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473B4E> 공민왕 恭愍王 | |
본명 | 왕기(王祺) → 왕전(王顓) |
출생 | ? |
가족 | 부모님 충숙왕, 명덕태후 형 충혜왕 숙부 덕흥군 배우자 노국공주 |
대인관계 | 최영 (신하) |
배우 | 류덕환 |
직위 | 강릉대군 > 고려의 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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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신의》의 등장인물.2. 소개
열두 살 나이에 원나라로 볼모가 되어 끌려갔고 친형이, 조카가 고려왕의 자리에 올랐다가 힘없이 쫓겨나는 것을 보았다. 울분이 쌓였다. 무공은 커녕 말 타는 법조차 배우지 않았다. 나라가 힘이 없는데 싸우는 법을 배운들 무엇 할 것인가. 원이라는 나라에서는 원나라 여자로 부인까지 정해주더니 어느 날 갑자기 고려의 왕을 시켜주었다. 반항심에 부인이 된 그 여자는 미워하기로 했는데 이 왕이라는 자리는 반항할 대상이 아니다. 어쩌지? |
3. 작중 행적
노국공주와의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와중에 고려 출신으로 보이는 한 여인 앞에서 직접 울분을 토해내기도 하는데, 얼굴을 가린 노국공주였다. 고려 여인이라고 착각하고 청혼했다.
원나라에서 책봉을 받아 노국공주와 함께 고려로 오게 된다. 현재 고려는 기황후를 배경으로 한 기씨 일가와 권문세족 등이 정권을 장악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
열의와 자질은 있지만, 오랜 볼모 생활로 아직까지 국내에 제대로 된 기반이 없고, 정치경험도 부족하여 아직까지는 신료의 말에 잘 휘둘린다. 신료들이 왕을 믿는지 안 믿는지 여부를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어린 왕으로 묘사된다.
4회에서 은수의 미래 스포일러에 자신감도 좀 붙은 것 같다. 일단 자신의 시호에 원의 내정간섭의 증거인 '충(忠)'이 붙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기꺼이 자신의 편이 되어줄 줄 알았던 최영[1]과 유은수가 떠나가자, 안그래도 좁은 입지와 기철의 세력때문에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원의 속국이라는 외부적 상황과 뜻대로 풀리지 않는 고려 조정의 내부적 상황 때문에, 열등감과 분노에 사로잡혀서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거나 오해하기도.
7회에서는 부부싸움 중에도 위기 상황이 닥치면, 본능적으로 부인을 먼저 보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영이 폐위된 충정왕을 옹립하려 했다는 기철의 말에 흔들려, 어명을 어기고 최영을 만나러 갔던 주석에게, 내통했으니 죽음으로 죄를 갚으라고 한다. 그러나 최영이 전하라 한 말을 듣고나서, 그가 선왕이 아닌 자신의 명을 따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는 친국을 빙자한 독대로 자신의 진심을 전했고, 드디어 최영의 마음을 얻게 된다.
9회에서는 드디어 노국공주의 진심을 알게 된 듯하고, 10회에서는 장빈과 유은수까지 보는 앞에서 살짝 웃어주기까지 하신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 그러나 거기서 은수가 또 다시 스포일러[2]를 시전했고, 기철도 개혁정치에 제대로 반기를 들기 시작하며 주춤하게 된다.
게다가 은수가 기철에게 언제 누구에게 죽는 지조차 말해버리는 대형 사고를 치는 바람에 결국, 본래 역사라면 1356년 기철이 죽임을 당하자 열받은 기황후가 1364년 고려왕으로 세우려 했던 덕흥군이, 1352년에 등장해버리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1, 12회에 노국공주와의 사이가 많이 진전되었다는 것.
12화에서 유은수에게 조선에 대해서 물어본다. 하지만 유은수가 조선을 동남아 어디 있는 나라라고 뺑끼를 치는 기지를 보여주고 중간에 최영과 유은수가 말다툼을 하면서 흐지부지 넘어갔다.[3]
13회부터 드디어 노국공주에게 절절하게 고백을 하며, 본격 로맨스를 펼치고 있다. 사실, 공민왕은 3년 전 만났던 그 고려 여인이 사실 노국공주였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고, 그 때부터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회상 장면[4]에서는 정말로 첫눈에 반해서 청혼하신 걸 그대로 인증하셨는데, 3회 때 나왔던, 공주가 분노한 당시 강릉대군을 잡아준 장면 다음에 '어느 가문의 여식(딸)이어도 상관없다'면서 바로 프로포즈 한 듯하다. 그녀가 원나라 공주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에 따른 배신감이나, 자기가 한 맹세[5]때문에라도 공주에게 더 차갑게 대했지만, 그녀가 했던 가리개를 지금껏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볼 때, 이미 좋아하고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18화에서 마침내 환궁을 했지만 이런저런 문제들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 19화에서 노국공주가 하루에 하나씩 문제가 생긴다고 은근히 디스를 했다. 바로 뒤이어 노국공주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점차 강인한 모습을 보이며 필요하다면 원과 전쟁이라도 할 것을 선포한다.
20화에서 노국공주가 납치당하자 멘붕해서 덕흥군에게 왕위까지 내걸고 거래를 제의하지만 거절당해서 정신줄 놓기 직전까지 갔다가 최영에 의해 겨우 마음을 다 잡는다.[6] 그 후 원나라 사신에게 원나라 옥새를 돌려주며 강단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원나라 사신에게 의선에 대해서 변명을 하늘나라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해 옆에서 듣던 기철을 빡치게 만들었다. 그 후 유산한 노국공주를 껴안으며 위로한다.
24화 마지막에서 우달치 부대원들의 언급에 의하면 영토확장에 많이 힘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은수가 원나라의 영토인줄 알고 어찌 고려사람이 여기 있냐고 묻자, 왕께서 복속하신지 꽤 되었다고 답한다.[7]
4. 실제 역사에서
자세한 내용은 공민왕 문서 참고하십시오.드라마에서는 유약하고 예술적 성향이 강했던 모습으로 나오는데, 사실 이게 공민왕의 실제 성격이었다고 한다.[8]
[1] 형인 충혜왕이 최영의 스승이었던 적월대 대장 문치우를 죽였고, 연인이자 적월대의 여부장이었던 매희를 욕보였고 매희는 결국 자살했다. 당시 최영은 죽어가던 문치우와 약조를 통해 남은 적월대 대원들을 지키기 위해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후 억지로 궁에 남지만 자신의 마지막 임무는 공민왕이 원에서 고려에 오는 길을 호위하는 것이라고 여겨서 사임을 요청한다. 이걸 듣고 당황스러워한다.[2] 이성계와 이씨조선에 대해 살짝 듣는다.[3] 물론 실제로 고조선이 있었고 고려 사람들이 이를 몰랐을리 없기 때문에 공민왕이 속았을 가능성은 낮다.[4] 3회에서 나왔던 회상과 연결된 나머지 장면들이다.[5] 원나라 여인 따위는 마음에 품지 않겠다.[6] 상심한 모습이 마치 노국공주 사후 상황의 오마주같다. 최영이 반드시 왕비를 살려서 데려오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는 게 가능했던 것 같다.[7] 은수가 돌아온 시점은 노국 공주 사망 전으로 보이기에 폐인이 된 공민왕은 나오지 않는데, 사실 은수로 인해 역사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높다.[8] 업적을 보면 반대인 것 같지만, 사실이다. 홍건적의 침입 때 노국공주에게 말타기를 배웠다. 사실 공민왕의 개혁적 성향은 노국공주의 정신적 지원에 힘입은 바가 컸다. 공주의 죽음 이후 완전히 망가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