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팝의 대표곡들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Paperback Writer 비틀즈 (1966) | September Gurls 빅 스타 (1974) | ||
Born to Run 브루스 스프링스틴 (1975) | Buddy Holly 위저 (1994) |
파워 팝 Power Pop | |
<colbgcolor=#234794><colcolor=#fff> 기원 | 장르 팝 록, 팝 |
지역 미국, 영국 | |
등장 시기 | 1960년대 중기 |
관련 장르 | 하드 록, 글램 록, 뉴 웨이브, 얼터너티브 록, 인디 팝, 쟁글 팝 |
1. 개요
Power pop1960년대에 탄생한 록 음악의 장르이다. 팝 록의 하위 장르로 취급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멜로디 훅(hook), 보컬 하모니, 에너지 넘치는 연주가 특징이며, 그리움이나 절망 등의 감정을 뒷받침하는 경쾌한 음이 주를 이룬다.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뉴 웨이브, 펑크 록, 쟁글 팝 등의 음악 장르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다.[1]
드라마틱하면서 귀에 쉽게 들어오는 멜로디와 청량한 보컬 하모니, 넘실대는 역동적인 기타와 단순하면서 리드미컬한 드럼 리듬이 특징으로 꼽힌다. 설명이 굉장히 모호한것 같겠지만 대표곡들을 들어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수많은 록 장르중에서도 멜로디컬한 매력을 가진 장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 역사
60년대 'So Sad About Us'와 같은 더 후의 초기 록큰롤 넘버들, 그리고 비틀즈와 비치 보이스의 청량한 멜로디와 하모니, 버즈의 넘실대는 기타 사운드를 그 시작으로 본다.'파워 팝'이라는 장르의 사운드와 에센스가 구체화된건 70년대부터로, 이 시기의 '라즈베리스'[2], '배드핑거', '빅 스타'와 같은 밴드들이 파워 팝의 원형을 제시했다. 이들은 'I Wanna Be With You'나 'No Matter What'등의 곡을 통해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영향을 받은 단순하면서도 리드미컬한 록큰롤 밴드 사운드 위에 '비틀즈', '비치 보이스', '홀리스'등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틱한 멜로디와 보컬 하모니를 들려주었다. 다만 빅 스타는 대표곡인 'September Gurls'를 들어보면 알 수 있지만, '버즈'의 영향을 받은 보다 넘실대는 기타 사운드와 특유의 달콤씁쓸한 감수성으로 살짝 궤를 달리하는면이 있었고, 이런 독특한 매력은 이후의 그들의 영향을 받은 파워 팝 밴드들뿐만 아니라 후대의 기타 팝, 쟁글 팝, 인디 록 밴드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후 70년대 중후반에 '닉 로우', '칩 트릭', '낵', '플래밍 그루비스', '드와이트 트윌리 밴드', '루비누스', '폴 콜린스', '페즈밴드'등의 아티스트들을 거쳐 파워 팝은 장르적으로 완성되었다. 칩 트릭과 낵은 'Surrender'나 'My Sharona'와 같은 하드록스러운 에너지 넘치는 록큰롤 사운드에 스트레이트한 흥겨운 멜로디를 더한 파워 팝을 선보였고, 파워 팝의 대부로 평가받는 닉 로우[3]는 'Cruel To Be Kind'나 '록파일' 시절의 'Heart'와 같은 곡들을 통해 보다 부드러운 기타 사운드 위로 영국적인 달콤한 멜로디의 파워 팝을 들려주였다. 루비누스의 'I Wanna Be Your Boyfriend'와 플래밍 그루비스의 'Shake Some Action', 페즈밴드의 'Baby It's Cold Outside'와 같은 곡들은 파워 팝의 에센스 그 자체였다. 다채로운 음악들과 프로듀서로 이후 이름을 날리는 '토드 런그렌'도 이 시기에 파워 팝 음악을 했었다. 'I Saw The Light'가 대표적. 보통 이 시기를 가장 순수하고 완성도 높은 파워 팝 싱글들과 아티스트들이 쏟아져나왔던 파워 팝의 전성기로 꼽는다.
80년대부터는 당시 유행했던 뉴 웨이브, 펑크 락, 글램 록등의 사운드와 비쥬얼에 영향을 받아 '스퀴즈', '20/20', '필 세이모어', '마샬 크렌쇼'[4], '로맨틱스', '플림소울스', '스폰지톤스'등의 이전보다 더 다채로운 사운드의 파워 팝 아티스트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댄서블한 리듬과 신디사이저등을 활용해 이전의 단순한 록큰롤 사운드에서 벗어난 신선한 사운드의 파워 팝을 들려주었다. 'Pulling Mussels(From The Shell)', 'Yellow Pills', 'Someday, Someway'등의 곡들이 대표적이다. '카스'나 '엘비스 코스텔로', '조 잭슨'[5]등의 뉴웨이브 아티스트들이나 '언더톤즈', '온리 원스'같은 펑크 밴드들이 이따금 파워 팝 음악들을 들려주기도 하였다.[6] 또 이 때부터 '빅 스타'의 영향을 받은 기타 팝 사운드의 파워 팝 또한 등장하기 시작했다. '디비스', '레코즈', '스미더린스'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그들에게 빅 스타가 그랬듯이, 'Big Brown Eyes', '(I Thought) You Wanted To Know', 'Starry Eyes'와 같은 곡들을 통해 특유의 달콤씁쓸한 멜로디와 넘실대는 기타 사운드로 이후 이어지는 90년대 파워 팝 밴드들에게 특히나 큰 영향을 주었다.
90년대부터는 시대의 조류를 따라 얼터너티브 록과 쟁글 팝의 영향을 받은 파워 팝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틴에이지 팬클럽', '포지스', '메튜 스윗', '젤리피쉬'[7], '슬론'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얼터너티브 록, 그런지, 쟁글 팝등의 거칠고 투박한 사운드 위에 파워 팝 특유의 멜로디와 하모니를 얹은 독특한 매력으로 사랑받았다. 'The Concept'나 'Solar Sister', 'Sick of My Self', 'Joining a Fan Club'과 같은 곡들이 대표적이다. 비록 80년대의 전성기를 지나 이전과 같은 메인스트림을 강타하는 흥행은 하지못했으나 틴에이지 팬클럽의 'Grand Prix'나 포지스의 'Frosting On The Beater', 슬론의 'One Chord To Another'과 같은 앨범들이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조용하지만 꾸준한 사랑과 함께 다양한 매니아층을 형성했다. 이 시기가 사실상 파워 팝의 마지막 전성기로 평가받기도 한다.
90년대 중반부터 00년대 초반에는 '위저', '파운틴즈 오브 웨인'[8], '패스트볼'등의 파워 팝 밴드들이 'Buddy Holly'나 'Stacy's Mom', 'The Way'등의 현대적인 파워 팝 음악들을 히트시켰다. 또한 '제이슨 포크너', '브렌든 벤슨'[9], '브래킷'과 같은 아티스트들도 'I Go Astray', 'What', 'Tractor'와 같은 자신들만의 매력적인 파워 팝 음악들을 들려주었다.
이후에는 '블루(Bleu)', '아미 네이비', '타히티 80, '루니'와 같은 인디 파워 팝 아티스트들의 'Could Be Worse', 'Silvery Sleds', 'Hey Joe'등의 곡들을 통해 명맥을 이어가고있다. 특히나 아미 네이비의 데뷔 앨범은 파워 팝 팬들에게 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파워 팝 명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3. 비운의 파워 팝 아티스트들의 일대기
초창기 파워팝 개척자 밴드들은 훗날 수많은 모던 록, 얼터너티브 록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정작 활동 당시엔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데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그 큰 이유는, 70년대 초,중반경의 록음악계는 하드록/초기 헤비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록 같이 웅장하고 화려한 음악이 대세였던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음악적 분위기에서 소박하고 멜로디컬한 파워팝의 특성은 이전의 록큰롤이나 서프록등과 달리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 쉽지 않았다. 여러모로 시대를 잘못 탄 비운의 장르* 파워 팝의 시작점이 되는 밴드 중 하나인 배드핑거는 비틀즈에게 발탁되었고, 비틀즈를 꼭 닮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후일 존 레논의 솔로 앨범 Imagine과 조지 해리슨의 솔로 앨범 All Things Must Pass에도 참여할 정도로 그들의 기대를 받았고 활동 초창기인 1971년까지만 해도 차트 성적도 좋았지만... 이후 이들은 여러가지 불운으로 제대로된 활동을 하지 못했고, 매니저 스탠 폴리의 사기 행각으로 계약 문제까지 겹쳐서 결국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였던 피터 햄이 1975년 27살의 나이로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며 이후 벤드는 그대로 해체. 몇 년후, 겨우 재결성 하나 했더니 이번에는 베이시스트이자 보컬이었던 톰 에반스가 제 2의 비틀즈는 필요 없다는 대중들의 부정적인 평가와 미국 에이전시와의 소송으로 힘들어 하던 중 전화로 예전 밴드메이트였던 조이 몰란드와 Without You의 저작권료를 가지고 말다툼을 벌였고 다음날 아침 피터 햄에 이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밴드는 완전하게 해체하게 된다. 정작 이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Without You'는 해리 닐슨이 리메이크해서 초대박을 쳤다... 더욱 자세한 사항은 배드핑거 항목 참조.
- 또 다른 파워팝의 시작인 빅 스타 역시 뛰어난 음악성에 비해 저조한 판매고를 자랑하다가 결국 2집 때 핵심 멤버였던 '크리스 벨'이 실패와 좌절감에 지친 나머지 탈퇴하고 만다. 그리고 그는 얼마 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3번째 앨범 역시 발매 지연이 계속 겹치는 등 악재를 겪다가 (앨범명을 두 개의 제목을 엮어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결국 3집 내고 해체했다. 다행히 이들의 음악은 후배들과 평단을 통해서 재평가 되었고 1991년 또 다른 주축 멤버 였던 '알렉스 칠튼'을 중심으로 재결성해서 활동했지만... 얼마 안가 '알렉스 칠튼'도 세상을 떠났다. 역시 자세한 사항은 빅 스타 항목 참조.
- 신비로운 사운드로 평단에게 좋은 평을 받았던 슈즈는 첫 앨범 마스터 테이프를 홍수로 잃어버리고 말았다.
- '드와이트 트윌리'와 '필 세이모어'가 함께했던 드와이트 트윌리 밴드는 내놓는 앨범마다 어째 1-2년 씩 발매가 지체되었다. 'I'm On Fire' 같은 소소한 히트곡은 있었지만...
- 낵은 1집의 수록곡 'My Sharona'가 [10]빌보드 정상을 차지하는 등 대박을 쳐서 제2의 비틀즈라는 수식어와 함께 파워팝을 이끌어갈 밴드로 기대 받았지만 이후 내놓은 2집이 비참할정도로 대실패... 가장 유명한 원히트원더 사례로 거론될정도로 순식간에 망해버렸다. 덕분에 파워팝의 몰락을 이끈 밴드라는 오명이 붙어버린건 덤...
- 중반기 파워팝을 대표하는 밴드인 칩 트릭은 전성기 시절 빌보드 200 1위에도 오르는등, 대중적인 성공을 누린 운좋은 케이스이나, 초창기에는 시원찮았다. 본거지인 미국에서는 별다른 반응 없이 완전히 깡통신세를 차면서 비운의 선배들의 길을 따라가나 싶다가 의외로 일본에서 서서히 인기를 끈것을 계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At Budokan'이라는 일본 라이브 앨범이 대중적인 성공과 함께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으면서 기사회생에 성공했다.[11]. 파워 팝 밴드중 다행히 아주 잘풀린 케이스. 스매싱 펌킨스의 리더 빌리 코건이 이 밴드의 꽃미남 보컬 '로빈 잰더'의 창법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영국의 밴드 The Outfield는 Your Love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후 내놓은 노래들은 큰 반응을 얻지 못해 원 히트 원더 취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밴드의 보컬 Tony Lewis(아래 영상의 썸네일에 있는 사람)는 최근(2020년)에 63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급사라고만 되어 있어서 불명.
- 미국의 밴드 The Exploding Hearts는 비록 많은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지속적인 활동으로 입지를 다지고있었는데 2003년 7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 후 돌아가던 중 그만 교통사고로 인해 기타리스트와 매니저를 제외하고 전원 사망했다. 당연히 이 직후 밴드는 해체되었다.
3.1. 디비스의 불운 편
이 중에서도 평론가들에게 높은 평을 받았던 디비스는 역시 음악성에 비해 그 불운이 상당한 편이어서 두고두고 회자된다.영국 레이블 알비온(Albion)을 통해 발표된 이들의 데뷔 앨범 Stands For decibels는 영국 평단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세상에 등장했다. 그러나 뉴로맨틱스와 신스팝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던 당시의 영국 음악계에서 이들과 같은 기타 팝, 파워 팝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국에서의 판매는 극히 저조했고 이로 인해 미국 시장 발매를 추진하던 알비온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이들은 이 앨범이 스웨덴 앨범 차트 20위권에 진입한 것을 최대의 성공으로 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에 나온 두 번째 앨범 Repercussion은 전작의 음악적 탁월함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프로듀서 스콧 릿(Scott Litt)의 영입으로 사운드에 보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다. 이 앨범 역시 평단의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상업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앨범이 발매된 직후 알비온이 도산한 때문이었다. 결국 이 앨범은 들어본 사람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연속되는 불운에 좌절한 크리스 스태미는 더 이상의 그룹 활동에 의욕을 잃고 디비스를 떠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이들은 피터 홀서플을 중심으로 그룹을 재정비하고 미국 레이블 베어스빌(Bearsville)과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은 베어스빌에서의 첫 작품으로 견실한 컨트리/팝 앨범 Like This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베어스빌은 배급사인 워너 브라더스와의 재계약에 실패하고 레이블 소유주인 앨버트 그로스만(Albert Grossman)[12]마저 급사하는 등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디비스의 새 앨범에 신경을 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한 번의 좌절을 겪은 이들은 이번에는 승승장구하던 인디 레이블 IRS와 계약을 맺고 4집 앨범 The Sound Of Music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의 불운은 여기서도 끝나지 않았다. IRS는 같은 시기에 출반된 R.E.M.의 Document를 성공시키는데 모든 역량을 투입했고 심지어 R.E.M.의 앨범을 찍어내기 위해 이들의 앨범을 출시 몇 주만에 절판시켜 버리는 초 강수까지 동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들은 결국 앨범 The Sound Of Music을 끝으로 비운에 찬 그룹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해산했다. [13]
4. 또 다른 대표곡들
영국 밴드 The Outfield의 Your Love. 뉴 웨이브 + 파워 팝 + 팝 록 장르이며 유튜브 조회수 4억회로 파워 팝과 팝 록 장르 중에서 가장 히트친 노래 중 하나다. 가사 내용이 영 좋지 않다는 점만 빼면 그럭저럭 들을만 하다.
이 외에 더 많은 대표곡들을 들어보고 싶다면 여기로
5. 여담
대중친화적인 멜로디에 역동적인 사운드라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장르이기에 대중과 매니아를 동시에 사로잡을법도한데, 위에 서술한 역사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딱히 엄청나게 성공한 밴드가 없다.이는 파워 팝이라는 장르 자체가 단순한 사운드 위로 유려한 멜로디라는, 순수 멜로디의 창작성에 엄청나게 의존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밴드가 원히트원더로 끝나버린 이유가 크다. 색다른 사운드적 시도나 변화 없이, 단순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멋진 멜로디를 계속해서 창작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일이기 때문에... 다만 이말은 즉슨, 유명한 곡들은 그만큼 정말 유려한 멜로디를 자랑하는 매력적인 곡들이라는 소리도 된다.
덕분에 그 어떤 장르보다 원히트원더 밴드와 싱글이 많은 장르기도해서, 그런 원히트원더 넘버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이 많이 만들어지고 장르의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특이한 장르로도 유명하다. 애지간한 파워 팝 밴드의 정규 명반보다 컴필레이션 앨범이 더 좋은 평을 받는 경우도 있다.
또 위에도 적혀있듯이, 저주라도 받은듯한 파워 팝 밴드들의 불운한 일대기들 역시 장르의 실패에 한몫했다.
6. 외부 링크
- 영어 위키백과: 파워 팝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다.
- rym 파워 팝 페이지
- 파워 팝 명반(포스트 락 갤러리)
[1] 그래서인지 어느정도 겹치는 뮤지션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엘비스 코스텔로'나 '스퀴즈', '디비스'같은 아티스트들.[2] 이후 팝스타로도 이름을 날리는 '에릭 카멘'이 밴드의 프론트맨이었다. 'All By My Self'가 유명[3] 대표적인 뉴웨이브 아티스트인 '프리텐더스'와 '엘비스 코스텔로'의 프로듀서로도 유명하다.[4] 이중 가장 순수한 파워 팝 사운드를 들려주는 아티스트로 사랑 받았다.[5] 키스(The Keys)라는 파워 팝 밴드를 프로듀싱 하기도 하였다.[6] 워낙 파워 팝이 장르적으로 구분이 모호한감이 있어서 그런것도 있지만.[7] 한국의 대형 연예 기획사인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가 이 밴드 이름에서 따온것이라고 한다.[8] 동명의 영화의 OST로 유명한 'That Thing You Do'를 작곡한 애덤 슐레진져가 있는 밴드다. 'That Thing You Do' 또한 훌륭한 파워 팝 명곡.[9] 이후 잭 화이트와 래콘터스를 결성해 활동.[10] 광고음악등으로 사용되어 한국인에게도 굉장히 익숙한 곡이다.[11] 아시다시피 일본 음악 시장은 어마어마하다. 쥬다스 프리스트도 본거지에서 쫓겨나 일본에서 계약하던 시기가 있을 정도.[12] 밥 딜런의 초창기 매니저로 유명하다.[13] 다행히도 2005년에 오리지널 라인업으로 재결합하고 2012년에 새 앨범을 발매하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