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합천군 출신 독립운동가, 권영규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초명 | 권영우(權永佑) |
족보명 | 권재규(權載圭) |
자 | 영규(永圭) |
이명 | 권상주(權喪主)[1] |
출생 | 1865년 9월 18일 |
경상도 삼가현 둔내면 둔내리 (현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두심마을) | |
사망 | 1919년 3월 24일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 |
묘소 |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두심마을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권영규는 1865년 9월 18일 경상도 삼가현 둔내면 둔내리(현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두심마을)에서 아버지 권석원(權錫元)과 어머니 파평 윤씨 윤평수(尹平秀)의 딸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딸만 둘 있던 큰아버지 권석평(權錫平)에 입양되었다.
그는 1919년 3월 23일 김상준(金相峻)과 윤규현(尹圭鉉)이 주동한 삼가면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약 4천 명의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를 불태우고 삼가읍의 중심지를 돌며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때 경찰의 발포로 임종봉이 대퇴부에 총을 맞자 군중들은 주재소와 우편소를 파괴하기 위해 몰려갔고, 권영규는 그 과정에서 일본 군경이 쏜 총탄을 맞고 다음날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권영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만주방면 독립운동가, 권영규
성명 | 권영규(權永圭) |
생몰 | ? ~ 1922년 10월 14일 |
출생지 | 미상 |
사망지 | 만주 관전현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권영규는 1920년 서간도지역을 무대로 항일무장투쟁을 펼친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의 국내특파원으로 국내에 잠입하여 친일주구배 숙청, 일제의 군경 토벌,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1920년 말 광복군사령부의 예하부대인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지방 출동부대의 대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그리고 1922년 중엽에는 남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 통합운동에 의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성립되자 이 단체의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22년 10월 14일 관전현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권영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권영규의 생부 권석원(權錫元)이 1918년 8월 17일에 별세, 양부 권석평(權錫平)이 1918년 10월 26일 별세했기에 당시 상중(喪中)이었으므로 이런 별칭이 붙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