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강길영 姜吉泳 | |
출생 | 1930년 9월 22일 |
경상북도 상주군 | |
사망 | 1951년 9월 1일 |
강원도 철원군 | |
복무 | 대한민국 해병대 |
최종계급 | 해병 중위 |
복무 기간 | 1949~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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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길영(姜吉泳, 1930년 9월 22일 ~ 1951년 9월 1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2. 생애 및 군 경력
초기생애 및 해군 입대강길영은 1930년 9월 22일, 경상북도 상주군에서 출생하였다.
1949년 4월 15일,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여 군 경력을 시작하였다.
그는 소총병으로 복무하며 인천상륙작전과 수도 서울 탈환작전 등에 참전하여 수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이후 해병간부후보생 제3기로 선발되어 군사훈련을 받고 1951년 해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6.25 전쟁 참전
펀치볼 지역 및 924고지 전투 (1951년 9월 1일)
1951년 6.25 전쟁은 서울의 주인이 4차례 바뀌는 대규모 기동전이 끝나고, 50km 내외의 전선을 밀고 당기는 고지전으로 전개되었다.
이 중 펀치볼 지역(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일대)은 전술적 요충지로서, 국군과 중공군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인 격전지였다.
1951년 7월, 강길영 중위가 소속된 해병 제1연대는 미 해병 제1사단과 함께 강원도 홍천 부근에 배치되었으며, 이후 924고지-1026고지-1055고지를 차지한 북한군 최정예 제3군단 제1사단과 교전하였다.
924고지는 북한군이 ‘김일성고지’, 1026고지는 ‘모택동고지’로 명명하며 필사적으로 방어하던 전략적 거점이었다.
이를 확보하면 펀치볼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북한군의 본거지 내금강을 견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924고지 돌격 및 최후의 전투
1951년 9월 1일, 해병 제1연대 3대대는 924고지 공격 작전을 개시하였다.
제11중대는 우측 돌격부대, 제10중대는 좌측 돌격부대로 배치되었으며, 강길영 소위는 제11중대 선임장교로 최전방에서 진격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의 방어는 예상보다 견고하였으며, 치열한 포격과 집중사격으로 인해 진격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때 제11중대장 육동욱 중위가 적탄에 맞아 쓰러지자, 강길영 소위가 즉시 지휘권을 인수하여 선두에서 돌격을 이끌었다.
그는 "중대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김일성고지는 우리가 꼭 점령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부대를 독려하며 최전방에서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강길영 소위는 적의 집중사격을 받으며 전사하였다. 그의 용감한 희생으로 인해 다음 날 아침, 국군은 김일성고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강길영 중위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53년 3월 30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으며, 그를 해병 소위에서 해병 중위로 1계급 특진하였다.
또한 2014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11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충무무공훈장(1953년 3월 30일, 대한민국 정부)해병 중위 1계급 특진(1951년, 사후 추서)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1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