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8 19:42:37

조지 켈리

조지 켈리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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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뉴욕 자이언츠 엠블럼(1918~1922).png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21 1922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High Pockets Kelly HOF.png
조지 켈리
헌액 연도 1973년
헌액 방식 베테랑 위원회 추천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2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사이 윌리엄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조지 켈리
(뉴욕 자이언츠)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2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하이 마이어스
(브루클린 로빈스)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조지 켈리
(뉴욕 자이언츠)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2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아이리시 뮤젤
(뉴욕 자이언츠)
조지 켈리
(뉴욕 자이언츠)
로저스 혼스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브루클린 다저스 등번호 14번
결번 조지 켈리
(1932)
버드 클랜시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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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igh Pockets Kelly.jpg
조지 켈리
George Kelly
본명 조지 랜지 켈리
George Lange Kelly
출생 1895년 9월 10일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사망 1984년 10월 13일 (향년 89세)
캘리포니아 주 벌링게임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93cm / 86kg
포지션 1루수, 2루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15년 현금 트레이드 (NYG)
소속팀 뉴욕 자이언츠 (1915~1917)
피츠버그 파이리츠 (1917)
뉴욕 자이언츠 (1917, 1919~1926)
신시내티 레즈 (1927~1930)
시카고 컵스 (1930)
브루클린 다저스 (1932)
가족 삼촌 빌 랭, 동생 렌 켈리, 사촌 리치 차일스

1. 개요2. 선수 경력3. 명예의 전당 헌액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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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선수 경력

뉴욕 자이언츠의 초기를 상징하는 자이언츠의 오랜 주포로서 활약했던 선수였으며, 빌 테리에게 재능이 밀려 존 맥그로 감독이 1925년에 2루수로 이동하게 되는 굴욕을 겪고, 2루수로서 큰 활약을 못 하자 다시 1926년에 1루 주전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노쇠한 켈리[2] 보다 빌 테리의 재능을 더 높게 보고 있던 존 맥그로는 켈리를 에드 라우시를 상대로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시킨다. 켈리는 이후 커리어가 수직 하락하는 부진을 겪은 끝에 1930년에 유니폼을 벗고 은퇴한다.

타격 천재에 밀린 비운의 1루수. 두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과 홈런왕, 타점왕을 두루 거쳤다.

통산 성적은 1622경기 5993타수 148홈런 1020타점 819득점 .297 .342 .452 OPS 794

3. 명예의 전당 헌액과 논란

1973년 베테랑 위원회의 추천으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다만 켈리가 명예의 전당 감인지는 논란이 있는데 바로 활약에 비해 누적 스탯과 WAR이 너무나도 낮기 때문.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으로 24.9 밖에 안되어 헌액자들 중 최하위권을 돌고 있다. 또한 3000안타는 커녕 2000안타도 치지 못했고 홈런도 라이브볼 시대 초창기임을 감안해도 150개도 안된다. 실제로 그와 가장 비슷한 성적을 가진 선수 10명 중 명전에 입성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2022년에 토니 올리바가 베테랑 위원회로 입성하게 되면서 그나마 비슷한 성적을 기록한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한 명은 있게 됐는데, 달리 생각하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뒤 50년 동안은 켈리와 비슷한 HoF 멤버가 없었다는 뜻.[3] 그리고 그의 포지션이 1루임을 감안하면 최소 2000안타-300홈런-50WAR 정도는 기록해야 베테랑 위원회로 들어가든지 한다. 만약 그의 포지션이 포수나 유격수였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1920~1929년까지 전성기 기간 동안의 괜찮은 성적 등을 이유로 헌액된 듯하다. 그가 당시 투표인단과 친한 관계였다는 소문이 있다.


[1] 1925년에는 2루수 출장이 더 많았다.[2] 이 당시 불과 서른살이였지만, 메이저리그의 선수풀 특성상 30대 중반이면 크게 활약하지 않는 이상 메이저리그 기회가 줄어든다. 그렉 매덕스도 40대에 들어서는 커리어가 하락해 42세이던 2008년 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택했고, 페드로 마르티네스 또한 38세였던 2009년 시즌이 끝나고 전격 은퇴한다. 괜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젊은 나이를 무기로 한 김하성에게 수천만 달러의 계약을 안긴 것이 아니다.[3] 하지만 토니 올리바는 명예의 전당에서 탈락한 이후로 꾸준하게 명예의 전당에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메이저리그 최악의 투고타저 기간인 196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WAR은 40을 넘겼으며, 시대 차이를 감안해도 켈리보다 성적은 훨씬 낫다. 무엇보다 켈리는 수비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1루수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