伽倻山山城
1. 개요
반파국(대가야)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국시대의 산성.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산 칠불봉 동남쪽의 용기계곡에 위치하고 있어 "용기성(龍起城)" 또는 줄여서 "가야산성(伽倻山城)"이라고도 부른다.2. 특징과 역사
반파국은 가야산 일대의 북쪽 산맥에 가야산 산성을 포함해 본관리 성터(옥산성), 운라산성, 노고산성, 예리산성 등을 지어서 국경을 지켰다. 어느 시대에 지어졌는지 구체적인 기록이 없으나 지리적, 역사적 이유 등으로 반파국의 성임이 유력하게 여겨지며 도성을 방어하는 요충지이자 왕의 이궁(離宮)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야산 산성이 위치한 성주군은 반파국이 아닌 벽진국(성산가야)의 터전이었지만 가야산 산성은 반파국이 신라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산성으로 여겨진다. 벽진국의 성으로 여겨지는 산성들은 성주읍의 성산성과 가천면의 독용산성이다.2000년 대구대학교 박물관이 가야산 산성에 대한 지표조사를 한 결과 성의 둘레 및 길이는 약 7,2km(7,156m)지만 대부분의 성벽은 무너지고 일부 성벽만 남아 있다.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당시 높이가 5척 되는 등 꽤 높은 성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이원익 체찰사, 장수 신열이 조정의 명으로 성을 새로 고쳐 쌓아 피난민이 된 백성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숙종 때 인근의 독용산성이 개축되면서 제 기능을 못하게 되기도 했었다.
가야산 산성은 2003년 5월 22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찾아가는 방법은 가야산을 등반하다 보면 곳곳에서 가야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백운리에서 출발해서 용기골 코스로 가면 서성재로 오르는 길에 있는 백운2교 부근이 가야산 산성의 남문터이다. 남문지는 그 규모나 위치로 볼 때 가야산 산성의 주 출입구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상술했듯이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무너져 있는 상태라 지나가더라도 성벽이 아닌 그냥 암석 지대로 착각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