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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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葛盧

생몰년 미상

1. 개요2. 활약상3. 그 외에

1. 개요

고구려 장수왕대의 장수. 동료 맹광과 함께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황제의 도성을 약탈하고 불사른 인물이다.

북연북위에게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맹광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북위군을 무찌른 후에 북연 황제 풍홍을 데리고 고구려로 돌아왔다.

다른 기록에는 그 이름이 '갈만로(葛蔓盧)' 또는 '갈거로(葛居盧)', '갈거(葛居)'라고 표기되어있다. 하지만 국내측 기록인 삼국사기에는 분명히 갈로라 되어있으므로 그것을 따르도록 한다.

2. 활약상

436년(장수왕 24), 북연북위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게 되었을 때 고구려에 지원병을 청하자 맹광과 함게 군사를 이끌고 북연으로 가서 추격해오던 북위군을 무찔렀다.

그 해 4월에 북위가 또다시 북연을 공격해 백랑성을 빼앗자 장수왕의 명을 받고 수 만의 군사를 이끌고가서 북연의 도성인 화룡성으로 들어가 북연 황제 풍홍을 만났다. 그러나 북연의 도성에 들어가자 마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성을 약탈했다.[1]

5월에는 더이상 북위의 맹공으로부터 북연을 회생시키기가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북연의 지배층과 자원을 완전히 흡수한 뒤 북위를 빠져 나갔다. 이때 성을 떠나면서 북연의 수도 화룡성을 불태워버렸다.[2] 북위군은 이를 뻔히 보면서도 감히 고구려군을 쫓지 못했다.

3. 그 외에

한편 삼국사기의 기록에 '갈로맹광(葛盧孟光)'이라는 이름으로 묘사되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 갈로와 맹광(孟光)이 서로 다른 인물이였던게 아니라 갈로맹광이라는 하나의 인물이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또한 갈로와 맹광이 별개의 인물이며 그저 함께 임무를 수행하러 갔을 것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보통 이쪽을 유력하게 본다.[3] 이러한 경우라면 갈로의 이름이 맹광보다 앞에 적혀있던 것으로 보아 맹광보다 높은 벼슬을 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갈로, 맹광과 함께 고구려로 피신하였던 북연 황제 풍홍은 고구려인들이 자신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깽판을 치다가 장수왕의 분노를 사서 그가 보낸 군대에 의해 피살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곽재식의 소설 역적전에서는 백제와 고구려 국경지역을 지키는 장수로 나온다. 원래 맹광과 함께 지키고 있었는데, 맹광은 다른 전투 때문에 차출되고 갈로만 끝까지 남는다. 맹광과 대비되는 신중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묘사되어 있다.

국산 RTS 게임인 천년의 신화에서는 고구려 측의 영웅 유닛으로 등장하는데, 본 게임의 시대 고증이 엉망인지라 왠지 유목민들이나 쓰고다닐 법한 털가죽 모자에 큰 도끼를 들고 다니는 등 해괴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게 고구려인이냐 바바리안이냐


[1]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창고를 털어서 군사들에게 좋은 갑옷을 입히고 성안의 좋은 것을 취했다고 표현하였지만 사실상 약탈한 것이나 다름 없다. 중국의 기록에는 한술 더 떠 성 안의 미녀는 모조리 고구려군이 끌고갔다고 기록되어 있다.[2] 일종의 청야전술이라는 설이 유력하다.[3] 당장 갈로의 갈(葛)은 제갈씨의 갈과 같고, 맹광의 맹(孟)은 맹씨의 맹과 같다. 즉 그냥 각각의 인명일 가능성이 높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