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8:49:35

강성봉

<colbgcolor=#0047a0> 출생 1873년 11월 29일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동
사망 1951년 7월 21일
경상북도 청도군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성봉은 1873년 11월 29일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5일, 김상구(金相久), 김종태(金鍾台), 손기현 등이 동포의 궐기를 촉구하는 20매의 격문을 작성해 운문면 방음동, 대천동, 오진동 일대에 배포했다가 3월 18일 운문주재소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때 격문 작성에 관여했다가 조사를 받고 귀가하던 김종태, 김진효(金鎭孝), 홍해성 등은 면사무소에 들러 면서기들에게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제작하도록 부탁한 뒤 이를 가지고 시위를 전개했다.

3월 19일 오후 6시경, 청도경찰서에서 일본 경찰 1명과 순사보 4명이 격문 배포에 관여한 김상구를 체포하기 위해 출동했지만 집에 없자 대신 그의 어머니를 체포했다. 이를 목격한 김의택(金義澤), 김병준(金秉濬)은 마을 사람들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 소식을 접한 강성봉은 분노해 3백명의 주민들과 함께 곤봉을 들고 순사들에게 달려가 곤봉 세례를 가해 쫓아냈다. 그러나 그는 곧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청도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51년 7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강성봉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