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 관련 틀 | |||||||||||||||||||||||||||||||||||||||||||||||||||||||||||||||||||||||||||||||||||||||||||
|
<colbgcolor=#64a41c><colcolor=#fff>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 |||
본명 | 데이비드 헨리 소로 David Henry Thoreau | ||
출생 | 1817년 7월 12일 | ||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 |||
사망 | 1862년 5월 6일 (향년 44세) | ||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1]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64a41c><colcolor=#fff> 학력 | 하버드 대학교[2] (학사) | |
직업 | 철학자, 시인, 수필가 | ||
부모 | 아버지 존 소로 (1787~1859) 어머니 신시아 던바 (1787~1872) | }}}}}}}}} |
[clearfix]
1. 개요
미국 출신의 철학자, 시인, 수필가. 랠프 월도 에머슨과 함께 초월주의와 생태주의의 효시로 일컬어진다.훗날 그의 사상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3],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났으며,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멕시코 전쟁에 반대해 인두세 납부를 하지 않았다가 감옥에 투옥된 적이 있다. 월든호에 머물며 글을 썼다.
2. 작품
2.1. 저서(책)
소로는 생전에 두 권의 책을 출판했다.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의 일주일>과 <월든>이 바로 그것이다. 사후에 <메인 숲>, <케이프코드>, <캐나다의 양키>가 출판되었다.-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의 일주일 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 (1849)[4]
- <월든; 즉, 숲속의 삶 Walden; or, Life in the Woods> (1854)[5]
- <메인 숲 The Maine Woods> (1864)
- <케이프코드 Cape Cod> (1865)
- <캐나다의 양키 A Yankee in Canada> (1866)
2.2. 주요 에세이
이 밖에도 많은 에세이가 있다. 소로는 생전에 수많은 단편 에세이를 저술해서 잡지와 신문에 기고했다.- <걸어서 와추셋산까지 A Walk to Wachusett> (1842)
- <매사추세츠의 자연사 Natural History of Massachusetts> (1842)
- <겨울 산책 A Winter Walk> (1843)
- <시민 불복종 Civil Disobedience> (1849)
- <매사추세츠의 노예제도 Slavery in Massachusetts> (1854)
-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 A Plea for Captain John Brown> (1859)
- <숲속 나무들의 이어짐 The Succession of Forest Trees> (1860)
- <걷기 Walking> (1862)
- <가을의 빛깔들 Autumnal Tints> (1862)
- <야생 사과 Wild Apples> (1862)
- <원칙 없는 삶 Life Without Principle> (1863)
2.3. 시
대부분은 1840~1844년 초월주의 잡지 《다이얼》에 실린 시이다.- 기도 Prayer
- 달 The Moon
- 연기 Smoke
- 양심 Conscience
- 에올리안 하프로부터의 소문 Rumors from an Aeolian Harp
- 아래로 닻을 내린 구름 Low-Anchored Cloud
- 그런 순수한 증오를 계속해서 지탱하라 Let such pure hate still underprop
- 내면의 아침 The Inward Morning
- 여름비 The Summer Rain
- 그런 게 인생 Sic Vita
- 내 인생은 시였다 My Life Has Been the Poem
- 우정 Friendship
- 나는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다 I Knew a Man by Sight
- 세상 위의 비문 Epitaph on the World
- 정말로 정말로 말할 수 없다 Indeed, Indeed, I Cannot Tell
- 추수의 손이 지난 들판에서 On Fields O'er Which the Reaper's Hand has Passed
- 어떤 땅에게 기도하라 Pray to What Earth
- 아래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그들 They Who Prepare my Evening Meal Below
- 나에게 철도란 무엇인가? What's the Railroad to Me?
- 이 힘든 삶의 순환 속에서 Within the Circuit of This Plodding Life
- 영감 Inspiration
2.4. 기타 서신 및 일기
3. 생태주의
당시 산업혁명 직후 아메리카 드림등 노동과 성공에만 관심을 쏟던 세태와 달리 직접 숲에서 집을 만들고 혼자서 자립해서 살았다. 사실 이건 초월주의 사상적 동지이자 동갑인 윌리엄 엘러리 채닝 2세의 조언을 따른 것인데, 채닝 2세는 소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직접 숲에서 집을 만들고 혼자서 자립하는 것"을 조언한 인물이다. 소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채닝 2세는 소로에게 "이 땅에서 내가 한때 '브리어스'라고 불렀던 이 들판 외에는 너를 위한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차라리 그 위로 나가서 오두막을 짓고, 거기서 네 자신을 산 채로 집어삼키는 거대한 과정을 시작해. 그 외에는 다른 대안도, 다른 희망도 보이지 않아."라고 말했다. 이후 소로는 채닝의 조언에 따라 숲의 집에 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8] 당연히 초월주의를 따르는 사상적 동지들 외 당시 다른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았지만, 20세기 후반에 와서 계속된 노동과 반복을 비판한 <월든>이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실천적 초월주의자인 소로는 미국적 삶의 주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실험적 삶을 산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대 생활양식의 비판 근거를 미국적 이념에서 찾았기에 그는 미국적 특성이 강한 작가라고도 여겨진다. 산업화와 근대화에 사로잡힌 근대적인 삶의 양식을 거부하고 비판한 그는 내면의 풍요로움, 검소한 삶, 자급자족의 삶을 강조하였다. 이외에도, 그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중시하고 전쟁과 노예제도를 비롯한 물질문명과 인간의 이기와 탐욕을 싫어하고 반대하며 옳지 못한 정부와 사회에 대해선 불법적일지라도 간접, 소극적으로라도 반대, 저항하고 맞설 것을 주장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주장한 생태주의자였다.
그렇긴 한데, 1844년 4월 30일 경[9] 피시 차우더 수프를 만들던 중 콩코드의 숲 330 에이커(약 1.3km²)나 되는 면적을 태워먹은 적이 있다. 이렇게 한동안 우즈 버너(Woods Burner), 즉 숲을 태워먹은 자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이때의 일과 관련된 우즈 버너라는 책도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소로의 자연 속 거주지는 그의 후견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사유지였다. 소로는 에머슨의 호의로 임대료를 내지 않고 해당 부지를 무료로 이용한 것이다. 에머슨은 미국 내 이름난 강연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사교계의 스타였고, 물려받은 엄청난 재산 덕분에 처음부터 부유한 생활을 누렸다. 이후 재산이 줄어들자 그는 각종 강연회를 통해 거액의 재산을 다시 회복하기도 한다.
그가 소로에게 특혜를 준 것은 문학에 대한 자신의 열정 때문이었다. 에머슨은 본인, 마거릿 풀러, 소로 등과 함께 초월주의 동호회(Transcendental Club)을 만들어, 동양적이고 이상적인 문학 작품을 다수 발간한 바 있다(성공하지는 못했다). 이런 배경에서 에머슨은 소로에게도 자연인용 부지를 빌려주고 그에게 문학적 기대를 품은 것이다. 이후 에머슨과 소로는 관계가 틀어지고 (소로는 후견인인 에머슨에 대해 악담을 한 바 있다) 소로는 점점 기인처럼 변해갔으며, 소로 역시도 생전에는 문학적 명성을 얻지 못하였다. 소로가 겨울철 나무의 나이테 개수를 세던 중 폐렴에 걸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둘은 극적으로 화해한다. 다시 말해, 소로의 자연 친화적인 삶조차도 에머슨이 재력과 사유지로 그를 지원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1845년 월든 호수에 가기 직전까지도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님 집에서 보냈다고 한다).
실제 소로는 오랜 기간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최소한의 생활비만으로 살아가야 했기에, 단독이었다면 월든에서의 자급자족이 어려웠을 것이다. 시민 불복종과 관련해서도, 인두세를 미납해 투옥된 소로는 이모가 미납된 세액을 대납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소로가 당시 인정받지 못한 이유 중에는 이런 점도 한 몫 했다. 물론 그의 기본적인 사상 - 즉 세속적 성공에 매몰되는 삶을 경고한 점은 높이 살만 하다.
4. 명언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한 절망의 삶을 살고 있다. 체념이라고 불리는 것이 절망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10]
새 옷을 필요로 하는 계획들을 조심하라.[11]
이 타락한 시대에 잔물결이 이는 강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완전한 절망에는 이르지 않으리.[12]
인간은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의 도구가 되었다.[13]
어떤 사람이든 부당하게 잡아 가두는 정부 아래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어야 할 곳은 역시 감옥이다.[14]
나는 여러 해 동안 스스로를 눈보라와 폭우의 감독관으로 임명하여 충실히 임무를 수행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결코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15]
사랑에 대한 치료법은 없어. 더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16]
인간은 실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서 태어났다.[17]
4.1. 소로의 말이라고 오해된 어록
너 자신이 되어라. 너 자신이 되어라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한 너의 생각이 아니라. (Be yourself, not your idea of what you think somebody else’s idea of yourself should be.)
* 설명: 이 말은 소로가 한 말이 아니다. 해당 명언은 로버트 에드윈 리와 제롬 로렌스가 지은 1970년 희곡 '소로가 감옥에서 보낸 밤'의 극중 대사에 불과한 것이 소로가 직접 한 말로 와전된 것이다. #
* 설명: 이 말은 소로가 한 말이 아니다. 해당 명언은 로버트 에드윈 리와 제롬 로렌스가 지은 1970년 희곡 '소로가 감옥에서 보낸 밤'의 극중 대사에 불과한 것이 소로가 직접 한 말로 와전된 것이다. #
5. 기타
- 찰스 다윈과 동시대 인물이다. 찰스 다윈의 1839년 책 <비글호 항해기>를 다 읽었으며, 소로의 일기 1851년 7월 23일에서 "...다윈 같은 이들은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과학자들의 비결일까요?"라고 말했다. 이후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1년 후인 1860년 신년맞이 저녁 파티에서 <종의 기원>에 대해 노예제 폐지론자 Franklin Sanborn, 아동복지 개혁가 Charles Loring Brace, 그리고 초월주의자 Bronson Alcott 등과 대화하다가 알게 되었고, 흥미를 느껴서 지역 도서관에 가서 <종의 기원> 책 사본을 구했다 한다. <종의 기원>을 다 읽은 후 소로는 자신의 사상인 초월주의를 토대로 해서 자연에 대한 자신만의 결론을 내렸는데, 다음과 같다. #“Though I do not believe that a plant will spring up where no seed has been, I have great faith in a seed... There is a wondrousness in a natural world that is blindly self-directing, driven by struggle and contingency, authored by itself.""저는 씨가 없던 곳에 싹이 날 줄은 믿지 않지만 씨에 대해서는 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자기 주도적이고, 투쟁과 우연에 의해 주도되고, 저절로 저작되는 자연 세계에는 경이로움이 있습니다."
- 법정 스님이 <월든>을 즐겨 읽었다고 전해진다. 법정 스님은 월든 호수를 직접 방문한 바 있다.
- 2024년 기준으로 미취학 아동부터 10대 초중반까지 즐기는 밈의 일종을 일컫는 Brainrot은 의외로 신조어가 아니라 이 작가의 <월든>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해당 단어는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2024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었다.
6. 대중 매체에서
- 폴아웃 4 - 시대가 2270년도이다 보니 당연히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배경이 콩코드라서 작중에서 소로가 살았던 오두막이 등장한다.[18] 핵폭탄이 떨어졌음에도 오두막은 살아남았다. 오두막 근처 스피커로 소로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들을 수도 있으니, 관심있다면 듣는 것도 좋다. 다만 전쟁 전에 이미 그의 오두막은 기념품 상점으로 변했었고, 호수는 물이 상당히 마른데다 쓰레기도 많이 있으며 지하 땅굴에는 작중의 도적패인 레이더도 살고 있다.[19] 동료 중 하나인 코즈워스는 '핵전쟁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가 소박한 삶을 되찾게 되리란걸 소로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 이다.'라고 씁쓸한 한마디를 한다. 그 외의 동료들도 한마디 씩은 하는데, 퀴리(폴아웃 4)와 파이퍼 라이트[20], 닉 발렌타인 등 선 성향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지만 악 성향은 비꼬거나 비웃는 말을 한다. 가장 백미는 팔라딘 댄스의 '나 이 작가 알어. 숲속으로 살아남기인가 하는 책 쓴 사람 아냐?'(...)
- 레드 데드 리뎀션 2 - 이야기 속 아름다운 미국 대륙을 이주민들이 망치고 있으며 환경보존을 주장하는 작가 에블린 밀러가 소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이다. 극 중 여타 미국인들과는 다르게 자연친화적 사상을 지녔으며 인디언들과 공생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소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고 나중에 오두막에서 쓸쓸히 죽는 것 또한 그의 최후와 비슷하다.[21]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 주인공 노라 시드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로, 책 곳곳에서 소로의 어록들이 소개된다. 책에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로 나온다.
[1] 묘소는 매사추세츠 콩코드 슬리피 할로우 공동 묘지에 있다.[2] 1833년 입학, 1837년 졸업. 독일어와 그리스어, 라틴어를 전공했다.[3] 간디는 소로가 자신의 철학과 인도 독립운동에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Robert D. Richardson, Jr., Henry Thoreau: A Life of Mind(Berkeley: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6),pp. 316~17)[4] 주변인의 권유로 소로가 처음 낸 책인데 말그대로 폭망해버려 소로가 남은 책을 다 사야만 했다. 구체적으로는 발간한 1천부 중 약 300부만 판매되고, 나머지 대부분을 소로가 전부 구매하여 자택에 쌓아두어야 했다. 소로는 이 점을 자조섞인 유머와 함께 이야기 한 적도 있다.[5] 처음에는 <월든; 즉, 숲속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으나, 후에 간단하게 <월든>으로 제목을 바꿨다.[6] 1840년대와 1850년대의 소로와 에머슨의 편지.[7] 소로가 1837년부터 말년인 1861년까지 직접 쓴 일기이다.[8] 출처: Channing, W. Ellery. William Ellery Channing Letters, 1836-1845.[9] 월든으로 들어가기 1년 전[10] The mass of men lead lives of quiet desperation. What is called resignation is confirmed desperation. (Walden)[11] 원문은 <윌든>에 나온다. I say, beware of all enterprises that require new clothes, and not rather a new wearer of clothes. (내 말은, 오히려 옷들을 새로 착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 옷을 필요로 하는 모든 계획들을 조심해라는 말입니다.) 이 인용문의 바로 앞 부분에서 소로는 이렇게 말한다. 무도회에 가는 사람은 옷이 많이 필요하지만, 예배하러 가는 사람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여기서 enterprise는 '산업'으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으로 번역해야 한다.[12] He who hears the rippling of rivers in these degenerate days will not utterly despair. <월든>에 나오는 말로 알려져 있지만 월든이 아니라 소로의 다른 책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의 일주일>에 나오는 말이다. #[13] <윌든>에 나온다. 원문은 Men have become the tools of their tools.[14] Under a government which imprisons any unjustly, the true place for a just man is also a prison. (Civil Disobedience (1849))[15] For many years I was self-appointed inspector of snowstorms and rainstorms, and did my duty faithfully, though I never received one cent for it. (After February 22, 1846. Journals)[16] 이 말은 "The only remedy for love is to love more. (사랑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은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원문은 "There is no remedy for love but to love more. (더 사랑하는 것 이외에 사랑에 대한 치료법은 없다.)"이다. 소로는 23살 때 엘렌 시월을 짝사랑하게 되는데, 해당 말은 그 때 자신의 일기에 적은 말이다. #[17] "Men were born to succeed, not to fail." (March 21, 1853. Early Spring in Massachusetts. #)[18] 정확히는 소로가 살던 오두막의 복제품이다. 소로가 월든을 떠난 직후에 오두막은 철거가 되고 집터만 남아있으며, 현재는 월든 호수 주차장에 소로의 동상과 함께 그의 오두막을 재현해두었다.[19] 레이더 중 한명이 소로의 책을 읽고 초월주의를 언급 했는데, 일반적으로 책과는 담을 쌓고 사는 일자무식인 레이더 치곤 의외로 유식한듯 하다. 이곳 레이더 두명 사이의 대화를 들어 보면 가지고 있던 ‘야만전사 그로그낙’ 만화책을 다 보고 읽을거리가 없어서 옆에 있던 소로의 책을 읽었다고.[20] 동료 대사에서 시민의 불복종을 언급하는데, 그녀의 행보를 볼때 소로의 시민 불복종 운동이 연상된다.[21] 소로는 결핵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