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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플라비오스 그레고리오스 (Flavius Gregorius) |
출생 | 미상 |
사망 | 647년 |
직위 | 아프리카 총독 |
반란 대상 | 콘스탄스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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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이라클리오스 왕조의 반란자. 아프리카 총독부 제4대 총독. 콘스탄스 2세로부터 반기를 일으켜 아프리카 속주의 지배자로 군림하였으나, 아랍과의 전쟁을 치르다 전사했다.2. 행적
이라클리오스의 사촌 니키타스의 아들로, 645년 7월 아프리카 속주 총독에 임명되었다. 그는 카르타고에서 칼케돈 공의회파와 단성론파간의 분쟁을 어떻게든 마무리 하려고 애썼지만, 칼케돈파가 대세인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단성론파가 대세인 아프리카 속주간의 갈등이 워낙 심각해서 뜻대로 되지 못했다. 그러다 646년 알렉산드리아가 아랍군에게 공략 당하면서 이집트 속주가 이슬람 세력에 넘어가자, 그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중앙 정부로부터 독립하기로 마음 먹고, 이단인 단의론을 강요하는 정부에 맞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카르타고에서 독립을 선포했다. 아랍측 사료에 따르면, 그레그리오스는 자신의 초상화가 담긴 동전을 주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어떤 동전도 발견되지 못했다.647년, 제3대 정통 칼리파 우스만은 압둘라 이븐 사드에게 2만 병력을 이끌고 카르타고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아랍군이 쳐들어오자, 수페툴라에서 결전을 벌였다. 전투 양상은 팽팽했지만, 압둘라 이븐 앗 주바이르가 2만 군대를 추가로 이끌고 도착하면서 전세는 아랍군에게 급격하게 기울었다. 결국 그는 전사했고, 그의 딸은 아랍군에게 붙들려 이집트로 끌려가다가 도중에 낙타에서 떨어져 죽었다.
아랍군은 수페툴라를 약탈한 뒤 카르타고 총독부를 공격했지만, 동로마군이 요새에서 결사 저항하자 공략을 포기하고, 후임 총독 게나디오스 2세로부터 330,000 노미스마타, 즉 금 2톤을 공물로 받는 대가로 떠나기로 했다. 동로마 제국은 이 덕분에 아프리카 속주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수페툴라 전투의 여파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여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이 나날이 줄어들다 50년 뒤에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