자 마이클은 소리지르며 기뻐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자넷은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고.[21] 'Rhythm nation', 'State of the world', 'Knowledge', 'Black cat' 등에서 인종 차별주의와 교육 문제, 여성 차별, 아동 학대 등의 심각한 문제의식을 보여줬다.[22] 하지만 최근 작으로 올수록 이런 경향이 옅어졌다.[23] 이 앨범서 성적이 가장 좋지 않았던 싱글이 무려 4위(...)[24] 2012년 아델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앨범 21로 빌보드 어워즈 12관왕을 달성한 것을 감안하면 당시 자넷이 얼마나 큰 기록을 세웠는지 알 수 있다.[25] 참고로 이 제복 패션은 그녀의 오빠 마이클 잭슨이 고안해 낸 것이라고 한다.[26] 전작의 마지막 싱글이었던 Love Will Never Do 뮤직비디오에서 그러한 의도를 살짝 드러냈다. 그래서 그런지 그 곡만 전반적인 앨범의 컨셉에서 벗어나있다. 그리고 1990년 VMA에서의 Black Cat 공연 중 입던 셔츠를 열어제끼는 파격적인 공연 등을 한 걸로 보아 그 당시부터 섹시 컨셉을 크게 염두해둔 듯 하다.[27] 당시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매우 유명한 사진이다. Yg 녹음실에도 대짝만하게 걸려있다고 한다. 참고로 사진서 자넷의 가슴을 움켜지고 있는 손의 주인공은 프로듀서이자 당시 남편이었던 르네 엘리존도 주니어.[28] 애초에 Anytime, Anyplace 제목 뜻이 언제 어디서든 상관하지 않고 그것을 하겠다는 것...[29]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모습 그대로를 재현,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영상을 보면 비욘세와 유사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비욘세가 이 시기의 자넷을 보고 배우면서 기량을 키웠다.[30] 자넷의 경우 동년에 5집 janet.의 싱글 Again이 트랙으로 쓰였다.[31] 이 당시 그녀의 백업댄서로 유명했던 사람은 제니퍼 로페즈, 지오디박준형, 일본의 R&B계의 자존심 A.I 등이 있다. 로페즈와 박준형의 경우는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하였다.[32] 수록곡 Free Xone은 동성애를 다룬 곡이다.[33] 자넷은 엄청난 빌보드 싱글차트 성적에 비해 이상하게 유독 월드차트(특히 유럽)에서 뒤쳐지는 경향을 보였으나, Together Again이 유명세를 타며 월드차트에서도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34] 다른 수록곡들은 주로 끈적한 R&B 곡들인 반면 Together Again은 신나는 팝 댄스 곡이기 때문. 아이러니하게도 이곡의 가사 내용은 세상을 떠난 친구들과 언젠가는 다시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는, 장례식에 어울릴 만한 내용. 사실 이 앨범 발매 직전에 에이즈로 사망한 베스트 프렌드를 위한 추모곡이라고 한다. 실제로 앨범 CD에도 노랑리본 마크가 있다.[35] 이 리믹스 버전의 정식 명칭은 Together Again (DJ Premier 100 in a 50 Remix)로써 해당 곡의 싱글앨범에 수록되어 있다[36] 7집 앨범 인터뷰에 따르면 이 날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컨디션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퍼포먼스의 여왕답게 역시나 이 공연도 큰 호평을 받았다[37] 이곡은 대표적으로 OST 버전과 All For You 앨범에 실렸던 버전 2가지가 있는데, 해당 공연에 쓰인 버전은 이후 7집 All For You 에 수록된다.[38] 당시 Independent Woman으로 대박을 치고, 3집 앨범으로 컴백한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첫싱글 Survivor는 자넷의 All For You에 밀려 몇주간 2위에만 계속 머물러있다 차트에서 물러났다...[39] 심지어 정규앨범들을 짧은 시기에 몰아서 발매한것도 아닌, 3-4년 간의 긴 공백을 두며 꾸준히 발표하였다.[40] 실제로 팝스타 중 5개의 넘버원 정규 앨범을 배출한 가수는 드물 뿐 더러15년간 계속 전성기를 누린 가수는 더욱 드물다. 90년대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마저도 이 시기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41] 당시 어워즈에 마이클을 제외한 잭슨 형제들이 직접 참석했는데, 스케쥴 때문에 바빴던 마이클은 자넷에게 영상메시지를 통해 축하메시지를 보냈다.[42] 이런짓을 독단으로 벌였다가는 전 국민들에게 성추행범으로 찍혀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동시에 수많은 천문학적 금액의 소송이 걸린다.[43] 코메디언 롭 슈나이더가 영화 시사회에서 자넷과 똑같은 유두장식을 달고 패러디를 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누가 봐도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붙였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스트리퍼들이나 쓰는 화려한 디자인이다.[44] 정작 사건의 당사자였던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초청돼서 퍼포먼스까지 했는데도 말이다.(...)[45] 오죽했으면 마이클 잭슨마저도 그만 좀 사과하라고 할 정도.[46] 2003년 American Life 앨범으로 논란에 휩싸이며 크게 인기가 떨어졌던 마돈나는 이후 자신의 콘서트 파워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47] 마돈나도 슈퍼볼 공연 때 같이 참여한 MIAF워드 제스처를 취하는 바람에 이미지 손상이 엄청났고 이에 대해 MIA를 크게 비난했다.[48] 사실 자넷의 가수 데뷔는 1986년이 아닌 1982년이나, 본인의 음악 스타일과 주체를 보다 확고히 한 3집 앨범을 기점으로 한다고 말했다. 1,2 집 활동은 본인도 흑역사 취급하는 듯. 실제로 그 시절 활동을 잘 언급 하지 않을 뿐 더러 1,2집 수록곡은 콘서트에서도 부르지 않는다.[49] 설상가상으로 외환 위기로 인해 일본, 브라질 공연이 통으로 취소되었다.[50] "신곡 Womanizer의 안무에 많은 영감을 얻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브리트니는 자신의 콘서트 스텝에 자넷 잭슨의 스텝을 고용을 하기도 하는 등 많이 감명을 받은 모습을 보였다.[51] 자넷의 나이, 대중 노출도를 감안하면 휼륭한 성적. 또한 프로모션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동년 컴백한 마돈나의 싱글 Bitch I'm Madonna가 84위 였던걸 생각해보자.[52] 참고로 자넷의 앨범 발표 주기는 보통 3~4년으로 다른 가수들에 비해 휴식기가 긴 편이다.[53] 특히 시상식에 방탄소년단이 참석했기에 국내에서도 관심을 갖고 본 시청자들이 꽤 많았다.[54] 사실 이전까지 자넷은 한국과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55] 빌보드 차트 1위곡이 100곡이 넘는 가수는 없다(...) 역사상 빌보드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한 비틀즈도 1위곡 개수가 20곡 이다.[56] When I Think of You, Miss You Much, Escapade, Black Cat, Love Will Never Do, That's the Way Love Goes, Again, Together Again, Doesn't Really Matter, All for You[57] 과장이 아니다. 애초에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댄스 디바들도 전부 자넷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58] 대략 4분경부터 나온다.[59] All For You, Come On Get Up, Nasty, Control, You Want This, Throb, Miss You Much, Escapade, Together Again, Feedback[60] When I Think of You, Anytime Anyplace, Runaway, I Get Lonely, Call On Me, No Sleeep, Unbreakable, 2 B Loved[61] That's The Way Love Goes, Got Til It's Gone, Son of a Gun, All Nite, So Excited[62] Funky Big Band[63] Let's Wait Awhile, Come Back To Me, Again, Everytime[64] Feel It Boy[65] Go Deep, Burn It Up, Throb[66] Made For Now[67] Black Cat, If, What About[68] 이와 같은 경향에는 4집부터 적극적으로 도입한 뉴잭스윙의 영향도 매우 컸다.[69] 이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The Velvet Rope 앨범은 그 해 흑인 동성애자협회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앨범상을 수여받기도 하였다.[70] 당나귀(donkey)의 통통한 몸에 빗댄 별명이라고.[71] 93년 Janet 앨범 자켓에서 잭슨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손이 바로 이 사람 손이다. 딴 남자가 잡았어도 이상하긴 했을거다[72] 캐나다,미국에서만 진행한다.[73] 첫 빌보드 1위곡이다.[74] 미녀는 괴로워(한국 영화)에도 나온다.[75] 자넷이 혼자 작곡,작사 한 곡이다. 공동작곡작사가 아닌 혼자 작곡작사한 곡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 여가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76] 참고로, Black Cat같은 경우엔 재미있는게, 본인의 주특기(팝,R&B댄스 스타일)가 아닌 정통 로큰롤 스타일의 곡이다, 이 곡이 1위하고 나서 본인이 재미를 들였는지, 그후 앨범에 꼭 1~2곡씩 록스타일의 곡이 수록되는게 앨범의 기본 포맷이 됐다.[77] 뮤비에 제니퍼 로페즈가 등장한다.[78] 본인과 투팍 샤커 주연 영화 Poetic Justice의 OST이다.[79] 본인 출연 너티 프로페서 2의 OST이다.[80] 오리지널 버젼과 알 켈리 리믹스 버전 2가지가 있다. 아래 뮤비는 오리지널 버전. 뮤비가 상당히 수위가 높다. 후방주의.[81] 이 노래는 시스터 액트2의 주제가인 'Joyful Joyful'에 샘플링으로 쓰이기도 했다. 단체 군무씬에서 후렴구 'What have you done for me lately'가 'What have you done for HIM(주님) lately'로 바꿔서 쓰였다.[82] 뮤비에 박준형이 등장한다.[83] 순위를 정한 기준은 RIAA(미국 레코딩 산업협회)가 공식적으로 집계한 판매량과 방송횟수에 의한 차트순위로 매긴 포인트 합산이다.[84] 데뷔 이래 최대 규모의 투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