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9 01:31:29

권매



1. 개요2. 배경3. 구체적 사례
3.1. 퇴도지매매(退賭地買賣)3.2. 기한부매매(期限附買賣)
4. 규제5. 소멸

1. 개요

權買

이미 거래관계를 형성한 매매를 무르는 것을 말한다. 권매제도는 관습법적으로 인정되었고 또 대차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현대 민법상 매매의 취소와는 그 법적 성질이 다르다.

엄밀히 말하자면 해제조건부 매매계약이라고 할 것이다.

2. 배경

조선조 원래 토지나 가옥의 매매는 영구적 매매, 즉 매도인의 소유권이 매매로 인하여 매수인에게 영구히 무조건 이전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토지를 팔게 된 원인은(특히 영세 지주들의 부득이한 경우) 부모 장사(葬事) 비용의 마련이나 부채의 변제, 그 밖의 토지를 팔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따라서 부득이한 이유로 토지를 팔았더라도 그 토지에 대한 강렬한 애착심은 가시지 않아, 다시 수단을 써서 대가를 마련해 도로 물리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고 특히 그 토지가 조상대대로 이어온 것이거나 제위토(祭位土)인 경우에는 더욱 강하였다.

때문에 자금이 생기거나 매도인이 후회한 경우 곧 매매를 취소하고 물리려고 하여 이러한 것의 소송이 빈번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산송 참조.

이 때 매도인이 다시 판 값을 치르고 물리는 행위를 '환퇴(換退)'라고 부르는데 조선시대 건국 초부터 환퇴의 경우가 너무 잦아 법적 안정성 담보를 위해 환퇴기한을 토지나 가옥에 대해 10일로 한정하였다. 경국대전에서는 15일로 정하였는데 사실 환퇴기한은 매수인 입장에서는 굉장한 위험 부담[1]을 갖는 제도였다.

따라서 매도인과 매수인 간의 계약상 만족을 구하기 위해 매매의 형태가 구별됐는데 당사자간에 '아예 팔아버린다(放賣)'는 '방매'라고 하여 매매문기[2]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는 표기를 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매매문기는 관청에 신고하도록 하여 담보문언으로 소송에서 작용하였다.

'권매'는 영영방매가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만 매도하는 제도이다.

3. 구체적 사례

3.1. 퇴도지매매(退賭地買賣)

권매제도는 퇴도지매매로 성행하게 됐는데 도지, 즉 경작권만을 환퇴할 조건으로 토지를 매도하는 경우를 말한다.토지 자체의 매매가 아니기 때문에 매매가도 지가보다 헐하며 대개 기한을 정하거나 무기한으로 하고, 기한을 정한 경우에 기한이 되어도 환퇴하지 못하면 환퇴를 하지 않고 영영방매한다는 특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다만 어디까지나 경작권의 매매이기 때문에, 매매문기를 매수인에게 인도하지 않으며 매수인은 처음부터 자기가 직접 경작하건 소작을 주건 자유이며, 영매특약을 한 경우에는 기한 내 환퇴하지 못하면 영구히 매수인 소유지가 되었다.

이 퇴도지매매는 매도인이 경작권만을 매도하기 떄문에 소유권 자체는 자기에게 있으며 따라서 자기 토지에의 애착심과 소유욕을 만족시켜 주지만, 일단 기한 안에 환퇴하지 못하면 소유권 마저도 넘어가기 떄문에 결과적으로 불리한 것이다.

3.2. 기한부매매(期限附買賣)

오늘날 지상권과 비슷한 개념이나 지상권 외 토지 그 자체의 매도목적으로 매도인은 매매문기도 매수인에게 인도하였다.

4. 규제

현종 15년(1674년) 퇴도지매매를 매도인의 폭리적 행위로 규정하여 환퇴기한을 10년의 법정기한으로 정하고 10년 안에 환퇴할 경우 반값으로 환퇴하고, 10년이 지나면 값을 치르지 않고 환퇴할 수 있게 하였다. 속대전에는 덧붙여 4년 이후면 반값으로, 그리고 1~2년 안에 본값으로 환퇴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5. 소멸

권매는 급전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는 쪽의 약점을 이용한 관습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매수인 입장에서는 퇴도지의 경우보다 조금 더 값을 지불하면 매도인으로부터 경작권, 기타 토지에 대한 점유권을 함께 취득할 수 있으며 매도인이 미처 대가를 마련하지 못해 환퇴하지 못하면 영구히 자기 소유로 할 수 있었다.

권매는 19세기 중엽부터는 차차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 대신 전당(典當)이 보편화되었다.
[1] 환퇴기한 동안 매매로 이전된 소유권을 취득한 것이나 언제든 해약될 수 있다는 불안정한 법적 지위에 놓이게 되므로[2] 토지매매계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