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드 말린(Guillaume de Malines : ? ~ 1145년 9월 27일)은 플랑드르 출신의 성직자로, 1127년에서 1130년까지 성묘 교회의 소 수도원장으로 재직했으며 1130년부터 죽을 때까지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였다. 그는 때때로 기욤 1세라고도 기록되어지는데 후대의 기욤 다장(Guillaume d'Agen)이라는 Guillaume이라는 이름을 두번째로 사용하는 총대주교가 등장해서 구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는 기욤 2세라고도 하는데 성묘 교회 소 수도원장 부임 시 전임이 영국남자...윌리엄 1세(William I the Englishman)[1]였기 때문이다.
기욤 드 티레는 기염 드 말린을 "칭찬 할만한 습관"을 가진 사람으로 기록했다. 총대주교 재임 기간 동안 예루살렘 왕국의 첫번째 여왕 멜리장드의 중요한 후원자였으며 유능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는 2차 십자군의 주창자이자 당대 가장 뛰어난 성직자로 이름 날리던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Bernard de Clairvaux)[2]로부터 교황청으로부터 특권을 받은 성전 기사단을 지지 해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받았다. 그리하여 1132년에서 1133년의 기간 동안 기욤은 예루살렘과 야파 사이의 길을 지키기 위해 얄로(Yalo)에서 Castrum Arnaldi(또는 Chastel Arnoul)의 건설을 일부 시민들과 함께 주도했다. 그곳은 나중에 기사단의 요새가 된다.
[1] 영어 윌리엄(William)은 프랑스어로 기욤(Guillaume)이다.[2] 베르나르의 제자가 교황 에우제니오 3세가 되었었다. 열성적인 활동과 엄격한 수도 생활로 위세가 대단했다. 2차 십자군에게 설교했으며 정통 교리에 철저하고 격렬한 성격은 풍부한 성서 지식과 함께 그를 신비 신학자로 발전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