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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수

청화수
파일:청화수.jpg
가입일 <colbgcolor=white,#191919>2017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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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어록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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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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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에서도 고대사 위주의 내용을 주로 다루는 채널이다. 물론 서양사와 근세 역사도 다루기도 한다. 삼국지, 한국사, 역사 고정관념, 철학 등을 다룬다. 대체적으로 영상들이 긴 편이다. 대부분 영상의 썸네일은 검은 바탕에 흰 글자로 제목을 나열하는 것으로 되어있다.[3]

실제 역사 문헌에 자신의 추론을 덧입혀 정사에서 벗어난 결론을 만들기도 한다. 그의 학력과 전공 등의 이력은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으며, 사료나 정사에 관하여는 명확히 제시하는 한편 주장이나 설들에 관해서는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 본인도 현재로서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며 그냥 이런 설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사료를 곡필하는 경향은 없고, 기존에 존재하던 학설이나 사료에서 없는 부분을 자신의 창의력으로 풀어 썰을 푸는 방식이다. 또한, 자신의 추론인 부분 혹은 학계의 여러 가설 중 하나인 부분들은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딱히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 애초에 그가 삼국시대에 대해 만든 영상들을 보면 대부분 기존의 학계에서도 존재하던 학설이다. 예를 들면 비류 시조설이라든지 백제의 미심쩍은 ‘둘째 아들’에 대한 계보, 고구려 태조왕에 대한 미스테리, ‘고천원’에 관한 일본서기의 창세신화[4] 등등은 이미 주류학계에서도 제기된 학설이며 몇몇은 통설[5]으로 굳어가고 있다. 애초에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대사에 대해서는 주류학계에서도 추론과 가설들을 만들어 이를 토대로 후학들이 좀 더 정교하게 제련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반대로 말하자면 워낙 현전하는 고대의 사서가 미미하기 때문에 금석문 한 개의 발견에 또 유물 한 점의 발견에 기라성 같은 학자들의 지금까지 수십년 수백년 축적 해오고 연구해왔던 통설들이 하루아침에 모조리 날라가고 연구사적 의미로밖에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기도 하는 드라마틱하고 허탈한 필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자적 양심을 버리고 자신의 사사로운 신념에 봉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자신이 수십년간 헌신한 연구와 자료들이 하루 아침에 수포가 되었다고 해도, 그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폄하하거나 연구자들의 자질과 역량이 부족하다라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료와 정 반대되거나 고고학적 성과에 반하는 학설을 뇌피셜로 푼다면 사이비 학자이겠지만, 선술했듯이 청화수의 경우에는 현전하는 역사 기록을 토대로 자신의 추론을 덧붙이는 편이다.
그의 논지는 우리가 지금에야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 고대사의 상당수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추론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와 학설은 수세대 간의 축적과 헌신의 결실이며, 그 시작은 사료와 고고학적 발굴의 연구를 토대로 한 합리적 상상과 가설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본인의 주장도 설 중 하나일 뿐이고, 학계엔 이런이런 설도 있다며 여러 설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던 초기와 달리, 2020년대 중반 들어선 상당히 자신의 주장에 확신이 찬듯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늘어난 편이긴 하다. 물론 여러 사료나 신화들을 본인의 추리를 섞어 그럴듯하게 엮어내는 편이긴 하나, 학계에선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소수설로 취급받는 내용도 있기 때문에 시청시 유의할 부분. 그냥 이런 설도 있을 수 있겠다 정도의 재미로 보자.

3. 어록

인간이 남긴 모든 콘텐츠에 대한 논리적 철학적 분석 방송입니다.
채널 설명문
대단히 감사합니다.
마무리 멘트
결단력이란 때론 인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삼국지 그 이후의 스토리 1편 – 결단력의 승부사 사마의 中
그러니까 이게 권세가 있다고 사람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다 그 과보가 나중에 돌고 돌아 돌아옵니다.

재기라는 것이 이게 쉬운 게 아니죠. 그런 면에선 유비도 정말 대단한 것인데, 칼을 잘 쓰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손이 베이지 않습니까?
삼국지 조조 책사 시리즈 1편 – 순욱 中
미모, 그거 가 봐야 얼마나 가겠어요? 결국 그건 언젠간 질리기 마련이고, 미모 이후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건 정치적 올바른 판단이죠.

역사를 깊이 있게 더 재미있게 즐기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퉁쳐 버리기. 이건 도움이 안 돼요. 아이들 교육도 그렇죠. 정답을 빨리빨리 결정하는 습관이야말로, 아이들 사고력 증진에 있어 최대의 장애물이죠. 사고력이라는 게 조립식 블록 만든다고 키워지는 건 아니거든요.
삼국지 손권의 최후 이궁의 변 이야기 1편 中
결국 나중에 힘이 되는 건 돈도 돈이지만, 사람이잖아요. 요즘도 그렇죠. 돈 많으면 그냥 혼자 잘 먹고 잘 살 순 있지만, 돈 많다고 무조건 대황제 되고 대왕제 되고 대통령 되고 대총리 되고 국회의원 되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죠.

이게 궁궐 정치라는 게, 모든 사람 간의 관계 정치가 다 그렇습니다만, 바로 옆에 얼굴 보면서 찰싹 달라붙어서 지속적으로 샤브작 샤브작 해 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사람이 1번 말해서는 안 믿어도, 자꾸 멋지고 예쁜 사람이 옆에서 2번 3번 말하면 '아... 진짜 그런가...?' 하고 슬금슬금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이게 정치 싸움이라는 게 옳은 것을 추구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정의로운 게 이기는 게 아니라, 권력자의 환심을 사는 쪽이 이기지 않습니까? 대게 현실은!

이게 권력의 무서움이죠! 권력은 그 맛이 달콤할수록, 그 뒤 이면엔 엄청난 무서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뭐 역사 배울 때, "황제/왕제가 짱이야! 맘대로 다 했을 것 같고..." 뭐 이런 식으로 인식을 가지지만, 황제/왕제도 늘 공포를 지니며 살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만 쳐다보는 사람은 아래가 무너져서 몰락하고 마는 법이지요. 위도, 아래도, 옆도... 사람은 늘 다 같이 살펴야 하는 법인데 말입니다.

사실 역사적 사건이 그렇게 간단한 이유 1~2개만 가지고 벌어질 리가 없지요. 사실 제 채널 자체가 추구하는 게, 그런 역사 사건과 인물을 너무 간단하게 퉁쳐 버리는, 너무 간단한 결론을 내 버리는, 나름 1명 1명 다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왔고, 아무튼 그래서 역사에 이름 남긴 사람들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암기 4지선다 시험 풀듯이 퉁퉁 쳐 버리는 게, 그런 식으로 하면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정작 점수보다 더 중요한 삶의 지혜를 배울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늘 뒤에 이면에 숨은 또 다른 요소는 없는가? 그런 생각은 항상 가져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런 사람들은 똑같은 1페이지 책을 봐도 똑같은 1시간의 시간을 보내도 똑같은 1년의 삶을 살아도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국지 오나라 이궁의 변 이야기 2편 中
그러니까 모든 게 다 새옹지마에요. 나관중 공부 못 한 게 전 세계 인류에게 엄청난 큰 즐거움을 준 게 되었으니... 그런즉 지금 학생분이라든가 아니면 학생분을 자녀로 둔 학부모님들도, 공부 못 한다고 해서 전혀 실망하실 게 없습니다. 오히려 더 거대한 걸 얻으실 수 있어요. 나관중처럼!
삼국지 오나라 주유 인생 이야기 中
참 역사를 보면, 사람 인연의 과보라는 게 참으로 묘합니다.

위를 쳐다본다고, 위만 본다고, 위만 중시한다고,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다. 인간이! 오히려 아래를 통해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삼국지 적벽대전의 진실 中
권력 찾아오는 게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거든요. 바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삼국지 유비 아들 유선은 정말 바보였을까? 中
손자병법.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이다. 싸우기 전에 이미 이겨 있어야 한다.

근데 사실 이런 예측이라는 게, 단순히 머리 좋다고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이런 거대한 국가의 대사(大事)를 그냥 머리 좋다고 그 1명의 머리에 의지해서 결정을 내린다? 말이 안 되고요. 의사결정의 핵심은 정보죠.
적벽대전의 진실 2편 中
일단 내가 상대가 예측 못하는 전략을 펼칠 때의 핵심은 역시나 상대가 내 본 의도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잖아요.

허세도 필요한 리더십의 하나일 수도 있죠.

물론 '스마트하다', '기발하다', 이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기발하게 하려다가 망하는 경우도 역사에는 많고요.

그러니까 인생이 잘 되어가는 것 같다가도, 진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갈구해야 하는 것 같아요. 또 반대 입장에서 생각하면, 초장에 그르쳤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도 없다는 점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삼국지 제갈량 북벌. 마속은 대체 왜 그랬을까? 中
그러니까 아무나 리더가 될 수 있지만, 리더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건 쉬운 게 아닌 것이죠.

참 사람 팔자라는 게, 한치 앞을 알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역사라는 게 절대 옛날이야기이기만 한 건 아니거든요. 역사는 옛날이야기인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역사도, 문학도, 고정불변인 것이 아니에요. 현재 시대와 동시에 살아 숨 쉬는 것이 역사입니다. 어떤 인간이 좋은 인간이냐,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냐, 이건 3년 뒤 5년 뒤가 또 다를 수 있는 것이죠. 역사는 불변의 것이 아니다. 현재가 변하면 역사도 변한다.

그러니까 이게 사실 버릴 땐 확실하게 버릴 줄도 알아야 해요. 쥐고 있고 안 놓치려고 하다가, 다 잃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죠.
적벽대전의 진실 3편 中
이게 전투에서 신기한 전술 펴고, 뭐 그렇게 싸움만 잘 한다고 그 국가 및 세력이 이기는 게 아니거든요. 요즘 세계도 그렇죠. 힘만 세다고 다냐? 그게 아니죠! 힘이 약해도 주변 정세를 잘 활용해서 절묘한 구도를 짜면, 얼마든지 큰 이익을 볼 수 있지요.

결혼이라는 건 이렇게 만만치가 않은 일이다. 유비 같은 대영웅의 인생도 하루아침에 피박 인생으로 바꿔 버릴 수 있는 게 결혼이다.
적벽대전의 진실 4편 中
사실 뺄 때 잘 빼는 것도 중요합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죠. 질 때 잘 지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1방에 모든 걸 먹는 전쟁은 가상에서는 흔하지만 현실에서는 흔하지 않기에, 전력은 온존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능력 역시 폄하만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삼국지 제갈량 VS 사마의 진짜 승자는 누구였나 中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당장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못 받는다고 꼭 낙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갈량 같은 대단한 인물도 젊었을 때는 주변으로부터 무시도 많이 받았었다는 것이니까요.
삼국지 제갈량 최후의 북벌 오장원 이야기 中
좋은 책의 특징은 또 다시 봐도 그 맛이 새롭다는 거죠. 삼국지 1번만 보신 분들 별로 없잖아요? 제 영상의 목적도 그렇습니다. '1번 보고 마는 영상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다시 1번 또 보시겠다는 생각이 드실만한 그런 영상을 만들자!'라는 게 제 목표입니다.

사실 권력자가, 자신의 지배를 강화하는데 이게 굉장히 좋은 방법이죠.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 되는 것!

인간이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환경을 예의주시하고 그 환경에 맞춰가는 삶의 전략을 가져야 한다. 엄청나게 강력한 힘과 재능을 가졌어도 손책 같은 사람, 결국 1방에 가지 않습니까? 인간이 강해 봤자죠! 삼가고 삼가고,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근데 작은 게 무조건 나쁜 겁니까? 작은 건 나쁘고 큰 건 좋다. 이것도 고정관념이에요! 망원경이 필요할 때가 있고, 현미경이 필요할 때가 각각 있는 법이죠.

소심근신(小心謹愼) :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지어 언행을 삼간다. 재능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조심하지 않아서 1방에 무너지는 그런 사람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봅니까? 조심하는 것이야말로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사바세계란 참고 견뎌야 하는 세상이란 얘기죠. 그게 현세다. 참고 견디기 싫다면 이 현세를 떠나야 하는 것이고... 그러고 보면, 참기&절제하기&억제하기&견디기! 이걸 못 하는 사람이 진짜 이 사바세계를, 즉 이 현세를 더 빨리 뜨게 되는 것 같아요.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 일대기 1편 中
순간적인 판단력과 의사결정력, 어떻게 보면 이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인 것 같기도 해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재능 있고 그래도 이게 없으면 말짱 꽝인 경우가 많죠.

성공은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고, 실패는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둘 다 피해야 할 일이죠!

그러니까 정답은 없어요. 정답이라는 고정관념은 늘 버리고, 언제나 카멜레온처럼 때&장소&사람의 상황에 맞게 실현하겠다.

그러니까 알아야 돼요! 뭐든지 사실 알면 별 것 아니거든요. 막 무슨 뭐 자기가 뭐 대단한 것 배운 양 폼 잡는 사람들 막 횡행하는데, 자기가 뭐 무슨 대단한 학교 나왔다, 외국 가서 뭘 배웠다, 그러면서 오만 잘난 척 다 하면서, 엄청난 지위와 수입을 자기가 누려야 한다고 그 당위성을 설파하는 이들 참 많은데요. 그건 우리가 몰라서 휘둘리는 것이고, 막상 알면 별 게 아니거든요. 그래봤자 다 사람 사는 얘기인건데!

역사는 인간이 쓰는 것이고,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입장이 있게 마련이다. 그 쓰는 사람의 입장도 잘 고려해야지만 진실을 올바로 볼 수가 있다.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 일대기 2편 中
실제 역사에선 전혀 다른 역효과가 발생하죠. 진짜 역사, 정치, 경제, 사회 이런 게 참으로 예측 불가능한 생물이다. 이런 걸 느끼게 됩니다.

결국 모든 일이 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리더의 가장 큰 역할은 자기가 똑똑한 게 아니라, 아랫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부하들이 마음껏 자기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는 넉넉한 덕과 도량의 리더! 조진하후돈은 그게 되는 리더였다.

확실히 인간의 힘만으로 모든 게 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괜히 천명이라 말한 게 아니죠.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 일대기 3편 中
사람 잘 보는 사람은 늘 소수인 것 같아요.

원래 사랑이 크면 그 빈자리 역시도 큰 법 아니겠습니까?

정말 첩보는 핵심 중 핵심이죠. 적국인 W 지휘관하고 M 지휘관이 사이가 나쁘다. 뭐 이런 정보 딱 입수해 놓으면, 그 두 지휘관 사이의 정보 소통을 교란시키고, 서로 못 믿게 만드는 이간질을 펼친다던가, 그럼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죠. 그냥 무턱대고 창만 휘두른다고 전투가 아니라는 것이죠.

사실 이런 거사를 준비하는 이런 싸움은, 의외로 간단한 게 최고인 때가 많죠. 왜냐면 이계 기계들을 상대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을 상대하는 거니까.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를 모르는 것이거든요.

결단을 빨리 내린다고 결단력이 아니죠. 틀린 결단 빨리 내리는 건 결단력이 아니라 경솔에 불과하다.

결국 철저한 쪽이 이기는 것 같아요.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 일대기 4편 中
그러니까 9살, 10살. 이런 어린이가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는 것이거든요. 이런 걸 보면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이 정말 너무나도 어린 교육이 아닌가? 견희가 9살, 10살 때 인간의 도리와 사회와 공동체를 논하고 있을 때, 우리 어린이들은 영어 단어, 수학 점수 몇 점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죠. 역사도 그래요. 견희가 역사를 본다는 목적이 뭡니까? 예로부터의 사례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한 훈계로 삼기 위해 봅니다. 9살이 이런 답변을 한다 이거에요! 근데 오늘날 우리가 하는 역사 교육은 그냥 '이거 이거 이거 빠르게! 여기선 시험! 이게 이게 포인트야.' 달달 외우는 게 장땡. 인류가 분명 각종 하이테크 기술은 엄청 발달했고 그건 좋은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신, 특히 교육적인 면에서 보면,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물론 반론하실 수 있죠. 수학하고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 그게 안 중요하다는 게 아니에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큰 중요한 걸 우린 거기에 가려 놓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고 전 생각을 하는 것이죠.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 일대기 5편 中
리더의 핵심은 욕심이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게 직장생활은 물론이고, 정·관계 출세 경쟁 다 마찬가지지만, 1번 몰락했다고 해서 그게 끝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직장에서도 어떤 사람이 1번 고위직 눈 밖에 나서 좌천을 당했어요. 그럼 이제 한 자리 하고 있을 때는 막 아부하던 밑에 사람들이, 좌천 발령 나는 그 순간부터 싹 안면 바꾸고,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뭐 그렇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근데 이 사람이 이제, 시대가 흐르고 여러 상황이 바뀌고 그러면, 또 다시 부활하는 경우가 있어요. 화려한 컴백을 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이제 자기가 한때 물 먹었던 시절에 자기를 도외시했던, 경원시했던 인물들! 다 기억하고 있다가 가차 없는 인사 보복의 칼날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절대 조직생활 하는 사람은, 어떤 상사가 1번 좌천됐다고 해서, 섣불리 그 사람을 경원시하고 그러면 안 돼요.

그러니까 우린 용기라는 게, 무조건 용감하게 정면승부 하는 걸 용기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일단 고개 숙이는 것, 일단 참는 것, 일단 패배감을 감내하고 자신을 온존하는 것. 이것 역시 정면승부 못지않은 용기 있는 처사다. 무조건 들이받는 것만이 용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 일대기 6편 中
사실 전쟁이라는 게 장수 간의 지략이나 병력 싸움이라고 보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경제력 싸움이거든요. 경제력 탄탄한 쪽이 이기는 경우가 많죠.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상당히 예외적인 것이고. 이 전쟁이라는 게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 아닙니까?

좋은 리더의 제1 조건은 부하 귀한 줄 아는 것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 : 승리인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흐르니 큰 패배가 되고, 패배인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흐르니 큰 승리가 되고... 이런 일이 우리 삶에서도 너무 많죠. 그러니까 우린 어떤 악인이 잘 먹고 잘 살다 편하게 세상 뜬다 이러면 "아, 참 불공평하다!" 이렇게 느낄 수 있는데, 이 업보라는 게 자기 대에 올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 자손 대에서 올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어떤 사안을 너무 짧은 시간대 기준으로만 판단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 일대기 7편 中
우리가 알아야 할 건, 인간의 몸이 절대 그리 강하지가 않다는 겁니다. 망가지고 나서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지만, 대부분 망가지기 전까진 그 약함과 소중함을 잘 모르지요. 젊다고 방심해선 안 됩니다! 참 사람이 그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그걸 잃기 전까진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는 거, 내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언젠간 반드시 내 곁을 떠나가게 된다는 점. 건강이든 가족이든 언젠간 다 우리 곁을 떠납니다. 100%! 언젠간 반드시 찾아올 헤어짐과 상실, 그것을 평상시에도 인지하고 지금 같이 할 수 있는 이 순간을 한층 더 소중히 하는 것, 그러한 마음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인기를 추구하자면 눈앞의 이익을 버려야 하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잖아요.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죠. 근데 눈앞의 이익을 버리기가 어렵죠. 이익을 추구살 순 있는데 똑같은 이익을 추구해도 누군 욕을 먹고, 누군 욕을 먹지 않고... 더 큰 거대한 이익을 먹기 위해, 지금 당장의 작은 이익은 버리고 몸을 사리는 모습, 철저한 인기 영합의 모습을 보여줬던 사마의였습니다.

그러니까 실력이 없다면 일단 자신이 실력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게 1번인 것 같아요. 실력 없다고 꼭 지는 건 아니거든요? 스포츠에서도 약팀이 강팀을 간혹 이기듯이, 실력 없어도 이길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제1 조건이 일단 내가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해야 하죠.

그러니까 우리가 싸움이라는 것을, 상대를 뭐 짓뭉개고 배제하고... 이런 걸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조상 파당인데, 그게 아니고 진정한 승리는 상대방보다 더 겸손하고, 상대방보다 더 열심히 궂은일을 하고, 상대방보다 더 다른 이들을 널리 위해주고, 너그러운 모습 보이고! 사실은 이게 진정한 싸움의 기술이라는 것이죠.

일단 사람이 역사적으로 누굴 봐도 자기 혼자서 영웅 되는 사람 없고, 또 역시 자기 혼자서 악당 되는 사람도 없습니다. 상당히 많은 게 주변인들과의 관계성으로 형성되는 것이거든요.

우리 개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혼자 똑똑해지는 아이, 혼자 성공한 사람, 혼자 훌륭해지는 인간은 단 1명도 없습니다.

오늘날 교육을 서당에서 시키는 분 없죠. 다 학교학원 가는데, 서당이 필요가 없지요. 지금 시대에는. 그렇다고 해도 이 나라에 서당이 1개쯤은 있는 것 역시 괜찮지 않습니까? 이 바쁜 시대에 빨리빨리 1분 1초도 아껴서 대학교 보내기 위한 것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느긋하게 공자맹자순자왈 해 주는 훈장이 1명 정도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수 있지요.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 일대기 최종편 中
이 역사라는 한자의 史가 있잖습니까? 이게 보면 묘하죠. 가운데 중(中)에 여기에 비틀어진 선 2개가 엇갈려 나 있죠? 왜 비틀어진 선 2개일까? 그건 이 역사라는 문자 자체에 이미 역사란 완벽한 중간, 완벽한 객관이 아님을 담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내가 객관적&역사적 사실입니다.", "너는 틀렸다, 나만 맞다!" 이러면 웃긴 얘기 아닙니까. 인간이 인간을 얘기하는데 거기에 완벽한 객관이 얼마나 있을 수 있겠어요? '완벽한 객관', '객관적 사실'이라는 허상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 문자에서 보듯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反 역사적인 태도인 것이죠. 역사는 자연과학이 아닌 인문학입니다. 인문학에서 나만의 정답을 강요하는 것은, 차라리 무지보다 더 나쁜 일이죠! 잘 알지도 못 하는 사람들이 "역사는 무조건 객관적이어야 해!"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이미 이 역사라는 한자 자체가 인간이 인간을 논함에 객관이 있기가 어려움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쪽으로 비틀어진 선 2개가 엇갈려 만들어 나가는 게 바로 인간의 역사인 것이죠.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 기존에 알고 있는 것만 옳다.'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사실 진정한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막는 최대의 장애물. 지식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 지식이 진리로 가는 길을 막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 우린 삼국지 하면 영웅들의 '일기토, 지략, 멋있다!' 이런 것들만 떠올리는데, 그 시절 민중들의 그 비참했을 삶을 떠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거기에 맨 하급 병사로 끌려 다녀야 했던 혹은 군대를 위한 물자를 처참히 징발당해야 했던 민중들 이야기가 어디 있어요? 근데 영웅이 아니라 민중들의 그런 희생과 피땀이 없었으면, 그런 대전이니 뭐니 이런 건 있을 수가 없었을 텐데, 오직 우린 영웅 이야기들뿐이죠. 근데 역설적인 건, 그런 철저한 영웅 중심으로 써진 민중의 이야기가 완벽하게 배제된 삼국지연의가 누구보다 민중들에게 가장 큰 열광적인 인기를 얻어왔다는 사실이죠. 역설적입니다!

결국 버리는 만큼 얻는 것 같아요. 비단 같은 작은 이익, 작은 기쁨, 작은 쾌락 이런 것들을 하염없이 티끌처럼 많이 버려야 태산처럼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확실히 사람이 뜻이 있으면, 무모해 보여도 버텨보는 게 필요한 것 같기도 해요. 주변에서 난리를 치든 말든!

시대의 흐름을 읽는다. 뭐가 더 중요한지를 정확하게 안다.

상황에 맞추는 철저한 유연함. 사실 이런 건 사람이 단순히 머리가 좋다고 해서 나오는 게 절대 아니라, 누적되어 온 역사철학에서 나오는 것이죠.

학생도 그래요. '공부를 어른들이 교사들이 시킨다. 근데 내가 그걸 왜 해야 되는데? 이 귀중한 시간에!' 이 질문을 던지는 학생이, 안 던지고 그냥 의심 없이 시키는 대로 공부만 열심히 하는 학생보다 당장 성적은 덜 나오겠지만, 사실은 그게 영어&수학보다 더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이죠, 이게.

자기 최측근 부하 말고, 여러 일반인들까지 아우르려면 친화력&잘 해 주는 것 이거 가지고는 안 돼요. 궁극적 방향, 우리는 어디로 가야 옳은 것인가?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 게 옳은 방향인가? 철학에 기반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고찰에서 나온 그게 있었어야 했죠.
삼국지 동탁 진짜 일대기 1편 中
근데 세상 일이 자기 계획대로 절대 그렇게 안 돌아가죠.

인간을 섣불리 판단하는 게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오는가? 우린 여기서 알 수가 있죠.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실패는 거기서 비롯된다.

사람 인생 한순간인 것 같아요. 진짜 늘 방심하지 않으며 살아야 하는데... 참 그게 쉽지가 않죠.

그러니까 사람의 보통 엄청난 의지력, 정신력 이런 게 무시에서 나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무시라는 게 진짜 사람에겐 양날의 검이지요. 엄청난 의지의 촉매제가 되어 사람을 더 크게 키울 수도 있고, 그냥 마음의 어두운 상처만 남길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게 뭔가 그 순간순간 상황 대처라는 건 뭐랄까 머리의 영역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실 조직 집단의 힘이라는 게 1차적으로는 그 집단의 양이겠지만, 또 그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결속력이거든요.

리더는 이렇게 스타일, 즉 확실한 인간적 장점이 뭔가 있어야 해요. 왜냐면 결국 사람을 이끈다는 게, 사람이란 게 오래 보다 보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처음에는 좋다가도 그래서 결국 떠나게 되죠.

리더십이란 건 바로 이런 인간관계의 유통기한을 잘 관리할 수 있는 것.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는 쪽은 병력이 많은 쪽이 아니라 정보를 먼저 차지하는 쪽이다.

'사람을 진짜 사로잡아야겠다.', '내 사람 만들어야겠다.' 하면, 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쩨쩨하게 아끼는 모습 보이면 안 되죠. 절대!
동탁 일대기 2편 中
그러니까 어떤 하나의 세력이 형성이 되고 그게 어영부영 좀 이어지면, 의외로 약해 보여도 그 뿌리라는 게 모세혈관처럼 여기저기 나름 깊게 퍼져 있다는 말이죠.

공포는 앞에선 사람을 짓누르는 효과가 얼핏 있어 보이지만, 반드시 뒤에선 반발감이 들기 마련.

자기 혼자 잘나서 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까 이게 천하를 진짜 아무나 먹는 게 아니에요.

결국 모든 건 감각이든 성격이든 타고난 게 아니라 학습이다.

진짜 정치인들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근심을 내 근심처럼 고민하면, 정말 좋은 나라가 되겠죠.

오늘날 우리가 아이 교육을 시킨다는 것 사실 대부분은 진짜 교육이 아니에요. 그냥 테크닉 학습이죠. 그런 의미에서 치면 우리나라는 사실 교육열이 높은 게 아닙니다. 교육열이 낮은 겁니다! 교육열이 높은 게 아니라 출세 학벌을 따기 위한 특정 기술 테크닉 경쟁이 강한 것이죠. 진정한 교육, '이 사회 공동체 속의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부분에 대한 좋은 길을 찾기 위한 교육 같은 것을, 영어&수학 가르치는 것에 백 만 분의 일이라도 그 교육에 신경을 쓰느냐? 비록 어린 나이지만, 저 유교 경전들&옛 성현들의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배우면, 비록 그 애가 나이는 어리지만 얼마나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지고 성숙해지겠습니까?
동탁 일대기 3편 中
인간의 역사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닙니다. 옛날 사람들이 바보여서, 그런 잘못들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거죠.

역사를 왜 배웁니까? 시험 잘 보기 위해서? 누군가를 놀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욕하기 위해서 역사를 배웁니까? 아니죠!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선조들이 저지른 실수를 우리가 또 반복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삼국지 촉나라는 정말 황호 때문에 망했을까? 中
도망은 전혀 부끄러운 전략이 아니죠. 100번을 져도 마지막에 1번 이기면 그게 승자.

그러니까 사람이, 특히 이런 정치 영역에서는 혼자서는 높은데 가기도 어렵고 설사 간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절대 거기서 버텨내질 못해요! 사업&정치 이런 것은 결국 동지가 있어야 해요.

원래 불신은 불신이 만드는 것이거든요.

나 자신만 올곧고 정의로우면 되지? 리더는 그걸로 안 되죠!

선(善)이냐 악(惡)이냐는 그 사람의 심성만으로 결정이 되는 건 아니에요. 지혜, 지혜가 없으면 아무리 착한 사람도 엄청난 악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선한 마음과 지혜. 이 2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이 우린 될 수가 있느냐?

동지는 맺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도 더 힘들다. 동지가 됐다고 방심하고 의사소통을 소홀히 하다가는, 어느 순간 동지는 더 이상 동지가 아니게 되고 그러면 모두가 공멸이다.

리더의 최고 자질은 뭐니 뭐니 해도 동기부여죠.
동탁 일대기 4편 中
신중하다는 게 무조건 행동을 뒤로 미루고 천천히 하고... 이건 또 아닌 것 같아요. 행동의 빠름과 늦음, 그게 아니라 어떤 한 요소를 제대로 간과하지 않고 철저히 파악하는 것! 그게 신중함이다.

확신에 차 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확신이 잘 나올 수가 없습니다. 늘 자신에 대해 확신이 가득 차 있는 사람.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사람이 무조건 행실이 이래야지. 넌 왜 그딴 식이냐?", "사업은 이렇게 하는 거야..." 등 이런 자신감 넘치고 확신에 찬 사람이 멋있어 보입니까? 물론 그런 분이 훌륭한 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주 식견이 좁아서 자기가 아는 걸로만 세상을 판단해서 그렇게 빨리 결론을 내릴 수도 있고.

보통 우리가 어떤 실패를 할 때 정보가 없어서 망하는 경우보다는,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얻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정보를 모으려는 노력보다, 이 정보가 맞는 건지 아닌 건지 판단할 수 있는 그런 노력과 능력을 기르는 게 몇 배는 더 중요하다.

성공에 이르는 길은 절대 1가지가 아니다. 나 자신만의 방향을 고수하다 보면 그걸 절차탁마하다 보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상대의 저 웃음이 나를 진정으로 받아들여주려는 웃음인가? 아니면 언제라도 나의 뒤통수를 때리고 배신할 수 있는 웃음인가? 이걸 확실하게 구분해 낼 자신이 없으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죠! 권력에 다가가지 말아야죠!

근데 또 믿어서 망하기도 하지만, 안 믿어서 망하기도 하죠.
동탁 일대기 5편 中
당연한 얘기지만, 믿음을 얻으려면 믿어줘야 하는 거죠. 대부분 우리는 상대방을 믿지 않으면서 자기는 남을 믿지 않으면서, 상대방만 자기를 믿어 주길 바라지 않습니까? 또 상대방에게는 믿음의 증거를 요구하면서 '내가 널 뭘 보고 믿어? 증거 대 봐!' 이러면서, 정작 자신은 아무 증거 제시도 못 하면서 무턱대고 나를 믿고 사랑해달라고 하죠.

누군가를 믿는다는 게 손해도 크지만 이익도 크죠.

내 이름을 새길 수 있는 나의 미래를 제시해주는 조직에 충성하지 않을 사람은 없죠. 이걸 아는 리더는 사람을 이끌며 천하를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이걸 모르는 리더는 그 리더들의 들러리 역할만 하다 그냥 역사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고.

명장은 용기나 지혜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인성에서도 나오는 것 같기도 해요. 꼭 지휘관이나 리더뿐만 아니라 개인적 삶도 용기나 지혜로만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그 모든 걸 완성시켜 주는 것은 인격.

그러니까 이게 보면 진짜 부하 입장에서는 싫은 상사가 일 시키면서 "야! 그거 쉽잖아? 이거 해. 그거 그냥 하면 되잖아!" 근데 막상 일을 하다 보면 정말 까다롭고 힘든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남 힘든 것에 대해서 굉장히 무감각한 인간들이 있어요. 이런 인간들은 리더가 되면 안 되죠! 이렇게 부하들이 자기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뭐, 그 새끼? 해치우면 되잖아! 뭐가 어려워?" 이러기만 하는 리더가 이끄는 조직이 잘 될 리가 없죠.
동탁 일대기 6편 中
그러니까 전략 중에 최고가 상대파 진영이 내부에서 의견&분열&갈등&혼란... 서로 의견이 중구난방이 되도록 하는 그런 거리를 휙 던지는 것, 이게 사실은 최강의 정치 전략 중에 하나죠. 어떻게 하면 상대방 파를 내부 분열시킬 것이냐?

연애는 권력이다.
동탁의 진짜 일대기 제7편 中
신뢰를 만드는 세월은 수 년 수 십 년이 걸리지만, 그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아무리 100개를 잘 해 줘도 1개를 서운하게 하면 돌아서버리는 게 사람이지요. 사실 친했던 인간관계가 깨지는 게 거의 100% 이것 때문인데, 사실 우리가 완벽한 인간이 없듯 완벽한 관계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이걸 받아들여야 하는데, 친구든 연인이든 부부든 동지든...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이 사람이 나한테 나쁘게 하는 게 30이야, 근데 좋게 하는 게 70이야.' 그러면 그건 좋은 것이거든요. 근데 우리는 잘 해 주는 70을 생각 안 하고 못 해주는 30에 집착하게 돼요. 이게 인간 본능인데, 이 잘못된 본능에서 벗어나야죠. 그래야 동지를 만들 수 있고 동지를 유지할 수 있고 또 그래야 대사(大事)라는 걸 도모할 수 있다.

결국 진실은 정의가 아니라 이익인 것이죠.

'나는 모릅니다.' 이게 훌륭한 것이지, '나는 다 압니다.' 이게 훌륭한 게 아니거든요? 인간의 진실, 그 속사정은 원래 쉽게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무조건 답을 확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답을 확정하지 않는 게 때론 그게 진짜 지성일 수도 있다. 답을 섣불리 확정하지 않는 것. 답을 확정하는 게 지성이 아니라, 답을 확정하지 않는 게 지성이다.
삼국지 동탁 그는 정말 폭군이었나? 中
목숨의 무게는 대황제든 대왕제든 대통령이든 대총리든 국민들이든 자기 자신에게는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한 사람의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고 성공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2:8 전략을 썼다. 아, 멋있다! 근데 과연 나한테도 그게 맞는 것일까? 한여름에 외투를 껴입는 형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성공한 그 사람은 한겨울을 살고 있지만, 나는 한여름을 살고 있는 걸 수도 있는 거니까. 성공한 사람 이야기를 듣는 건 좋죠. 좋지만, 기본적으로 이 우주의 동적 균형 원리를 인지하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이걸 모르고 자꾸 어떤 지식을 어설피 접하다 보니까, 공부를 많이 해도 오만 헛짓거리를 하게 되는 겁니다.
삼국지 황건적의 진실 1편 中
그러니까 이런 백 그라운드를 모르고 '아, 그랬나보다!' 하고 퉁치고 넘어가면, 역사의 참맛을 얼마나 크게 놓치는 어설픈 독서입니까!

영웅쟁패라는 건 거의 없습니다. 영웅이 뭐 길래 백성들이 그 싸움에 나가서 싸워줘야 해요? 쟁패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영웅이 아니죠. 싸움이 아니라 단 1명의 백성이라도 더 살리려 하는 것이 진짜 영웅이다! 모자란 먹을 것 가지고 예전과 같은 욕심을 부리려고 피터지게 내 것 네 것 했다는 것이 대부분 영웅쟁패의 진짜 본질이죠.

수많은 나라들과 수많은 황족들&왕족들&귀족들이 명멸해도, 민중이 사라지진 않죠. 나무가 땅의 주인이 아니죠. 땅에게 잠시 신세를 지는 존재일 뿐이다. 진짜 주인이 누군지는 자명한 것! 신세 지는 자가 가짜 주인행세를 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온당한 주인이 제대로 인정받는 세상. 땅의 하늘 누런 하늘, 마땅히 온다! 마땅히 오죠, 반드시.
삼국지 황건적의 진짜 진실 中
맹자님께서 군주가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안 되는 이유를 뭐라고 말씀드렸냐면, 군주가 이익을 추구하면 결국엔 군주 본인이 죽는다며 이렇게 군주에게 조언을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냐면, 군주가 자기 정치권력을 바탕으로 그걸로 돈을 쫙 모으면 그걸 옆에서 보는 다른 호족들이나 강자들의 기분이 어떻겠어요? "야, 저 새끼는 뭔데 씨발 저렇게 혼자 다 먹냐?" 혹은 "야,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 아니냐? 씨발, 아무리 군주라고 해도!" 배가 아프고 시기심이 들게 되죠. "반드시 엎어버리고 나도 저렇게 먹고 말리라." 혹은 "너 혼자 그렇게 많이 먹는 것 못 보겠다!" 정변&반역 이렇게 되는 거죠. 이런 원리로 군주가 사익을 추구하면 반드시 죽는다. 그 나라는 필히 망한다고 맹자님께서 너무나 현실적인 조언을 군주에게 해 주셨던 것이죠. 사실 우리가 공자맹자순자왈 하면 굉장히 인&의&예&지&덕&체... 아주 고리타분하고 추상적인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것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들입니다. 죽고 싶지 않다면 인&의&예&지&덕&체를 지키라는 이야기에요.

천하에 대황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최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대황제와 그 최고에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은 어딘가에는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
삼국지 이후의 역사. 사마의 가문의 비극적 최후 1편 中
사람이 뭔 일을 하던지 간에 역사를 공부해야 해요. 그래야 인간이 어떻게 성공하고 실패하는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에.
삼국지 이후의 역사. 사마의 가문의 최후 2편 中
힘이 있을 때 제일 중요한 건, 그 힘을 최대한 안 쓰는 것. 힘에 의지했던 사람은 반드시 더 큰 힘을 만나고 만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 달달 외우고 '나 다 했다!' 이럴 게 아니라 좀 이런 걸 음미하면서 봐야겠죠. 근데 하도 무조건 '정답 달달 암기 달달!' 하기만 하는 것만 역사 공부라고 불러야 한다는 분들이 계셔서, 차라리 제 콘텐츠를 역사 방송이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제 방송은 역사 방송이 아니에요. 저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방송입니다.
삼국지 이후의 역사. 사마의 가문의 최후 최종편 中
단어에 지나치게 천착할 이유가 없어요. 우린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봐야 합니다.
고려 황제? 고려 왕? 뭐가 맞을까? 中
아무리 대단한 장수, 똑똑한 참모 있으면 뭐합니까? 돈이 없으면 말짱 꽝이죠!

그러니까 역사가 굉장히 어처구니없는 일로도 크게 바뀌기도 하거든요.
삼국지 관우 북벌 이야기 3편 中
매력과 능력은 같이 가야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이지, 둘 중에 하나만 있어선 사람을 얻을 수가 없죠.

머리 좋다고 영웅이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도 참을 줄 아는 사람이 영웅이 된다는 것.
삼국지 관우 북벌 이야기 5편 中
하지만 의리라는 가치는 비단 권력자들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죠. 일반 백성들의 가슴도 역시 울리는 단어입니다.

성공을 함께 하는 것이야 뭐 너무나 쉽습니다만, 고난과 위험을 함께 하는 것. 이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는 사회생활을 조금만 해 봐도 누구나 쉽게 아라 수 있는 거죠. 대부분은 아예 이런 발상 자체를 못하죠. 오로지 눈앞의 이익, 이익, 이익!

역사에 이름 남기는 사람들이 우리는 뭐 이러니 저러니 쉽게 이렇게 평가 저렇게 평가를 하곤 하지만, 우리가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으니까 역사에 이름을 남긴 거겠죠.
삼국지 관우 최후의 이야기 中
세상에 머리 좋은 사람은 많아도, 머리 좋은 사람을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소수입니다.
삼국지 방통 실제 일대기 中
정말 어느 조직에서든 어느 사회에서든, 남들에게 주목을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조운의 이러한 마음가짐과 신중한 태도를 정말 본받을 필요가 있겠어요.
삼국지 조운 실제 일대기 中
사람이 모든 면을 다 보고 모든 면을 다 생각할 수는 없기에, 주군이 못 보는 면도 캐치해서 그걸 알려주는 게 바로 참모가 할 일이죠. 좀스런 리더는 "아니 네가 나를 가르치려 들어?" 이러면서 조언하는 참모를 내치지만.

매사를 매번 하나의 기준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정답이란 원래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것이다.
삼국지 유비 최애 책사 법정 실제 일대기 中
그러니까 늘 어떤 술책을 쓸 때는, 상대를 봐 가면서 써야 한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이러한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한 강력한 원칙주의가 진정한 리더의 품격이라고 볼 수 있겠어요.

궁지에 몰리고 쫄리는 상황에서도 배짱을 부려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삼국지 조조 VS 여포 대결 이야기 中
영웅의 조건은 나 1명의 이익, 나 1명의 기쁨 슬픔 등의 감정 이런 것보다도, 천하 만민을 더 위하는 것이 영웅이죠.

힘과 돈으로만 세운 나라는 절대 강력할 수가 없다. 오로지 인과 의와 예로 세운 나라만이 길게 그 강력함을 유지할 수 있다. 사실 이게 공자님&맹자님&순자님 말씀이거든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공자님&맹자님&순자님 말씀을 고리타분하다고 치부하는데, 진짜 무지한 이야기고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사실 공자님&맹자님&순자님 말씀대로 인과 의와 예입니다. 오래 오래 가는 진정한 강력함은 반드시 자유와 평등과 정의에서 나온다.
삼국지 조조는 서주에서 대체 왜 그랬을까? 中

4. 여담

한자를 잘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자 잘 모르면 고대사 컨텐츠는 전문적으로 다루기가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기도 하고.

이름, 나이, 거주지, 학벌과 직업 등 개인적인 정보는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모양. 다만 목소리만 보면 노년층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자타공인 삼국지 전문가로써, 남들이 잘 모르는 삼국지에 대한 설명을 잘 한다. 예를 들어 동탁에 대한 재평가를 했는데, 일반인들이 흔히 가지는 "동탁은 황제를 능멸하고 귀족(호족)들을 증오하고 백성들을 마구 죽여댄 나쁜 새끼!"라는 식의 이미지에 좀 회의적인 시선을 보이며, 오히려 동탁을 당시 썩어빠진 후한을 다시 되살리고자 노력한 개혁군주로써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6]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슷하게 장각, 궁예, 신돈 등도 민중적인 개혁가로서 평가가 높은 편인데, 반면 광해군왕후 우씨에 대해서는 민중을 착취한 기득권의 대명사로 매우 낮게 평가하고 있다.


[A] 2023년 9월 2일 기준.[A] [3] 이전에는 흰 바탕에 검은 글자로 쓴 적도 있었다.[4] 아예 이런 내용들은 파편적으로나마 일본사학자들도 주장하던 내용이다.[5] 예를 들면 노중국의 백제 왕계에 대한 학설이나 노태돈의 태조왕 왕계 교체설은 학계에서 통설로 받아들여진다.[6] 실제로 동탁은 일반 민중들에게 생각보단 호평도 제법 받았다고 한다. 승상이 되기 전에 변방 생활을 할 때 강족에게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던 1마리를 내 주어 큰 호평을 받았다. 또 동탁이 왕윤&여포의 계략에 넘어가서 황제 자리를 선양하겠다는 말에 뿅 가서 그 즉시 황궁에 가던 전후로, '천리초 십일상(千里艸 十日卜)'이라는 시를 지어 "동탁 승상! 황궁에 절대로 가지 마십시오! 가시게 된다면 왕윤&여포에 의해서 죽습니다!"라는 노래가 퍼진 것, 그리고 한 노인이 동탁을 불쌍히 여겨 베로 만든 깃발 두 개에 입 구(口)를 하나씩 써서 들고 다님으로써 동탁에게 "동탁 승상! 왕윤의 사주를 받은 여포가 승상님을 죽일 것입니다! 제발 조심하십시오!"라고 경고까지 하는 등, 최소한 동탁을 지지하는 세력도 있었던 것을 볼때 싸이코패스급 막장 폭군은 아니었다는 것. 물론 그렇다고 마냥 위인이라고 보기도 어려운게, 어찌됐든 황실을 겁박하고 낙양을 불태우는 등 부정적인 평가가 수직상승을 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