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고진홍(高鎭洪) |
이명 | 고진태(高鎭泰, 高軫泰) |
생몰 | 1896년 9월 17일 ~ ? |
출생지 | 함경북도 부령군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고진홍은 1896년 9월 17일 함경북도 부령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간도로 망명했고 1920년경 중국 화룡현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담해 제1남지방부 송언지회 통신원 및 경호원을 맡았다. 1920년 음력 8월 1일 밤, 고진홍은 함경북도 회령군 팔을면에 거주하는 김병린(金炳燐)의 집에서 동민(洞民) 김병철(金炳喆) 외 18명에게 군자금을 모집하는 계약서를 받았다. 같은 달 2일 밤에도 동면(同面) 윤재기(尹在岐)의 집에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얼마 후 헌병대에게 체포된 그는 1921년 12월 9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 등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922년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와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6년 11월 21일 청진형무소에서 가출옥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고진홍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