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22:02:28

김경성


파일:김경성.jpg
성명 김경성(金庚星)
연암(蓮巖)
본관 의성 김씨
출생 1918년
사망 1978년 (향년 60세)
학력 대전중학교 (졸업)
경성제국대학 예과 (문과을류 /수료)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 학사)
주요 경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과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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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1세대 지리학자로, 인문지리 등 응용지리학을 미국에서 최초로 수입했으며,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의 기틀을 세우고 학과장으로 장기간 재임했다.

2. 생애

1918년 출생으로 대전공립중학교(구제중학교) 졸업 후 1937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제14회, 문과을류)에 입학했다. 1940년 예과 수료 후 법문학부 법학과로 진학하여, 경성제대 법문학부 법학과 제2류(정치공법학전공)를 졸업했다(출처 참조).

1945년 8월 해방 후 교편을 잡고 있던 그는 1952년 가을 미국으로 유학하여 석사를 마치고 귀국하여 1958년 창설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과의 두 번째 전임교수로 부임하였다. 그는 육지수(1907~1967)와 함께 서울대 지리학과를 창설하고 정립시키는 작업을 주도했고, 미국에서 배워온 현대지리학을 한국지리학계에 최초로 소개하였다.

연암은 <지도학>, <항공사진판독>, <자원의 보전>, <하천유역보전> 등을 교과과정에 정규과목으로 편성하여 강의를 담당했다. 이러한 분야는 미국의 실용적 학문을 받아들인 것으로 지리학을 한 단계 높인 것이며, 응용지리학 분야를 한국에서 새롭게 개척한 것이었다. 그는 그간의 강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그의 지리관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되는 《인문지리학》을 1963년 편찬 발간했다.

그는 강의와 연구 외에도 국토종합개발심의회와 국립공원위원회 전문위원으로, 국토계획조사단의 계획위원 등으로 정부의 개발계획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1960년 스웨덴에서 개최된 국제지리학연합총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석하여 한국이 정회원국으로 가입하도록 하는 데 공헌했다. 이상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30년사 참조.
파일:김경성교수.jpg
서울대학교 문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중에 1959년부터 1963년까지 경희대학교 지리학과에 시간강사로 출강했으며(경희대 지리학과 명예교수 페이지 참조)[1], 이 때 경희대에 있던 조병화 시인과 친분이 깊었다고 한다(참조). 조병화 시인의 평가에 따르면 입담이 좋고, 불교 신자로서 불교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다고 한다.
[1] 경희대학교/학부/이과대학/지리학과/교수진 문서에 자세히 나와있다.