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강희옥(姜希玉) |
생몰 | 1910년 ~ 1931년 11월 13일 |
출생지 | 함경남도 영흥군 순녕면 석북리 |
사망지 | 고원경찰서 유치장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강희옥은 1910년생이며 함경남도 영흥군 순녕면 석북리 출신이다. 그는 1928년 7월 함흥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함흥고보맹휴사건(咸興高普盟休事件)에 관련되어 퇴학 처분을 받고 서울로 상경하여 1929년 4월 서울의 중동학교 본과 4학년에 편입했다. 그해 7월 서울 가회동에서 부건(夫健), 권유근(權遺根) 등과 함께 조선공산청년회(朝鮮共産靑年會)에 소속된 비밀결사 가두반(街頭班)을 조직하였고, 10월 중순에 다시 회합하여 중동학교의 책임을 맡아 같은 학교의 김인배(金仁培)와 신용우(申用雨)를 가입시키는 등 동지를 규합하는데 주력했다. 9월과 10월엔 조선학생과학연구회(朝鮮學生科學硏究會)와 중앙청년동맹(中央靑年同盟)에 차례로 가입하여 활동했으며, 11월 중순 곽이형(郭二炯), 윤영순(尹暎淳) 등과 중동학교에서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한 지지여론 조성과 시위 촉발을 위해 동맹휴교 및 시위운동, 격문 살포를 협의했다.그러나 1929년 12월 종로경찰서에 체포된 그는 몇달간 취조를 받았고, 석방 후인 1931년 8월 함경남도 고원에서 고원농민조합(高原農民組合)의 중앙간부로 조성철(趙誠哲)과 조신녀(趙信女)를 권유하여 가입시키는 등 지역농민조합운동에 주력했다. 그러나 1931년 9월 24일에 고원경찰서에 체포되어 유치장에서 취조를 받아가 그해 11월 13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강희옥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