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성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1987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1997 |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35번}}} | ||||
김종모 (1993~1995) | → | 권오성 (1996~1999) | → | 소소경 (2001~2002) |
권오성 | |
출생 | 1970년 10월 26일 ([age(1970-10-26)]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신일고 - 고려대 |
신체 | 180cm, 86kg[1] |
포지션 | 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6년 2차 6라운드 (전체 46번, 해태) |
소속팀 | 해태 타이거즈 (1996~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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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직 KBO 리그 야구 선수.2. 선수 경력
신일고와 고려대를 거쳐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친 후 1996년 프로입단하였다.신일고 재학 당시 제41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1987년) 우승멤버로서 대회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할 만큼 장래가 유망한 선수였다.동봉철, 박재용, 박철홍이 이 당시 팀메이트였으며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연장10회까지 가는 접전끝에 경남고에 4-3으로 승리했다.
아마시절엔 특히 타격에 자질이 있어 고등학교 때부터 4번을 쳤고, 상무에서도 타율 3~4할을 넘나들면서 1995년 실업야구 춘계리그 MVP 수상,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국가대표 상비군 선발 등[2] 많은 걸 보여주며 기대를 받았으나, 프로 입단 이후에는 그 재능을 개화하지 못했다. 당시 주전포수 최해식은 뛰어난 수비를 자랑했지만 타격능력이 아쉬웠는데, 권오성은 (비록 주로 대타로 출장했다지만) 그보다도 낮은 성적을 기록할 정도로 기대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였다. 결국 내내 백업포수로 김지영과 경쟁하다 2000년 은퇴하였다.
이후 체육교사로 전업한 것으로 보인다.#
초특급 유망주였던 박정혁을 구타해서 선수 생활을 끝장낸 선수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권오성은 동시대의 야구선수들 중에서는 후배들을 상대로 군기를 잡거나 구타를 상습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었던데다 인성도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3.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96 | 해태 | 7 | .000 | 0 | 0 | 0 | 0 | 0 | 0 | 0 | 1 | 0 | 2 | .200 | .000 | .200 |
1997 | 47 | .228 | 18 | 2 | 0 | 0 | 11 | 7 | 0 | 6 | 4 | 23 | .315 | .253 | .568 | |
1998 | 28 | .186 | 8 | 2 | 0 | 1 | 3 | 1 | 0 | 4 | 1 | 8 | .271 | .302 | .573 | |
1999 | 37 | .148 | 8 | 1 | 0 | 1 | 5 | 5 | 0 | 4 | 2 | 18 | .233 | .222 | .456 | |
KBO 통산 (4시즌) | 119 | .189 | 34 | 5 | 0 | 2 | 19 | 13 | 0 | 15 | 7 | 51 | .277 | .250 | .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