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가스파르 뷔로 Gaspard Bureau | |
출생 | 미상 | |
프랑스 왕국 | ||
사망 | 1469년 | |
프랑스 왕국 파리 | ||
아버지 | 시몽 뷔로 | |
어머니 | 엘린 | |
형제 | 장 뷔로 | |
배우자 | 과릭스 부렐, 리샤르 드 베링스 | |
자녀 | 잔, 마르그리트, 제라르 | |
직위 | 포병대장, 빌몽블 영주, 프랑스 포병대 그랜드마스터, 카스티용 후작, 샤토 드 보테, 루브르 궁, 푸아시의 수비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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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장군. 본래 부르주아 출신으로, 형 장 뷔로와 함께 포병대 혁신을 이뤄내 백년전쟁의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귀족의 반열에 올랐다.2. 생애
1390년경 프랑스 왕국 부르주아 계급의 상인인 시몽 뷔로와 엘린의 아들이다. 형제로 장 뷔로가 있었다. 1420년대에 파리 샤틀레 요새의 법률 위원을 맡은 장 뷔로와 함께 대포의 성능을 향상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수 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뷔로 형제는 좀더 빠른 속도로 포탄을 발사할 수 있으며, 현장에서 혼합할 필요가 없는 더욱 강력한 화약을 생성했으며, 청동 대포 주조 기술을 개량해 대포가 발사하는 와중에 깨질 가능성을 줄이면서 목표 지점으로 좀더 정확하게 쏠 수 있게 했다.1434년경 샤를 7세를 따르는 프랑스군의 압박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파리로의 물자 수송이 자주 끊기면서 굶주림이 일상이 되어버리자, 뷔로 형제는 대세가 샤를 7세 쪽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수도를 떠나 샤를 7세에게 투항했다. 그들은 좀더 강력하고 정확한 대포를 훨씬 빨리 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샤를 7세는 이에 마음이 동해 그들을 포병대 장교로 선임했다. 그는 재무청에 소속되어 회계 담당자로 일하면서도 형이 대포를 향상하는 연구를 하는 걸 지원했다. 1442년 포병대장이 되었으며, 1444년 12월 27일 프랑스 포병대 그랜드마스터였던 피에르 베소노가 경질된 뒤 그의 뒤를 이었다. 1449년 아르플뢰르, 1450년 바이외, 바욘 공방전에 참여했으며, 1453년 카스티용 전투에서 포병대 총사령관을 맡은 형의 부관으로서 아군의 승리에 기여했다
한편 1445년 3월 21일 브르타뉴 공작 프랑수아 1세로부터 빌몽블의 영주권을 9,000 리브르에 구입했으며, 1447년 왕실 편지 특허로 귀족 작위를 받았다. 1464년 카스티용 후작이 되었고, 루이 11세에 의해 기사에 선임되었다. 1463년에서 1465년 사이에 샤토 드 보테, 루브르 궁, 푸아시의 수비대장에 발탁되었다. 1469년 파리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3. 가족
- 과릭스 부렐
- 리샤르 드 베링스
- 잔 뷔로: 라 통베의 영주 장 드 마르키리옹의 부인.
- 마르그리트 뷔로: 기사 이브 드 카르나제와 초혼, 기사 샤를 드 부즈와 재혼.
- 제라르 뷔로: 브리쉬르마른의 영주 로베르 드 샤티용과 초혼, 기사 피에르 드 모와 재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