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 대한 내용은 권기일(정치인)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초명 | 권인술(權麟述) |
자 / 호 | 공서(公瑞) / 추산(秋山) |
본관 | 안동 권씨[1] |
출생 | 1886년 10월 5일 |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남후면 검암동 (현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 | |
사망 | 1920년 7월 3일[2] |
중화민국 봉천성 통화현 합니하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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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권기일은 1886년 10월 5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남후면 검암동(현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에서 천석꾼인 아버지 권수도(權洙道, 1870 ~ 1902. 2. 5)와 어머니 의성 김씨(? ~ ?. 5. 26)[3] 사이의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912년 3월경 종중재산을 처분, 조부 권헌봉(權憲鳳, 1853 ~ 1914. 11. 17)[4]과 조모 달성 서씨(? ~ ?. 12. 19)[5]를 고향에 남겨둔 채 가족을 이끌고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며, 봉천성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6]에 정착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천가장(千家長)으로 활약하는 한편, 이시영·김좌진 등과 접촉하여 독립군 양성을 목적으로 중학교를 설립, 학도감(學徒監)·경리·재무 등을 겸임하였다. 1917년 정치외교위원으로 활약 중 체포되었으나 탈출하여 이상룡·여준 등이 설립한 교육회에 참여하여 위원 및 경리·재무 등을 맡았으며, 그 밖에 한족회 통화현 합니하 구정(區正) 등으로 활약하다가 1920년 7월 3일 한족회 흥경(興京)[7]지방 총관(總管) 함병현과 함께 신흥무관학교 부근 수수밭에서 일본 제국 경찰에 사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권기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이어 1977년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001년 6월 25일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 마을 입구 어귀에 '권기일 선생 기념비'가 세워졌다.#
[1] 부정공파 태시(泰時)계 36세 기(奇) 혁(赫) 경(景) 영(英) 항렬. 족보명은 권혁린(權赫麟).[2] 안동 권씨 대동세보에는 기일이 7월 2일로 기재되어 있으며, 조선민족운동연감에는 10월 5일 별세했다고 기재되어 있다.[3] 김시락(金時洛)의 딸이다.[4] 초명 권태석(權台錫). 1883년(고종 20) 충익위(忠翊衛), 1885년 정서 충의위(正書 忠義衛)를 거쳐 1886년 사근도 찰방(沙斤道察訪, 종6품)에 제수되었다.[5] 서노순(徐輅淳)의 딸이다.[6] 현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시 퉁화현(通化縣) 광화진(光華鎭) 광화촌(光華村) 제7촌민소조(第七村民小組).[7]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푸순시 신빈만주족자치현(新賓滿族自治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