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기록이 아닌 금석문 기록에서 나오는 여성으로 그녀의 묘비인 《관씨부인묘비(菅氏夫人墓碑)》즉《서군부인관씨지묘비(徐君夫人菅氏之墓碑)》가 1930년 하남성 낙양시에서 출토되었다.
유주 대군 사람으로 효성이 독실한 집안 출신이고 251년에 서(徐)씨와 결혼했으며, 그의 남편인 서씨의 관직은 대조, 중랑장 등을 지냈다고 되어있으나, 서씨 성을 가진 해당 관직을 가진 사람이 확인되지 않아 그녀의 남편의 이름은 알 수 없다.
부녀자로써 충실하게 집안일을 해서 가정을 보필했으며, 별다른 과실을 저지르지 않고 시댁이나 친정 쪽에서도 평판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290년 5월 27일에 관낙이 사망하자 사위인 숭이 묘비를 세우고 그 행적을 기록한 것이며, 이는 사위가 장모님을 위해 묘지를 조성한 매우 드문 사례 중 하나다.
사망했을 때 291년 2월 19일에 낙양의 서남쪽에 합장했다는 것으로 보아 남편보다 늦게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