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난 언제나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좋아했다. 마치 된바람처럼 억세고 남성적이며 차가운 게 마음에 들고, 2악장에서는 큰 소나무 위에서 새가 노래하는 것이 들리는 듯 하다. 또한 이 곡의 독창성과 일체의 오글거림도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1]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에드바르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1868년, 스물다섯 살 때 작곡했다. 작곡가 자신이 피아니스트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만큼, 연주자로서 자신의 기교를 뽐내고자 하는 것 또한 작곡 동기 중 하나였다. 현재까지도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명곡으로, 북유럽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초연은 1869년, 코펜하겐에서 이루어졌다.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IMSLP 링크
2. 편성
독주 그랜드 피아노,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현 5부(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전형적인 2관편성이다. 물론 대규모 오케스트라에서도 연주하는데 4관편성으로 더블링한다.
3. 구성
- 1악장 Allegro molto moderato. a단조, 4/4박자. 도입부가 있는 소나타 형식. 팀파니의 연타와 오케스트라의 총주에 이어 등장하는 Am 화음으로 연주하는 피아노의 굉장히 강렬하고 인상적인 하행화음으로 곡이 시작한다. 도입부에 해당하는 이 부분은 워낙 강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어서 솔로몬의 선택 등 매체에서도 많이 쓰인다.[2]
관악기군이 제1주제를 제시하는데, 일견 단순하게 들릴 수 있는 선율이지만 북국의 묘한 애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를 피아노가 받은 후, 오케스트라의 반주 하에 전개한다. 첼로로부터 굉장히 평온한 제2주제가 제시된다. 처음엔 다 장조로 주제가 전개되고 나서 다 단조로 조성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변주된다.[3] 이를 피아노가 받은 후 점차 고조되어 오케스트라의 총주를 포함하는 짧은 소종결구와 함께 제시부가 마무리된다. 이후, 플루트가 제1주제를 다시 불러들이고, 이를 호른이 받으면서 전개부가 시작된다.
전개부는 1주제를 바탕으로 하는데, 1분 30초 정도 길이로 비교적 짧은 편이다. 재현부는 피아노가 1주제를 재현하며 시작된다. 작곡가 자신이 직접 작곡한기교를 최대한 과시하여 어렵기 짝이없는카덴차가 등장한다. 도입부에서 강렬한 하행화음으로 장내정리 후 이목을 집중시켰다면, 카덴차에서는 이제 손도 충분히 풀렸겠다, '단순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1주제로 이렇게까지 어렵게 변주해서 연주할 수 있다!'라고 연주자의 기교를 최대한 과시한다. 이때 1주제는 포르티시시모(fff)로 숫제 피아노가 부서져라 두들겨야 한다[4]. 이후, 오케스트라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다가 도입부의 하행화음이 재등장하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함께 화려하게 끝맺는다.[5]
- 2악장 Adagio. D flat 장조, 3/8박자. 3부 형식 (A-B-A').[6]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의 감미로운 선율로 곡이 시작한다. 악장의 1/3에 달하는 1부(A)는 오케스트라 연주로만 이루어지는데, 서정적이면서도 명상적인,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선율이다. 이후, 피아노가 제시하는 선율로 2부(B)가 시작된다. 피아노의 선율은 마치 은쟁반 위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차가우면서도 영롱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이후, 점차 고조되어 피아노의 트레몰로로 긴장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후, 2악장 최고의 클라이막스가 등장하고(A'), 1부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되고 악장이 마무리된다.
문명 5에서 유럽 문명들을 플레이하다보면 BGM으로 항상 나오는 음악이라 문명 5 게이머들에게는 익숙할 것이다.
- 3악장 Allegro moderato marcato. a단조, 2/4박자. 론도 형식.[7] 목관악기의 도입과 독주 피아노의 화려한 아르페지오로 곡이 시작한다. 무곡 풍의 빠르고 정열적인 제1주제가 제시된다 (13초). 3분 부터 플룻이 청명하고 서정적인 제2주제를 연주한다. 이를 피아노가 받아서 반짝이듯이 영롱하게 확장한다. 그 후 다시 1주제가 등장하는데, 대비가 강한 두 주제를 통
해 츤데레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한 완급조절이 인상적이다. 이후, 쉼없이 몰아치며 전개되어 금관이 가세한 전체 곡 마지막 클라이막스인 A장조 2주제 재현를 연주하며 곡을 끝맺는다. 듣는 사람에 따라 광활한 피오르드 해안과 바닷가, 태양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자연 풍경으로 들릴 수도 있고, 고난을 극복한 승리의 찬가로 들릴 수도 있고, 속세의 자잘한 일은 잊어버리고 대범한 호연지기를 보이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매우 벅차오르는 선율이다.
4. 기타
- 1악장의 도입부가 매우매우 유명해서 이 곡의 존재는 커녕 그리그도 모르는 일반인들도 들어봤을 것이다. TV에서도 여러 CF에서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였으며, 유명한 것으로는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이는 수많은 곡들에서 패러디 및 모티브를 주었는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있다.[8]
- 그리그는 이 작품에 대해 크게 만족하지 못했는지 여러 번 개정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 작업은 그리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까지 지속되어 오늘날에는 주로 그가 1907년 개정한 악보로 연주가 이루어진다.
- 이 곡은 역사적으로 맨 처음 녹음된 피아노 협주곡이라고 한다.# 다만 녹음 기술 한계로 많이 축약되어 있고 음질도 안 좋아 6분밖에 안 된다.
- 인기가 많은 만큼 여러 연주자들이 이 곡을 녹음했다. 예브게니 키신,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9] 등의 연주가 유명하다.
- 본인이 웅장한 금관악기를 좋아한다면 크리스티안 짐머만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것을 들어보자. 3악장 마지막 부분을 카라얀답게 트럼펫의 주선율[10]을 매우 강조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 그리그가 이 곡을 쓰기 전부터 그를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던 리스트는 이 곡을 접하고 "이것이야말로 스칸디나비아의 혼이다"라고 격찬하면서 그리그에게 "앞으로도 이렇게만 한다면 크게 성공할 것입니다"라고 격려했다. 또 그리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처음 보자마자 혼자서 바이올린 파트와 피아노 파트를 쳐내서 그리그가 그걸 보고 어린아이처럼 웃었다고 한다.
- 2악장 일부를 편곡한 곡이 문명 5의 OST로 들어갔다. 유럽 국가로 플레이할 시 평화 BGM으로 나온다.
- NoteWorthy Composer 2.0 이상 버전의 샘플곡 중 하나로 1악장이 나온다.
[1] Sviatoslav Richter - Notebooks and Conversations, page 246. 저자 Bruno Monsaingeon, 번역 Stewart Spencer.[2] 전체 약 30분 정도 하는 곡에서 맨 첫 부분이 유명하다. 그러나 이 하행화음은 처음과 마지막을 제외하면 나오지 않는데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3] 도 시라솔 라미 레시 라 솔 ☞ 도 시♭라솔 시♭파 미♭ 도 시♭ 라♭.[4] 포르티시모(ff)가 '매우 세게'라는 뜻이므로, 포르테가 하나 더 붙어 있는 포르티시시모는 이보다도 더 강하게 연주해야 한다[5]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만큼은 아니지만 여기서도 꽤나 악장간 박수가 잘 나온다.[6] 위 동영상에서 이어지는 Part 02를 바탕으로 작성하였다.[7] 위 동영상에서 이어지는 Part 03를 바탕으로 작성하였다.[8]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도 빠른 하행화음으로 시작한다.[9] 특히 미켈란젤리가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1965년 실황 연주는 화끈하면서 (특히 3악장) 서정적인 연주로 유명하다.[10] 카라얀은 원래 금관의 더블링을 자주 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같은 경우 원래 2대인 호른을 8대까지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