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3:37:38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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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4일 오전3. 14일 오후4. 시간대가 불분명

1. 개요

2015년 11월 14일 발생한 민중총궐기시위의 시간별 진행상황을 서술하는 문서.

2. 14일 오전

  • 오전 7:00 - 경남 지역에서 노동자 7천여 명, 농민 3천여 명, 시민사회 1천여 명 등 총 1만여 명이 상경하기 시작했다.
  • 오전 8:00 - 광주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광주지부 조합원, 시민사회단체 6천여 명과 전남지역에서 1만6천여 명이 고속버스로 상경하기 시작했다.
  • 오전 9:00 - 경찰버스가 시위장소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 오전 9:48 - 경찰은 CCTV의 방향을 돌리고 광화문에 차벽을 세우기 시작했다.[1] 또한 타이어 휠에 실리콘을 덧대거나 차벽에 식용유[2]를 바르는 등의 조치가 목격되었다.
  • 오전 10:23 - 경복궁역에 경찰버스가 배치[3]되기 시작했다.
  • 오전 11:39 - 안국동사거리에 경찰버스가 배치되기 시작했다.
  • 오전 11:54 - 탑골공원에 살수차가 등장했다.
  • 오전 11:57 - 서울 워커힐호텔 건너편에 경찰들이 타고 있는 관광버스가 6대 등장했다.

3. 14일 오후

  • 오후 12:30 - 팩트TV, 오마이TV, 국민TV(주권방송과 공동), 고발뉴스 (유튜브, 유스트림, 아프리카TV)로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 오후 01:00 - 프레스센터 앞에서 민주노총 위원장 기자회견이 있었으며, 전국에서 출발한 버스가 서울에 도착하였다. 이와 별개로 성소수자대회와 재벌사내유보금 환수 결의대회가 시작되었다.
  • 오후 01:18 - 민주노총 위원장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이 투입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과 충돌이 있었다.
  • 오후 01:30 - 세종대왕상 양 옆까지 차벽이 설치 중이며, 독립문부터 사직터널 쪽까지 경찰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와 별개로 대학로에서 ‘역사쿠데타 저지! 세월호 진상규명! 민주민생수호 범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 오후 01:41 - 세종대왕상 앞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었으며, 차벽 돌파를 막기 위해 경찰버스끼리 와이어로 연결시키고 철판을 덧대 바퀴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외에 바리케이드 차량과 살수차가 도착하였다.
  • 오후 01:50 - 민주노총 집회가 시작되었으며, 서울광장에서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가 개최되었다.
  • 오후 02:00 - 청년학생대회가 개최되었으며, 경찰은 차벽에 콩식용유를 발라서 차 위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대비하였다.
  • 오후 02:13 - 보수단체 어버이연합이 국정교과서 관련 집회를 준비 중인 모습이 포착되었다.
  • 오후 02:13 - 서울역 광장에서 빈민 장애인대회가 시작되었다.
  • 오후 02:24 - 광화문광장에 경찰 총병력이 소집되었으며, 도로에 바리케이트가 설치되면서 차량통제가 시작되었다.
  • 오후 02:43 - 건설노동자연합이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오후 02:43 - 농민대회가 시작되었다.
  • 오후 02:58 - 보수단체 집회가 시작되었으며, 별개로 앞서 출발한 노동자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경찰은 차벽을 추가하고 있으며, 살수차를 이동하였다.
  • 오후 03:00 - 경찰은 바리케이드를 동원해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막았다. 이로 인해 시위대는 청계천으로 우회하기 시작했으며, 경찰은 추가적으로 광화문 일민미술관 앞과 파이낸스빌딩 앞에 차벽을 설치하였다. 한편 같은 시각, 종각역 보신각 앞에서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청소년들의 항의 집회가 열렸다.
  • 오후 03:35 - 광화문역 지하에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었다.
  • 오후 03:40 - 경찰청장이 1차 해산명령을 내렸다.
  • 오후 04:38 - 동아일보사 옆 청계광장 쪽에서 수십 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차벽을 흔들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살포하였다. 관련 기사
  • 오후 04:54 - 시위대는 사다리와 보도블록을 파손하여 던져 경찰을 공격하며 경찰버스에 오르려 시도하였고, 과격한 욕설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밧줄로 경찰버스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이에 경찰은 물대포 살포로 대응하기 시작했으며, 물탱크 차량이 도착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경찰버스가 파손되었다. 관련 기사
  • 오후 05:20 - 시위대 일부가 차벽을 뚫고 광화문광장에 진출을 시도했으며, 경찰버스 한 대가 밧줄에 끌려갔다.
  • 오후 05:22 - 안국역 CCTV 방향이 조절되었다. 원래는 시위대를 향하고 있었지만 이 때 비교적 한산한 반대쪽 도로로 방향을 바꿨다. 집회 초기에 시위대 측은 주로 깃대봉과 쇠파이프 등으로[4] 경찰을 공격하였다.
  • 오후 05:40 - 시위대는 경찰버스 끌기를 중단했으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기 시작했다. 경찰은 계속해서 물대포 발사하고 있는 상태.
  • 오후 05:41 - 시위대는 물대포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 한 명을 잡고 인간방패로 이용하였다.
  • 오후 05:48 - 경찰 1명이 시위대에게 욕설을 하여 시위대가 이에 맞대응하였다.
  • 오후 05:50 - 일부 시위대가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서 농성하였다.
  • 오후 05:55 - 시위현장에 구급차 도착하였다. 시위대나 경찰이 부상 당한 것으로 추정되며, 시위대는 5초동안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 오후 06:00 - 시위대는 박근혜 퇴진과 관련해 고성 수위를 강화하였다.
  • 오후 06:05 - 범시민대회가 종료되었다.
  • 오후 06:08 - 경찰은 갑호비상령[5]을 발령하였다. 시위대는 경찰에게 물대포를 박근혜에 살포하라고 요구하였다.
  • 오후 06:14 - 경찰은 현행범들에게 체포고지를 하였다.
  • 오후 06:16 - 일부 시위대가 채널A 취재기자를 폭행하였다.
  • 오후 06:21 - 시위대가 경찰버스를 추가로 탈취하였으며, 쇠파이프로 경찰을 폭행하였다.
  • 오후 06:23 - 경찰이 물대포 살포를 잠시 중지하였다.
  • 오후 06:24 - 시위대가 4번째 버스를 추가로 탈취하였으며, 일부 시위대는 '이석기 석방을 요구하였다.
  • 오후 06:30 - 살수차가 추가로 동원되었다.
  • 오후 06:31 - 경찰이 물대포 살포를 잠시 중단하였다.
  • 오후 06:32 - 의무경찰이 추가로 투입되었다.
  • 오후 06:37 - 경찰이 2차 해산명령을 내렸으며, 3차 해산명령시 체포를 시작한다고 선포하였다.
  • 오후 06:42 - 시위대가 다시 경찰버스에 밧줄을 매기 시작하였다. 일부 시위대는 빠루 등으로 폴리스라인 틈 사이를 파괴하려고 시도하였다.
  • 오후 06:43 - 시위대가 박근혜 퇴진을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 오후 06:48 - 경찰은 서울도시철도광화문역 무정차 통과를 요청하였다.
  • 오후 06:51 - 성분 불명의 연기가 발생하였으며, 시위대는 다시 경찰버스 탈취를 시도하였다. 그 과정에서 경찰버스는 유리창이 깨지는 등 손상을 많이 입었다.
  • 오후 06:52 - 광화문역 무정차 통과가 시작되었다.
  • 오후 06:54 - 경찰은 시위대에게 소화기를 분사하였으며, 시위대 중 쇠파이프로 경찰과 방어선을 공격하던 11명 가량을 체포하였다.
  • 오후 06:57 - 시위대가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려야 된다', '경찰과 싸우고 있는 동지들에게 함성 발사!' 등을 외치며 호응을 유도하였으며, 일부 시위대는 '통진당 해산 반대'를 외쳤다.
  • 오후 07:04 -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에 밧줄을 매고 당기기 시작했으며, 차벽 붕괴도 시도하였다. 경찰은 이에 대응해 물대포를 발사하였다.
  • 오후 07:08 - 시위현장에 구급차가 추가로 도착하였다.
  • 오후 07:09 - 시위대가 5번째 경찰버스를 탈취하였고, 경찰은 구급차 방향으로 물대포를 살포하였다.
  • 오후 07:11 - 방패 든 의경이 추가로 투입되었다.
  • 오후 07:14 - 시위대가 의경에게 물병과 밧줄 등을 던졌으며, 차벽이 뚫렸다.
  • 오후 07:18 - 시위대가 5초 간 함성을 질렀으며, 구급차가 추가로 도착하였다.
  • 오후 07:22 - 방패 든 의경이 추가로 투입되었다.
  • 오후 07:23 - 물대포 발사가 중단되었다.
  • 오후 07:25 - 물대포 발사가 재개되었다.
  • 오후 07:27 - 물대포 발사가 중단되었다.
  • 오후 07:29 - 물대포 발사가 재개되었다.
  • 오후 07:30 - 고발뉴스의 카메라가 침수되었으며, 취재팀이 부상을 당하면서 생방송이 중단되었다.
  • 오후 07:32 - 물대포에 맞은 남성 1명이 실신하였다. 관련 영상 이후 구급차에 실려갔다.
  • 오후 07:34 - 뚫린 차벽 사이로 시위대와 의경이 몸싸움을 시작했다. 추가적으로 시위대는 버스에 압력을 가했다.
  • 오후 07:35 - 시위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러졌다.
  • 오후 07:37 - 차벽이 추가로 뚫렸으며, 의경과 시위대가 대치하기 시작했다.
  • 오후 07:40 - 시위대 측에서 던진 돌에 40대 남성 한 명이 돌에 맞고 쓰려졌다. 관련 기사 위중한 상태로 알려졌다.
  • 오후 08:10 - 전남 보성에 거주하던 농민 백남기 씨(70세)가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출처 : 팩트TV)
  • 오후 08:21 - 경찰이 추가로 투입되었다.
  • 오후 08:35 - 경찰이 물대포 살수를 중지했다.
  • 오후 08:40 - 시위대의 절반 가량이 귀가하였다.
  • 오후 08:58 - 시위대가 '박근혜 퇴진, 가자 청와대로' 발언을 하였다.
  • 오후 09:38 - 시위대 측에서 횃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오후 09:53 - 경찰이 3차 해산명령이 내렸다.
  • 오후 10:10 - 시위대가 차벽 돌파를 위해 밧줄을 당겼다.
  • 오후 10:15 - 시위대에서 횃불을 경찰에게 던졌다.
  • 오후 10:16 - 부상자가 발생해 구급차를 요청하였다.
  • 오후 10:24 - 구급차가 도착하였다.
  • 오후 10:45 - 시위대 대부분이 귀가하였다.
  • 오후 10:51 - 남아있는 시위대는 여전히 대치 중이나, 인원이 많이 줄었다.
  • 오후 10:52 - 총궐기위원장은 시위대에게 서울대병원으로 이동하자고 발언하였다.
  • 오후 10:54 - 경찰이 물대포를 다시 발사하기 시작했다.
  • 오후 10:58 - 경찰이 물대포 발사를 중단했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오후 11:00 -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집회 해산을 선언
  • 오후 11:05 - 경찰이 청계천 방향으로 전진배치 중이다.
  • 오후 11:10 - 경찰이 시위대에게 4차 해산명령을 내렸다.
  • 오후 11:17 -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귀가하였다.
  • 오후 11:24 - 경찰도 소수만 남기고 돌아갔다.
  • 오후 11:30 - 경찰 대형견인차가 차벽으로 이용된 경찰버스를 견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차량의 범퍼가 파손되었고, 해당 차량이 시위대에 의해 창유리 등이 깨져있던 반파차량이었기 때문에, 시위대가 차량을 부쉈다는 뉴스 영상에도 실렸다.

4. 시간대가 불분명

시간대가 명확하지 않거나, 시위 당시에 전반적으로 일어난 사건,또한 사건 이후 추가적으로 드러나는 사건 등은 이곳에 서술해주시기 바랍니다.
  • 경찰이 물대포로 상반신을 공격한 사례가 다수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경찰 내규 상 머리만 아니면 규정위반은 아니다. 한 시위자는 물대포를 가슴 부위에 맞고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현재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7]
  • 한 여성운전자가 아픈 아이가 있다며 길을 열어줄 것을 요구했지만 시위대가 '왜 이런 곳으로 차를 몰고 왔냐'고 일관하며 길을 터주지 않았다. 관련 기사
  • 한 언론사 기자는 기자증을 시위대에게 강탈당하기도 하였다. 관련 기사
  •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하던 부부가 발이 묶여 경찰에 항의한 뒤 차벽 틈으로 겨우 빠져나가는 상황이 있었다. 위에서 시위대에 막혔던 경우와 동일인 인지는 불분명. 기사
  • 일부 시위 참가자가 경찰버스를 화장실로 쓰자며 파손된 경찰버스에 용변을(...) 보았다. 관련 기사
  • 시위 과정 중에 오물, 쓰레기를 길거리나 관공서에 무단으로 투기하고, 심지어 일부는 음식을 가져와서 술판을 벌였다. 해당 기사
  • 일부 시위대가 시위를 말리는 시민들에게 거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관련 기사
  • 경찰은 시위대가 휘두른 각목과 쇠파이프, 보도블럭 등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관련 기사
  • 민주노총측에선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시위참여를 강요하였고, 철제사다리,복면등의 불법장비를 미리 구매하여 일부단체에 나눠주기도하였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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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헌재 결정에 의거하여 일반 시민들의 통행권 자체를 완전히 막아버리거나, 집회나 시위의 사전차단, 예방 목적으로 차벽을 설치할 경우 위헌이다(달리 말하면, 일반 시민이 아닌 시위자들의 통행권은 보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일반 시민들이 다닐만한 통로가 있거나 완벽하게 막혀있지 않은 경우엔 위법사항은 아니다. 또한 집회시위가 과격해지거나 신고장소를 벗어나는곳에 대한 차벽은 적법하다는 내용의 판결이 있다. 다만, 시위가 애초부터 폭력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 그리곤 정말로 폭력시위로 변질되었다는 점으로 인해 논란의 여지가 있으니 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것.[2] 시위대가 버스로 올라오는걸 방지하기 위한 목적.[3] 배치란 차벽설치와 다른의미이다. 단순 주차를 해놨다는 소리[4] 깃발 다는 봉이 회색이라 현장 상황을 모르는 일부 네티즌들이 쇠파이프로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색 프라스틱 파이프는 누군가를 후두려 팰만한 강도가 있지는 않다. 근데 이걸로 차량을 부수는걸 보면 확인이 필요하다. 아울러 쇠파이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아래에 언급된 쇠파이프 중에도 깃대봉이 일부 섞여있을 가능성이 있다.[5] 대규모 집단사태로 치안질서가 극도로 혼란해지거나 계엄이 선포되기 전 등의 상황에서 경찰청장이 경찰 전원에게 비상근무를 명령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령. 군대로 치면 진돗개 하나와 비슷하다.[6] 주유구가 기름과 엔진이랑 연결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폭발이나 방화일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실제 위치는 주유구가 아니었고 불은 붙지 않은 듯하다.[7] 위의 부상자가 사망했다는 오보가 있었지만, 정정되었다. 다만 주말을 넘기고도 의식불명인 중태 상태이다.[8] 등록되지 않은 곳에서 출판해 ISBN 번호가 존재하지 않는 책이었다.[9] 기사 사진에 나온 단체 중 코리아 연대는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빼도박도 못하지만 마르크스 사상 강의 플래카드를 붙인 전태일노동대학은 이적단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