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39:33

차천모

성명 차천모(車天模)
생몰 1889년 6월 21일 ~ 1936년 4월 27일
출생지 평안북도 의주군 수진면 대수리
사망지 중국 봉천성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차천모는 1889년 6월 21일 평안북도 의주군 수진면 대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8년 12월 같은 마을에 사는 운천동 동장이자 일제의 밀정이었던 주계주(朱啓柱)와 시비가 붙어 신의주검찰지청에서 태형 90도를 맞았다. 이후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수진면 사무소 앞 광장에 주민을 동원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한 뒤 김이호(金履浩), 송영보(宋榮甫)와 함께 주계주를 처단하고자 그의 집을 습격했지만 주계주가 이미 도피하자 집을 불살랐다. 이로 인해 김이호 등은 체포되었고, 차천모는 당국의 추적을 피해 만주로 망명했다.

만주로 피신한 그는 관전현에서 박장호, 전덕원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국내진입 작전의 안내역을 담당했고, 1920년 군자금 모집 등의 목적으로 국내에 잠입했다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체포되어 1920년 7월 1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요죄, 살인 예비죄, 가택 침입죄, 방화 등의 혐의로 징역 10년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7년 가출옥한 그는 전가족을 이끌고 만주 관전현 향로구로 망명했고, 이후로도 독립운동을 수행하다가 1936년 4월 27일 중국 봉천성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차천모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3. 여담

2020년 4월 14일,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TV CHOSUN채널A 사업자가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역할을 철저히 배반하고 민족정신을 병들게 했다며 방통위에 채널승인을 취소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 의견서에 기명된 인사들 중에는 차천모의 손자 차상용씨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