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국립유리제조소(國立琉璃製造所)는 대한민국의 근대사에서 본격적인 유리(琉璃,glass) 제조가 가능한 유리공업의 시작점이다. 1902년 이용익(李容翊)이 건립한것으로 알려진 국립유리제조소는 러시아 기술자의 협력으로 건설된 병유리 생산시설을 갖춘 공장으로 알려져있다. 1904년 러일전쟁으로 폐쇄된 것으로 알려져있다.[1] 이후에도 일제강점기 가동된 초자제조소들 , 1948년의 동양유리공업주식회사 그리고 6.25동란이후 국제기구 UNKRA(유엔한국재건기구) 원조에 의해 1956년 가동에 들어간 인천유리공장 등이 현재로서는 면면히 이어지는 한국 유리산업과 유리공업의 흐름에서 국립유리제조소(國立琉璃製造所)가 이들의 시발점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볼수있겠다.[2][3][4][5]이와는 별개로 한반도에는 기원전후에 이미 백제, 신라시대에도 유리제조기술로 가마터에 생산이 이루어졌었다고 알려져있다.
2. 유리 세공술
유리 세공술은 근대 문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계식 시계의 제작기술 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기술적으로는 유리를 제조하는 기술이 기원전부터 확립된것으로 알려져있고 16C를 전후해 중세시대에 이미 결과적으로는 유리세공술로 인해서 망원경, 안경, 돋보기 같은 확대경 그리고 거울, (볼록)렌즈, 초자 기구 등을 통해 보다 1665년의 로버트 훅의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6]나 1673년경의 레벤후크(Leeuwenhoek)의 현미경과 같은 정밀한 기계나 화학물질, 광학적 현상, 온도계 등을 다룰수있는 길을 제공했다고 인정받고 있다. 돋보기의 광학적 정밀성의 발달은 기술집약적인 소형 회중시계와 같은 기계식 시계의 기술 발전도 이끌수 있게 해주었다.3. 관련 문서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리(琉璃)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1384[2] \[매일일보\] 한국 최초 판유리 공장의 출발지 인천, 국가기간산업의 근원지http://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331397[3] (국립부여박물관 대표유물)유리 대롱옥(琉璃製管玉) https://buyeo.museum.go.kr/relic/relicView.do?menu_nix=GPSO029A&rel_idx=RLIDX00006[4] \[백제군사박물관\]고고학으로 보는 백제사-부여 합송리 유적 https://www.nonsan.go.kr/museum/html/sub02/02080101.html?mode=V&no=486f70f473a4e8c5f70e7662180574cc[5] \[인천일보\]신라시대 고분서 유리잔·주발 등 출토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69767[6] Project Gutenberg books, Micrographia by Robert Hooke 1665 https://www.gutenberg.org/ebooks/15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