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강장룡(姜張龍) |
생몰 | ? ~ 1934년 10월 |
출생지 | 미상 |
사망지 | 성진형무소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강장룡은 신간회 성진지회와 성진청년동맹(城津靑年同盟)에서 활동하다가 두 단체가 해소된 후인 1931년 5월 성진농민조합(城津農民組合)을 결성했다. 성진농민조합은 소작료 인하투쟁, 채권문서 탈취 및 소각투쟁, 스파이 징벌 투쟁, 야학철폐 반대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성진농민조합에서는 조직을 관할하기 위해 1932년 1월에 농민조합본부임시통제위원회(農民組合本部臨時統制委員會)와 지도위원회(指導委員會)와 같은 기구를 설치·운영하였는데, 이 조합은 하부 조직으로 7개 면에 14개 지부와 45개 반(班)을 설치하면서 2천여 명의 조합원 규모의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서는 6, 7세의 어린아이들까지도 혁명가(革命歌)를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농조의 대중적 기반이 다져졌다.이에 일제는 무장 경찰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탄압하여 700명의 조합원을 체포했고, 이 가운데 150명이 검사국에 송환되었다. 이때 강장룡은 주동자로 지목되어 모진 고문을 받다가 1934년 10월 공판에 회부된 직후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강장룡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