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년 7월 20일 ~ 1374년 7월 19일[1] (향년 69세)
1. 개요
'비록 이 몸은 지상의 것이지만, 이 확고한 소망은 별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정치가. 사실상 르네상스 시대를 연 최초의 인문주의자. 으로 평가받는다. 소네트 시의 대가이며 여러 편의 소네트를 집필하면서 이 형식을 확립시켰다.2. 생애
130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한 도시 아레초(Arezzo)에서 서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세르 페트라코(Ser Petracco, 1267~1326)는 본래 피렌체 출신이었으나 교황파(구엘프) 중에서도 백당 성향이었기에 피렌체를 흑당이 장악하자 아레초로 망명해 프란체스코를 낳게 된다.1309년 가톨릭이 대분열되는 아비뇽 유수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자 대립 교황 클레멘트 7세의 편에 섰던 페트라르카의 가족은 대립 교황이 머무르던 아비뇽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이 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아버지의 뜻대로 몽펠리에 대학교와 볼로냐 대학교에서 법학을 수학한다. 그러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정작 라틴어 문학에 더 많은 흥미를 보였던 페트라르카는 자신의 천직을 문학가로 여기게 된다.
1326년 아버지가 타계하자 아비뇽으로 돌아온 페트라르카는 대립 교황청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었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그는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선다. 1327년 아비뇽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인 라우라 드 노베(Laura de Noves, 1310~1348)를 만나 그녀를 짝사랑한 경험을 소네트로 집필하던 그는 1337년 대사 임무를 수행하러 로마를 방문하던 중 영감을 얻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장군을 소재로 한 첫번째 대작이자 걸작인 아프리카(Africa)를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명성을 얻게 된다. 이 같은 명성은 1341년 4월 8일 그가 로마 시에서 최초로 계관 시인의 영예를 얻게 됨으로서 절정에 이른다.
그에게 또 한번 불후의 명성을 얻게 해준 작품은 1342년에 발표된 서정시집 ‘칸초니에레(Canzoniere)’였는데 이는 기존 라틴어 위주의 문학 활동에서 벗어나 속어인 이탈리아어로 집필되어 신 중심의 중세 정신에서 탈피하여 인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르네상스적 새로운 시대 정신의 탄생을 의미했다.
1348년 평생의 짝사랑 라우라 드 노베가 38세를 일기로 요절하자 페트라르카는 정치 활동에서 은퇴하고 이후 30여년 가까이 작품 활동에만 몰두하며 조반니 보카치오 등과 교류했고 70세 생일을 하루 앞둔 1374년 7월 19일 이탈리아 아르쿠아(Arquà)의 자택에서 타계한다.
그의 생애중에 그 유명한 중세 흑사병의 창궐(1346~1353)이 있었고, 이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겼다.[2]
'후손들에게 보내는 편지(Posteritati)'를 쓴 바 있다. 내용은 다만 자신이 어떠어떠한 사람이었다라고 알아달라는 것이다. 남겨진 내용만 보면 자서전인데 처음 몇페이지만 쓰고 갑자기
3. 칸초니에레
여러분, 이제 그대들은 산만한 시들 속에서
내가 지금과는 다소 다른 사람이었던 시절
빗나가던 내 젊디젊은 그 시절에
내 가슴을 가득 채우던 그 탄성들을 들으리오.
부질없는 소망들과 헛된 고통 속에서
갖가지 방식으로 나는 울고 말하면서
체험으로 사랑을 아는 이가 그 어디에 있든
나는 용서만이 아닌, 자비를 빌고 싶소.
그러나 이제는 잘 알고 있다오. 오랜 세월
나 뭇사람의 이야깃거리였음을, 그 때문에 종종 나 마음속으로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한다오.
그리고 이 부끄러움은 내 헛된 짓의 열매요
또 속세에서 원하는 만사가 순간의 꿈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것과 뉘우치는 것의 열매라오.
《칸초니에레》 1번
내가 지금과는 다소 다른 사람이었던 시절
빗나가던 내 젊디젊은 그 시절에
내 가슴을 가득 채우던 그 탄성들을 들으리오.
부질없는 소망들과 헛된 고통 속에서
갖가지 방식으로 나는 울고 말하면서
체험으로 사랑을 아는 이가 그 어디에 있든
나는 용서만이 아닌, 자비를 빌고 싶소.
그러나 이제는 잘 알고 있다오. 오랜 세월
나 뭇사람의 이야깃거리였음을, 그 때문에 종종 나 마음속으로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한다오.
그리고 이 부끄러움은 내 헛된 짓의 열매요
또 속세에서 원하는 만사가 순간의 꿈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것과 뉘우치는 것의 열매라오.
《칸초니에레》 1번
내가 한숨지은 지 열네 번째 해의 중간과 끝이 처음에 화답하면 산들바람도 그늘도 이제 나를 더 이상 구할 수 없으니 내 뜨거운 열정이 너무도 커 감을 내가 느끼기 때문이네.
《칸초니에레》 79번
《칸초니에레》 79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