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씬을 향한 치열한 시선 가득한 랩퍼 JJK
'홍대 길거리 힙합', '거리 출신 랩퍼', '언더그라운드 힙합' 등의 수식어가 적지 않은 경우 민망하게 들리는 것은 작품과 행보 모두 설득력이 부족한 랩퍼에 의한 사용이 만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그 설득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을지 몰라도, 인물을 내세워 말한다면 어느 정도 수월한 답은 가능하다. 예를 들어 JJK(제이제이케이)가 이런 판단 상황에서 자유로운 인물 중 하나라는 것에 의문부호를 달 사람은 없을듯하다. 다소 뜨악할 정도로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며 홍대를 기반으로 하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시장의 치부와 멋을 동시에 담아낸 JJK의 데뷔작 [비공식적 기록]은 말 그대로 어린 랩퍼가 거칠 것 없이 기록한 씬(Scene)의 생경한 장면으로 듣는 이에게 묘한 쾌감을 전달했었다. 꾸준한 작품활동 후 7년 뒤 발표한 후속작 [비공식적 기록II]에서도 그 날것의 기운은 고스란히 이어졌는데, "종의 마지막"에서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위기를 말하다가도 그의 대표곡인 "360도"에서는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힙합의 멋을 긍정의 톤으로 전달하는 식이다. 정교하게 짜여있지만, 마구 뱉어내는 듯한 랩 스타일로 독특한 기운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실제 행보가 가사의 견고함을 더하고 있다는 사실은 JJK의 가치를 끄집어내는 데 중요한 두 축이다.
#JJK만의 방식으로 그려내는 사랑과 결혼, 그리고 아들 "고결"
이런 그가 자신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아내의 임신과 출산까지의 과정을 테마로 한 [고결한 충돌]을 발표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의문부호가 앞선 것은 당연했다. 이미 결혼을 앞둔 상황을 전작의 "Work To Do"를 통해 그려냈지만, 무게 중심은 여전히 힙합 음악가에 확 쏠려있었고, 치열하게 씬을 향한 시선을 담아낸 곡에서 유독 큰 쾌감을 선사하던 그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많은 랩퍼가 일상적 주제를 다루면 강박적으로 대중적 접점을 향해 가사와 프로덕션 모두 수준 이하로 떨어트리는 과오를 범하고 있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JJK는 [고결한 충돌]을 통해 이런 우려를 민망하게 만드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은 물론, 이제껏 한국 힙합이 보여주지 못한 가사적 성취를 보여준다. 방법은 사실 아주 간단해 보인다. JJK는 씬이나 랩퍼 자신이 아닌 가족에게 무게중심을 완전히 돌린 [고결한 충돌]을 만들며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 가사의 견고함과 특유의 랩 스타일 그리고 프로덕션까지 별다른 변화나 훼손을 꾀하지 않았을 뿐이다.
JJK는 언제나 주제 안에서 직접 겪은 치열함을 내세웠고, 이는 마치 '내가 겪은 건데 볼 것도 없다'고 말하는 듯한 현장감을 연출하는 데 제격이었다. [고결한 충돌]에서 이런 접근법을 유지한 것은 굉장히 효과적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연인을 그려 낸 "Let Us Love"에서의 [스드메는 한 5, 6백. 드레스는 입어볼 때마다 3만원 떼. 하객 2백만 와도 8백. 축의금이 다 메꾼다니 다행], 임신을 확인한 기쁨을 담은 "결"에서의 [엄마가 품은 우주 안의 1.4센치의 흰 별. / 164BPM의 열띤 연주에 네 할머니는 춤을 췄지]' 같은 가사는 그가 힙합 씬을 그려낼 때 듣는 이에 따라 느꼈을 공감 또는 생경함이 주는 감흥을 완전히 다른 주제에서 그대로 재현해낸다. 순간적 속도감을 곁들여 박자를 타는 잘 짜인 라임이 더해진 즉흥적 기운의 퍼포먼스는 랩 자체를 듣는 재미를 충분히 주고, 뛰어난 전달력은 가사의 세심함을 돋보이게 한다. 결국 JJK의 경력 중 가장 안정적이면서 감각적인 랩을 [고결한 충돌]에서 만난다는 것은 기대치 못한 경험이다. 여기에 둔탁한 듯 몽환적으로 퍼지는 드럼 사이로 건반이 주도하는 멜로디가 서정적 분위기를 부여하는 비트 프로덕션에서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코드 쿤스트(Code Kunst)를 비롯한 신인 프로듀서 진의 안정적인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JJK의 가사에 효과적으로 여운을 부여하는 비트와 보컬의 유연한 연결은 급작스런 보컬의 등장으로 신파감성을 노리는 흔한 랩-송과 수준을 달리하기도 한다.
#한국 힙합의 독특하고 특별한 앨범 [고결한 충돌]
JJK는 주제의 온도 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식하지 않는 창작 방식으로 [고결한 충돌]을 자신의 경력 뒤에 어색하지 않게 배치했다. 하지만 본 작에 고유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이런 작가적 시선을 고집한 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고결한 충돌]만의 특별함을 부여하는 것은 JJK가 경력 중 처음으로 곡 간의 연결을 통해 만들어 낸 서사의 힘이다. 많은 양의 가사를 담아낼 수 있는 랩으로 곡마다 세밀한 표현을 담아 그려 낸 장면 장면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상적 이야기의 흐름에 실려 두꺼운 감정선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한 음악인이 결혼하고 아기의 탄생을 보며 성장하는 것을 목격하는 경험을 넘는 감상의 여백을 부여한다. 긍정적 에너지 가득한 "충돌완화"로 마무리되는 [고결한 충돌]의 감상이 아이러니하게도 뚜렷한 균형의 '명과 암'으로 다가오는 것은 JJK가 펼쳐 낸 또렷한 장면과 이를 파고드는 감정선 때문이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통과의례를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젊은이들이 대다수인 시대, 앨범의 마지막 JJK가 읊조리는 "난 행복해"가 그 자체로 정말 행복하게 들리기도 하고, 또는 현실 속에서 행복을 손에 쥐기 위해 이를 꽉 문 이의 다짐처럼 씁쓸하게 들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어쨌든 어떤 식의 감상을 경험하던지 강한 울림을 주는 음악인 것은 분명하며, 과감한 테마 선정과 이를 풀어낸 방식의 성취를 통해 [고결한 충돌]은 한국 힙합에서 굉장히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데 성공했다. (글: 남성훈 / Rhythm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