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권평근(權平根) |
생몰 | 1900년 1월 26일 ~ 1945년 9월 8일 |
출생지 |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
사망지 | 경기도 강화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권평근은 1900년 1월 26일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0년 1월 인천노동조합(仁川勞動組合) 위원으로 선출되어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5월 메이데이 기념 시위를 준비하던 중 일제의 예비검속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1년 인천청년동맹(仁川靑年同盟) 간부로 활동하는 한편 1931년 2월에는 신간회 인천지회에서 활동하였다. 동년 6월 인천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메이데이와 6·10만세운동 기념시위를 계획하고 격문을 살포하는 등의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그러던 1931년 7월 만보산 사건이 일어난 뒤 만보산사건 오보사건으로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집단 공격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그는 이것이 일제의 음모로 꾸며진 것이라고 파악하고 7월 4일 뜻을 함께 하는 애국지사들과 회합을 한 뒤 다음날 인천공회당에서 열리는 신간회 인친지회, 인천청년동맹, 인천노동조합 주최의 시국에 관한 연설회를 이용해 배일 연설을 하기로 했다. 그는 이 연설에서 만보산 사건의 원인은 중국이 아닌 일본에 있다고 알리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군중을 이끌고 시내에서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 일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연설회는 개최되지 못했고, 권평근 등 가담자 6명이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1931년 10월 경성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강화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5년 9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권평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