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8:57:22

고영건

파일:김해시로고6.png
김해시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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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운동계열 생몰년도 훈격
강원석 의열단 ? ~ ?
고영건 3.1운동 1887 ~ 1941 애족장
김두갑 일본방면 1922 ~ 1944 애족장
김만수 3.1운동 ? ~ ?
김석암 3.1운동 1891 ~ 1959 대통령표창
김선오 3.1운동 1865 ~ 1919 애국장
김성득 일본방면 1923 ~ 1983 애족장
김승래 3.1운동 ? ~ ?
김승태 3.1운동 1878 ~ 1940 애족장
김양산 3.1운동 ? ~ ?
김원수 3.1운동 ? ~ ?
김용이 3.1운동 1891 ~ 1919 애국장
김용주 3.1운동 ? ~ ?
김정태 3.1운동 1890 ~ 1958 애족장
김종훤 3.1운동 1893 ~ 1948 애족장
김헌규 의병 ? ~ 1916 애족장
노백용 국내항일 1885 ~ 1961 건국포장
노상익 만주방면 1849 ~ 1941 대통령표창
노상직 파리서명 1855 ~ 1931 건국포장
노석호 국내비밀
결사조직
1916 ~ 1944 애족장
류진옥 파리서명 1871 ~ 1928 건국포장
문위동 국내항일 1903 ~ 1976 애족장
반양환 광복군 1924 ~ ?
박도백 3.1운동 1892 ~ 1939 애족장
박재홍 국내항일 1903 ~ 1979 애족장
박정수 광복군 ? ~ ? 애족장
배덕수 국내항일 1895 ~ 1970 대통령표창
배동석 3.1운동 1889 ~ 1924 애족장
배종철 국내항일 1895 ~ ? 대통령표창
배치문 1890 ~ 1942 애국장
서석재 3.1운동 ? ~ ?
서진령 3.1운동 1899 ~ 1971 대통령표창
손명조 3.1운동 1884 ~ 1919 애국장
송기송 대한통의부
송상진 1887 ~ 1967 대통령표창
송세탁 3.1운동 1884 ~ 1939 대통령표창
신수명 일본방면 1924 ~ 2007 대통령표창
안무술 3.1운동 ? ~ ?
안효구 3.1운동
안효진 3.1운동 1874 ~ 1946 건국포장
이강석 3.1운동 1879 ~ 1923 애족장
이윤재 조선어학회 1888 ~ 1943 독립장
이윤희 노동운동
이진석 3.1운동 1896 ~ 1970 애족장
이차수 3.1운동 ? ~ ?
임학찬 국내항일 1890 ~ 1952 건국포장
조영우 3.1운동 1887 ~ 1923 애족장
조정환 대한독립단 1875 ~ 1926 애족장
전용헌 국내항일 1890 ~ 1934 건국포장
정적윤 3.1운동 ? ~ ?
조동출 3.1운동 ? ~ ?
조용명 3.1운동 ? ~ ?
조항래 3.1운동 1884 ~ 1949 애족장
최여봉 국내항일 1899 ~ 1970 애족장
최현호 3.1운동 1890 ~ 1974 애족장
한임길 의병.미상 ? ~ ? 애국장
허 발 자금지원 1874 ~ 1931
허웅 언어학자, 한글학자 1918 ~ 2004
허윤송 광복군 1919 ~ 1985 애족장
허 평 파리서명 1882 ~ 1968
황찬숙 국내항일 1905 ~ 1970 애족장
김해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들과
김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을 포함함.
파일:건국훈장애족장약장.jpg 파일:건국훈장애국장약장.jpg 파일:건국훈장독립장약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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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고영건(高永建)
이명 고광수(高光洙)
생몰 1897년 12월 12일 ~ 1941년 8월 21일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평강리
(현재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
사망지 중국 둥베이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고영건은 1897년 12월 12일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평강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동래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던 1919년 3월 3.1 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이 동래에 전해졌다. 이어서 3월 7일에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와 부산상업학교 학생 대표가 동래고등보통학교에 와서 만세 시위를 협의했다. 고영건은 엄진영·김귀룡 등과 만나 독립 선언서를 전해 받고 동래 지역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중 3월 10일 동래고등보통학교 선배이며 경성고등공업학교에 다니던 곽상훈(郭尙勳)이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곽상훈은 수학 교사 이환(李環)과 만나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하여 상의하고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만세 시위의 배후에서 참모 역할을 담당했다.

고영건 등은 협의를 거쳐 동래 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를 거사일로 정했다. 고영건은 3월 11일부터 13일까지 자신의 하숙집에서 학교 등사판을 가지고 와서 500매의 독립 선언서와 대형 독립기, 수백 매의 태극기를 제작하고 고종의 독살을 폭로하는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는 격문도 준비했다. 이후 3월 13일 오후 2시, 엄진영이 군청 앞 망미루(望美樓)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를 신호로 고영건은 학생들과 같이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고 주위의 장꾼들도 호응하여 장터는 독립의 의기로 가득 찼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50여 명의 수비대와 기마경찰들이 출동하여 군중과 학생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고영건도 체포되어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본 도쿄로 유학해 메이지대학 학부를 졸업했으며, 중국 둥베이로 망명하여 민족 해방 운동에 자금을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다 1941년 8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1983년 고영건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