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00:32:10

광주출정가

1. 개요2. 가사

1. 개요

5.18 민주화운동 이후 만들어진 [1] 5.18 관련 민중가요. 민중시인 고규태씨가 작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시 학생운동가 출신인 최은기가 작사하였고, 범능 스님(예명 정세현, 본명 문성인)이 작곡하였다. 지금도 5.18 관련 행사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오월의 노래 다음으로 흔히 불린다.[2]

원래 이 노래의 제목은 광주출전가이다. 고규태씨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정세현씨는 85년 광주민중문화운동협의회 홍보국장이던 고규태 시인과 함께 음반 <광주여 오월이여>를 제작했다. 5·18 민중항쟁 모든 과정을 노래와 다큐멘터리 낭송 등으로 엮었다. 여기에 실린 정세현씨의 곡 ‘광주출전가’는 80년대 대학가와 거리시위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 가운데 하나였다. 고규태 시인은 “정세현·박영정·박선정·임종수 등과 모여서 광주의 진상을 오디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자고 결의했다. 제목이 ‘광주출정가’로 잘못 알려졌다. 정벌하러 간다는 출정은 제국주의적이지만, 출전은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는 의미”라고 회고했다.[3]

한편,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에 따르면, 이 노래의 원 제목은 '승리의 노래'였고, 음반에 녹음할 당시에 원곡의 “나가 나가 출전가 함성”을 “나가 나가 도청을 향해”로 바꾸었다고 한다.[4]

2. 가사

수록된 판본에 따라 가사가 상이한 경우가 많으며, "출전! 출전! 광주출전!"이라는 선동구를 먼저 외치고 부르기도 한다.


광주여! 오월이여! 수록곡(1985)
나레이션
3시 10분경 다량의 무기를 획득한 무장 청년 시위대 각지로부터 속속 광주로 들어옴. 공수부대와 총격전.
오후 8시 계엄군 공수부대 완전 철수. 시민군 마침내 전라남도청 장악.
시민군 무기는 카빈소총 2,240정, M1소총 1,275정, 38구경 권총 12정, 45구경 권총 16정, 기관총 2정, M16 등 총기류 3,505정, 실탄 46,400발, TNT 4박스, 뇌관 100개 등.
1절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려웁냐 출전하여라 영원한 민주화 행진을 위해
나가 나가 도청을 향해 출전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2절
투쟁의 깃발을 높이 올려라 혁명의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려웁냐 출전하여라 억눌린 민중의 해방을 위해
나가 나가 목숨을 걸고 출전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광주민중문화운동협의회 노래패 '친구' 앨범 수록곡
아아 5월의 광주여 혁명의 광주여 / 투쟁으로 굳게 뭉친 청춘의 도시여
투쟁속에 꽃이 피고 투쟁속에 새날이 온다 / 투쟁 투쟁 투쟁 혁명의 광주여
5월 혁명의 그 열기로 우리들 가슴에 살아 / 아 불타는 저 투쟁의 깃발이여 우리 가슴에 타오르네
너는 비록 원수에게 무참히 쓰러져 가도 / 아 뜨거운 저 혁명의 불로살아 우리 가슴에 타오른다
1절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려웁냐 출전하여라 억눌린 민중의 해방을 위해
나가 나가 도청을 향해 출전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2절
투쟁의 깃발이 높이 솟았다 혁명의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려웁냐 출전하여라 조국의 민주화 통일을 위해
나가 나가 목숨을 걸고 출전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아아 5월의 광주여 혁명의 광주여 / 투쟁으로 굳게 뭉친 청춘의 도시여
너의 이름 영원히 영원히 빛나리


오월(5·18 정신계승 기념 음반 1) 수록곡(2016.1.)
1절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려우랴 출전하여라 억눌린 민중의 해방을 위해
나가 나가 도청을 향해 출전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2절
투쟁의 깃발이 높이 솟았다 혁명의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려우랴 출전하여라 영원한 민주화 통일을 위해
나가 나가 목숨을 걸고 출전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이외에도 '두려웁냐'를 '두려우랴'로 바꿔 부르거나 '민중'을 '민족'으로 바꿔 부르는 등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


[1] 임을 위한 행진곡, 오월의 노래 등 5.18을 상징하는 노래들도 대개 그 이후에 불린 노래이다.[2] 실제 당시에는 해방후 여러 풍파 끝에 인터내셔널가같은 전통 민중가요들은 국내에서 전멸하였고, 제대로 된 민중가요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당시 광주에서는 애국가당연히 대한민국 애국가 아니면 훌라송탈모 심하신 그분 타도 개사곡만 주구장창 불렀고, 심지어 군가진짜 사나이, 전우여 잘자라 까지 불렀다. 대중적으로 따라부르기 쉬운 곡이다보니(...). 부르다 부르다 부를 곡이 없는 나머지 '우리의 소원은 통일'같은 노래까지 불렀다...[3]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592947.html[4] http://edu.518.org/download.es?filename=518%EA%B3%BC_%EC%9D%8C%EC%95%85_%EA%B5%90%EC%95%88%5B1%5D.hwp&f_path=board&bid=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